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아르 보부아르
클로딘 몽테유 지음, 서정미 옮김 / 실천문학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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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간의 출현 이래 즉, 아담과 이브가 자손을 퍼뜨리기 시작할 때부터 남성과 여성은 공존해 왔다. 하지만 20세기가 넘어서도록 여성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21세기인 지금도 여성은 창조 중이다.

『보부아르 보부아르』에는 두 명의 보부아르가 나온다. 첫 번째 보부아르인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성의 문제, 여성의 시각에서 작품을 만들었던 작가였다. 사르트르의 영혼적 연인으로도 유명했던 그녀는 1949년에 발표한 『제2의 성』으로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 책이 가져다준 '공쿠르상'의 영예는 대단했지만, 여성의 억압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는 이유로 그녀의 작품은 신랄한 비난을 받았다. “이제 나는 당신네 여주인의 질의 모든 것까지 잘 알게 되었소.”라는 작가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비난은 당시 언론과 사회의 분위기가 얼마나 여성을 잘 묶어두고 있었는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제2의 성』은 많은 여성들로 하여금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으며, 후에 '제2의 성의 딸들'로 불려지는 페미니스트들의 유대감을 밀착시키는데 커다란 도움을 줬다.

두 번째 보부아르인 '엘렌 드 보부아르' 역시, 비록 언니 '시몬 드 보부아르'와는 다른 형태인 안정된 제도 속에서 살아왔지만, 여성의 위대함이 단지 남성이라는 그늘에 묻혀버리는 현실을 안타깝게 느끼고 있었다. 노년의 작품인 '여자는 고통받고 남자는 심판한다', '마녀 사냥은 언제나 열려있다'등 제목에서만 보더라도 페미니스트 냄새가 물씬 풍기는 현실참여적인 작품은 그녀가 남성 위주의 예술적 시각에 대해 얼마나 넌덜머리를 치고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심지어 언니인 시몬의 작품 속에서 조차 여성 예술가들은 정중한 대접을 받지 못했었다는 사실을 엘렌은 안타까워했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금기를 중요시하던 엄마보다는 언니 시몬을 의지했던 탓에 엘렌은 시몬의 모든 점을 이해하려고 했다.

1940년 후반에 프랑스에서 발표된 실존주의 사상이 짙은 작품들은 사회와 생존의 현실을 투철하게 인식하고 새로운 바탕 위에서 삶의 의미를 새롭게 추구하려는 공통된 경향을 띠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은 실존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살아있는, 혹은 살아가는 여성을 표현하기 위해 보부아르 자매는 각각의 재능으로 작품에 몰두했다.

비록 명성의 차이는 있었지만 두 여인은 여인들의 미래를 설계했다. 남성우월사회에 끊임없이 '여성'이라는 주제로 작품을 내놓았던 시몬이나 사르트르의 제자이기도한 남편 리오넬과의 안정된 가정을 유지하며 800점의 유화를 남겼던 엘렌이나, 그녀들은 시대가 요구하는 순종과 여성적 나약성을 깨뜨리기 위해 몸부림 쳤었다.

시몬 드 보부아르와 엘렌 드 보부아르는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당시의 사회가 요구했던 '정숙한, 체념적인 여인들의 생'과는 다른 열렬한 생을 원했었다. 엘렌의 말처럼 그녀들은 '삶'과 '창조'를 원했었던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클로딘 몽테유는 1970년대에 여성운동을 전개하던 중 시몬을 만났다. 그리고 '제2의 성의 딸'로써 두 자매와 인연을 맺게 된다.

"유엔에 의해 '여성의 해'로 선포된 1975년 이래 지지자들의 수는 해마다 늘어났다. 낙태, 강간, 근치상간, 매 맞는 여성 등 금기로 여겨지던 주제들에 대한 침묵의 법칙을 깨뜨림으로써 우리는 사회의 시선을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의 조건은 후퇴'하고 있다고 그녀들은 믿었다. 칼라스처럼 '행복할 수 있는 많은 자질을 갖추었던 여성이 불행하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도 여성은 창조 중이며 아직까지도 완벽한 탄생을 하지 못했다. 1986년 시몬이 숨지던 날 몽테유는 눈물 속에서 기사를 썼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성은 하나의 의무를 가지고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산다는 것이었다."

문인과 화가로서 두 자매가 보여준 삶과 창조에 대한 열망과 투쟁은 꿈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큰 경종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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