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Lemon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뭐든 읽어대길 좋아하는 나는 (하다못해 광고 전단지도 꼼꼼히 읽는-) 책 앞, 뒤를 샅샅이 훑는다.

그러다 실수로!! 담당 에디터의 한마디를 읽어버렸다. 복제인간. 이런이런.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읽었더라면 참 좋았을 것을..

특히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란 걸 감안한다면. 거의 눈을 감고? 읽어야 하는 거였는데 말이다.

몇 작품 읽지 않았지만, 옮긴이의 후기에도 나오듯이 그는 자신감이 넘친다.

이미 표지에서부터 스포일러를 감행하는 그의 저돌적인 제목들을 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는데,

"레몬"의 원제는 분신(分身)이었다고 하니, 더 이상의 설명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어찌됐든, 상큼한 노란 표지에 똑같은 여성이 등장하듯이 이야기는 두 여성을 번갈아 등장시킨다.

그녀들은 각각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동시에 둘 다 평범하지 않은 유년기를 보내며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출생을 비밀을 감지하게 되고 그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베일에 쌓여 있던 각자의 출생의 비밀이 얼마나 중대하며 끔찍한 사실인가를 확인하게 된다.


화두 자체는 정말 소름끼치도록 놀랍다. 더욱이 1994년 작이라고 할 땐.

얼마 전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가 논란이 되기 전까진 그저 SF소설에나 존재할 법한 이야기였건만.


아쉬운 점 또한 많이 보인다.

전에 읽은 작가의 작품들에서도 느꼈지만, 그의 소설들을 미스터리라고 분류할 때 느껴지는 1%의

원인모를 찝찝함은 바로 독자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 작가의 이기심? 때문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추리'라는 요소를 작가는 일찌감치 작가의 성역으로 분류 시켜버린 것처럼,

사건은 항상 전혀 어떠한 의구심도 없이 진행되는데, 반전이랄 것도 없이 한글을 깨우친 독자라면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모든 사건의 짜임을 순식간에 깨달을 수 있다는 점이 최대의 오점인 것이다.

물론 미스터리 소설이란 것이 꼭 원인을 밝혀내는 데에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상상을 즐기는 것 또한 독자의 가장 큰 즐거움임을 감안할 때, 역시 아쉽긴 하다.


또 하나.

'클론'이라는 파격적인 소재에 비해 (혹은, 그 때문인지) 인간적인 부분이 너무나 작아져 있다.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실험과 연구라는 목적으로 자신들이 누군가로 인해 만들어진

실험결과 임을 알게 된 두 여인에 대해 과연 독자들은 얼마나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을까.

두 여인의 이야기는 너무나 담담하게 등장하는데, 독자들은 '사건'을 인식할 수는 있지만

그 여인들의 삶과 인간적인 감정에 동화되기엔 무리가 있다.

하다못해 각각 겪게 되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부분도 '모정'이란 면을 부각시키지 못한 탓에

미스터리함만 드러나고 있다. 가슴이 아파야 하는 순간임에 틀림없는데 이런 감정적 결여는

어쩌면 본인 탓 일수도 있겠지만, 작가의 사실적 화법이 불러일으켰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런저런 아쉬움을 뒤로 하고도,

확실히 시대에 전혀 뒤떨어짐이 없는 그의 발상만큼은 역시 대단하다고 평가할 만 하다.

다만 딱! 내 입맛이라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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