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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불편 - 소비사회를 넘어서기 위한 한 인간의 자발적 실천기록
후쿠오카 켄세이 지음, 김경인 옮김 / 달팽이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소비사회를 넘어서기 위한 한 인간의 자발적 실천기록, 이라고는 되어 있지만, 이 책을 출판하기 직전 그 ‘실천’의 한가지였던 자전거 통근 중 교통사고를 당해 몸의 일부가 마비되는 후유증을 겪기도 했던 사연 많은 책이다. 작가의 말대로 그 사고로 인해 그렇게 부르짖던 실천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 같아 출판에 대한 회의가 생겼을 법도 했겠지만, 오히려 뒤집어 생각해본다면 자전거로 통근하는 것조차 안전을 보장해줄 수 없는 이 빠르고 경쟁적인 사회에 대한 인식이 짙어져 즐거운 불편의 실천이 더 설득력을 갖지 않을까.. 하는 씁쓸한 생각도 해본다.
개인적으로 나 역시도 빨리빨리, 더 열심히, 더 잘, 남들보다 더, 라는 수식어에 익숙했던 사람이었다. 적어도 학생 때까지는 그랬다. 그게 내가 받은 교육이었고 그 궤도를 벗어나면 도태되거나 낙오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어느 정도는 -아직도- 사실이기도 하다. 남편과 함께 미국에서 생활하기 위해 2년 동안 내 일을 중단하고 아이가 태어난 이후, 내 시계는 조금 달라졌다. 특히 조용하고 평화로운 미국 소도시에서의 2년의 삶은 내 가치관을 많이 흔들어놓았다(바꿔놓았다고까지는 아직 말하기 힘들다). 잊고 있던 계절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었고 필요에 의해 운전을 하면서도 뒷차량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한국에서 여자 초보운전자는 빵빵거리는 소리와 더불어 심하면 욕설까지 감당해야 한다).
내가 잊지 못하는 내 인생의 한 장면은 그 Rolla라는 조그만 도시의 공원에서였다. 어느 가을날 하늘은 높았고 바람은 조금씩 쌀쌀해지고 있었지만 쾌청했고 난 베토벤의 합창을 들으면서 강아지와 산책을 했다. 줄을 매어놓긴 했지만 길게 늘어나는 줄 끝에서 우리집 강아지 보리는 자기 맘대로 뛰어다니고 땅을 파헤치고 영역표시를 하고 킁킁거리고, 난 내 맘대로 발길 닿는대로 걷고 있는데 합창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바람이 불어 내 발부터 머리끝까지를 휘익하고 스쳐지나갔고 반사적으로 숨을 훅 들이쉬면서 느꼈던 감동이란.. 귀로 듣는 음악과 내 눈과 내 몸이 느끼는 바깥세상이 아름다움으로 일치하는 순간이었고 그 때 뱃속에서는 우리 아들이 꿈틀거렸다.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긴 힘들지만 그 순간 내 안의 뭔가가 변했다. 사회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면서, 그리고 앞으로도 여전히 그런 삶이,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는 삶이 최고이며 내가 지향해야 할 삶임을 확신해오던 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앞만 보고 달려가기에 세상은 너무 아름답다.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 투성이였다.
자연과 인간 내면에 숨겨진 자연의 본능을 느끼는 것. 그것은 이제 내 개인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내 아들이 그걸 느낄 기회를 갖게 하고 싶다는 바램으로 이어진다. 내가 본 것을 내 아들도 느꼈으면, 내가 느낀 것을 보고 내 아들도 감동했으면.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금 이대로의 사회가 반성 없이 지속된다면 내 자식 세대에게 물려줄 아름다움의 유산은 얼마 남지 않을 것 같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의 악순환. 지구가 죽어간다는 자각은 누구나 하고 있지만 요즘 tv의 어느 프로에서 자주 나오는 말처럼 ‘나만 아니면 돼’라는 논리가 지배적이다.
물질이나 에너지의 소비, 그러한 소비가 행복인 것 마냥 광고해대는 세상에서 허겁지겁 남들 가진 것을 나도 갖기 위해, 또 그 단계를 넘어서면 남들보다 더 좋은 것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삶. 소비지향적인 삶이 우리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가. 환경파괴, 사람들이 여유를 잃어가는 것,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넘쳐나는 생산 때문에 발생하는 불황과 대량해고, 그리고 악순환, 악순환, 악순환. 어쩌면 이 저자와 이 책에 나오는 다른 대담자(2부는 저자가 다른 분들과 나눈 대화를 실어놓았다)들은 이상을 꿈꾸는 낭만주의자들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산업사회, 소비사회는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는데다가 멈출 수 있는 브레이크가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살기, 적게 소비하기, 소비의 중독을 끊어버리기, 먹을 것을 자급자족해보기, 이런 작은 실천과 불편들은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불편을 실천하려면 개인이 즐거워야 한다. 강요하거나 억압해서는 안된다. 소비의 질을 전환해야 한다. 그게 이 책에서 줄기차게 말하고 있는 내용이다.
저자는 가족들이 먹을 채소와 쌀을 직접 재배해본다. 한 시간 거리를 자전거로 통근하고 자동판매기를 이용하지 않으며 가급적이면 물이든 전기든 에너지를 절약한다. 그래서 매우 불편했다. 하지만 많이 얻었다. 우리 사회가 이미 폭주기관차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상태라면 그 기차를 멈추는 일은 너무 힘든 일이다. 어느 대담자의 말처럼 기관차의 방향을 살짝 바꿔주는 것, 그리고 개인적인 작은 실천들. 우리 뒷세대를 위해서라고 말하지 않아도 좋다. 나를 위해서 환경은 지켜져야 하고 인간성은 보호되어야 한다.
소비사회라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하지만 사실은 나도 그런 깨달음이 불편하다. 어쩌면 그냥 분위기에 휩쓸려 경쟁하고 성공하는 게 내 바램인 그 때가 편했을지도 모른다. 저자처럼 작은 것이라도 실천해야겠다, 라고 마음먹기도 아직은 벅차다. 그렇지만 문제해결의 첫단계는 문제 인식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아니 그 이전에 내 인생의 방향은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봐야할 것 같다. 그 전에, 가장 쉬우면서도 끊임없는 되새김질이 필요한 것 하나, 현재를 충실히 살기, 는 열심히 실천해볼 생각이다. 미래를 위해 지금 열심히 해야 해, 열심히 벌어놔야 해, 같은 미래에 저당 잡힌 현재가 아니라. 온전한 오늘 하루, 돈이 아니라 정성과 시간을 쏟아부어야 할 내 아들에게 정성과 시간을 내 줄 것. 그리고 하루를 열심히 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