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그날 - 6.10민주항쟁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유승하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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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체제에서 국가가 자행한 폭력은 시민들의 자유 뿐만 아니라 소중한 생명까지 박탈했다. 희생된 시민들의 죽음은 거짓과 변명으로 덧씌워져 국가의 폭력에 의해 희생된 것이 아닌 어처구니 없는 사건으로 조작되었다. 6·10 민주항쟁의 촉매제가 되었던 故 박종철, 故 이한열의 죽음을 만화로 만든 『1987 그날』에서는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몇몇 인물들의 이야기와 함께 독재 체제의 폭력성을 드러낸다.



몇몇 정치 집단과 반공교육을 받은 5060을 제외하고는 민주화 운동 = 빨갱이로 보는 인식은 이제 거의 없다. 그렇지만 희생자에 대한 존중과 예우는 아직도 부족하다. 그들의 희생을 기리면서 앞으로도 국가의 폭력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계속 고민하고 생각해야 한다. 이 책 『1987 그날』을 읽으면서 6·10 민주항쟁을 다룬 다른 책이나 영화보다 흡입력은 부족하지만 아픈 역사를 살아간 개인들에 대해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학생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진주'와 사회에서 주입된 인식으로 학생 운동에 참여하는 대학생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나리'는 민주화 운동을 다룬 매체에서 한 번쯤 보았을 법한 흔한 캐릭터였다. 그들의 이야기는 더는 새롭거나 특별한 것이 없었고 인물의 생각이나 대화도 작위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아 흥미롭지 않았다. 그렇지만 언니 '혜진'이 자살하고 고통 받는 어머니로 힘들어하는 '혜승'은 인상적이었다.



'혜진'은 학생 운동에 참여하려고 했지만 가족들의 반대로 참여할 수 없었다. 시대로 인한 우울감을 극복하지 못한 '혜진'을 떠나보내고 학생 운동에 적극 가담하는 친구 '진주' 곁에서 언니가 느꼈을 감정을 되짚어보며 민주화 운동에 시민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녀의 변화와 주변 인물의 고통을 느끼는 과정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당시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어려움을 느꼈을지 깊이 공감해볼 수 있었다. 앞으로도 시민들의 자유가 탄압받는 일이 없도록 어려운 현실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민주화 운동을 이끌기 위해 노력했던 시민들을 기억하며 살아가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본 리뷰는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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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1~4 세트 - 전4권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레프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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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상류층 귀족의 야회에 참여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야회 공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따라 서로의 관계가 암시되기도 하고, 사교적 기술을 알고 얼마나 잘 처신하는가에 따라 각 인물들의 사회적 배경과 성격이 드러나기도 한다. 안나 파블로브나의 야회에서 우아한 옐렌과 피예르, 안드레이 공작은 파도가 치며 수면 위로 밀려오듯이 거대한 서사적 흐름 속에서 각각의 인물상을 그려내고 있었다. 

 톨스토이의 위대한 점은 웅장하고 거대한 이야기 속에서 각 인물들이 힘을 잃지 않고 끝까지 개인들의 이야기의 주인으로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는 작가 후기에서 '역사가에게는 어떤 인물이 어떤 목적을 위해 얼마나 기여했는가라는 의미에서 영웅이 존재하지만, 예술가에게는 그 인물이 생활의 모든 측면과 관련된다는 의미에서, 영웅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해서도 안 되며 오직 인간만이 존재해야 한다.'(『전쟁과 평화 4권』, 539p)라고 밝혔다. 역사적 배경을 다루되 소설적 구조를 형성하기 위해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뒤섞어 마치 잘 짜여진 또 하나의 세계를 축조해낸 그는 예술가로서의 목표를 한 번 더 되새기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톨스토이가 그 목표를 이루었음에 동의하고 이 작품을 감동적으로 받아들였듯이 나또한 이 소설에서 다루어지는 역사적 사실과 개별적인 인물상 모두가 너무나 인상적으로 다가와서 무척 감명깊게 읽어낼 수 있었다.

