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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 여자들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유리 옮김 / 북하우스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형체도 없이 공중을 부유하는 연기처럼, 둥둥 떠다니기만 하는 무형의 이야기.
약간의 공상벽을 가진 '그'는 시간과 부를 공상속에나 존재할 것 처럼 소유하고 있지만 돌아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자연스레 수많은 책을 섭렵해왔다.
그러나 서른을 넘어서면서부터 갑자기 시력이 급속도로 저하되기 시작해 글자가 나열 된 책을 읽는 것도
시큰둥해졌고, 한편으론 책 속에 담긴 가공의 이야기들이 바보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이것 참 재밌는 아이러니다. 기타무라 가오루 본인은 바보스러운 가공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그는 작가인 화자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이야기꾼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청자로의 '그' 일수도 있겠다.) 결국 그는 작가가 거짓으로 꾸며 낸 이야기를 읽는 것 보다 보통 사람들의 실제 체험담을
듣는편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바닷가 마을에 작은 집을 빌렸다.
전국의 신문과 잡지에 광고를 내서 사람들을 모집하고 파도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창가에
긴 의자를 놓고 누워서 찾아오는 손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마치 젊은 여자를 이야기꾼으로 두었다던 아라비아 왕들 처럼.
공상 속에서 살고있는 '그' 처럼 소설은 내내 현실과 철저히 분리 된 채 진행된다.
다양하고 신기한 이야기 들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어도 뭔가 허전하고 허무하기까지 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음에서 오는 이질감.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공상과 판타지도 현실에 어느정도는 발을 붙이고 있어야만 지금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공감이란 걸 느낄 수 있는 건 아닐런지.
시종일관 '왜? 어째서?' 라는 물음표를 늘어놓게 만드는 작가의 이야기는 결코 친절하지 않다.
물론, 독자가 생각하는 몫을 남겨두는 행위도 좋겠지만 이야기꾼 여자들에게 이야기를 듣는
'그' 처럼 우리도 작가에게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느낄 권리 쯤은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기묘한 열 일곱가지의 이야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 기담집'을 연상케 했다.
과연 내가 제대로 짚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 더 말하자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 기담집'이
오히려 더 설득력 있는 공상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기묘한 이야기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마치 사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신비한 느낌의
삽화였다. 몽상적이기도 하고, 어떤 땐 낭만적이기 까지 한 그 삽화들마저 없었다면 무미건조한 이야기가 되었거나, 더욱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