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과 고전 :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인가, 지배이데올로기인가 - 1
- 해콩님의 '[고전의 억압]- 고전은 어디까지나 그 시대의 산물이다."를 읽고


고전, 인류가 세상에 남기고 싶어 한 흔적

어느 시대나 고전이란 존재한다. 그런데 고전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오래도록 읽힌 책을 고전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아주 오래전에 쓰인 책을 고전이라 해야 할까? 우리가 흔히 클래식이라 말하는 고전의 의미를 정의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고전이 오늘날에도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교양이란 잘난 척하기에 적당한 것들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우스개 삼아 말하기도 하는데, 난 이런 부류의 이야기들은 일종의 뻐기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교양이나 고전을 그저 잘난 척하기 위해 읽는 책 정도로 단정하는 심리의 기저엔 그런 것 없이도 현실에 잘 적응해 살고 있다는 우월감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

세상에 제 아무리 좋은 책이 널렸다 하더라도 그 책을 읽지 않는다면 그건 그저 인쇄된 종이에 불과하다. 기후 재앙을 그린 SF영화 <투모로우>에서 갑작스레 밀어닥친 빙하기를 피해 도서관으로 대피한 청년들이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벽난로를 지피는 연료로 책을 불태운다. 도서관의 사서 역시 살아남기 위해 함께 책을 불태운다. 이때의 책이란 아무리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더라도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은 아니다. 하지만 사서는 한 권의 책만큼은 자신의 품에 꼭 품은 채 내놓지 않는다. 구텐베르크가 인쇄한 고(古)인쇄물인 『성서』였다. 나는 그가 기독교도라 난로에 집어넣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류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할지라도 세상에 살았었다는 흔적으로 남기고 싶은 유물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책들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장 자끄 루소의 『에밀』을 꼽는다. 이에 대해 약간 부끄러운, 어떤 이에게는 뻐기기로 보일 수도 있는 고백을 하자면 내가 『에밀』을 처음 읽은 것이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란 거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읽은 『에밀』(이 무렵엔 아직 청소년을 위한 『에밀』 같은 책은 없었다)이 어린 소년에게 과연 얼마나 이해되었을 것인가를 생각해본다면 그 무렵 읽은 이 책이 대단한 독서는 아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책이었던 『에밀』을 며칠에 걸쳐 읽도록 만든 힘은 지금껏 기억되는 첫 문장의 힘이었다. “조물주의 손을 떠날 때에는 모든 것이 선하지만, 인간의 손으로 넘어오면 모든 것이 악해진다.” 그 첫 구절이 내 가슴에 찌르르 와 닿았던 탓에 과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나중에 어떤 결말을 맺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으리라. 그런데 이 책의 끝에 소개된 루소의 생애는 당시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근대의 탁월한 교육철학을 담은 책을 쓴 루소는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태어나는 족족 고아원으로 보냈다.

한 인간의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신념이란 태교의 산물이거나 자라온 환경의 탓일 수도 있겠지만 종종 아주 작은 우연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이렇듯 우연에 의해 영향 받은 신념이란 다른 신념에 의해 영향을 받아 수정되기 전까지는 한 사람의 삶에 있어 중요한 가치로 작동하기 마련이다. 어쨌든 나 역시 이런 우연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해서 이후 나는 “세상은 드러난 것과는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다.(Le monde ce n’est pas ce que non voynez)”라는 세상의 숨겨진 이면에 대한 호기심을 품게 되었다. 우리가 뭉뚱그려 고전이라 일컫는 책에도 이면은 있기 마련이다.

고전, 진리인가? 지배이데올로기인가?

대학에서 “소설강독” 강좌를 마무리하는 시간, 지도교수는 지난 학기 동안 자신이 강독한 소설들 가운데 “앞으로 100년 뒤에도 여전히 읽히게 될 작품”이라고 생각되는 작품 하나를 선정하고,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정리해 기말 보고서로 제출하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서구문학사를 떠올리면 100년이란 역사가 터무니없어 보이지 않지만, 우리 근대문학사는 이인직의 『혈의누』를 기점으로 잡아도 2006년이 되어야 비로소 100년이 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앞으로 100년 뒤에도 여전히 살아남을 소설을 자신이 강독한 10편 가량 되는 소설 가운데 골라 보라는 과제는 생각하기에 따라 끔찍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었다. 다만 그런 과제 덕분에 나는 고전, 명작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해볼 수 있었다. 이렇듯 고전이란 시간의 마모를 견뎌낸 작품들을 의미한다. 세월의 숫돌에 연마하여 그 빛이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바로 고전이다.