 사교계를 드나드는 부인과 그 밖의 자신을 옭아매는 여러 일상적이고 자질구레한 것들에 대해 안드레이 공작은 환멸을 느낀다. 그래서 전쟁으로 떠나 오직 명예만을 추구하며 자신이 또 한 명의 나폴레옹이 되기를 갈망했지만, 전쟁을 겪어내는 과정에서 전쟁의 폭력성과 무의미성을 확인하고 개인적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안드레이 공작이 생각하는 궤적을 따라가면서 남들보다 뽐낼 수 있는 무엇이 되고 싶은 그 영웅적 심리를 자아도취적인 유아적 사고로만 여겨 비난할 수는 없었다. 안드레이 공작이 속한 계층적 배경에 의해 그는 마땅히 명예를 무척이나 중시하는 인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누구나 한 번쯤 평범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특별한 나를 꿈꾸게 된다는 것에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업무적으로 뛰어나거나 또는 좋은 학벌 등으로 타인들 앞에 서는 것은 화려하게 차려입고 꾸미는 것 이상의 만족감을 부여해준다. 일상적인 평범함 속에서 잠재되어 있었던 나의 탁월한 비범함이 순간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짜릿한 즐거움을 주고 그 순간을 공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몰입과 집중을 이끌어낸다. 나폴레옹이 첫 승전한 장소처럼 안드레이 공작도 자신이 참전한 전쟁에서 영웅이 되기를 바랐지만 일순 적의 공격으로 신체적 한계에 매몰된 채 쓰러진다.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과 움직일 수 없는 신체에 갇힌 그는 죽음의 순간을 생각한다. 그때 안드레이 공작에게 비쳐진 하늘의 모습을 읽으면서 잔뜩 부풀었던 명예욕, 성취욕이 사그라들며 무의미한 것에 소중한 생애를 모두 바치는 듯한 허무함과 안타까움을 함께 느꼈다. 그는 결국 살았지만 전쟁에 참여하기 이전과는 다른 삶의 방향을 따라가게 된다.

 안드레이 공작이 전쟁에 참전하고, 전쟁의 아픔을 겪어내면서 깨닫고 새롭게 추구하게 된 일상적 가치들은 안드레이 공작의 개별적인 성격 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까? 아니면 전쟁을 치러내는 나폴레옹과 알렉산드르 대왕 같은 지도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까? 만약 나폴레옹과 알렉산드르 대왕의 결정도 거대한 사회적 흐름의 일부로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 지도자들이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도록 형성된 것이라면? 그 모두를 가능하게 한 거대한 사회적 흐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개인, 그리고 더 큰 개인, 그리고 그 개인에 영향을 주는 사회적 흐름이나 권력과의 관계에 대한 물음을 작가는 또 묻고 되새기며 자신의 작품 속에서 답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뒤늦게 안드레이 공작은 가정적이고 일상적인 즐거움을 찾았지만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에서 몸집이 작은 공작부인이 죽는다. 그녀를 죽게 만들었던 '임신'과 '출산', 그 죄책감으로 안드레이 공작은 일상을 흘려보내며 여동생 마리야와 아버지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작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중 그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 나타샤 로스토프, 생기발랄하고 아름다운 그녀에게서 진실한 사랑을 느낀 안드레이 공작은 나타샤와의 약혼을 약속하지만 1년의 기약을 두며 언제든지 나타샤가 파혼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다.

 나타샤와 안드레이 공작의 관계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던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묘사하며 그 둘 사이 관계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나타샤 본인에게도 생생한 젊음의 시기를 그저 흘려보내는 것 같아 초조하고 안달한다. 특히 나타샤의 마음은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되어서 마치 오늘날 군대 간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여대생의 내면을 그대로 훑어내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1년의 시기를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보내야 하다니, 나타샤는 그(안드레이 공작)를 사랑함으로써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신을 느끼고 표현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좌절한다.

 안드레이 공작은 물리적으로도 먼 거리에 있었고 물리적인 거리는 마치 심리적인 거리처럼 멀어진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나타샤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말라간다. 그러던 중 그녀에게 나타난 잘생기고 치명적인 아나톨 쿠라긴이 접근한다. 아나톨에게 나타샤는 속절없이 매혹된다. 막장 드라마처럼, 끊어낼 수 없는 중독처럼 주변인들의 갈등과 치열한 나타샤의 내적 갈등은 너무나 잘 짜여 있고 읽는 이를 빠져들게 했다. 잠시 책을 덮고 이 철없는 아가씨에 대한 애도하는 마음을 품어보기도 하며 나는 계속해서 다음 장으로 페이지를 넘길 수 밖에 없었다.

