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 아이야, 가라 2 밀리언셀러 클럽 47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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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니스 루헤인의 명성이야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의 책을 접한 건 겨우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뿐이다. 그것도 영화로 아주 유명해진「미스틱 리버」가 아닌 밀리언셀러 클럽으로 출간 된 ‘사립탐정 켄지&제나로 시리즈’인「비를 바라는 기도」로 포문을 열었는데, 난 될 수 있으면 출간 순으로 읽는 편이지만 이렇게 거꾸로 된 까닭은 단순한 착각 때문이었다. 그것도 열심히 책을 읽던 중에 뒤늦게 눈치 채고 허탈해 했었다. 아무튼 그때부터 벼르고 별러서, 굉장한 서평들을 많이 접했고 당연히 엄청난 기대를 하며 이 책을 손에 잡았다.


제목에서도 충분한 냄새가 난다. 겨우 4년 7개월 된 아만다 맥크레디가 3일 전 집에서 실종되었다. 아이의 엄마 헬렌이 아이를 재워두고, 겨우 4시간가량, 고작 TV를 보기위해 옆집으로 간 사이, 애초에 아이가 존재한 사실조차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을 총 동원한 대대적인 수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72시간이 지나도록 발견되지 않은 어린아이라면 지금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인가에 대해. 그것이 바로 패트릭과 앤지가 의뢰 수락을 주저하는 이유인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소란조차 사라진 아이의 침묵보다 더 크게 메아리치지 못했다. 겨우 1미터도 채 되지 않는 아이의 침묵은, 사람들의 엉덩이를 들썩거리게 만들기도 하고 마룻바닥이나 책상 밑 아니면 침대 옆에 놓인 인형들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장례식이나 철야기도 때의 침묵과는 또 다르다. 죽은 자의 침묵은 그것이 마지막 침묵이며 우리가 그 침묵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해 주지만, 사라진 아이의 침묵은 익숙해질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그런 침묵이다. 그 침묵이 지금 사람들에게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다.

사자의 침묵은 이렇게 말한다. 안녕.

실종된 아이의 침묵은 말한다. 날 찾아줘요. (1권 p.41)


패트릭과 앤지가 주저하는 순간, 독자도 선택을 해야만 한다. 사건을 향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끔찍한 결말까지 따라 달릴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지금 이 순간 책장을 미련 없이 덮을 것인지. 아무튼 나는 사건을 따라가는 쪽을 선택했다. 정말이지 어떤 끔찍한 결말을 만난다 해도 눈을 돌리지 않겠다는 결심과 함께. 


나는 그를 넘어 파란 문으로 갔다. 내가 들어간 곳은 작은 벽장 크기의 욕실이었다. 널빤지를 댄 검은 창문 하나와 세면대 아래 누더기가 된 샤워 커튼, 타일과 핏자국이 선명한 변기, 그리고 양동이로 뿌린 듯한 벽의 핏자국.

어린아이의 하얀 면 내의가 피에 흠뻑 젖은 채 세면대 안에 처박혀 있었다.

나는 욕조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입을 벌린 채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두 뺨에 따뜻한 두 줄기 액체가 흐르는 걸 보면 울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욕조 안에는 벌거벗은 아이가 웅크린 채 죽어있었다.

.........(중략)

새뮤얼 피에트로가 숨을 거둔 시간은 내가 찾아내기 45분전이었다. 의료반의 증언에 따르면 실종된 후 2주 동안 아이는 반복적으로 항문성교를 당했고, 등과 엉덩이와 다리에 채찍질을 당했으며, 오른손은 뼈까지 먹어들어 갈 정도로 단단히 수갑을 채워놓았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품을 떠난 이후로 아이가 먹은 것이라고는 감자칩과 고구마칩, 그리고 맥주뿐이었다. (2권 p.116, 119)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아이들이 사라지고 그렇게 사라진 아이들은, 지하실 어둠 속에 갇혀있거나 더욱 끔찍하다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이미 건너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폭력 못지않게 잔인한 것이 방임과 무관심이라는 것도 분명히 알아야만 한다. 그렇게 무관심에 익숙해진 아이는 웃음을 잃고 세상과 소통을 단절한 채 안으로, 안으로 숨어버리기 마련이다. 활짝 핀 웃음처럼 맑은 눈동자를 하고 있어야할 어린아이의 눈이 불투명하게 얼룩져있는 것. 난도질 된 아이의 사체만큼이나 절망적인 결말이었다. 이런 절망을 분명히 느끼고도 난 아직 잘 모르겠다. 과연 패트릭의 선택이 틀린 것이었을까 하는 것을. 결국 이 사건이 서로의 눈빛만 봐도 서로를 절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패트릭과 앤지의 굳건한 애정마저 산산조각을 내고야 말았다.


사건의 결말에 까지 이르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곧 끝날 것처럼 보이던 사건은 오히려 더 큰 의혹을 낳고 의외의 인물에 자연히 혀를 내두르며 배신감마저 느끼게 되는데,「비를 바라는 기도」에서처럼 함정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리고 패트릭과 앤지가 보여주는 끈끈함과 꼴통으로 등장하는 부바까지, 너무나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주인공들에 대한 독자의 애정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데니스 루헤인이 다섯 편의 ‘사립탐정 켄지&제나로 시리즈’를 내어 놓았는데 우리나라에서 출간 된 작품은 겨우 두 편 뿐이고 그나마도 마지막 이야기들임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하루 속히 그의 처녀작을 비롯한 나머지 이야기들도 국내에 소개되길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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