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구두] 바람구두    since 2004.07.23 
망명지에 두근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망명신청을 했던 그 순간부터,

변덕 죽 끓듯하는 내 거처를 잊지않고 찾아주시는 바람구두님,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가치있는 것과 반짝이지만 필요없는 것들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현미경과 같은 분

[출처] 제 이웃을 소개합니다.|작성자 냐옹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데, 딱 두 번 얼굴을 보고 음식을 먹고 차를 마셨을 뿐인데도 가끔씩 생각이 나서 들르게 되는 이웃 블로그가 있다. 마치 핵전쟁 순간에 멈춰버린 시계처럼 그녀의 블로그는 그녀의 동생이 누나의 마지막 가는 길을 이웃들에게 보고하는 페이퍼를 마지막으로 멈춰있다. 그녀의 블로그는 '폐가'이거나 '무덤'이다. 돌보는 사람 하나 없어도 여전히 맑고 투명하게 움직이고 무엇하나 작동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녀는 2006년 8월 19일 새벽 5시, 사랑했던 경주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가당치 않은 생각인 줄 알지만 그녀의 죽음엔 나도 일조했다는 마음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산은 설악산도, 지리산도 아닌 경주 남산이라고, 경주 남산은 이집트의 왕들의 계곡이 있는 것처럼 한국의 경주 남산은 우리나라에 세워진 불국정토이자 왕들의 계곡이었다고 경주를 사랑했던 그녀에게 종종 말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세상을 등진 날을 내가 기억하는 것처럼 그녀 역시 나를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했다. 2004년 7월 23일. 생각해보면 단지 2년간의 만남에 불과했지만 그 사이에 나는 그녀와 재미난 추억들을 많이 만들었다. 예를 들어 나는 그녀에게 개인적으로 표창을 받은 적이 있다. 지금은 어디에 두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정말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표창장엔 "2000년 이후 그동안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를 운영하느라 애쓰신 바람구두님의 공로를 기려 이에 표창함"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웹프로그래머이자 디자이너였던 그녀는 한 편으론 뛰어난 아마추어 사진가이기도 했다. 직업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변덕스럽게 몇 차례 블로그를 옮겨 다닐 때마다 나 역시 그 블로그를 찾아 이웃을 맺고 함께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동물을 사랑해서 고양이 도로와 다람이를 입양해서 길렀고, 늙은 개 난이를 애지중지 돌보는 모습을 종종 사진으로 남겼다. 스타일리쉬하다는 표현이 무엇인지 난 잘 몰랐는데, 그녀의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보면서 그 표현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즐거운 아이였고, 명쾌한 자기 주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친구였다. 면을 좋아해서 한 번은 사동면옥에서 냉면을 먹었고, 다음 번엔 아지오에서 스파게티를 먹었다. 다음에는 인천에서 짜장면을 함께 먹기로 했었다. 나는 그녀에게 내 홈페이지 개편을 부탁하고 싶었고 만약 그녀가 있었다면 지난 2년간 내가 그토록 별것도 아닌 일로 기운빠지고, 힘없어해야 하는 일들을 경험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이제 낡아가고 있는 내 홈페이지를 어찌 해볼까 뒤적이며 바라보니 문득 그대가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가치있는 것과 반짝이지만 필요없는 것들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현미경과 같은 분
  

누군가가 나에게 변함 없는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는데, 그녀는 나를 현미경과 같은 분이라고 말했었구나.  사람은 살아가면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많은 것을 잃어가는 것이라고 변함없이 반짝이는 그녀의 블로그 앞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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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2 14: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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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2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