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 - 사랑은 하고 싶지만 상처는 받기 싫은 당신을 위한, 까칠한 연애심리학
양창순 지음 / 센추리원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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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나는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의 상황에 맞는 책을 만나면 유레카를 외친다. 나 역시 이번 책을 만나면서 같은 생각이었다.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사람관계에서 자존감이 떨어졌던 것 같다. 사람관계라고는 하지만 한 사람과의 관계일수도 있고, 여러 사람과의 관계일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주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야기하는 가장 뜨거운 주제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종종 이 소중한 관계를 잊고 산다. 어쩌면 적응이라는 녀석이 등장해서 일 수도 있다. 어려운 상황에 적응하며 이겨내야 하는 과정에서 적응은 우리에게 힘을 주지만, 사랑하는 관계에서의 적응은 또 다른 성질을 나타낸다. 상대방은 사랑이 식었다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응은 그래서 위험할 수 있다.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신과 의사가 집필해서 그런지 사람의 내면을 잘 드러내준 것 같다. 사랑에 집착하는 사람의 특징, 썸만타다가 끝나는 사람, 사랑이라고는 하지만 사랑을 잘 모르는 사람, 내면의 자신을 알지 못하고 사람을 만나는 사람 등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놓았다. 종종 상담사례도 있고.

내면의 나를 모르면 상대방을 대할 줄 모르게 된다. 내가 나를 모르면 내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없다. 아니이 감정이라는 것도 내 것인지 의문이 든다. 따라서 일단 나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혼자여도 괜찮으면 둘이 되도 괜찮다.”는 말이 나온다. 나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있어야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나올 테니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이 당연한 이야기를 잘 이해하지 못하니까 문제기는 하지만.

페이스북에 나름 올해 선정한 나의 책이라고 이 책을 올려놓았다. 여러 분들께서 읽어봐야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만큼 우린 사랑에 목마른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럼 왜 우린 이토록 사랑에 갈증을 느끼는 것일까?

아마 그건 우린 같이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렇지 않을까? 사회라는 이 공동체에서 무수히 많은 일이 일어난다. 어떨 때는 정말 빡돌아서 미추어 버릴 것 같은 시간도 있다. 인간관계나 회사에서 특히나 그러겠지만. 그러면 이때 우린 친한 친구나 선후배를 찾는다. 자신의 어려움을 하소연하고 술도 한 잔 하면서 스트레스를 없애버리고 싶어한다. 하지만,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항상 그자리인건 한결같지만.

이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해보자. (그녀)는 온전히 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해준다. ~ 이만큼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주변에서 하는 조언은 나의 스트레스를 해소해 줄 수 있겠지만, (간혹 가다가는 쓴소리 한답시고 이상한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의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경우는 드물다. 자신의 사회적인 포지션에서 위로를 해주니까.

온전히 나의 시각에 맞춰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고마울까?

그렇지만 우린 사랑하는 사람에게 소흘히 하는 경우도 많다. 막상 떠나면 그 사람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

책에서 이런 말을 한다. “이별이 없으면 만남도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별 후 우린 일도 하고 밥도 먹고 또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때론 몇 달간 진짜 힘들기도 하지만…)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은 그래서 생긴 말 같다. 떠난 사람을 다시 잡으려는 노력보다는 지금 자신의 상처를 잘 어루만지고, 자신을 위해 사는 삶을 더 고민해 보는 것도 좋은 이별의 방식이라 생각한다.

