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꼬마의 마루밑 이야기
토마스 리베라 지음, 이익태 그림, 임성현 옮김 / 정음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아프고 무거운 기억을 가진 한 남자가 있다. 좋은 것만을 저장하려는 기억의 편리성도 남자의 무거웠던 과거를 지우지 못했다. 학교에서 멕시코계열의 인종이라는 이유로 따돌림 받던 소년 시절, 그는 백인아이를 폭행한 죄로 퇴학을 당했다. 하지만 소년은 전화 교환수가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바람을 잘 알기에 퇴학 사실을 말할 수가 없다.

“아니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만일 제가 녀석을 퇴학시킨다고 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멕시코 사람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보다는 들에서 일을 시키고 싶어 하니까요”

교장의 말대로 당시 남미 계열인 치카노들, 즉 그들의 아버지는 대부분 노동자들이었으며 아이들은 농장에서 어른들 몫의 일을 하는 경우가 허다했었다.
하지만 그들의 아버지는 아이가 학교를 무사히 졸업해서 훌륭한 사회인이 되는 꿈을 꿨다. 마치 7~80년대 우리의 자화상과도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어느 꼬마의 마루 밑 이야기>(정음) 는 이 처럼 마른 갈증과 인종에 대한 편견을 견디며 자라야 하는 아이들의 무거운 기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토마스 리베라는 멕시코계 미국인 2세로써 치카노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이었다. 1984년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는 단 두 편의 소설과 몇 편의 시만을 남겼음에도 치카노 문학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문학에 충격과 파장을 일으켰다.

“야, 맥작(멕시코사람을 가리키는 속어). 난 멕시코 놈들이 싫어. 왜냐면 너희는 맨날 도독질만 하니까” “빌어먹을 멕시코 연놈들은 왜 이렇게 맨날 도둑질만 하는 거야. 훔치는 게 아예 인생 자첸지”

소설 속 백인들의 말은 현재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던지는 편견의 시선과 닮아 있다. 편견은 죄의 성립 여부를 떠나 여전히 사람의 피부색과 겉모양을 따라다니는 모양이다.

“평범한 일상의 장면들은 쉽게 기억에서 멀어지고 감당하기 어려웠던 힘든 기억은 떼어지지 않은 채 운명을 뒤흔들기도 한다.”는 그의 고백처럼 소설 곳곳에는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아픈 기억의 파편들이 쓰라리게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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