 4권에 걸쳐 다양한 인물들의 삶의 총체와 그들의 삶 속에서 묻고 있는 질문들, 그리고 그 질문에 얽혀 있는 사회적인 배경 등의 모든 것들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그 밖에 피예르의 삶, 마리야, 니콜라이 로스토프와 소냐, 바실리 공작과 베주호프 백작, 보리스와 드루베츠카야 부인 등 여러 가문의 이야기가 드러나고 펼쳐졌다. 그들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전쟁 중이던 프랑스의 사령관 나폴레옹, 프랑스 군인들, 그리고 전쟁을 치르는 평민들의 생각과 입장까지 반영되었다. 만만치 않은 분량이었지만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물들이 그 이야기 속에서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와 살아가는 시대가 다르고 공간적인 위치마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유사한 상황 속에서 비슷하게 느끼는 감정들이 보편적인 인류 공통의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에필로그 1부에서는 지난한 갈등 속에서 그들이 내린 결정 이후의 소소하고 일상적인 삶을 보여주었다. 강렬하고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 했던 것들이 잔잔하게 가라앉아 분명한 삶의 형태로 안정적으로 자리잡혀 있었다. 드라마가 끝나고 10년 후의 일상을 보는 것처럼 인물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며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는데 다시 에필로그 2부가 되니 이 이야기를 통해 톨스토이가 실험하고자 했던 명제에 대해 사고할 수 있도록 이끄는 물음들이 이어졌다. 다른 소설들과는 다른 이 작품의 차별적인 완전함과 톨스토이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톨스토이가 묻고자 했던 물음에 대한 나만의 결론은 아직 형성되지 못했음을 느꼈다. 이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읽고 각각의 인물들의 생각을 따라가며 행간 속에서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찾아보아야겠고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다른 문학 작품을 읽어보면서 다른 작가들은 톨스토이의 물음에 대해 어떤 답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확인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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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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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어타운은 시골이다. 베어타운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묘사는 물고기를 잡아올릴 수 있는 공간 옆에서 초밥 정도는 사먹고 싶은데 그것마저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도심에 갖추어진 편리한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상점들과 다양한 서비스들이 모두 제공되지 않는 공간에서 미라가 살아가는 이유는 사랑하는 남편 페테르와 함께하기 위해서다. 이 한가롭고 고즈넉한 베어타운의 고요함이 흐트러지는 순간은 오직 하키 경기가 펼쳐지는 빙판 위에서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하키는 영혼의 활력소이자 종교이며 계급이다. 하키를 잘하는 선수는 사람들의 인정과 격려를 받지만 가난하거나 하키 실력이 뛰어나지 못한 선수는 소외된다. 마치 약육강식의 이념이 구체화 된 야생처럼 아무도 그 만연한 폭력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강자이기 때문에 강자의 권력을 인정받고, 약자이기 때문에 당하는 것을 이해하면서 언젠가 강자가 되는 순간을 꿈꾼다. 어린 아맛은 마야를 좋아하면서도 뛰어난 하키 선수인 케빈에게 끌리는 마야를 보고, 그 어떤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한 채 경기에서의 활약을 다짐한다.

 

 이처럼 하키의 제국에서 힘의 권력 관계는 노골적으로 드러나며 발생하는 폭력들은 사람들에게 의식되지 않는 채로, 혹은 의식하지 않을 것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각 등장인물들은 피해자이거나 가해자이며 혹은 그 둘 다였다. 각 등장인물들이 힘의 권력관계에 긁혀 벌어진 영혼의 상처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내적으로 치밀하게 묘사한 문장들을 읽고 있으면 쓸쓸한 외로움이 내려앉았다.

 