누군가를 다시 만난다면 그 전보다는 더 성숙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이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이야기하는 책이지만, 나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전기가 오는 스파크 튀는 사랑도 있지만,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은은하지만 깊은 사랑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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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철학 - 모든 위대한 가르침의 핵심
올더스 헉슬리 지음, 조옥경 옮김, 오강남 / 김영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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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영원의 철학

한마디로 미추어버릴 것 같은 책. 올더스 헉슬리의 이름을 여러 번 되내이면서 정말 헉소리가 나는 책이었다. 페북스터디로 <개념 뿌리들>을 하고 있는데 그 책만큼이나 어려운 책이었다. 그래서 난 서평을 못하겠다!!! 헉슬리의 생각을 간파할 수도 없고, 헉슬리의 이야기를 요약하기도 어렵다. 그저 난 이제 한 번 이 책을 읽었을 뿐이다. 감히 어찌 이 책을 논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하자면, 몇 몇 chapter를 소개하는 정도이지 싶다.

헉슬리는 최고의 사랑이란 chpater에서 사랑을 love가 아닌 charity라고 했다. Charity는 자비나 관용, 자애, 너그러움 등을 의미한다. , charity는 더 이상 최고이자 가장 신성한 형태의 사랑의 뜻으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love charity를 굳이 구분하나 싶기도 할 것 같다. 영적 삶을 사는 스승들은 낮은 형태의 사랑일 때 love를 사용했으며, 최고의 사랑일 때 charity를 사용했다고 한다. 용어에 정확히 구분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다. 볼펜 가져와 했는데 붓 가져가면 쓰겠나?

최고의 사랑은 사심이 없고, 보상을 바라지 않으며, 그 선함에 대해 어떤 악을 돌려받아도 줄어들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최고의 사랑이 있을까 싶지만) 또한 낮은 형태의 사랑과는 달리 정서(emotion)이 아니라는 점이다. 의지의 행위로 시작해서 순수하게 영적인 자각, 그 대상의 본질과 결합하는 사랑-앎으로 완성된다고 한다. (아마 낮은 형태의 사랑은 이끌림의 사랑이 아닐까 싶다. 남녀간의 사랑은 앎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니까)

결론적으로 최고의 사랑은 사심 없음, 고요함 그리고 겸손이다. 그러면서 현대는 냉혹함(lovenessless)에 근거하고 있다고 한다. 대자연에 대한 자비가 부족하여 자연을 파괴한다고 하였다. 여기서보면 lovenessless라고 했다. 낮은 단계의 사랑이 없다는 것이다. 낮은 단계의 사랑은 높은 단계의 사랑 charity로 가는 과정인데 현대 사회는 love가 없다는 것이 헉슬리의 생각이라고 추론했다.

헉슬리는 사유에 대해서 그리 찬성하는 편은 아니라는 생각을 받았다. 사유하면 집착이 되기에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또 해본다.

여기까지가 최고의 사랑 charity라는 한 chapter의 내용을 나만의 방식으로 요약해 본 것이다. 27개의 chapter 중 겨우 하나의 chapter를 요약하는데 이 정도 걸렸으니 아마도 이 책은 올해까지 읽으면 다행이다 싶을 것 같다.

종교의 이야기를 떠나 헉슬리의 책은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분석하지 않고 나만의 느낌으로 받아들이더라도 나를 한 단계 올려줄 입맛 까칠한책임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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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 사랑이 보입니다 - 우리가 진짜 찾아야 할 것들
와타나베 가즈코 지음, 최지운 옮김 / 21세기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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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오늘 그 사랑이 보입니다.

와타나베 가즈코 수녀님의 책은 미소만 지어도 마음에 꽃이 피어납니다를 전에 읽었었다. 종교 이야기의 책은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와타나베 가즈코 수녀님의 책은 편히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우리가 진짜 찾아야 할 것들이라는 부제가 있는데, 책에서는 마음 둘 곳이 필요할 때, 좋은 만남을 바랄 때, 늙음을 느낄 때, 삶이 힘들 때 4가지 파트로 되어 있다.

