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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 나와 나 사이에 숨겨진 열두 가지 이야기
요시다 슈이치 외 지음, 유은경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거침없이 이 책을 골라들고는 감정의 흐름이 뚝뚝 끊어지고마는 단편소설을 선호하지 않던 내가,
특정한 작가로 인해 참 많이 변했다는 사실이 새삼 반갑게 느껴졌다.
책에 대한 편식만큼은 고치려는 노력으로는 쉽사리 해결 되지 않지만, 이렇게 저절로 바뀌어진
취향으로 만족스러운 독서를 마치고나면 정말 이런 영향력까지 행사해 준 일본의 몇몇 작가들에게
표현할 길 없는 고마움이 더 커지곤 한다.
'너와 나 사이에 숨겨진 열 두 가지 이야기'라는 소갯말 처럼
하나의 스토리를 각기 다른 두 사람의 주인공이 들려주는 형태로 총 열 두 가지의 이야기 이다.
어쩌면 스물네개 랄 수도 있는.
다양한 작가들의 이야기인 만큼 그 다양한 문체와 소재에 한 번 즐거웠고,
더불어 그동안 접해보지 않았던 작가들을 책 한권으로 만난 것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모리 에토의 "그녀의 남자의 특별한 날 - 그의 여자의 특별한 날"은
혼자서 들른 바에서 처음 만난 남녀의 이야기로 각각의 소망을 들어주자는 조금은 엉뚱한
남자의 제안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오가와 요코의 "전화 아티스트의 조카 - 전화 아티스트의 연인"은
통화를 하며 기록한 낙서나 다양한 형태로 꼬여진 전화코드를 전시하는 전화 아티스트인
고모의 죽음으로 유품을 정리하던 조카가 공개되지 않은 채 보관되어 있던 서른 두개의 작품을
발견하는데, 남겨진 메모로 통화를 시도하여 그 숨겨진 비밀이 드러난다.
기타무라 가오루의 "유리코 히메 - 괴팍한 입담의 여자"
'나'는 한 학년 위의 선배를 좋아한다. 단아한 모습에 단정한 말투를 쓰는 그녀.
그녀의 완벽한 모습에 1mm의 작은 틈새라도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나'와는 달리,
그녀의 남동생이며 '나'와 같은 반 동급생인 친구의 생각은 정반대.
(화자가 '나'로만 등장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_ -
역시 12편에 등장하는 적어도 스물 네명의 이름을 기억하는 건 무리인가 보다. 이해하시길- )
가장 현실적이며 또한 가장 유쾌한 이야기였다.
하나의 이야기를 각기 다른 두 사람의 화자를 통해 풀어나가는 형식은
현실속에서 숨겨진채로 흘러버릴 이야기를 붙잡을 수도 있지않을까 싶어 항상 흥미를 유발한다.
내가 지금 처해있는 이 현실을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
그런 의미에서 '비밀'은 숨겨져 있는 것만을 가리키지는 않는 것 같다.
감추어져 있다기 보단 아느냐 모르느냐의 단순한 차이.
짤막하게 끊어지는 이야기 속에서도 숨겨진 소소함을 발견하고 픈 마음에 아쉽기는 했어도,
매우 즐거웠다는 점에서 이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