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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바, 이거 딱 나보고 하는 소리야. 씨바... 뒈져야 되 그냥..."
자조적이나마 웃음을 띄고 있었지만 그녀석은 얼굴을 모닥불에 묻은 듯 붉게 상기되어있었습니다. 지난달 술잔을 기울이던 중 김규항의 새 책 이야기가 나오고, '딱 상상할 수 있을 만큼'의 이야기가 뜨기 직전이었을겁니다. 저 말 한마디에 맥주잔 앞에 둘러앉은 우리는, 한 마디도 더하지도, 빼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과 웃음이, 붕 뜬 이야기가 잠시 오고간 후, 다른 이야기로 애둘러 화제를 돌렸습니다. 저 책 첫머리의 이 말 때문이었습니다.
내 글을 얼마간의 사회의식을 배설하는 데 사용하는 사람들이 거슬렸고...(책 머리말 중에서)
김규항씨의 두번째 책을 '사서'읽으신 분들 중, 제 친구녀석의 씁쓸한 웃음을 지으신 분도, 저와 나머지 친구들의 어색한 침묵을 겪으신 분도 있으실 겁니다. 먹먹함과 답답함을 느끼시는 분들도 많지 싶구요. 오늘 아침인가, 바람구두님이 올려놓으신 페이퍼에 대한 댓글과 추천수는 그런 반응들이 조금씩 움튼 거라고 보아도 되겠지요.
그 먹먹함을 조금이나마 풀기 위해서, 고래 동무가 되어주십시오.
아시는 분 아시겠지만, 이 잡지는 김규항씨의 주도로 근 2년째 출판되고 있습니다. 상업성 없을 뿐더러, 재미있고 유익하다는 말로 모자랄 만큼 훌륭한 잡지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 잡지도 '서점에서 돈을 주고 사서'읽거나 '도서관 같은 곳을 통해 돌려'보아야 합니다. 이제껏 '고래가 그랬어' 가능한 한 이런저런 공부방이나 농어촌 지역의 도서관에 무료로 잡지를 발송하고 있지만 힘에 부치는 게 현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고래동무'를 모으는 겁니다. 한달에 한 계좌 7500원이면 고래가 그랬어를 공부방 한 곳에 보내고 20-30명의 아이들이 즐겁게 읽으며 생각과 마음을 키워 나갈 수 있습니다. 고작 잡지 하나 보는 데 너무 과도한 수식 아니냐고 물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들께, 저는 이 일화를 들려줍니다.
“씨바, 기분 좋네요. 정말.” “넌 술 먹으면 기분 좋잖아.” “씨바, 그게 아니라니까요.” “아니긴 뭐가 아닌데.” “지난번에 설문조사 한다고 ㅎ초등학교에 창간호 보냈잖아요.” “그랬지.” “6학년 한 반 아이들 전부가 책을 읽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한 아이 엄마가 그 반 행사 때 아이들 먹으라고 빅맥 세트를 숫자대로 가져왔나 봐요.” “그런데.” “한명도 안 먹어버렸대요.” “정말이야.” “정말이니까 이 시간에 전화한 거 아닙니까. 한 아이가 벌떡 일어나서 ‘맥도날드 먹으면 안돼’라고 외치니까 모든 아이들이 ‘뚱보 된다’, ‘맥도날드는 나쁘다’ 등등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동조했답니다.” “저런.” “교사가 햄버거 사온 아이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니까 민망해하면서 몽땅 싸들고 돌아갔대요.” “그것 봐라, 애들은 된다니까.” “그러게 말에요. 기분 좋네요. 정말.”
출처: 김규항 블로그(http://gyuhang.net/archives/2003/11/06@12:18AM.html)
김규항씨의 책이 많이 팔리고, 그의 불온한 '건달'정신이 더 퍼지는 것도, 그로 인해 바람구두님이 느끼셨을 감정이 더 퍼지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겁니다. 하지만 더 의미있는 일은 '고래 동무'가 더 늘어나 '고래가 그랬어'를 더 많은 어린이들이 읽게 되는 일이 아닐까요?
