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지 않은 새로움에게 새로움의 길을 묻다
임웅 지음 / 학지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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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새롭지 않은 새로움에게 새로움의 길을 묻다.

창의적이라는 말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책에서는 창의적이라는 말에는 새로움적절성이 함께 내포되어야 한다고 한다. 적절성에는 유용성, 가치, 실현 가능성 등의 의미도 포함된다. , 창의적이라는 말은 새로움과 함께 유용하고 가치가 있으며 실현 가능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움이라는 말은 무엇일까? 새로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새로운 새로움새롭지 않은 새로움이다. 새로운 새로움은 그 결과물에 대해 누구도 몰랐던 새로움이라면, 새롭지 않은 새로움은 알고는 있었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는 그러한 새로움이다.

새로운 새로움의 예는 ‘DNA’와 피카소의 <게르니카>이다. 새롭지 않은 새로움의 예는 지오데식 돔보행자를 위한 자동차의 에어백이다. 이 둘의 차이점이 눈에 띄나요? 개인적으로 보자면 새롭지 않은 새로움은 어느 누군가가 한번쯤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고 새로운 새로움은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어떤 사람에 의해서 탄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이런 새로운 생각은 누가할 수 있을까? 유전학적으로 우세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일까? 책에서는 유전적인 이유도 있다고 한다. 노벨상을 탄 사람들을 보면 친인척들이 상당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시대 상황도 무시할 순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꾸준한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런 창의적인 생각은 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자기가 일하는 분야에서 10년이상 꾸준히 일했어야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고도 했다.

창의적인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첫번째 고착을 버리라고 한다. 고착을 쉽게 풀면 고정관념이라도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두번째는 인문학적 교양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창의적인 생각은 하루 아침에 생각나지 않는다. 천재는 99%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는 에디슨의 말처럼 자기 분야에서 꾸준히 노력해야만 해결점을 찾지 않나 싶다.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처럼 자기 분야와 일에 빠진 사람이어야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길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요행을 바라는 것 같다. 자신의 일이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무엇인가 번뜩이는 생각으로 이 넘기길 바라니까. 하지만 이런 생각만으로 일을 하다보면 업무 성과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어쩌면 로또를 바라는 심정도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노력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루어낼 수 없듯, 어쩌면 창의적인 생각도 노력이라는 과정의 산물이라고 보면 정확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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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깊은 철학 50 - 세계의 지성 50인의 대표작을 한 권으로 만나다
톰 버틀러 보던 지음, 이시은 옮김, 김형철 감수 / 흐름출판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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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한 문장만 다가와도 짧지 않다.

제목 그대로다. 철학자 50명의 이론을 담은 개론서 같은 느낌의 책이다. 50명의 이야기를 축약했기에 짧다고 할 수 있으나, 개괄적인 생각을 알 수 있기에 그리 짧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50명을 담았기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철학자들도 많다. 아리스토텔레스, 벤담, 키케로, 공자, 푸코, 헤겔, 캍느와 사르트르, 니체까지 정말 많은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물론 아쉬운 점이 있긴 하다. 책의 의도가 많은 철학자를 소개하는 concept이기에 이 concept으로만 보면 만족스럽지만 그러기에 불만족스러운 면도 상당히 있다.

이야기가 진행될 듯 하면서 끊기는 부분은 책에 대한 몰입도를 반감시켰다. 책의 구성은 철학자 한 명을 소개하고 철학자의 생애 혹은 대표 이론에 대한 알려준다. 그리고 그 대표 이론에 대한 설명은 한 다음 축약하고 끝이 난다. 책의 마지막에는 또 다른 철학의 명저 50을 소개한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우리에 앞서 살아온 많은 철학자들이 있다. 이 사람들의 사상을 다 이해할 순 없다. 다만 내가 관심있는 철학자들에 대한 책을 읽는 것 만으로도 시간은 부족할 수 있다. 관심있게 본 문장은 이런 것이었다.

