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레이몬드 카버 지음, 정영문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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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문학동네)을 읽고 있자면 잘 차려진 저녁 식사 후에 나오는 달콤한 디저트를 먹는 느낌이다. 이를테면 말랑한 소파에 푹 파묻혀 후식으로 나온 분홍빛 푸딩을 뜨는 즐거움처럼 말이다.

20세기 후반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인 레이먼드의 소설이 주는 상큼함은 이미 영화로 만들어진 단편 ‘숏컷’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소설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문학동네) 역시 17편의 단편들이 모여 아삭한 맛을 만들어 냈다.

청소부에게 반한 호텔 매니저와 그의 애인이 주고받는 대화 장면이나, 문득 잠에서 깨어 예전에는 남편과 절친했던 이웃남자의 심정을 들어주는 슬립 가운 차림의 주인공, 또는 성인이 된 딸에게 젊은 날의 외도를 고백하는 아버지의 안쓰러운 모습을 통해, 레이먼드는 상처와 실연, 나태와 자기만족 혹은 분노와 사랑에 갈등하는 ‘우리의 이웃’을 돌아보게 한다. 하지만 강가를 서성이는 발길처럼 그의 소설은 성급한 결말을 유도하지 않는다.

지루한 인생의 한 표면을 뜯어내어 그것을 확대하고 조밀하게 묘사한 그의 소설은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다. 소설 속 어디에선가 생활의 무게에 찌들인 ‘나’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책을 읽는 것도 그의 소설을 읽는 재미중 하나 일 것이다.

비평가 김화영 씨의 표현처럼 ‘장편에 비해 밀도가 훨씬 짙고 플롯이 너무 강한’ 우리나라의 단편소설을 음미하시는 독자라면 레이먼드의 소설이 너무 밋밋하다고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활의 사소한 부분을 끄집어내어 ‘우리들’의 이야기로 탈바꿈 시키는 능력을 지닌 그의 작품들은 ‘치장되지 않은 현실’감으로 더욱 친밀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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