그나마 가까운 어린이들에게 이 책을 사주는 데 그쳤던 저도 오늘 한 계좌 가입했습니다. 엄니 빚 갚고 혼자 만땅재 살림 꾸려나가는 와중에도 먹고 살겠다고 하루 세끼 꼬박꼬박 아구리에 쳐넣는 게 그리 널널한 편은 아니지만 뭐. 한 이삼 일 식비 아껴서 고래 동무 하나 더 늘어나는게 목구녕에 밥 한술 더 밀어넣는 일보다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하기에 마음만은 한결 가볍습니다.
오늘 제가 누이라 부르는 이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좀 늦게 이 잡지를 접한 누이는 발벗고 나서서 고래동무 늘리기 운동을 전방위로 펴나가고 있더군요. 조금 부끄러워지덥디다. "이 좋은 잡지를 이제 알았냐."고 타박했던 걸 후회할 정도로 말이죠.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고래 동무가 되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여러 곳에 이 소식을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고래동무의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고래동무 홈페이지: http://www.dongmoo.or.kr/friend/main.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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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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쌩뚱맞은 매너님의 마지막 코멘트에 대한 나의 쌩뚱맞음을 표현하는 방법 역시 이런 것밖에 없는가 아침 나절 잠시 고민에 빠졌었습니다. 우선 잘못이야 매너님의 페이퍼에 그저 혼자 삭이면 그만이었을 잠시잠깐의 감정을 앞뒤 토막낸 짤막한 댓글로 올려버린 제 잘못이었고, 생각해보니 잘못한 듯 하여 삭제하였는데, 구태여 자신의 메일계정에 자동 저장된 제 코멘트를 뒤져서 그대로 끌고와 자신의 댓글이 쌩뚱맞아지지 않길 바란 매너님의 각박해 보이는 처신을 나무랄 수는 없겠지요. 문제를 일으켰다면 일으킨 사람이 푸는 것이 정석일 테니 나름의 답변을 아니할 수 없는 노릇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어쩐지 끌려나온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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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매너님의 이런 식의 반응이 있을 것 같아 괜한 말꼬리를 늘여나갈 일이 번거로울 듯하여 지웠음을 밝혀드립니다.
그것이 코멘트를 삭제한 첫번째 까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김규항의 저 머리말 구절에 대해 짜증이 난 까닭이 구태여 궁금하고 알고 싶었다면 제가 삭제한 당신의 페이퍼에 대한 댓글을 페이퍼의 자동 이메일 보내기를 통해 다시 퍼나르는 정도의 노력을 기울이기 보다는 제 서재에 별도로 질문하였다면 나름대로 정리해 드릴 수도 있었을 겁니다.
다만, 댓글을 올렸다가 삭제한다는 것은 - 비록 그것이 당신의 페이퍼에 달린 글이라 할지라도 - 자신의 댓글을 철회한다는 뜻이거나 혹은 당신의 질문에 구태여 답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걸 구태여 본인 페이퍼에 달린 코멘트가 이메일로도 날아가는 기능을 이용해 다시 퍼나르는 행동은 그다지 매너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혹시 그것이 비인격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여졌다면 이해하도록 하지요.
물론 잠깐의 짜증을 참지 못하고 거두절미하여 감정을 배설한 나머지 당신이 좋은 의도로 올렸던 페이퍼를 더럽힌 듯한 느낌을 받게 했다면 그 부분은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제가 페이퍼의 댓글을 삭제한 하나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규항의 책을 다 읽지 않았으므로 더군다나 머리말도 읽지 않았고, 군데군데 제 눈 가는 데로 읽었으므로 제 거슬림과 짜증은 매너님이 퍼 올린 머리말에만 한정한 제 느낌이었습니다. 전후 맥락이 없긴 마찬가지이겠으나 그건 별문제가 되는 건 아니겠지요.
약간의 오해를 무릅쓰고 거두절미하여 말하자면 김규항의 그 거슬림 "내 글을 얼마간의 사회의식을 배설하는 데 사용하는 사람들이 거슬렸고...(책 머리말 중에서)"이 제게 거슬렸고, 그가 취하는 일련의 포즈들이 그가 의도하고 있는 바와 달리, 아니 어쩌면 그것이 그의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포지셔닝이겠지만, 그것은 일종의 아마추어리즘적인 태도이며, 저런 그의 거슬림이 진보의 도덕적 순결 의식과 맞물려 그의 의도와 다른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거슬렸습니다. 그가 자신의 책 속에서 비판하고 있던 구 좌파의 일부 사람들에게 혹은 구운동권에게 현재의 젊은이들이 짜증내고 있는 부분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내 글을 얼마간의 사회의식을 배설하는 데 사용하는 사람들이 거슬렸고...(책 머리말 중에서)"란 반토막난 문장에서 어떤 아마추어리즘을 느끼고, 그것이 왜 좌파의 도덕적 순결의식으로 받아들여졌는가.
