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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유전 ㅣ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강화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아르테의 작은책 시리즈 여덟 번째 소설은 강화길 작가님의 <다정한 유전>이에요.
강화길 작가님 소설이 제게는 좀 어렵긴 한데... 그래도 읽을 수밖에 없게 되는 끌림이 있어요.
<다정한 유전>도 길지 않은 소설인데 몇 번이나 앞쪽을 다시 뒤적거렸는지 몰라요.ㅋ
지금은 지도에도 없는 해인 마을, 조용하고 작은 이 시골 마을을 벗어나는 것은 아이들의 소망.
마을을 벗어나려면 대학을 가야 하고, 대학에 가는 데 유리한 백일장 출전권을 두고 문제가 생겼어요. 백일장에 참가할 수 있는 한 명이 되기 위해 모두 글을 써서 보여주고 제일 잘한 사람이 나가기로 했다는 게 큰 틀이고,
아이들이 쓴 글이 이어져요.
그런데 설명이 친절하지 않아서, 이게 누가 쓴 글인지, 이게 글인지 실제 사건인지 헷갈리더라고요.
'나'가 누구지? 작가 김지우는 누구지? 김지우의 친구는 선아. 그럼 김지우와 이선아가 민영이랑 진영인가???? 하다보면 또 뒤에는 이선아가 작가라고 나오고, 병원에서 사라진 환자가 김지우라고 나오고....
계속 앞뒤를 뒤적뒤적하면서 읽었는데.
소설 속에서 아이들이 쓴 여러 편의 이야기, 그러니까 액자식 구성처럼 들어있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의 주인공이 각각 다른 사람이면서 같은 이름을 사용한 것처럼 보였어요.
그리고 이 경계 없는 모호함이 오히려 더 소설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어요.
누가 누군지 모르는 이 이야기들은 곧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우리의 이야기일 수도 있으니까요.
"나는 아무도 아닙니다."(69쪽)
내가 누구라는 것을 명확히 하면 할수록, 여성이 정확하고 크게 목소리를 내면 낼수록 공격받아야 했던 사회에서 여성은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 생존 전략이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살아 남는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잖아요.
"서로를 돌보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고통은 함께 경험한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17쪽)
각자가 쓴 글에서 함께 경험하는 고통이 묻어나오니, 나는 지우이고 지우는 선아이고 선아는 민영이고 민영은 진영이고.... 우리의 삶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는 거겠죠.
그 고통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 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의미심장해요.
"그녀는 그렇게 매일 글을 썼다. 일기는 그녀가 많은 것을 견디게 한 수단이었다. 그녀는 이 방법, 그러니까 바닥으로 완전히 가라앉지 않을 수 있게 이 방법을 알려준 그 친구, 김지우에게 감사했다."(32쪽)
누군가는 쓰고 누군가는 읽죠.
"이미 너희와 나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너의 글을 읽는 건... 모르겠어. 그 세계들이 만나는 일 같다고 느껴졌어. 어떤 질문을 받은 것 같았지.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중략... 그렇다면, 그냥 내 방식대로 말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까. ...중략... 하지만 이게 내 세계에서 말하는 방식이야."(70~71쪽)
남편의 사업 때문에 맘에 들지 않는 대학 동기 모임에 나가야 하는 여자도, 남자친구에게 매 맞고 사는 여자도, 일부다처제의 마지막 후손으로 남은 옹주도, 생활력이 전혀 없는 무능한 남편 때문에 혼자 아이 셋을 먹여 살려야 했던 여자도 분명 존재했고 존재할 터이기에, '아무도 아'니면서 그 모두이기도 한 우리는 쓰고 읽어야 해요. 그게 우리가 우리 세계에서 말하는 방식이니까요.
"그해, 단 한 명만이 마을을 떠났다." (10쪽, 130쪽)
마을을 떠난 단 한 명은 누구일까요.
"처음은 단 한 명이었다. 그 애가 떠난 후, 뒤이어 많은 아이가 하나둘 마을을 떠났다. 꿈꿀 수 없는 일들은 생각보다 쉽게 벌어진다. 아무렇지 않게 일어난다."(147쪽)
그 한 명은 힘들게 떠났지만, 최초의 어려움이 있었다면 그 다음은 점점 쉬워질 거예요.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내어 말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쓰고, 읽는다.
작가님은 그 방법을 다정하게 전해주고 싶으셨는지 모르겠어요.
<다정한 유전>으로.
아르테의 작은책 시리즈는 종이책뿐 아니라 소리책으로도 나와요.
저도 조만간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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