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오늘 현재, ‘전태일 정신’은 무엇인가?
 


<매일노동뉴스> 이번 주 호에는 표지사진으로 마석 모란공원의 22살 청년 ‘전태일’이 아직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고 외치며 노동법을 꼬옥 껴안고 있다.

바로 오늘,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지 34년이 되는 날이다.
그리고 그에 맞춰 노동운동진영은 11월 14일 전태일 열사의 분신을 ‘추모’하는 전국노동자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그러나, 전/태/일/ 이라는 이름 석자를 가슴에 품고 사는 나는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그것은 뇌리 속에 강력하게 뙤아리 틀고 있는 의문이 좀처럼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연 현재 노동운동은 “전태일 정신”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때문이다. 물론 나는 공무원노조의 파업을 지지하고, 공무원노조에 대한 노동3권이 충분하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현재 민주노총이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직 개악 저지 총파업을 충심으로 지지한다.

 

공무원 노조의 파업에 즈음하여 - 89년 ‘전교조’ 결성 투쟁을 회고하다

내가 운동을 처음으로 접하던 시절 89년, 그러니까 그해에 전교조 결성 투쟁이 있었다. 전교조 선생님들은 “참교육”이라는 간명한 슬로건을 내걸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결성 투쟁을 했다. 그리고 연중 수십만명에 달하는 중․고등학생들이 ‘제적’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투쟁에 함께하였다.

전교조 결성투쟁은 사실상 “참교육 쟁취 투쟁”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교조=참교육의 등식이 ‘심장’ 깊숙한 곳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은 것은 전교조 결성 주체들의 ‘평소 행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생들 입장에서 노동조합이라는 것이 뭔지 잘 몰랐을지라도 이 투쟁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이유는 자신의 학교생활을 통해서 ‘촌지를 받지 않은 선생님’, ‘체벌을 하지 않는 선생님’, 국어시간에 배우는 시(詩)는 입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주던 선생님, 수업이 모두 파한 이후 항상 남아서 학생들과 함께 ‘교실청소’를 하던 선생님......... 바로 이렇게 평소 자신이 “가장 존경할만한 행실”을 하던 바로 그런 사람들이 전교조 결성의 맨 선두에 섰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전교조 투쟁에는 싸움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싸움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그리고 싸움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뭔가 “가슴 뭉클한 것”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그 싸움은 비록 노태우 정부에 의해 ‘물리적’으로는 패배했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심장 깊숙이 ‘도덕적’인 승리를 얻어낼 수 있었다.

하나의 투쟁이 정당하다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근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중에서도 우리의 투쟁은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궁극적으로 그들의 존엄을 옹호하고 확장하는 것이기 때문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투쟁이, 투쟁의 방법과, 투쟁의 목표가 ‘정의로운 가치’를 실현하는 투쟁이 아닐 때, 지금과 같은 수세적인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우리는 더더욱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공무원 노조의 파업을 지켜보며 - 무언가 ‘가슴’이 허전한 이유

공무원노동자가 총 140만명에 달하고,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의 조합원이 14만명에 이르고, 투쟁기금을 적립한 돈이 110억원에 이른다는 것은 싸움을 지켜보거나 지지하는 이들에게 ‘감탄’을 줄 수는 있을지언정 그 자체로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런 막강한 ‘규모’와 ‘조직력’ 그리고 ‘자금력’이 아니다.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들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기 때문도 아니(여야 한)다.

투쟁을 통해 ‘감동’을 받고 감화되는 것은, 과거 전교조 선생님들이 내걸었던 ‘참교육’이라는 슬로건이 실제의 실천 속에서 정확하게 참교육적 실천으로 이행되었기 때문에, 그리하여 우리의 오감을 통하여, 눈으로 직접 보고 체험하는 과정에 기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필자가 알고 있기로 당장 국회만 하더라도 근속년수가 몇 십 년이 된 청소부 아주머니들을 비롯하여 이런 저런 사무․공무 일을 보는 비정규직 ‘공무원’ 노동자가 즐비하다. 심지어 ‘정보의 투명한 공개’라는 차원에서 이번 17대 국회부터 새로 생긴 국회방송의 방송사 직원들도 거의 전부가 (국회의장에 의해서) 비정규직으로 채용되어 있는 실정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구청 소속 환경미화원 노동자들이 또한 ‘비정규직’ 공무원의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물론 필자가 과문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110억원의 투쟁기금을 모으고, 14만 명의 조합원을 가지고 있는 공무원노조에서 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하려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공무원 노조는 조직의 성격 자체가 ‘산별노조’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이들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가입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조직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지, 오히려 은근히 방조 혹은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이번 노무현 정부의 공무원노조법은 단체행동권만 없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대상자가 협소하기 때문에) ‘단결권’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는데 바로 주변에 존재하는 ‘단결권의 대상’인 비정규직을 단결권에 포함(조직화)시키기 위해서는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의문이다.

