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꿈결 클래식 1
헤르만 헤세 지음, 박민수 옮김, 김정진 그림 / 꿈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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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데미안

20대에 읽은 데미안.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 봐도 생각나지 않는 데미안. 마흔이 되어 다시 읽은 데미안.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데미안.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이야기인데 어찌보면 또 다른 나와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헤르만 헤세는 융의 심리학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만나는 시점은 싱클레어가 프란츠 크로머를 만난 시점과 일치한다. 책의 도입부에서 싱클레어는 다른 두 가지 세계가 공존함을 밝히고 있다. 그러고 싱클레어가 프란츠 크로머를 만나는 시점 역시 서로 다른 두 환경에서 자란 이들이 만나는 시점이다. 이 때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만난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와 프란츠 크로머의 세계를 공존하는 듯한 이미지를 풍기게 된다.

책 곳곳에서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언급하는 부분이 나온다.

운명과 심성은 하나의 개념을 표현하는 두 가지 명칭이다. 133 페이지

새는 투쟁하며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그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144 페이지

사랑은 두 가지 모두였고, 두 가지 이상의 것이었다. 사랑은 천사의 형상이자 악마였고, 남자이자 여자였으며, 인간이자 짐승이고, 촤선이자 극단의 악이었다. 150 페이지

내 꿈 가운데 가장 끈질기게 되풀이되는 꿈은 저 어두운 사랑의 꿈이다. 174 페이지

여러 문장에서 볼 수 있듯이 헤르만 헤세는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언급하고 있다. ‘자아(ego)’가 의식상태에서 생활을 하는 나이라면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진짜 나를 자기(Das Selbst)’라 하는데 이 자기(Das Selbst)’는 이식과 무의식의 소리를 함께 듣는다고 한다. 융의 자아는 페르소나(Persona)’와 연관이 되는데 페르소나는 사회적 가면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싱클레어와 데미안을 보자면 싱클레어가 자아라 볼 수 있고, 데미안이 자기라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싱클레어는 페르소나로서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건 그냥 우리가 사는 한 시대의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우린 모두 사회적인 가면을 쓰고 있고 (페르소나), ‘자아라 생각하는 이성적인 모습으로 사회생활을 하니까. 그리고 멘토라 불리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자신이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조언을 받을려고 하고 있으니까.

시대는 변해도 사람은 변하지 않나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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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마케팅 - 고객 참여와 성과를 끌어내는 마케팅 로드맵
리사 아더 지음, 이흥섭 옮김 / 더난출판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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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빅데이터 마케팅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기론 원본 datarow data라 부르고, 이를 가공하여 우리가 필요한 정보를 만든 것이 information이라고 부른다고 알고 있다. 그냥 원본 data fact만을 담고 있다고 본다.

어느 지점에서 판매가 어떻게 이루어졌고, 연령대는 어떻고뭐 이런 개별적인 data. data를 어떻게 활용하여 information을 만들고 이를 marketing에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는 그 분야에 일하시는 분들의 몫이니까.

요즘에 회자되는 것이 big data이다. 그럼 이 big data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는 big data가 없었을까? 있었겠지 싶다.

우리가 말하는 콜라보레이션(collabolation)이 퓨전(fusion)과 무엇이 다른지 난 당췌 모르기 때문이다. 콜라보레이션이 이종간의 협업이라고 한다. 퓨전은 이질적인 것들의 뒤섞임이라고 정의한다. 그럼 차이점은 무엇일까? 시대가 만들어낸 신조어의 차이가 아닐까?

그럼 요즘 말하는 big data는 과거에는 없었을까? 있었지 않았을까? 이 책에서 가장 와 닿는 문장은 마케터들이 정작 그들이 필요한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57 페이지)” 이 문장이었다. 마케터들이 원하는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은데 어떻게 마케팅이 잘 이루어질까?

이는 회사라는 조직이 갖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이다. 우리 모두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하지만 회사에서 하는 정책에 대해서 쌍수를 들며 환영한 적이 있나?

도대체 윗 대가리는 뭔 생각이야?” 이런 생각을 누구나 한 두 번은 해봤지 싶다. 일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데이터는 주지 않고 그냥 회사에서 하라는 대로 하라니까 한다지만. 과연 성과는 있었나? 월급이라는 뽕이 아니면 때려치고 싶지 않았었나? 나만 그런가?

