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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팀 버튼 지음, 윤태영 옮김 / 새터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날 슬리피 할로우를 봤다. 흙냄새까지 실제 나는 듯한 그 분위기의 연출과, 악한것에 대한 덤덤한 이야기-너무 투쟁적이지 않고 너무 절망적이지도 않은 그 음산하고 으스스한, 그러나 결코 공포스럽지 않은 영화의 그 모든 것들은 내게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어떤 친구커플에게 권했더니 다음날 여자친구쪽이 눈에 다크써클이 생긴채 학교를 등장해 나를 몹시 갈궜던 영화다. "난 너무 재미있었는데...?"라는 나의 마지막 말에 할 말을 잃었던 나의 친구는 결국 그런 나를 보며 웃고 말았다.
물론 그 전에 비틀쥬스를 이미 두번 이상 봤고, 크리스마스 악몽을 죽어라 웃으며 즐겼다. 화성침공은 그 간단하고 묘한 결말에 박수를 쳤다.
팀 버튼의 매니아라던가, 그런 기괴한 작품들을 선호하는 경향은 아니다. 단지 기억에 남는-아주 명쾌한 작품이었기에 그런 내 반응이 나왔을 뿐이다.
단지 영화 감독이라 알고 있었기에, 책을 냈다는 것은 약간 의외였다. "왜?"가 아니라 "어떤?"의 종류가 강했던 호기심.
서슴없이 살 수 있었다. 그간 팀 버튼의 행적을 봤을땐 산다는 것 자체가 후회되는 행동은 아닐거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읽으면서-때때로 책이란 사람의 생각을 정말 X-선처럼 보여줄수도 있구나 하는걸 알았다. 아무생각없이 읽으니 정말 "이야기"가 "이야기"로 끝나버렸다. 생각하면서 읽으려하니 이건 "책"이 아니고 무슨 "중금속"같은 기분이었다. 쇠맛이 난다고나 할까. 여하튼 몹시도 고약하고 즐겁지 않은 그런 맛.
가끔 화장실 갈때 끼고 간다.
한번씩 그렇게 읽을때마다, 어떤땐 깊이도 느껴지고, 어떤땐 쓰레기 같기도 하고-
그 다양한 팀 버튼의 이야기 모습이 웃기고도, 우울하고도, 슬프고도, 어이없고도....결국 책 덮고 나면 마음속에 앙금이 남지 않는 간결함때문에 그냥 가끔 한번씩 화장실에 끼고 간다.
시간도 딱 맞는다. 무엇보다 넉넉한 책의 여백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