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뱃속에 맑은 시냇물까지는 아니어도 시궁창 흐르는 한 줄기 흐름이 있다는 것쯤은 나도 배워서 알지만 밤새 텅빈 속에 흘려넣는 '커피의 강물'이 싸아하게 뱃속을 훑고 지나는 느낌을 확인할 때 변함없이 입구(入口)는 출구(出口)의 시작이란 걸 새삼스레 깨우친다. 살아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은 기쁘거나 슬픈 감정보다 '고통'을 자각하는 순간과 더 깊은 인연을 맺는다. 설령 그것이 육체가 아닌 정신적 고통이라 할지라도 고통받고 있을 때, 우리는 잠시 멈추기 때문이다. '고통없이 성장하는 인간은 없다'고 하던데 고통에도 불구하고 성장하지 못하는 인간도 있다.
빈 속에 흘려넣은 커피 한 잔이 갑자기 속을 짜르르하게 만든다. 문득 이 아침에도 내가 여전히 살아있구나 생각하니 ... 갑자기 모든 것이 우스워졌다. 인간은 항상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뒤로도 간다. 고등학생 때 교정의 커다란 나무 밑에서, 그때도 나는 이런 객적은 생각들로 시간을 죽이며, 혹시 이것이 시가 될 수는 없을까 고민했었다. 나중에 보니 "입구(入口)는 출구(出口)의 시작"이란 생각은 이미 황지우가 시로 써서 발표했었다. 사람 생각하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