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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ㅣ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거창하지 않다고 여겨질 만큼, 혹은 ‘이게 무슨 사건이야?’ 라는 핀잔도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아주 작은 사건으로 시작된다. 마치 일전에 읽은 작가의 전작 ‘용은 잠들다’에서 폭우 속에 누군가가
열어놓은 맨홀 아래로 사라진 꼬마아이로 이야기가 전개되듯이.
자전거에 치여 세상을 달리한 장인의 운전기사 가지타 노부오의 뺑소니 사건을 장인에게 의뢰받은
스기무라는 작가의 설명에서처럼 안정된 일상생활 속에서 포근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미스터리의 세계에선 특별하다면 특별한 탐정이다. 더욱이 그는 전문적이고 능숙한 탐정은 아니다.
범인을 잡으려는 건 아니다. 나는 경찰관도 변호사도 검사도 아니다. 물론 사립탐정도 아니다.
처자식이 있는 서른다섯 살 회사원이다. 운전면허는 있어도 총기 취급 자격이 있는 게 아니라서
권총도 갖고 있지 않다. 될 수 있으면 선량하게 살아가려는 아주 평범한 시민이다.
그래도 자전거를 타고 길을 달리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사회에서는 계속 선량하고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도 실은 대단히 위대한 일일지 모른다. (p.11)
그렇다보니 자연히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완벽히 부합하지는 않는 것 같다.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상이 있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싶은 두 자매가 있고, 평범한 소시민인 스기무라에게 아직은
어렵기만 한 회장님이 그저 ‘장인(丈人)’으로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한 사람의 죽음이 안타깝고, 그것으로 인해 변해진 나머지 일상들이 쓸쓸하게 다가온다.
언제나 미스터리와 사건은 사람이 있어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그리고 당연한 결론을 미야베 미유키는 가슴 따뜻하게 전달해 준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애정. 워낙 미스터리물을 좋아하다보니 주로 그런 장르를 찾아 읽는데 이렇게
주체하지 못할 만큼 빠지다 보면, 인간의 본성의 추악함을 마주하고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장르란 게 소재가 뻔하지 않은가. 9시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것들.
강도, 살인, 토막, 사체, 방화, 강간.. 즐겁자고 책을 읽는 건데, 회의를 느낄 때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미야베 미유키의 글들은 그런 것을 해소시켜 준다. 그래도 아직은, 살 만하구나.
살아있어 행복하구나. 라는 포근함을 심어주며 끝엔 빙그레 웃음을 짓게 해준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그녀를 택하고,
미스터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까지도 그녀의 작품을 권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오늘, 당신에게도 권한다. 그녀가 전해주는 행복을―.
불쑥, 내 마음속에 있는, 아직 지도에 그려져 있지 않은 미지의 땅으로부터 거기 사는 야만족이
우렁찬 고함을 지르듯 한 가지 생각이 밀려왔다.
언젠가는 장인의 생애를 적은 책을 정말로 내고 싶다. 내가 그걸 만들고 싶다.
장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 장인이 자신도 파악하지 못한 곳까지 구석구석 파헤쳐
장인의 인생 지도를 그리고 싶다. 나는 장인을 탐험하고 싶다.
그러니―.
오래오래 살아주세요. 홍차에 설탕은 두 스푼만 넣으시고. (p.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