때때로 생각나는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이다.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데 다른 이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그러다가도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내 삶이던 다른 이들의 삶이던 다 비슷하구나 하다가도 또 어느 순간엔 처음으로 돌아간다. 어허~ 이게 뭐람

책을 펼치는데 첫 문장부터 다가왔다. “인간의 삶은 결국 순간순간의 누적이며, 충실한 인생이란 얼마나 길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밀도 있었는가 하는 농도와 밀접하다고 봅니다.’ 밀도와 농도삶을 살아가면서 밀도 있는 삶, 그리고 그 밀도 안에 농도가 짙은 삶이라나는 과연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나? 라는 질문을 던져봤다. 밀도는 낮고 농도는 흐리지 않을까?

또한 인생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우리가 모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준 것이다.’라는 문장은 내가 살고 있는 삶의 방식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문장이었다. 이루려고 사는 삶,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삶이 아니라 그 과정과 과정 속에서 어떻게 주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읽은 행복의 기원처럼… being에 집중하지 말고 becoming에 집중하라는.

바쁘다()라는 한자는 마음()을 망하게 한다()로 이루어져 있다.” (44 페이지) 우리는 매일 바쁘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이 문장을 보니 우리는 매일 마음을 망가지게 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함이 베에 나왔다. 바쁘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끝나야 퇴근하기에 정신없이 일한다. 말 그대로 정신없이. 이런 삶은 마음을 망가지게 하는 과정이라니.

아무래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단순히 궁합이 좋고 나쁜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맞추는 능력’, 그리고 노력에 있는 듯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맞추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91 페이지) 맞다. 맞추지 못한다. 내가 힘들기에 나가 위로 받고 싶어하지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한다. 상대방에게 맞추는 능력과 노력이 부족함을 절실히 느낀다.

비슷하게 문장이 있다. “상대방과의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것을 견뎌내는 고독을 곱 씹어야 하는 것이 바른 인간관계이다.” (94 페이지) 상대방과의 거리.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 이것이 참 어렵다. 어렵다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지만 무수히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에리히 프롬은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은 사랑하는 능력을 가지기 위한 조건이다라고 했는데, 안정성은 고독을 견뎌내는 강함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고독을 견디는 가장 좋은 길은 가장 좋은 나, 사랑하는 나와 끊임없이 함께 있는 것이다.” ( 132 페이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누가 사랑할 수 있을까?

와타나베 가즈코 수녀님의 책을 두 번째 접했다. 역시 차분히 읽을 수 있고, 마음에 공명이 일어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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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리본 - 내일을 살아갈 희망
박서진 엮음, 이윤재 그림 / 미르북컴퍼니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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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노란리본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를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대학교 때 읽었던 책이었는데 이런 저런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던 책이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이런 책은 흔치 않았다. 그래서 히트를 친 책이기도 했다.

노란리본이 아마도 이 책과 비슷하지 않을까? 요즘엔 실화 에세이가 많이 나온다. 때때로 심신이 지쳐있을 때 이런 책을 읽으면 나의 어려움이 조금은 누그러 든다. 삶이 힘든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니까. 그리고 더 힘든 삶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비슷한 무게감을 느끼게 된다.

삶이라는 단어는 + 사람 + 이 결합된 단어라고 나 혼자 생각해봤다. “사람이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고, 그 살아감 속에서 하나 둘 깨우치면 알아가는 과정이 삶이라는 단어라 생각했다.

어제는 몰랐어도 오늘은 어제의 과오를 알고, 오늘 안 과오를 내일은 범하지 않는 삶.”

이 한 문장이 참 어려워서 문제지만.

발렌틴과 미르가의 이야기는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이야기일 것이다. 야생의 사자를 살려주는 이야기는 말을 통하지 않아도 사랑이라는 마음이 통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했다.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야. 서로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는 거야. 나에게 너라는 존재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너에게 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유가 되는 거니까.” 어린 왕자 중 사막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통용된다.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 서로를 길들이는(?) 과정이 존재하니까.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 과정이 어렵지만 이 과정을 통해야만 서로를 존중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유 한 잔의 인연은 일어날 법 한 이야기일까? 라는 생각도 봤다. 어느 날 메기는 집 앞에 있는 외판원에게 우유 한 잔을 건낸다. 힘들어했던 외판원은 우유를 마시고 고마워했다. 시간이 지난 후 메기의 엄마는 불치의 병에 걸리지만, 이 분야의 유능한 의사가 메기의 엄마를 고쳐준다. 그리고 병원비 1만 달러를 건넨다. 그 영수증 뒤에는 당신의 치료비는 여러 해 전 귀여운 제인이 지친 청년에게 준 우유 한 잔으로 모두 지불되었습니다. 하워드 켈리

