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좋아했던 것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2
미야모토 테루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반 정도는 장난삼아 응모한 공단주택의 추첨에 76:1의 경쟁률을 뚫고 당첨된 요시는 응모규정의

‘동거자 2인 이상 있음’에 동그라미를 쳐놓고 고민한다.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워 ‘당나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친구 사다케에게 조언을 구하자 어머니를 허위로 전입시키면 된다는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래서 일단은 입주를 하게 되었는데, 이사하던 날 당나귀가 함께 살자는 제안을 한다.

그리고는 묘하게 들뜬 기분으로 둘이서 들른 바에서 우연히 아이코와 요코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닷새 후, 두 여인이 불쑥 나타났다. 가구니 침구니 이런저런 짐들을 가득 실은 트럭과 함께.

이렇게 네 명의 남녀.

독립을 꿈꾸는 조명 디자이너 요시, 환상의 나비를 쫓는 곤충 전문(?) 카메라맨 ‘당나귀’. 불안신경증을

앓고 있는 섬세한 아이코, 사랑할수록 다치기만 하는 미용사 요코의 기묘하고 어리둥절한 동거가 시작된다.


낭만이 느껴지는 제목과 더불어 감각적인 표지가 마음에 들어 구입한 책이었는데,

내용까지 더불어 ‘낭만’과 ‘로망’이라는 표현을 제외하고는 도무지 표현할 길이 없다.

누구나 한번쯤을 그려볼 법 하지 않은가. 물론 도덕성과 불순함의 여부에 대한 정의를 제외하고서.

나도 친구들과 함께 학창시절에 제법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었다.

그 당시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끼리 함께 살자는.

물론 어린 마음에도 ‘넷이나 여섯은 너무 작위적인, 쌍쌍의 동거 같은 냄새가 나니까 다섯이 살자.’는

그런 생각까지 했었다. 지금에야, 역시 현실로 옮기기엔 너무나 낭만적이었구나 싶지만. 


 “우리 네 사람은 남을 위해 고생을 사서 하는 걸 좋아하는 천성인 것 같아.”

 그 말이 나와 당나귀와 아이코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자신을 그렇게 인식한 적이 없으면서도

각자에게 마음에 닿는 뭔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곤란에 빠진 사람을 보면 모른 척하지 못해……. 보답은 바라지도 않고,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까,

그러다 보면 몸과 마음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말아…….”

 그런 다음 요코는 턱을 괴고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좋으니 돈이 모일 리가 없지.”

 “언젠가는 큰 선물을 받을 거야.”

 당나귀가 난롯불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구에게서?”

 요코가 물었다.

 “이 우주에게서.”

 그 대답은 아이코의 입에서 나왔다.

 “타고 가던 비행기 날개가 부러져도 살아남는다든지, 커다란 바위가 굴러와 덮쳐도

우리는 괜찮다든지…….” (p.132)


이 들은 우연한 만남으로 각자 상대에 대한 애정과 신뢰와 무한한 이해로 넘치는,

사실은 몹시 비현실적인 관계를 이어가지만 제목에서 살살 풍겨오는 애틋함에서 느낀 짐작이 맞아버려서

쓸쓸함마저 들게 했다. 주인공 요시의 회상으로 시작되는 첫머리에서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이었다.

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독자의 욕심이었을 뿐.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아닌, ‘좋아했던’에서 느껴지는 향수와 그리움.

역시, 중반부터 삐걱대며 위태로웠던 당나귀와 요코 커플이 무사히 미래에 안착하는 것과는 달리,

요시와 아이코는 서로에게 이별을 고하고 말았다.

완벽한 해피엔딩은 없다는 현실에 기초한 것인지는 몰라도

비현실적인 전개에 현실적인 결말을 동시에 본 것 같은 아주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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