그렇다면 고전이란 무엇인가? 어째서 『교양으로 읽어야 할 절대지식』이라는 거창하기 짝이 없는 제목이 붙게 만드는 것일까? ‘고전(古典, classics)’과 함께 책을 의미하는 몇 가지 명칭들을 이야기해보자. 우선, 정전(正典(canon)이란 말이 있고, 실라부스(syllabus)가 있고, 텍스트(text)란 말이 있다. 앞의 것일수록 범위가 좁아진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텍스트란 것이 말 그대로 ‘해석(규정)되기 이전의 원본’을 의미한다면, 실라부스는 이런 텍스트들 가운데 특별한 목적과 제도로서 선별된 텍스트들(커리큘럼)을 의미한다. 대학에서 강의 교재로 채택한 도서 목록들을 실라부스라 부르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정전(cannon)이란 갈대(아마도 ‘파피루스’ 같은)를 의미하는 고대 희랍어 kannon에서 유래한 것으로 후대에 와서 ‘규칙’ 혹은 ‘법’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정전은 다른 텍스트들보다 좀더 보존할 가치가 있는 텍스트들을 규정하는 말이 된다. 가령,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성서』와 이를 해석한 신학 서적들이,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꾸란』이, 유교문화권에서는 『사서오경』 같은 책들이 정전이 되었다. 정전이란 한 문화권이 위대하다고 동의하거나 간주하고 있는 작품들의 총합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고전(classics)과 흡사한 의미이지만, 고전이란 표현이 다소 주관적인 의미라면 정전이란 좀더 객관적인 용어로 쓰인다는 차이가 있다.

아르놀트 하우저는 “모든 진리는 일정한 현실성을 지닐 뿐이며 특정한 상황에서만 통용된다. 그것 자체로서는 정당한 주장이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그것이 어느 무엇과도 연관을 갖지 않기 때문에 전혀 무의미한 주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만약 한 개인에게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책 100권을 고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 개인의 신념 즉, 우연에 의한 만남이라 할지라도 정전이 될 수 있다. 그런 개인의 집합체인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선정한 서로의 정전이 겹치고 스며들면서 구성되는 것이 그 사회의 정전이 되고, 세월과 함께 숙성되어 인정받은 것들이 바로 고전이다.

그러나 역사가들이 위대한 왕으로 손꼽는 이들이 당대의 민중의 현실에서 보자면 가장 가혹한 수탈과 희생을 일삼은 왕이었던 것처럼 가장 존경받아 마땅한 고전들은 종종 교양(敎養)이란 이름으로 - 그것이 문화(culture)이든, 교양(bildung)이든 상관없이 -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도록 강요된 것들이기도 하다. 그것이 모든 고전이 지닌 이면이자 숙명이다. 어떤 인간도 시대와 괴리된 채 살아갈 수 없기에 우리는 교양이란 이름으로 그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주입받는다. 교양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그 시대의 상식을 얼마나 잘 꿰차고 있는가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때의 상식(common sense)이란 정상과 비정상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정전이기도 하다. 이 말은 상식이 바뀌면 고전이나 정전의 지위도 바뀔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다시 과연 고전과 교양 읽기는 지배이데올로기의 습득 과정에 불과한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머지는 다음 주 2부에 계속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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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10-10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바람구두님.. 그 글은 제가 쓴 글이 아니라 옛 은사이신 강명관샘의 신간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의 한 꼭지를 제가 베낀 것인데요. 나중에 아이들 수업자료로 쓰려고... 오늘 조금 바빠 저자를 안썼더니만 제 글이라고 착각하셨나요?
근데 왜 기분이 좋아지는걸까요...ㅋㅋ

바람구두 2006-10-10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그럼...
제가 헛힘을 쓴 것이 되나요. ^^;;;
(흐흐, 약간 허망해진다는...)
간만에 진지했는데...

해콩 2006-10-11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정말 제가 쓴 글인줄 아시고 저렇게 긴 글을 쓰신 거여요? 다음 주 2부까지? --;; 어쩌죠? '허망', '간만에 진지'... 죄송해요. 대신 구두님의 글은 제가 꼭꼭 씹어가며 읽을게요..
하지만...또 기분이 좋아지는걸요. ㅎㅎ 난 속물인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