제인이 우유를 준 하워드 켈리는 의과대 학생이었다. 학비를 벌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제인에게 우유를 얻어마셨다. 하지만 하워드 켈리는 이 일을 가슴 속 깊이 간직했고, 제인의 엄마를 살려주었던 것이다.

지구에는 수많은 인종과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살고 있는 방식, 생각, 지역이 다 다르다. 그만큼 무수히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영화 세린디피티(serendipity)도 이런 삶 중에 하나이지 않을까? 우리 삶에 serendipity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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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고금통의 1 - 오늘을 위한 성찰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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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고금통의

옛 것에 비추어 오늘의 해법을 구하다.”는 부제가 있는 책이다. 선형적인 시간구조로 본다면, 과거->현재->미래의 3단계지만 시간의 흐름이니 딱히 구분하는 것도 힘들지 않을까? 다만 조금 전에 또는 예전에 있던 일을 교훈 삼아 현재와 미래를 사는 방식을 바꿔보자는 의미가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5 chapter로 되어 있다. 이 중에서 맘에 다가오는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중국의 역사인식을 이야기했다. 중국은 역사 영역이 아니었던 지역도 자신들의 것처럼 표기한다고 한다. 자국에 온 사신들은 무조건 조공을 받치러 온 것이며, 이를 이용하여 수평적인 외교 관계를 수직으로 왜곡할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역사관을 비판했다. 우리의 역사관을 적극적, 긍정적으로 보자고 했다.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우리의 역사를 굳이 축소하여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사이버 외교를 펼치는 반크를 보면 국가적인 노력이 얼마나 형편없는가를 반증해 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에서는 불행과 비교하는 것이라 했다. 우린 행복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 그리고 행복이 무엇인지? 나는 과연 행복한지? 를 자꾸 되내어 물어본다. 행복한 삶은 추구하는 것은 좋으나, 행복한 삶으로 가는 과정이 힘들다면 굳이 행복을 추구해야 싶기도 하다. 옛 선비들은 오벽에서 벗어난 상태를 행복이라고 했다고 한다. 오벽은 친절과 사랑, 천시와 증오, 두려움과 공경, 슬픔과 동정, 오만함과 게으름을 뜻한다.

여섯 유형의 바른 벼슬아치는 성신(聖臣), 양신(良臣), 충신(忠臣), 지신(智臣), 정신(貞臣), 직신(直臣)을 말하고, 여섯 유형의 그른 벼슬아치는 구신(具臣), 유신(諛臣), 간신(奸臣), 참신(讒臣), 적신(賊臣), 망국지신(亡國之臣)이라 했다. (264~267페이지) 12가지 신하는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바른 벼슬아치를 보기 어려운 지금을 보고 있자니 씁쓸한 맘이 든다.

다언삭궁(多言數窮)’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말이 많으면 궁지에 몰리는 때가 많다는 뜻이다. 이는 과거에나 지금에나 같은 것 같다. 말이 많으면 쓸데없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변명과 거짓이 또 나오니까. 세치 혀로 내 뱉은 말이 자신을 해롭게 할 때가 있으니 말조심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을 것 같다.

고금통의를 읽으면서 사는 방식은 예나 지금에나 다를 바가 없다라고 생각을 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살지를 결정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삶의 방향과 속도 등 삶을 살아가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내 삶을 살아가는 것은 온전히 나다. 내가 살아갈 방향을 설정했다면 나만의 속도로 내 삶을 살아가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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