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군화 잭 런던 걸작선 3
잭 런던 지음, 곽영미 옮김 / 궁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읽고 있는 중에도 소설인지 역사인지 헷갈릴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의도한 건 아닌데 요즘 들어 읽는 책들이 자꾸만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궁리하게 만든다.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자본주의가 한참 무르익는 시대에 살던, 별별 일 다 해본 잭 런던이란 작가는 사회주의적인 인류형제애 시대라는 걸 미래로 설정해놓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참 그 문제를 생각해보다 남편에게도 자본주의 이후의 모습은 어떨 것 같냐고 물어보니, 사회주의, 라고 대답한다. 쿵...  뒤통수에 돌을 맞고 앞으로 넘어진 기분이었다.(남편이 그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참 독특하다. 한 세기 전쯤 세상에 나온 책임에도 불구하고 내용과 상관없이 일단 구성이 정말 독특하단 뜻이다. 서기 27세기(여전히 지금도 미래)에 앤서니 메러디스라는 역사가가 "에버하드 원고"라는 걸 발견하고 소개한다. 700년 전(소설의 시점, 1900년대 초반) 사회주의 혁명가였던 어니스트 에버하드의 아내인 (역시 혁명가) 에이비스 에버하드가 남긴 기록이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사회적 모순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사회주의의 물결이 최고조에 올라 혁명의 성공이 눈앞에 있었지만 이를 제압하는 과두체제("강철군화"로 지칭된다)가 수많은 혁명가와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제거함으로써 약 300년 동안 체제를 유지한다. 이상향이었던 사회주의가 인류의 삶에 정착하는 건 강철군화가 사라진 이후이다.

 

책에서 묘사되는 다양한 인물들과 사회상들은 상당히 현실적이다. 다시말해, 이게 소설이 아니라 과거 미국의 (자본주의) 역사이기도 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잉여의 처분, 노조와 더불어 귀족노조의 탄생, 체제를 유지시키는 다양한 장치들, .. 정말 소름끼치도록 닮아 있어서 잭 런던 이 사람 못 배운 것 치고는 굉장한데,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했었다.(학력에 대한 선입견은 아니다. 다만, 그 시대에 미성년자로써 노동을 시작했었고 대학에 들어갔다가 형편때문에 학업을 마치지 못했음에도 독서와 자신의 경험을 결부시켜 이런 '괜찮은'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게 놀랍다는 뜻이다.) 특히 어니스트의 입을 빌려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을 그 어느 교수님보다도 알기 쉽게 설명한 부분에서는 정말 감탄했다.

 

하지만 시카고코뮌에서의 시가전을 묘사할 때 노동자도 군인도 아닌 밑바닥 사람들을 거의 좀비처럼 그려놓은 게 좀 거슬렸다. 폭도들, 이해한다. 폭도들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폭도들을 묘사하는 데는 좀비만한 것도 없을 것 같다. 물론 소설 속에서 좀비라는 단어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맹목적이고 지적능력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폭도무리를 연상하면서 좀비를 생각안할 수가 없었다. 사회주의자였던 잭 런던의, 교육받지 못하고 최저생활수준을 근근이 유지하고 있는 빈민들에 대한 시선이 이런 것이었을까 싶어 섬뜩해진다. 이 사람도 지식인의 함정에 빠진 건 아닐까.

누가 뭐라하지 않아도 주인공 어니스트에게서 잭 런던의 이상형을 보게 된다. 지적이고 당당한 혁명가의 모습. 그런데 현실 속의 잭 런던은 지적이고 당당했을지는 몰라도 돈이 좀 많고 몸이 너무 안락했던 건 아닐까?.. 라는 느낌. (물론 나는 모른다.ㅋㅋ)

 

사회주의. 이상적이다. 공산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

자본주의가 유혈혁명으로 사회주의로 이행하려면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손실이 뒤따를 게 분명하다. 소설속에서처럼. 가끔 사회당이 존재하고 사회주의적인 정책이 자본주의에 살포시 녹아있는 나라들을 볼 때마다 그거 괜찮겠네,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회도 진화한다는 생각을 바보같이 최근들어 하게 됐다. 봉건주의에서 지금까지

온 건 사회가 하루 아침에 확 바뀌어버린 탓이 아니라는 걸 배우고 느끼면서도 자본주의가 사회의 진화과정일 수 있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 난 정말 무지했던 것 같다. 우리 사회도 진화하는 과정에 있겠지만, .. 그래도 소시민적인 내 입장에선 어느 시대가 오건, 피는 흘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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