하이데거는 기분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한다. “기분이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세계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유발한다. 기분 때문에 우리는 중립적으로 남아있을 수가 없다. 기분은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존재한다는 게 어떤 일인지를 늘 의식하게 만든다.” (238 페이지)

기분은 내적인 변화를 통해서 만들어질 수도 있고, 외부적인 영향으로 인해서 변화할 수도 있다. 그 기분이 정말 내 기분인지는 또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내부던 외부던 기분이 변한다는 것은 그 기분에 반응하는 우리의 지난 삶이 반추되는 결과니까. 결국 살아온 환경에 따라서 기분도 천차만별로 나타날 것 같다.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을 세 부분, 이성, 기개, 욕망으로 나눈다. “이성은 영혼을 감독하며 전체적으로 최선의 결과를 추구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결단력과 양심을 부여한다. 기개는 야망과 진취력을 북돋우는 한편 분노∙자만심∙수치심 같은 감정을 유발한다. 욕망은 단순히 식욕∙수면욕∙성욕 같은 기본적 욕구를 말한다. 인간은 기개와 욕망에 몸을 내맡기지 않고 이성을 통해 이를 조정하고 이끌 때 정의로워지며, 그 이성은 기본이 되는 보편적 형상인 선에 관한 지식에 기분을 두어야 한다.” ( 423 페이지)

플라톤은 이성이 기개와 욕망을 컨트롤하는 이성적인 인간이 인간이라고 했다. 하지만 살면서 이성만으로 살아지나 싶기도 하다.

짧고 깊은 철학을 읽으면서 사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사람보다는 생각의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가 정확할 것 같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진짜 내 감정인지 아니면 외적인 영향으로 인한 감정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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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북로드 세계문학 컬렉션
프란츠 카프카 지음, 북트랜스 옮김 / 북로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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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변신

대다수 작가의 작품을 보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것 같다. 솔직히 카프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그냥 유명한 소설가구나 하는 정도. 검색해보니 실존주의 대표작가라는 카프카. 난 왜 카프카를 몰랐을까? 아마도 그건 소설에 대해서 그리 관심이 없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요즘은 소설이 재미있다. 현실에서 그려지는 이야기에는 한계가 있기에 작가의 시선을 빌려 새로운 이야기를 동경하는 것 같다.

카프카의 약력을 보니 1906년 카일대학 법학박사, 그리고 보험회사 근무라고 나와있다. 그리곤 없네? 이게 카프카의 약력이라면 아마 이 변신이라는 소설은 자신에게 쓴 글이 아닌가 한다.

1984와 동물농장이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처럼 이전에 쓰여진 소설이지만 현재의 우리가 봐도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그건 우리네 삶이 그리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서 아닐까? 다르다곤 하지만 다름 중에서 공통분모는 꾀 많이 있으니까.

그러고 보면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서로 교집합을 찾으려는 것 같다. 서로 공통점을 찾고 거기서 동질감을 느끼며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교집합이 차집합 임을 알게 된다. 같다고 생각했으나 다른 것이다. 뭐 이걸 발견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변신, 판결, 시골의사, 굴 이 네 작품이 한 권에 들어가 있다. 아마도 변신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기에 책 이름도 변신이라고 했나부다.

변신을 보면 참 침울하다. 스스로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벌래가 된다. 더 우울한 것은 가족이 그레고르를 버린다는 것이다. 그레고르가 죽어도 가족들은 새로운 삶을 찾는다. 우리가 그레고르처럼 살고 있는건가? 변신. 이 책을 보면 한 없이 침울해진다. 눅눅한 빵을 먹다가 체한 느낌? 어떻게 표현을 할지 모르겠지만 눅눅하다.

가족을 생각하는 카프카의 생각이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린 가족이면 서로를 사랑하며, 잘못이 있으면 용서를 하는 구성원들이 모인 곳을 가정이라고 정의하는 것 같다. 하지만 카프카의 생각은 이런 가정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이 녹아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독일인에게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유대인들에겐 시온주의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양쪽에게 거부를 당했다.

그러기에 변신에서 가족에게 버림 받고, 자신이 죽어도 새로운 삶을 살아갈려는 가족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꾸리는 가족이 아니라, 독일인과 유대인들 사이에서 배척 받았던 카프카 자신일수도 있다. 정체성이 없는 삶에서 탈출구는 죽음이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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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 - 조심하라, 마음을 놓친 허깨비 인생!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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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操心)이란 마음을 잘 붙들어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라는 뜻이다. 즉 마인드 컨트롤을 의미한다고 한다. 내가 나를 모르는 일을 종종 겪는다. 이 상황에서 왜 이랬을까? 저 때는 왜 저랬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마음을 컨트롤 하는 것은 내 생각으로 잘 되지 않는다. 분명 나의 것이긴 하지만 나의 것이 아닐 때가 더 많다.

