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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박영난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를 만난 것은 지난 2006년의 가장 큰 수확이 분명하다. 그녀의 작품세계를 접하면 접할 수록 항상 기분좋은 놀라움을 선사해주고 있는데 이번 이야기의 화두는 "신용카드"이다.
스무살에 어설픈 사회생활을 시작해, 대학생활을 하는 중에도 크고 작은 경제활동을 계속해온 나 역시 '플라스틱 카드' 따위는 지금도 신용하고 있지않다. 물론 편리하다는 점에 있어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음이 분명하지만, 단순히 조금 더 행복해지고 싶다는 소망과 현실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신용카드나 대출같은 문제로 인해 빚을 지게 된 사람 모두를 한심하다고 생각하기엔 이미 현대사회의 병폐를 나는 너무도 많이 듣고 봐왔다. 그러니, 분명. 그 누구에게라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생전에 악행을 한 망자를 태워 지옥으로 옮기는 불수레, 화차가 지금 당장이라도 내 옆을 지나가지 않으리란 보장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야기는 한동안 연락도 없이 지내왔던 죽은 아내의 조카, 그러니 처조카인 가즈야의 조금 느닷없는 방문으로 시작된다. 갑자기 모습을 감추어버린 약혼녀를 찾아달라는 것 인데, 부탁을 받은 혼마(부상으로 인해 잠시 휴직 중인 경시청 강력계 형사)는 처음엔 단순한 변심이라던가 실종으로 생각했으나 실종 된 세키네 쇼코의 뒤를 쫓다보니 제법 심각한, 그리고 전혀 뜻밖의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소비자신용이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기둥의 하나인 건 분명하지만 매년 몇 만명이나 되는 사람 기둥을 세우는 바보 같은 짓은 이제 좀 그만뒀으면 하는 거예요. 온 가족이 자살하고 야반도주를 하고 범죄를 저질러 다른 사람까지 말려들게 하는 비극을 일으킬 정도로 궁지에 몰린 다중채무자들이라는 사람 기둥을요. 그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라 허공을 떠도는 유령입니다."
작중에 세키네 쇼코의 행적을 따라잡기 위해 먼저 마주치게 되는 미조구치 변호사의 말이다. 그가 강연을 할 때마다 부르짖는 '야반도주를 하기 전에, 죽기 전에, 사람을 죽이기 전에, 파산 수속이 있다는 걸 기억하라'는 말은 어쩌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었는지도 모르겠고 굉장히 슬픈 장면이었다. 혼마의 생각처럼, 신용카드를 만들라고 권장하고, 백화점이든 어디든 쇼핑을 가면 사라고 권하는 손은 많지만, 정작 너무 많은 구매를 하셨으니 다음에 구매하라는 조언은 그 누구도 하지 않는다. 은행에 업무만 보러가도 창구에 앉은 직원들은 손쉽게 카드를 만들어 드리겠다며 한껏 친절한 미소를 머금고 신청서를 내밀지만 막상 과도한 소비로 인해 채무관계가 성립되고 나면 그 일은 본인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 되고마는 사회적 구조를 가진 것이다. 단지 행복하고 싶었을 뿐이라던 세키네 쇼코의 중얼거림이 꽤 오랫동안 머리에 떠돌 것만 같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덧붙이자면. 아마 2000년도에 <인생을 훔친 여자>라는 이름으로 먼저 출간이 되었다가 개정판이 나온 모양인데, 제목자체가 스포일러를 담고 있다고 생각이 드는 만큼, 제목을 바꾼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