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에 키스하기
조너선 캐럴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작년 이맘때도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초여름을 준비하며 평소에도 심취해있던 ‘미스터리 지향적’ 독서는 날로 상승세를 타고 있었고 그렇잖아도 야행성이라 긴긴밤을 보내는 내게 무더위의 한여름 밤과 추리소설은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리고 작년보다도 더욱 빨리 계절은 돌아왔고 책장에 책들은 과장을 조금 보태어 하루가 멀다 하고 불어나는 실정이니 읽는 차례를 정해주는 일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와중에 조너선 캐럴의 작품을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지난 달 어느 월간 잡지 한 페이지의「신간도서 미리보기」가 제대로 날 자극한 덕분이다.

새 소설을 기획중인 베스트셀러 작가 샘 베이어는 항상 첫 페이지부터 소설의 캐릭터들이 진행을 주도하는 매끄러운 글쓰기를 자랑해왔다. 그러던 그가 지독한 슬럼프에 빠져 허우적대던 중 우연히 인생의 첫 15년을 보낸 고향마을 크레인스뷰로 가야겠다는 영감을 떠올리게 된다. 충동적으로 도착한 그곳에서 “폴린 오스트로바”라는 운명적인 이름과 조우하게 되는데, ‘벌집’이란 별명으로 불렸던 그녀는 샘의 첫사랑이자 우상이었고 어느 날 살해당해 강으로 떠내려 온 그녀의 시체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 또한 샘이었다. 샘은 그렇게 묘한 인연을 가진 그녀를 통해 당시의 사건을 떠올리며 일생에 한 권 쓸 수 있을까말까 한 ‘걸작’의 꿈에 부풀어 그녀의 죽음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이미 과거에 벌어진 사건을 쫓아가는 설정은 자칫 사건을 일직선에 놓아 단순하고 식상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선 독자가 미리 그것을 염려할 필요는 전혀 없어 보인다. 이미 범행을 자백한 범인이 구속되었고 수감 생활을 견디지 못 해 자살한 것으로 일단락 된 것처럼 보이는 사건이었지만 샘의 어린시절 친구이자 크레인스뷰의 경찰서장인 프래니 맥케이브는 그가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사건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정보와 함께 그가 계속 의심해온 새로운 용의자를 지목한다. 그렇게 막다른 골목까지 쉽게 다다라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것 같던 용의자도 갑작스레 저격을 받아 살해되고, 거대한 검은 그림자는 샘의 아주 가까운 곳에서 그의 책을 주시하는데..

사건을 빠른 걸음으로 쫓아가는 추격자와 베일에 가려진 범인, 그리고 쉬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검은 그림자. 그것들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데 작가는 더 많은 것들을 책에 담아내고 있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마을에서의 향수, 어린시절의 친구들과 우스꽝스러운 유년기, 실패한 세 번의 결혼에서 가까스로 얻은 선물인 훌륭한 딸 카산드라와의 깊은 교감 그리고 사인회에서 만나 연인이 되었지만 도무지 본질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의문의 여인 베로니카 레이크까지. 이렇게 많은 상황들을 한꺼번에 아우르는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게 만든다. 더불어 종종 빙그레 웃을 수 있는 유머도 빼놓지 않고.

아쉬운 점이라면 샘의 역할이 진실을 밝혀 원고를 완성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을 맺어버렸다는 점이다. 베로니카 레이크의 정체와 검은 그림자, 그리고 폴린의 죽음 직후에 있었던 일들의 긴장감을 독자가 모두 다 만끽하기도 전에 느닷없이 이야기의 끝을 맞이하게 만든 작가의 불친절함이 살짝, 아주 살짝 아쉬웠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난 그렇게 모범적인 독자가 아닌 탓에 한 번 읽고 난 책을 두 번 읽는 일은 극히 드물어서 더욱 불만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사건의 모든 전말을 파악 한 뒤 다시 한번 꼼꼼히 되짚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된다.

조너선 캐럴의 ‘크레인스뷰 3부작’이 곧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동안 또 다른 국내 출간작인「웃음의 나라」를 읽어볼까 한다. 새로운 작가를 처음만나는 설렘은 항상 기쁘지만 이렇게 읽고 싶은 책이 한 권 두 권 늘어날 때마다 생기는 조바심은 그 설렘만큼이나 괴롭기도 하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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