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에 섰을 때, 난 무엇을 할 것인가.

종말의 바보
이사카 고타로 지음, 윤덕주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8월

 

요즘 좀 새로운 작가를 많이 만나기도 했고, 다른 작가들의 신작에 눈을 돌리느라

참 오랜만에 이사카 고타로의 책을 집어들게 되었는데 쌕쌕하고 화려한 노란색이

절로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비록, 세상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라 해도.

 

소행성과 지구의 충돌을 3년 앞두고 있는 종말의 시점에서 센다이의 힐즈타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미국 영웅주의의 산물이라 볼 수 있는 영화 "아마겟돈"과 비슷한 설정이다.

차이점이라면 그것을 벗어나 보려는 노력이 아닌,

남은 삶을 어떻게 영유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 정도.

 

5년 전, 소행성과 지구가 충돌하고 그것이 종말이라는 보도가 나온 뒤, 세상은 끔찍해졌다.

어디론가 대피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고, 너도 나도 비상식량을 준비하기 위해

식료품 점은 전쟁터가 되었다. 이미, 이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이유없는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고

강도들이 들끓어 치안은 이미 통제불능의 상황에 이르렀다. 어차피 죽을거라면 스스로의 의지로

죽고 말겠다는 이상한 주장을 펼치며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속 등장했고 어디로 가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황과 혼돈을 지나고 나서 현재는 소강상태.

체념하기도 했고, 현실감이 없어져서 혹시 어쩌면 소행성과의 충돌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른다는

바람을 갖기도 하고. 어찌됐든 잠시나마 평화로운 시간이 찾아 온 것이다.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이사카 고타로"다운 방식으로 나열되어있다.

조금씩 교차되기도 하고, 스쳐가기도 하는 그런 이웃들의 이야기.

세상의 끝이라고 해도 별반 다를 건 없다. 여전히 사람은 살기위해 먹고. 잠을 자고,

그 와중에도 연애하는 사람들이 있고, 새 생명은 태어나고. 살기위해 처절하게 싸우고 있다.

죽을 걸 알면서도.

 

참 이상하지. 사람은 언젠가 모두 죽는다는 진리는 누구나가 인정하고 납득하면서,

시한부 선고를 받으면 절망 하게된다. 언젠가 죽을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게 당장은 아니라는 모순.

생각 해봤다. 정말 지구의 종말이 3년 밖에 남지 않았다면? 과연 난 무얼 하고 있을까.

아둥바둥 살아가려는 모든 노력이 결국 헛되다는 걸 알아버린 바로 그 순간.

그저 행복을 찾지는 않을런지. 더 웃으려 노력하고 남은 시간까지 즐겁기 위해 애쓰지 않을까.

그런 일상의 마지막을 바라보게 만든 이야기였다. 가슴도 따뜻해지고..

 

"오늘이란 날은 남은 날들 중 첫 번째 날이다. - 찰스 디더릭"

책의 서문에 써있는 글 귀다. 참으로 와닿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