빅데이터 마케팅을 위해서 몇 가지 언질을 주는데 글쎄이는 마케터들이 할 일이 아니라 회사에서 정책적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난 뭐 하라고 하면 하기 싫다.) 책을 읽다보니 처음엔 마케터들이 읽어야 하나 싶었는데, 조금씩 뒤로 갈수록 회사의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인 듯싶었다.

만약 그들이 읽고 이렇게만 해준다면회사의 매출이 증대될 것 같긴 하지만, 읽지는 않을 테니 뭐..

회사에서 주는 뽕(월급)을 맞으면서 한 달 한 달 생활하는 월급쟁이에게 도전은 있어도 성취는 없는 생활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마케터들이라면 한 번은 읽어보고 도전은 해 볼 만하다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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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나의 힘 : 철학 읽기 고전은 나의 힘
문우일.류대성 엮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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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고전은 나의 힘 (철학읽기)

철학은 사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그 삶에 대한 생각을 먼저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철학 고전읽기겠지. 책도 행복, 삶과 죽음, 나는 누구? 너와 함께, 국가, 내 것 네 것, 감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개인의 이야기에서부터 공동체 그리고 삶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가 실려있다. 다만 책의 목차가 일관성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좀 그렇다. 개개인에서 넓게 퍼져가는 확장이면 좋겠는데모든 chapter가 독립적이라 상관은 없겠지만이건 개인적인 것이니 pass

행복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설명한 부분에서 삶에 세 가지 두드러진 유형이 존재한다고 한다. 향락적인 삶, 정치가의 삶, 관조하는 삶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설명이 약간은 미진한 측면이 있다. 뭐 삶이 그렇더라도 선한 삶을 말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관이 바뀌는 것은 아닐 테니까. 행복에 대한 기준을 어찌 설정하더라도 이는 다분히 개인적인 판단이니 이만하기로 한다.

삶과 죽음의 장에서는 러셀의 인간과 그밖의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자살에 대해서 언급을 한다. 자살이 불법? 인가 하는 점이었다. 저자는 불법이니 뭐니 이런 것이 소용이 없다라고 한다. 자살에 대해서 억제력이라는 것도 자살에선 소용이 없다고 한다. “너무나 비참한 나머지 자살을 시도하는 저 불행한 사람들 앞에서 목숨의 신성함을 호소하는 것은, 전쟁이 인류 제도의 일부로 존재하는 한 철저하게 위선이다.”라고 맺음을 한다. 그렇다. 전쟁이란 상대방을 죽이고 내가 사는 행위이다. 어떨 때는 합법적인 전쟁이 된다. 인간이 만든 법으로 전쟁을 정당화시킨다. 타살이 합법이라니. 그렇다면 자살은 불법의 테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인가?

이 책에서 가장 관심이 있던 chapter는 감정에 대한 chapter였다. 감정이란 무엇인가에서는 플라톤, 애덤스미스, 쇼펜하우어, 데이비드 흄, 이황의 이야기를 통해서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 가깝고 직접적인 목적은 괴로움입니다. (중략) 삶을 더욱 괴롭게 하는 것은 시간이다. (중략) 현명한 사람들은 누구나 쾌락보다는 오히려 고통이 없기를 바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재앙을 조금이라도 막아 보려 노력한다.”

괴로움이 함께 하는 것이 삶이라고는 하지만 쾌락보다는 고통을 덜 감수하겠다는 소극적인 삶의 표현이 아닐까 한다. ~ 우린 맨날 행복한 것은 아니지 않나? 어떤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야 행복감을 느끼는게 우리니까.

그러고 보면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있지 않겠느냐? 고 다시 되물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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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인 더블린 - 헤어나올 수 없는 사랑의 도시, 더블린. Fantasy Series 2
곽민지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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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원스 인 더블린

여행은 되돌아 올 곳을 확정 짓고 가는 일정 시간 동안의 떠남이라고 생각한다. 이 떠남이 일상일 수도 있고, 감정일 수도 있고, 시간일 수도 있고, 장소일 수도 있고, 기억과 추억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여행은 나의 자취에서 잠깐 동안 떠남이다. 이 떠남은 영원할 수 없다. 떠남의 시간이 끝나면 되돌아 와야 한다.

하지만 이 되돌아 옴이 그 전과 같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떠나기 전과 떠나기 후의 감정 상태도 마음가짐도 달라지고 싶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한다. 연인관계에서는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기를 바랄 것이고, 이별을 한 후에는 그 느낌을 정리하기 위해서도 그럴 것이다. 여행은 감정의 변곡점을 돌파하는 것이리라.

