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맛에 요리 - 나와 당신이 행복해지는 시간
샘 킴 지음 / MY(흐름출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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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이 맛에 요리

요즘엔 요리 프로그램이 참 많아졌다. 이 전에는 먹는 프로그램이 많았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이제는 직접 만들어서 먹으려고 한다. 왜지?

가장 첫번째로는 먹거리에 대해서 안심할 수 없는 이유가 제일 큰 듯하다. 이 음식에 무엇을 넣었나 의아하기도 하고, 매일 사먹는 밥이 지겹기도 하니까. 오죽하면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점심이 집 밥이겠나? 가끔 프로그램에서 보면 집 밥 같아서 좋아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어느 매체에서 읽었는데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고 맛에 환장(?)한 사람들’ – 정확히 환장이라는 뜻은 아니었지만, 맛에 대해서 상당히 민감하고 맛을 추구하는 의미라고 기억한다 - 이라고 했단다.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특히 남도 음식이 땡긴다. 통상 남도라고 하면 충청도 이남지역부터 남도라고 한다. 그러니까 충청남북도, 경상남북도, 전라남북도가 남도에 해당한다. 그런데 난 이 지역 중에서 특히 전라도 음식이 제일 맘에 든다.

작년 여수와 순천을 갔을 때, 남도 한상을 여러 번 받아먹었다. 맛도 맛이지만 일단 풍성한 음식이 제일 좋았다. 뭐 사담은 여기까지 하고.

그럼 왜 요즘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할까?

지금까지 집안에서 요리는 엄마와 아내가 담당을 했다. 가족의 영양담당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영양담당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추세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공동육아의 의미도 있을 것이고, 집안에서 함께 할 무엇인가를 찾아야 내야 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면 먹고 자고 티비보고 아이들과 잠깐 놀고 또 먹고이 생활이 반복이다. 이 생활에서 특별한 무엇인가를 찾아내기 힘들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 먹는 시간이 참 많이 차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이 먹는 시간을 공동의 시간을 보내면 가족이 더 화목해질 수 있지 않을까?

요리 재료를 준비하고, 함께 요리를 하고 그 요리를 즐기면 먹고 나중에는 설거지를 함께 하면 공동의 시간이 엄청나게 증가하는 것이니까.

결국 요리를 함께 한다는 것은 가족이 함께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저자인 샘 킴도 요리를 하면 특별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고’, ‘아내가 웃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아이가 아빠를 특별한 사람을 생각할 수 있다고 적어 놓았다.

그럼 가족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하냐고? 에이왜 이러시나? 가족이 될 사람과 함께 하면 되는 걸~

샘 캠은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감정적인 문제에서 오는 결핍은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가 않는다. , 사랑, 우정, 가족의 따뜻함,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그런 감정들이 충족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허기가 가신다.” ( p 103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로 작성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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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어떻게 설계되는가 - 경제학과 심리학으로 파헤친 행복 성장의 조건
폴 돌런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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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행복은 어떻게 설계되는가

책 제목을 보면 행복을 설계할 수 있다는 말로 이해가 된다. 설계란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연상이 되는 것은 건축설계이다. 건축설계를 잘 모르지만 일단 설계를 한다는 것은, 공간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뭐 전문가들은 다르게 말하겠지만 난 이렇다.

정해진 공간을 효율적으로 나누어서 그 안에 생활하는 사람이 가장 편리하게 사용하게 하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건축설계이다. 영화 전우치에서는 지붕이 뚫린 방안에서 이런 이야기도 하더라.

지붕이 뚫려 햇빛이 들어와서 좋습니다~”

하지만 비가 들치기도 하죠. 하하하하 (영혼없는 웃음)”

어찌되었건 행복을 자기 스스로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지 싶다. 현대인들은 행복마저 타인과의 비교로 생각하니까.