 자식의 뺨에 묻은 눈물을 닦아주며 "그러게 사는 게 어렵다잖니"라고 속삭였던 어머니. 아이를 낳으면 너무 작은 담요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누구 하나 빠뜨리지 않고 덮어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추워서 바들바들 떠는 아이가 생긴다. (p. 155)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위태로움과 불완전함 속에서 무수히 많은 감정들이 솟아났다. 하키와 맞물려 벌어지는 힘과 감정의 역학은 뭉클하고 애잔했다. 단단한 자아로 만들어지기 위해 성장통은 지독하고 아팠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 겪어내는 과정으로서 자신의 아픔과 마주하였을 때 비로소 깨닫는 사실들이 있다. 함께라는 공동체로 구성되기 위해 반드시 지켜내야 할 가치와 버려야 할 폐단을 판단해가며 서로를 만들어가는 마음 따뜻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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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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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콜럼바인 비극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가해자 딜런의 어머니였던 수 클레볼드의 인터뷰 자료에서였다. 나는 당시 앤드루 솔로몬의『부모와 다른 아이들』을 읽고 있었는데, 그 책 속에 수 클레볼드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었다. 『부모와 다른 아이들』에서는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개인이 해결하기에 어려운 부분들을 다루고 있었는데 딜런과 수 클레볼드는 '범죄'편에서 볼 수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당시 범죄자의 아들을 둔다는 것은 대체 얼마 만큼의 비극일까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창비 출판사에서 수 클레볼드의 책을 번역해서 출간한 것을 보았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참담한 제목과는 별개로 담담한 어조로 딜런과의 관계를 서술하고 있었다. 콜럼바인 비극이 발생할 당시 사람들의 충격과 공포, 그리고 사건에 대한 분노의 화살을 가해자의 유족에게로 돌렸을 때 상황을 떠올리며 어떻게 행동했었는지, 그리고 그때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적혀 있었다. 1인칭의 시점에서 읽어나간 그녀의 이야기는 마음 깊이 공감하기에 두려울 정도로 어려운 마음이 들게 했다.

 

 한편으로 피해자들의 상황은 어떤지, 왜 그렇게 큰 사건으로 번질 때까지 아무도 막지 못했는가에 대해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조금 검색해보았으나 사건을 접하게 된 사람들의 충격만 드러나 있을 뿐 전체적인 맥락을 들여보기엔 부족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내게 그 모든 해답이 되어줄 책이 나타났다. 『콜럼바인』, 저널리스트가 이 사건을 조사하고 취재하면서 알게 된 모든 사실들을 마치 논픽션 소설처럼 읽기 쉽게 구성한 책이었다. 


 『콜럼바인』을 읽고 나서 이 사건이 충격적인 이유는 고등학생 두 명이 자신의 학교에서 친구들과 선후배들을 학살한 것도 있겠지만, 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시스템적 붕괴가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아픔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중한 아이들이 부상 또는 사망한 상태로 학교에 머물러 있는데 오랜 시간 방치되어야 했으며 그때 그 유족들은 얼마나 참담하고 슬프며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을 것인지. 비록 학교 건물 내 테러 발생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기 어려웠고 2차 폭발 위험성을 고려한 선택이었지만 피해자들의 아픔에 충분히 귀 기울이지 못한 처사였다.


 나는 불가항력적으로 콜럼바인 사건으로부터 우리나라의 세월호 참사를 연상하게 되었다. 이 둘은 참사가 발생하였을 때 언론, 국가가 해결과정에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는 것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언론에서 수많은 오보로 희생자들과 유족, 사회에 혼란을 준 점과 콜럼바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언론에서 가해자에 대한 잘못된 정보 전달, 그리고 사건을 다루는 잘못된 방식으로 관련 지역 사회에 혼란과 갈등을 불러일으켰던 모습은 놀랄만큼 닮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콜럼바인 사건은 세월호 사건에 비한다면 그보다는 훨씬 더 국가가 나름대로 잘 대처했고 그 진상규명도 충분히 이루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물론 아픔과 상처, 혼란으로 얼룩진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무척이나 고될 것이다. 그러나 보상 과정에서 충분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점과 유족들의 요구를 합리적으로 받아들여가며 모두에게 도움이 되도록 이끌지 못한 점은 분명한 한계였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보다는 더 많은 부분을 희생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배려하는 모습은 십몇년도 전의 일임에도 훨씬 더 성숙한 사회를 바라보게 했다. 국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 비극에 함께 공감하며 추모의 시간을 함께 했다. 비록 살인자들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으로 추모물을 망가뜨리는 일 등에서 몇몇 갈등들이 잔류하였으나 그로부터 파생된 움직임으로 이 사건을 통해 알아야 할 것들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해결해온 과정들은 인상적으로 남았다.