책의 첫 페이지에 이런 문장이 있다. “세상살이에 문제가 떠날 날이 없다. 정작 문제는 문제 그 자체가 아니라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에 있다.” 이 말을 많이 생각한다. 문제는 나 자신일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는 것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알아야 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오늘 없는 어제는 후회, 오늘 없는 내일은 근심옛날과 지금은 큰 순식간이요. 순식간은 작은 옛날과 지금이다. 순식간이 쌓여서 문득 고금이 된다. (52 페이지) 순간 순간의 기억의 파편을 모아 놓으면 추억이라는 명화가 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순식간이겠지만 이 순식간들이 모여 너와 나의 삶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과의 추억을 공유한다면 둘 만의 명화가 만들어지겠지.

없었으면 몰랐으면 싶은 것은 늘 곁에 있고, 가졌으면 누렸으면 하는 것은 저 멀리에 있다. 이것으로 저것과 맞바꾸면 좋을 텐데 뜻대로 안 된다.” (59 페이지) 항상 이런다. 하지만 이것도 생각해보면 약간은 다를 수 있다. 항상 있을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사라지는 마음의 환영처럼

추수 끝난 들판에도 떨어진 나락은 많다.” (248 페이지) 이 문장을 보면 추억의 부산물을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남녀에게 이 떨어진 나락은 많을 것이다. 그리움이 추억이란 이름으로 불리기까지 얼만큼 시간이 지나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희망이란 짐승의 또 다른 이름” (264 페이지) 희망이란 짐승하지만 희망조차 없으면 어찌 살까 싶다. 희망이 있어 그래도 그래도 하면서 버티지 않을까? 보이지는 않지만 희망을 보았다.”라는 말을 한다. 희망은 우리가 만들어낸 하나의 허상이겠지만, 이 허상으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기에 그냥 믿어보는 수 밖에.

자신을 잘 모른다. 나를 안다고 하지만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얼만큼 시간이 더 지나야 알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그리워하는지 안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의 짐승이겠지만, 사랑은 보이지 않는 맘으로 실존하는 사람을 잡는다. 그래서 사랑은 위대하다. 나를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하는 맘이 커진다면 사랑이라는 말이 짐승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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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 생명진화의 숨은 고리
박성웅 외 지음 / Mid(엠아이디)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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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기생

흔히 기생충이라고 부르는 무척추 동물은 다른 생물체에 영양분을 빼앗아 먹고 자라는 생명체이다. 헌데 사람 한 명에게 기생하는 기생충만 해도 392종이나 된단다.

서민 교수는 기생충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한다. “기생충은 비열할지는 몰라도, 우리가 욕하는 것처럼 탐욕스럽고 악랄하지는 않다.” 뭐 사람한테도 벌래 만도 못하다는 말을 쓰는데 이제부터는 기생충만큼도 못하다는 말을 써야 할 것 같기도 하네.

기생충도 사람의 이동에 따라 혼혈이 존재한다고 한다. 유산 기생충은 현생 인류가 등장하기 전 조상들로부터 꾸준히 물려져 내려온 기생충이며, 기념품 기생충들은 우리가 진화하고 퍼져나가고 모여 살면서 얻어낸 기생충들이라 한다. 그러고 보면 기생충에서 진골과 성골이 존재하나부다.

기생충학이 탄생한 이유는 정복시대 때문이라고 한다. 19세기 말엽 식민지 관리원이 기생충들에 의해서 죽자 열대의학이라는 분과가 생겨났고 주로 열대지방에서 발견되는 기생충들로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에는 여러 기생충들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우리가 영화로 봤던 연가시. 진짜 숙주를 물속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고 한다. 육지 동물을 수중으로 불러 들이는 효과가 있다고는 하지만 연가시는 무서운 기생충임이 분명한 것 같다. 또한 메디나충도 참 무서운 기생충이다. 사람의 발 밑으로 내려와 몸을 녹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니. 더군다니 그림에서는 어머어마한 길이로 사람의 몸속에서 빠져 나오고 있었다.

이런 무서운 기생충들과의 공존을 이야기하는 4장이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뇌를 조종할 수 있는 톡소포자충을 치매 예방에 이용한다던지, 돼지편충을 이용해서 크론병을 치료하는 연구 등은 흥미롭게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 세상에 필요없는 동식물이 없듯이 기생충도 존재의 이유는 있을 것 같다. 기생에서 산다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동식물이 지구의 자원을 빨아먹는다면 그만큼 지구는 더 빨리 고갈 될 것이니까. 어느 생명체는 그 지구의 양분을 빨아먹는 종에서 기생한다고 해도 그리 나쁠 것 같지는 않다.

어떤 기생충들은 사람의 목숨을 위험으로 이끌고 가니 이것이 문제겠지만 연구자들은 이 기생충들로 생명을 구하는 연구를 하고 있으니 동전의 양면을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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