 

책의 초반부에 균형맞추기 그림이 나온다. 즐거움과 목적의식 사이의 균형. 이것을 PPP, 즐거움-목적의식 원칙(pleasure-purpose principle)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보면서 난 니체의 말이 떠올랐다.

인생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시계추와 같다.”는 말.

즐거움과 목적의식을 시계추처럼 표현한 것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의미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메트로놈처럼 자꾸 왔다리 갔다리 한다. 허참~ 인간의 간사한 마음이란

그러면 행복은 어떻게 설계될 수 있을까?

저자의 여러 의견 중 잘못된 기억을 말하는 부분에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현재의 감정을 미래에 잘못 투영할 뿐만 아니라 과거의 경험을 잘못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중략) 즐거움이나 고통이 절정에 달한 순간과 즐거움이나 고통이 끝난 순간이다. 이를 절정-대비 효과 (peak-end effect)라고 한다. 또한 우리는 어떤 경험을 전체적으로 평가할 때 그것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그리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를 지속 시간 경시 (duration neglect)라고 한다.” ( p 130 )

이 문장에서 알 수 있다. 우리는 즐거움을 오래 느끼기 보다는 언제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불안감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만약 회사에서 승진했을 때를 가정해 보자. 승진은 직장생활의 이다. 그만두고 싶다가도 승진을 하면 갑자기 무슨 에너자이저가 된 듯 하다. 이 회사에서 승승장구할 것 같지만, 그 느낌이 얼마나 가던가?

이후 저자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여러 방편을 이야기하는데, 내가 느끼기에는 골든룰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이는 당연한 결과다. 개개인마다의 삶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데 어떤 방법이 옳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2부 행복의 생산 조건을 만족과 내려놈이라고 말하고 싶다. 행복을 비교하지 말고 개개인의 만족으로 살아가는 것. 참 어렵지만 언제까지 엄친아, 엄친딸과 비교하교 살 것인가?

소위 말하는 사회적 지위와 체면은 이제 개나 줘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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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보는 세상의 관점
샐리 호그셰드 지음, 홍윤주 옮김 / 티핑포인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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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당신을 보는 세상의 관점

책 제목을 보면 이 책의 관점이 명확해진다. 관점의 주체는 세상이다. 세상이 당신을 보고 평가하는 것이다. 사회생활에서는 사실 뭐 이게 가장 정확하다 싶다. 성격 또는 성향 테스트로 주로 하는 MBTI는 내가보는 나다. 근데 이건 사회 생활하면서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 스스로 나를 진단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나? 사회적인 관계에서 보면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더 중요한데, 이건 무슨 자기애도 아니고

책 중간에 정말 매력적인 단어가 등장한다. 그 단어는 매혹 (fascination)이라는 단어이다. 매혹은 라틴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Fascinare : 마법을 걸다, 사로잡다 : 거부할 수 없다. ( p 71 )

와우!!! 거부할 수 없다니!!! 그런데, 이 책을 읽는데 예전에 읽은 강점혁명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강점혁명은 나의 강점을 잘 이용하자는 내용이었다. 이랬기를 바란다.

이 매혹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는 참 다양했다. ‘당신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전혀 없다는 것은, 어쩌면 누구에게도 그리 매혹적이지 않다는 의미일 수 있다.’ ( p 86 ) 이 문장에는 적극적으로 공감한다. 반응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타인의 관심 영역에서 멀어졌다는 것이니까.

매혹을 이야기하면서 킬러앱(killer app)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킬러앱은 굉장한 매력과 중요성으로 전체 시스템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소프트웨어를 가리키는 용어라고 한다. 난해한 용어같다.

책에서는 1차 장점으로 경계, 신비, 신뢰, 명성, , 열정, 혁신을 말하고 있고, 2차 장점으로도 역시 같은 요소를 나열하고 있다. 이렇게 두 요소를 메트릭스로 만들어서 키워드를 빼낸다. 즉 이런 요소의 합이 나의 장점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나의 장점만을 찾자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의 장점도 파악하고 이렇게 파악한 장점으로 팀의 빌딩도 이야기 한다.