원스 인 더블린. 더블린을 여행한 곽민지님의 여행기다. 여행기현대인은 누구나 떠남을 동경한다. 떠남이란 새로운 출발일 수 있으니까. 거기에다가 해외로 떠남은 더욱더 동경할만하다.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니 더 즐겁지 않을까?

나를 모르지만 결국은 나 자신을 찾는 것이 여행일 것 같다. 그래서난 지금 여행이 무척하고 싶다.

여행에서 초심자의 행운은 여행자가 느끼는 희열이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곳에서 보여주는 호의는 여행의 맛을 배가시켜준다. 아일랜드. 가보지 못한 곳. 그곳에 가면 뭔가 새로운 희망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 이건 이방인의 시선이다.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일상이니까. 누군가가 이 일상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별 것 없는 일상인데 이 이방인은 이 것을 새로워 한다. 이쩌면 누군가의 일상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이런 느낌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새로이 만나는 연인들은 서로를 새로워하니까.

원스 인 더블린은 더블린을 여행한 여행에세이다. 그 이상도 이 이하도 아니다. 더블린을 여행하고 더블린에 펍을 가고, 더블린에서 박지성의 경기를 보는 더블린에서의 여행기다.

하지만 왜 우린 이런 여행에세이를 읽을까? 지금 당장 떠나지 못해서? 외국 여행기가 궁금해서? 그럼 우리나라 내의 여행기는? 여행에세이를 읽는 것은 아마도 현실 또는 일상에 대한 탈출구이지 않을까?

탈출은 지금 현재 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니까. 하지만문제는 되돌아 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되돌아 올 곳이 없으면 여행일까? 그냥 방랑이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이 많지만 한 1년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지금이다. 그곳이 어디던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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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
홍자성 지음, 도광순 옮김 / 문예출판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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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채근담

삶이란 영원(永遠)의 시간 속에 찰나(刹那)를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극히 짧은 시간을 살지만 이 시간 속에 우리는 많은 감정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기쁨, 행복함, 분노, 쾌락 등 수많은 감정에 빠져 자신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채근담을 읽고 있자니 동양철학이나 서양철학이나 그리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 이성 중심의 철학이 채근담에도 담겨 있다. 중용이라는 것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말에는 나도 동의한다. 채근담은 어쩌면 절대 선()을 말하는 것 같다. 이 책을 쓴 홍자성은 중용적인 삶을 살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긴 한다.

요즘 느끼는 감정의 변화에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채근담을 읽으면서 고개가 끄떡여지는 대목이 여럿 있었다. ‘나를 괴롭히는 악마는 내 마음속에 있다. 자신의 사심과 사욕을 극복하고 번뇌와 망상을 모두 퇴치하면 본심이 바로 잡히고 모든 악마가 흩어져버린다.’는 문장은 특히나 그랬다. 나를 잡지 않고 생각을 해봤자 내가 아닌 상태이기에 온전한 생각을 할 수 없으니까.

남의 실수에는 크게 욕하고 자신의 실수에는 관대한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비밀은 감추고 남의 비밀은 퍼트리는 실수 또한 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다 자신의 부덕함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행위이니까. ‘“너한테만 말하는 건데.” 이 말을 하는 순간 비밀은 없어진다.’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상대방의 불행이 자신에겐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나는??

생각을 한다는 것은 이성적인 행위이다.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기분을 다 잡아야 한다. 마음이 어지럽다고 술을 마시면 더 생각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뭐 이게 말처럼 쉽나 싶기도 하다.

요즘 죽음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었다.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려고 읽었는데 채근담에도 이런 구절이 있었다.

試思未生之前有何象貌 又思旣死之後作何景色 則萬念灰冷一性寂然 自可超物外遊象先

풀어쓰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어떤 형태로 존재했으며, 또 죽은 후에는 어떤 모양이 될 것인지를 생각해보라. 그러면 이제까지의 모든 부질없는 집착, 욕망, 고뇌는 식은 재처럼 사라지고 오직 본성만 남는다. 그리하여 모든 속세의 사물에 구속됨 없이 현실의 상대세계(相對世界)를 초월해서 그 이전의 절대세계(絶對世界)에서 노닐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장을 받아들이는데에는 각자의 경험이 밑바탕 될 것이다. 삶도 죽음으로 가는 과정의 하나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소멸하는 죽음을 안다면 지금 이 감정도 한 순간 느끼는 찰나의 감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감정 소비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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