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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가 있다 1
중앙일보 어문연구소 우리말 바루기 팀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5년 3월
평점 :
한국어는 있고, 편집자는 없는 책.
내가 어리석었다. 미리 보기를 보고도 구입을 감행하다니.
내용은 100점 만점.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할 만한다. 어디가서 이렇게 부드러운 국어공부를 해 보겠는가. 밥하면서 옆에서 두페이지 읽어도 되고, 화장실에 가지고 들어가도 좋다. 토막 토막 짧은 글들이기에 쭉 이어서 읽어야 한다는 압박도 없다.
하지만 미리보기를 잘 보면 이거 영 책이 어딘가 모르게 찜찜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그렇다. 왼쪽의 짝수 페이지에는 달랑 사진 한 컷. 사진을 설명하는 한줄의 캡션. 그것 뿐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 그것 뿐이다. 혹시 이 사진을 무슨 작품사진 정도로 착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다. 가령 "남세스럽다"란 말을 설명하는 페이지라면 왼쪽에 남대문 열려있는, 얼굴없는 작은 흑백사진 한장 딱 올려 놓고 끝이다. 그리고 오른쪽 홀수 페이지로 넘어가 글이 시작된다. 어떤 소개글에서는 재미있는 사진(?)이 같이 실려있어 지루하지 않다며 매우 호평(?)을 써 주기도 했다.
사진의 편집역시 정말, 초등학생들이 처음 아래한글에서 편집한다면 가능했을(?) - 아무런 손질없는 직사각형의 흑백사진을 달랑 올려놨을 뿐이다.
면적을 계산해 봤다.
한페이지 면적이 333제곱 센치미터인데 사진은 커봐야 156제곱 센티미터이고 작으면 고작 81제곱 센치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면적의 절반도 활용하지 않고 그냥 끝낸 것이다.
글은? 글도 만땅이어야 187제곱 센치미터. 짧은 건 139제곱 센치미터.
그렇게 성의없는 편집으로 이 책을 290페이지나 만들어 내 놓았다. 그것도 정가 9,800원이라는 거금으로.
이럴줄 알았다면 구입하는 대신 도서관에 가서 빌려봤을텐데. 도저히 소장가치를 느낄 수 없는 절망에 몸부림치는 밤이다.
혹자는 속으로 이렇게 나를 욕하겠지.
'내용만 좋으면 됐지, 집이 가난한가? 왜 이리 혼자 난리야?'
라고. 하지만 정 그렇다면 그 사람은 대접받을 줄 모르는 거다. 독자의 자리에서 존중받는 법을 모르는 거다.
책은, 몇년동안 광합성 해 가며 자라나 잘라졌을 나무의 가치가 담겨있어야 한다고 본다. 주머니 돈을 털어가며 애써 집으로 데리고 오는 독자의 마음도 소중하게 헤아릴 수 있고, 그런 마음을 배려하는 사려깊은 사람들이 출판하는 책이 소장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한국어가 있다"라는 이 책은(1권이다) 나와 내 돈을 깔봤다. 책이 갖고 있는 영향력을 존중하고, 올바른 안목으로 좀 더 수준있는 책 자체를 기대하는 나의 바램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이 책은 좋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내용만 괜찮은 - 책 자체는 아주 별로인 그런 책이다. 그래도 2,3권은 봐야겠다. 대신 이번엔 도서관에서 빌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