그럼 우린 왜 이렇게 나의 장단점을 찾고 그것도 모자라 타자의 장단점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는 퍼실리테이터라 방향성이 고정되어 있는 듯하다. 퍼실리테이터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상담선생님 정도이다. 뭐 비하하는건 아니니 달려들지 말고.

집단이라는 구성을 갖게 되면 항상 문제가 생긴다. 이 문제는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지만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도 많다. 그렇게 만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모습이다. 이 부분은 많은 직장인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책을 처음 읽을 때는 개념이 잡히지 않았다. 중간이 조금 지나니 약간 개념이 잡히긴 했지만. 조직 구성원이고 아직 팀장이 아닌 그리고 초보 팀장 정도가 읽으면 적당하지 싶다.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다.) 요즘은 달려들어 이런 부연 설명까지 해야 한다니 ㅡ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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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무엇인가 - 진정한 나를 깨우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철학 에세이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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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나는 무엇인가?

갱단에 추격을 받는 존은 그만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의식은 희미해지고 추위로 몸은 굳어만 갔다. 눈을 떠보니 어딘지 모를 곳에 누워 있었다. “이제 정신이 드나보구려.”, “누구시죠? 그리고 여기는 어디인가요?”, “운 좋은 줄 알아요.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 존은 머리와 몸이 아파서 움직일 수 없었다. 이윽고 존이 하는 말, “내가 누구죠?”

영화에서 본 한 씬을 그냥 옮겨봤다. 가상의 인물 존처럼 자신에 대해서 물을 때, ‘나는 누구인가?’라고 질문을 한다. 그런데 이 책은 나는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Who am I?’에서 ‘What am I?’가 된 것이다. Who는 사람이기에 사람에 대해서 말해주면 된다. 그런데 What은 무엇, 즉 존재 자체의 정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what은 정의 또는 명백한 규정을 원하는 말이다. 이런 예문을 보자, What time is it? What does he do? 학교 다닐 때 영어 시간에 배웠던 문장이다. 처음 문장은 몇시냐고 물어봤다. 그러면 우리는 시간이라는 공통의 약속에 의해 지금이 몇시라고 대답한다. 또한 직업에 대해서도 근로를 제공하고 급여를 받는 일들을 여러 카테고리로 묶어서 정의를 해 놓은 하나의 업종을 이야기한다.

, 이 책의 제목인 나는 무엇인가?’나는 어떻게 정의되는가?’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책에서는 분인 (dividual)을 언급한다. 개인 (individual)에서 in을 제거하고 더 이상 분화될 수 없는 단위인 분인을 만들어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분인의 총합 또는 그 묶음이라고 이해 할 수 있다고 본다. 분인이라는 말을 간단하게 풀어보자면 이렇다.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기분이 좋은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이때 기분이 좋은 사람은 나의 분인과 타인의 분인이 잘 맞는다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성별도 연령도 성격도 어느 정도 합치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sns)에서 사진을 올렸는데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이 많아진다면 페이스북을 하는 맛이 날 것이다. 그런데 같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좋아요와 댓글이 없다면 이 사람은 페북에서는 기분이 좋지만, 인스타그램에서는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분인은 상황에 따라 대하는 사람에 다르게 나타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책에서는 인격은 여러 개 있어도 얼굴은 하나라는 말을 한다. 이 문장을 읽으니 요즘 인기 있는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여기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나름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이전의 이미지가 있어 노래 자체만으로 평가 받지 못했던 사람들도 있다. 복면을 쓰고 노래를 하는 사람은 원래 그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람 그 자체를 보지 못했다. 복면을 쓰고서야 원래 그 사람이 되었고, 자신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었다. 얼굴을 통해 자신의 인격을 이미지화시킨 결과인 듯 싶다.