바로 주변의 조직대상자인 비정규직에 대해 실질적인 조직화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정부의 단결권 제약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 ‘논리적’으로는 여전히 타당한 지적일지 모르겠지만 그 싸움을 지켜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국민들의 입장에서 얼마나 그것을 ‘심정적’으로 지지해줄지 여전히 의문이다. 물론 ‘논리적’으로는 지지를 할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단순한 논리적 지지를 뛰어넘어 심장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화’를 이끌어내기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2004년 오늘 현재에 생각하는 전태일 정신 - <풀빵의 정신>

해마다 11월 13일이 돌아오면 우리는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생각한다. 그리고 《전태일 평전》을 통해서 접했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잊지 못하여 울컥 울컥하는 마음들을 어찌하지 못한다.

그러나 2004년 오늘 현재, 전태일 열사의 분신 기념일이 다가올수록 내 마음은 편하지가 않다. 그것은 우리 노동운동이, 내가 생을 걸고 존경하고 함께해왔던 바로 “나의” 노동운동이 정말로 “전태일 정신”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자괴감이 자꾸만 자꾸만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전태일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기업별 노조의 한계에 극한점에 다다르고 있다는 점에서, 정규직/비정규직의 노동양극화 심화, 자본의 공세에 대한 국민여론(혹은 압도적 다수의 미조직 노동계급에 의한) ‘이데올로기적 고립’ 등을 느끼는 요즈음, 필자가 머릿속을 맴도는 전태일 정신은 <풀빵의 정신>이다.

평화시장의 어린 여공들이 저녁끼니를 제대로 먹지 못하자 전태일 열사는 자신의 차비를 몽당 털어 ‘풀빵’을 사준다. 그리고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본인은 청계천에서 멀디 먼 미아리까지 걸어간다. 전태일은 통행금지 시간에 걸려 파출소에서 자기를 반복하고 나중에는 파출소에서 양해를 해주었을 정도였다.

아마도 전태일 열사가 여공들이 저녁식사를 제대로 못 먹는 것은 ‘자본가’들의 악랄한 착취때문이었다는 선동만을 했다면 우리는 ‘심장’을 통해 흐느끼는 감동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혹은 여공들이 저녁식사를 제대로 못 먹는 것은 박정희 독재정권의 개발정책 때문이었다고 선동만을 했다면 역시 우리를 감동시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물론, 여공들도 그를 통해서 감동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린 여공들이 전태일과 ‘함께’ 나서게 되는 것은, 그리고 우리가 전태일의 삶을 통한 감명을 쉽사리 잊지 못하는 것은 전태일이 ‘참된 연대’는 <몸>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자신의 삶을 통해서 그야말로 온몸으로 보여주었으며, 기꺼이 자신의 것을 털어 아픔을 함께 할 때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그 깊은 공명이 결국 ‘단결’을 이루어내고 투쟁하는 주체들로 하여금 강렬한 자긍심과 도덕적 정당성을 심어준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80년대 우리가 마침내 군부독재를 격퇴할 수 있었던 것은 물리력도 아니었고, 무장력도 아니었다. 그것은 거의 전적으로 도덕적 정당성에 기반한 것이었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투쟁이었기 때문에 한번의 싸움이 비록 깨질지언정 ‘감화’를 받은 다른 사람들이 또다시 결합하고, 또다시 깨지고 또다시 결합하는...... 그리하여 깨지면 깨질수록 참여자가 늘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승리할 수 있었다.

2004년 오늘 현재, 전태일 열사의 분신 34주년을 맞이하여, 도대체 현재의 노동조합운동은 ‘청계천 평화시장의 어린 벗’들을 위하여. 그들을 목마른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함께 나누어질 ‘풀빵’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겨울에 다가오는 가을, 하늘은 높고 마음은 더욱 무겁기만 한 날들이다. 
 
<출처 : 진보누리, 천이님의 글>


댓글(3)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4-11-17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구두 2004-11-17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기본적인 생각은 공무원 노조를 인정해야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인정하는 것과 상관없이 정당성과 필요성을 세상에 알리고, 정부와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을 뚫고 누군가가 대신 만들어줄 수는 없는 거란 거죠. 정당성과 필요성을 인정받기 위해선 무던히 많은 고통의 수렁을 통과하지 않음 안 되겠죠. 힘내시길....

2004-11-18 1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