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기르다 청년사 작가주의 1
다니구치 지로 지음, 박숙경 옮김 / 청년사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누구나와 아무나>
개를 기르고 고양이를 기르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자신이 키우던 애완동물의 죽음을 바라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더욱이 요즘처럼 애완동물들이 천대받는 시대에는 애완동물들이 주인의 품에서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드물다.
병이 들거나 나이가 먹어 힘이 빠졌다는 이유만으로 길거리에 내버려진 동물들은 쓰레기통을 두지는 서열에서도 밀려나, 인적 뜸한 길가를 오가다 덩치 큰 차량에 짓눌려버리기가 일쑤다. 아침마다 한번 이상은 보게 되는 자동차 전용도로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애완동물들의 눌린 주검들은 더 이상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개를 기르다>는 이제 열네 살이 된 (사람의 나이로 치면 고령에 접어든) 잡종견 탐과 탐의 죽음을 지켜보는 한 부부의 이야기다. 뒷다리를 들 힘조차 없어 가끔씩 자기 앞다리에 소변을 묻히거나 대변을 볼 때 조심스럽게 등을 잡아주기 않으면 똥 위에 엉덩방아를 찧고 마는 나이 들고 힘없는 탐은 하루 세 번, 주인과 산책을 한다.
아직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 탐은 가족이자 자식과도 같은 존재다. 하지만 탐의 기력이 빠져나갈수록 책임감과 애정으로 탐을 돌보던 젊은 내외도 조금씩 힘겨움에 젖어든다.
어느 날, 걷기조차 힘이 들어 담벼락에 앉아있는 탐과 여주인에게 이웃집 할머니가 말을 건낸다.
“정말 잘 견디는구나. 너 말이야. 언제까지 살 작정이니. 얼른 떠나줘야 하지 않겠니. 내말 알겠지? 나도 얼른 가고 싶단다.”
“할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 오래오래 사셔야줘”
“나도 남들에게 신세지고 싶지 않아. 이 녀석도 그럴걸. 그런 생각이 들어. 하지만 죽을 수가 있어야지. 좀처럼 죽어지지가 않아. 생각처럼 안 돼. 좀처럼 갈수가 없어.”
사람이나 동물이나 삶을 유지하고 푼 욕망과 그 정반대의 욕망은 비례한가보다.
삶을 놔버리고 싶다는 욕망은 살아야겠다는 의지와 맞물려 결코 죽음의 문턱에 이를 수 없다.

떠나는 자의 고통, 남은자의 상실감.
<개를 기르다>는 애완동물을 통해 삶과 가족, 죽음과 상실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들을 깊이 있게 풀어낸다. 죽음이 고통이라면 그 죽음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이들 또한 같은 무게의 고통을 지고 있을 것이다. 한 쪽이 그 고통을 끝낼 때, 남은 이들은 떠난 자가 남기고 간 상실감이라는 유산을 덤으로 더욱 무거운 삶을 살아내야 한다.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한 자의 송장은 언제나 땅을 향해 무겁게 처져있다.
하지만 죽음을 축복이라 생각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떠나는 자가 남기게 될 유산은 홀가분함과 화합이며 죽음위에 번지는 미소는 남은 자에게 던져지는 축복과 용서의 의미이다.
그럼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와 어떻게 죽을 것이냐는 동질의 질문이다.

다니구치 지로
<열네 살>과 <아버지>로 국내에서도 호평을 받았던 다니구치 지로는 표제작 <개를 기르다>이외에도 <그리고 고양이를 기르다>, <약속의 땅>등 총 다섯 편의 이야기 속에 고양이와 눈표범 등장시켜 가족의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다뤘다. 신비하면서도 천진난만한 동물들을 통해 그가 그리고자한 가족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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