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공부가 사교육을 이긴다
김민숙 지음 / 예담Friend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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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낳기가 망설여지는 게 육아의 고단함이 두려워서는 아니다. 아이 한 명을 낳아 성인이 되기까지 키우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1인당 평균 2억 6천이라던가? 너무나 큰 액수여서 상상조차 되지 않는 억! 소리 나는 금액에 벌써부터 심장이 후덜덜 소리를 낸다. 그런데 어쩌면 그 억 소리 나는 금액은 양육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 비용만 계산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함과 동시에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교육'이라는 비용을 계산하면 양육비는 그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다.

 

나는 어릴 때 분명 학원에도 다니지 않았고 하루종일 사교육에 시달린 적도 없다. 물론 그래서 내가 이 모양일 수도 있지만;; 당시 반에서 일등, 전교에서 일등 한다는 아이들도 지금처럼 극심하게 사교육을 받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대부분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사교육 없이는 절대 좋은 성적을 받을 수도, 좋은 대학에 갈 수도 없다고들 말한다. 출산율도 낮아지고 학생 수도 줄었지만 교육의 혜택이 개인의 인생을 크게 좌우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깨달은 엄마들이 사교육의 힘을 빌어서라도 자녀를 좀 더 우수한 인재로 키우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수능만 끝나면 우수한 성적을 받은 학생들이 "교과서와 수업에만 충실했어요. 학원은 다니지 않았어요."라는 말이 분명히 뻥이라고 생각했다. 저렇게들 치열하게 경쟁하고 학원과 과외로 무장한 아이들을 교과서와 학교 수업만으로 물리쳤다고? 그저 준비된 멘트라고만 생각하고 흘려버렸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한글도 제대로 몰랐던 아이가 지금 전교 1등을 한다고? 정말?

 

갑작스런 사업 부도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아들의 공부를 제대로 봐줄 길이 없었던 엄마는 초등학교 5학년이 다 되도록 아이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공부를 하나하나 챙기기에는 사는 게 너무 고되고 바빴다.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한데, 사교육은 꿈도 꿔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마냥 아이를 바보로 만들수는 없다는 위기감이 엄마를 움직였다. 직접 공부를 해서 아이를 가르치기로 결심한 것이다.

 

설마 정말 엄마가 아이를 가르쳐서 꼴찌였던 아이가 1등이 되었을까? 읽는 내내 의심을 버리지 못했다. 기초도 전혀 없었고 받아쓰기 점수는 늘 바닥이었고, 그저 마냥 놀기만 했던 아이는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래, 내가 그랬다;;; 공부는 습관이 반이더라;;;) 그런데 어떻게 선생님도 아닌 엄마가 아이를 책상 앞에 앉게 했을까.

 