첫째. 자기 글을 책으로 묶어내는 사람이라면, 더군다나 그는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글을 발표하고 있으며, 자기 자신이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발표된 글이 어떤 용도로 사용될지 정도에 대해선 이미 파악하고 있는 프로란 말인데(자기 자신은 그걸 부인할지라도) 그 거슬림을 있는 그대로 표내고 있는 것이 그렇게 느껴졌고... 그건 매너님이 제 페이퍼 글의 의도와 추천수, 댓글들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인가, 바람구두님이 올려놓으신 페이퍼에 대한 댓글과 추천수는 그런 반응들이 조금씩 움튼 거라고 보아도 되겠지요."란...
둘째. 본의 아니게 서준식 선생을 들먹이자면 <‘진보적’이고 자처하는 글쟁이들은 가끔 이런 주장을 한다. “글쓰기도 운동의 한 형태다. 우리도 운동가다” 그들의 이런 말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것을 인정해주고 싶지 않다. 그것을 고스란히 인정해버린다면 누가 고달픈 운동판에 남아 있으려 할 것인가?>란 측면에서 보자면 김규항이 거슬려 하는 사람들과 그 자신은 얼마나 다른 지점에 서 있는가. 그 자신이 글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면 될 문제를 구태여 글로 표현하고 있는 의식이 짜증났습니다.
제 짜증에는 두 가지 층위가 있는데 한 가지는 그가 그렇게 거슬려 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 바로 내가 희망을 걸고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며, 그들의 문화적 실천, 일상적 실천을 배설이라 규정하는 건, 제 입장에선 좌우파를 막론한 엘리트주의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그에 못지 않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실천으로 옮겨가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김규항 정도의 실천, 혹은 우리 시대가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이에게 혁명적 실천을 요구하고 있지 않는 까닭에(이 부분에 대해서 반론하겠다면 그건 어쩔 수 없지만) 많은 이들, 특히 80년대의 혁명적 이상의 실천 행위를 높이 평가하고 받아들이는 이들에겐 현재의 상황(그 이상, 혁명적 실천을 하지 못하고, 그저 문화적 실천, 일상적 실천에 그치고 마는)이 그저 막막하고 답답하기 그지 없는 상황에 그친다는 열패감을 강화하는 쪽으로 흐를 수밖에 없음을 그가 간과하고 있음에 대한 짜증입니다.
김규항의 글쓰기가 의도하는 바에 많이 공감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 그의 글에 깊이 감동했던 경험을 지닌 이로서, 힘든 80년대를 살았던 한 사람으로 지금도 그 이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의 하나로서 90년대의 열패감과 21세기의 힘겨움 속에서도 나름의 실천하는 삶을 살고자 애쓰는 사람으로서 그에게 저런 힐난을 들을 까닭(전체 문장이 아닌 매너님이 퍼온 저 반토막 문장에 국한하자면)이 제게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이 제 감정의 토로란 점은 부인하지 않겠으나 이왕 매너님에게 강제로 끌려나왔으므로 제 입장을 밝히자면 그렇습니다. 그리고 부탁건데 앞으론 삭제한 댓글(그것이 당신 개인에 대한 이유없는 인신공격이거나 욕설 같은 것이 아니라면)을 이런 식으로 끌고 나오는 일은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저도 당신의 페이퍼에 손쉽게 감정을 드러내는 댓글 같은 건 남기지 않겠습니다.
끝으로 제 이 댓글이 당신이 의도한 "고래동무"에 더 많은 독자가 생기는 일을 막아서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으며, 김규항이란 한 훌륭한 사람에 대한 모욕으로 읽히지 않길 바랍니다.
* 오늘 아침 나절 제 자신을 설명해야 할 일이 참 여러 차례 있군요. 제 서재에 매너님이 남기신 비밀글 중에 매너님의 페이퍼와 제 댓글이 별로 상관없어 보였다고 하셨는데, 저 혼자만의 느낌이었겠으나 나름대로는 상관이 있었다고 생각하여 남겼었고, 과하다 싶어 지웠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