어떤 때는 분노하고 어떤 때는 상냥하고상황에 따른 그리고 상대방에 따른 분인은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모든 분인은 라고 했다. 다중인격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감정을 가진 인간이기에 당연하지 않을까?

나의 분인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휴식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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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 실수의 재발견
위르겐 쉐퍼 지음, 배진아 옮김 / 흐름출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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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우리는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통상 완벽이라고 하면 백분율로 100%를 말한다. 제목처럼 완벽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프로그램이 100% 로딩이 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하나의 어플리케이션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 보면 파일을 복사할 때 상태바가 나오면서 100%, File copy completed 라고 나온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1%일 때도 행동을 하고, 50%일 때도 행동을 한다. 100%가 되면서 행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당연히 실수를 연발할 수 밖에 없다.

회사에서 100%의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을까? 무던히 그냥 넘어가는 것은 회사가 정한 루틴에 합당하기에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이라 본다. ‘네가 할 수 있는 업무는 이 부분을 충족시켜주면 된다.’는 암묵적인 약속이지 않나.

저자는 정말 여러 이야기를 풀었다. 그 중 처음 나오는 이야기는 암점(blind spot)이다. 암점은 한쪽 눈으로만 사물을 바라볼 때 약 2미터만 떨어져 있더라도 15x25 센티미터 정도의 구멍이 우리 시야를 가린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뇌는 여러 수단을 동원해 이를 막는다고 한다. 완벽한 상태가 아닌데도 완벽히 본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기억이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은 다 알 것이다. 그런데 시약도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뭘 보고 뭘 기록하는건지???

이 책의 키워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휴리스틱(Heuristic - 발견적 방법론)이 있다. 너무 복잡한 문제를 발견하면 감정에 의지하는 것.

 

 

 

 

위의 문제는 그냥 보기에는 10이라고 답할 수 있다. 하지만 산술적인 식에 대입해 보면 그렇지 않았다. 머이기 어려운 것이야? 그러기에 우리는 휴리스틱에 의존한다. 낯선 정류장에 내려서 출구를 찾을 때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처럼 말이다.

스위스 치즈 모델을 이용한 체크리스트는 인간의 사고가 얼마나 단조로운가를 설명해 준다. 단지 체크리스트를 만들었을 뿐인데, 항공기 사고는 예방이 가능하게 되었고, 병원 내에서 감염은 줄어들게 되었다.

항공기를 조종하는 기장과 환자를 돌보는 의사는 고도(?)로 훈련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훈련에도 실수를 하게 된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손쉬운 작업일수록 실수가 연발된다는 것이다.

의학에서는 잘못된 지식이 상식이 되기도 한다. “가장 빈번하게 거론된 오류는 스트레스가 위암을 유발한다는 관념이었다. 이는 잘못된 추정으로, 그것을 반박하는 증거가 있는데도 꿋꿋하게 유지되었다.” ( p 228 )

책의 중반에 이런 구절이 있다.

모든 것이 지속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인생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완전무결함은 죽음을 의미한다. 완벽한 것은 이제 변화할 수 없고, 더는 발전할 수도 없다. 그것은 생명이 없는 그리스 대리석상과도 같다. 베른트 구겐베르거(Bernd Guggenberger)는 자유는 오직 실수를 너그럽게 허용하는환경에서만 자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수가 허용될 때에 한해서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고, 진정한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다. 실수는 인간의 척도다. 나는 헤맨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p 159 )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면 그는 사람이 아니겠다. 그래서 그를 신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실수를 통해서 배우지 않았다면 우리의 문명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실수를 용인하지 않는 우리 사회는 무엇을 위한 사회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완벽하다고 믿는 지식도 오류투성이다. 전에는 당연한 지식이 지금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오류가 진실이 되는 사회. 그런 사회가 무서운 사회이지, 오류를 인정하는 사회가 무서운 사회는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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