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未望)에 사로잡히다....

산중에 들어가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인간사가 돌고 도는 것인지라 지금은 개혁을 말하는 이들도, 혹은 정말 존경할 만한 이들도 인간적인 결함 때문에, 혹은 시대적 한계로 인해 지탄을 받게 되고, 언젠가는 재평가되는 일도 있겠으나 뒤집어보고, 이리저리 살펴보다보면 문제 없는 인간이 어디에 있으며 억압은 언제나 반복되는 것이니 내가 이 역사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으며 한다한들 무슨 소용이랴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싸움이 지겨웠고, 인간이 지겨웠고, 세상사가 번다하여 그 번잡함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밤사이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이루지 못한 제가 여기에 있네요. 아마도 저는 평생 산중에 들어가기는 커녕, 이 번다함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하리란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가슴이 푸들거리는데 어떻게 산중에 들어가 산다는 겐지...

5월인데, 이렇게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5월인데... 왜이리, 왜이리도 잔인한 세상인지 모르겠습니다. 철쭉꽃 흐드러지게 피어난 속에서 저는 꽃보다 자연만이 빚어낼 수 있는 그 형광빛 나는 초록의 신록이 좋았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인 측백이 가장 아름다울 때도 이 무렵입니다. 형광빛 초록이 가지끝마다 움터서 마치 나무가 초록으로 불타는 그 느낌이거든요.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울까. 생명이 피어내는 불꽃은 붉은 색이 아니라 저런 초록빛이 아닐까 싶도록 눈이 부시게 푸르른 빛깔. 그 좋은 빛깔들이 들녁과 산야를 온통 물들이는 이 밝고 맑은 5월에... 빗소리를 들으며 밤새 잠을 설쳤다면 좋으련만...

5월의 대추리를 생각하노라니, 서럽고 분노로 가득차 올라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내가 꿈꾸었던 세상은 과연 이루어질 수 없는 미망에 불과했던가? 찬란했던 5월의 하늘을 한 번이라도 바라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이 사는 일을 그리 무지막지하게 짓밟을 수 있는가? 짓밟으라는 그 명령을 거절한 병사가 단 한 사람도 없었단 말인가? 명령에 따랐을 뿐이란 변명 뒤에 숨어서 어느때인가 자신의 고통을 고백하는 일로 고통스러운 5월을 반복하는 것이 전부란 말인가. 10년 아니 20년을 넘어 우리는 왜 야만을 반복하는가.... - 바람구두

 
지율스님이 플래쉬 동영상을 만드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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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06 13: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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