 그밖에도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었다. 총기사건으로 희생된 故 캐시 버넬의 이야기가 종교적 움직임으로 번져나가며 부풀려지고 과장되는 과정, 총명했던 패트릭 아일랜드가 뇌에 입은 상처로 기존에 누려왔던 삶들을 포기해가고 극복해가는 모습 등에서 삶의 여러 단면들을 보았다. 그 생생한 감정들이 말과 행동으로 남아 있어 마치 내가 그 당시 사건들을 함께 겪는 동시대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들의 고통과 용기를 보면서 왜 가해자였던 에릭과 딜런은 이런 일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을까?하는 물음은 더욱 더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들의 기록물을 검토하고 조사한 사람들은 에릭을 '사이코패스'로 규정한다. 에릭은 자신의 우월감을 인정받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고 다른 이들의 고통이나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오로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다른 사람의 존엄한 생명을 파괴했다. 반면 딜런은 우울증으로 자기파괴 성향이 있었고 자살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에릭과 함께 범행을 저지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같은 행동이었지만 이 둘을 막기 위해 사회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는 에릭과 딜런 서로 다른 접근으로 바라보아야 했다.


 에릭은 평소 거짓말을 자주했다. 에릭은 자신을 대하는 어른들에게 거짓으로 속여 넘기는 일은 무척 쉬운 일이었다고 말한다. 에릭의 기록을 통해 정신학적으로 분석한 연구자도 에릭의 말에 속아넘어가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에릭과 같이 일반인들과 다른 사고 방식을 지닌 사람들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도록 사이코패스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하고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여러 해결방법을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사고 방식이 아예 다르고 교육학적으로 접근이 어렵다면 그 과정은 무척이나 험난할 것이지만 방관한다면 참담한 결과를 불러일으킬 것이기에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에 동감했다.

 

 부모가 자식의 일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리고 자식의 잘못된 행동은 부모의 책임이라고 연관짓는 행동과 사고방식도 위험하다. 그렇지만 자녀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부모로서 그들이 자신의 자녀에 대해 무엇인가를 놓치게 된다면 대신 그것을 미리 파악하고 해결하는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 또한 없다.(딜런의 끔찍한 소설 창작물을 읽은 교사 켈리가 딜런에 대해 알린 사실로 경각심을 가진 지역사회 구성원이 없었듯이.) 그렇다면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어떻게 판단하고 지켜가야 하는 것일까. 정말 여러 가지 가치 판단으로 다양한 문제들을 끊임없이 환기하며 삶에 있어서 중요한 이야기들을 생각해보게 해주었고, 그에 관해 앞으로 더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 분명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사실들 가운데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타인에 대한 공감 결여 또는 다른 이와 함께 느끼는 것을 완전히 포기해버렸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큰 비극을 불러일으키게 되는가였다. 자신의 사소한 목적으로 합리화하며 모든 행동에 마땅히 따르는 책임을 따르지 않았을 때 작은 두 개인만으로도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기 충분한 조건이 형성된다. 비극의 총체적인 단면들을 현미경처럼 깊고 세세하게 드러내면서 앞으로 사회에 속한 모든 개인들에게 필요한 가장 두 가지인 공감과 책임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기게 해준 책이었다.      




미스티는 감동했다. 그녀는 너그럽게도 이를 용기 있는 행동으로 여겼다. 그래서 자신이 초고를 쓰고 있는 회고록에 편지 전문을 싣기로 했다. 톰과 수도 같은 비극에서 아들을 잃었다. 적어도 캐시는 숭고하게 죽음을 맞았다. 그런데 클레볼드 가족은 어디서 위안을 얻지? 미스티는 또한 회고록에서 살인자들의 부모에 대한 비난을 다루었다. 그들이 미리 알았어야 할까? 그들이 아들을 방치했던 것일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지?"
-본책, p.426

패트릭 아일랜드가 절뚝거리며 단상에 올라가 졸업생 대표로 고별사를 낭독했다.
그는 힘겨운 한 해였다고 말한다. "총기사고로 그동안 고등학교에 얼마나 지독한 증오와 분노가 깔려 있었는지 전국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세상이 본질적으로 선하다고 확신했다. 패트릭은 도서관 바닥에 쓰러져 있으면서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한 해 동안 찬찬히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희망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그것은 믿음이었다. "제가 창문으로 뛰어내렸을 때 누군가가 절 잡아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사랑스러운 세상이 항상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본책, p.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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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9 0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읽다 (2015년판) -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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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읽는 것의 즐거움, 소설의 구조와 유익함을 편안하고 이해하기 쉬운 작가의 말로 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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