물론 그 배경에는 눈물없인 볼 수 없는 엄마의 피나는 노력과 관심, 그리고 아이의 의지가 있었다. 물론 아이가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는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엄마의 노력에 의해 이끌어진 것이었다. 사실 첫장부터 순간순간 가슴이 먹먹해지고 안타까워서 몇 번이나 숨을 골랐다. 가정 형편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프고 힘들었을 엄마가 방치된 아이를 보면서 흘렸을 수많은 눈물들이 보였다. 공부할 애가 아니라며 쓸데없는 짓 말라고 책을 던졌던 남편을 보면서 어떻게 이 정도 노력도 없이 아이가 공부를 잘하길 바라냐고 하는 그 엄마의 마음. 오랜 죄책감과 책임감이 아이를 놓지 않게 만든 힘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자녀 교육하기' 수기 공모전에서 입상한 사례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말 그대로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우등생 자녀로 키워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택한 길이었지만, 또한 누구나 쉽게 동참하기 어려운 길이지만, '공부'라는 것이 반드시 돈이라는 물질적 투자가 필수조건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아이의 공부에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엄마의 세심한 관심이라는 걸, 이 위대한 엄마는 온몸으로 보여준다. 신경쓸 것도 많고, 사는 게 바빠서 사교육이라는 간단한 길을 택한 엄마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르쳐서 남들보다 우수한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엄마들에게, 너무 빨리 아이의 공부를 포기해버린 엄마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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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2
박해천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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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소년이 있다. 소년은 동네에서 아이들과 야구공을 주고받고 개천가 공터에서 시합을 벌이다가 <인조인간 캐산> 같은 텔레비전 만화영화나 클로버문고 만화책에 대한 품평을 주고받곤 했다. 친구들과 뜨거운 한 철을 보내던 소년은 느닷없이 찾아온 생이별을 맞이하며 울음보를 터트린다. 어느덧 8톤 트럭 한가득 짐을 싣고 동네를 떠나가던 이들에게 손을 흔들던 소년은 다시는 친구들을 보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빠져든다. 이후 소년은 반포의 한 아파트 단지로 이사 간 친구들의 집을 방문하지만 친구들의 세계는 어딘지 모르게 달라져 있다. 아카데미 프라모델과 형형색색의 레고 블록과 플레이모빌에 둘러싸여 정체를 알 수 없는 문명화에 어리둥절하던 소년은 '집이 바뀌면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아파트, 그리고 아파트사(史)를 통해 대한민국의 근대 이후 정치, 사회, 문화, 경제를 촘촘하게 분석하고 독특한 스토리텔링으로 정리한 이 책은 저자 개인의 어린 시절 기억에서부터 출발한다. 개인과 사회가 기억하는 아파트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건축이자, 생물이자, 개인이자, 집단이자, 문화이자, 경제다. 아파트는 살아 움직이지 않지만 아파트를 욕망하고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열망하는 토건 권력은 아파트를 살아 움직이는 괴물로 만들었다. 전쟁의 상흔을 재빨리 지우고 근대화로 진입한 한국 사회를 과시하기 위해 1962년에 지어진 마포아파트부터 바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수백 개의 크레인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쌓아올리고 있는 주상복합아파트까지, 그 짧고도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삶의 욕망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이 그동안 아파트를 다뤄왔던 수많은 책 가운데서도 돋보이는 이유는 픽션과 팩트라는 두 가지 형식으로 아파트를 이야기하는 화법의 실험성에 있다. 아파트 자체를 1인칭 화자로 설정해 자신을 향한 욕망에 대항하고, 불만을 토로하며, 야심을 드러낸다거나, 강남 중산층 출신의 60대 남자를 화자로 설정해 자신의 세대가 바로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열망하는 세력이었음을 털어놓는 자기고백적인 서술은 아파트를 바라보는 시선에 입체감을 더한다. 

 

'팩트의 진술'이라는 형식으로 쓰인 2부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아파트 정치사와 변화무쌍한 주거문화를 여러 시각 자료를 통해 설명한다. 80년대 인테리어의 최신 유행이었던 베란다 가드닝이나 샤방한 레이스와 꽃무늬 천으로 점철된 홈패션이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지, 냉장고와 세탁기, 텔레비전 등 백색가전은 어떤 생리에 의해 변모했는지, 가족 구조와 주거 환경의 변화에 따라 주방의 공간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들여다보면 개인의 체험 속에 잠들어 있던 ‘삶’이 움찔거리며 일어나 시대와 개인의 역사를 비추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아파트를 단순한 ‘건축물’로 한정 짓지 않는다. 마포에서 시작해 용산으로, 동부이촌동으로, 잠실로, 압구정으로, 분당과 용인으로 이어지는 부동산 노른자들의 형성은 그저 토건 권력이 꿈꿔왔던 유토피아만이 아니다. 그래서 아파트는 때로 무기체이자 자존심이며, 근대 이후 한국사회가 지향해왔던 욕망 그 자체이자, 야망과 절망을 반복했던 중산층의 처참한 생몰(生歿)의 역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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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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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계속 회피하면서 김애란의 새 소설집 <비행운>을 읽었다.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습해지고 더워지는 책이다. 전체적으로 여름 느낌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단편들로 채워져 있기도 하고, 면지에 인쇄된 김애란의 사인 위에 '여름 비행'이라고 쓰여 있는 걸 보면 더 덥다.


김애란 특유의 허를 찌르는 문장들이 거의 사라졌다. 주제의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나 <두근두근 내 인생> 이전의 단편들에 비해 굉장히 섬세해졌다. '벌레들'의 경우 작가의 이름이 없다면 누가 썼는지 가늠조차 안 될 정도로 김애란스럽지 않다. 문장의 섬세함만이 아니라 주제에 접근하는 시선 자체가 촘촘해졌다. 그게 한뼘씩 확- 자라버린 나무 같기도 하고, 꽃과 열매가 다 져버린 잎사귀만 무성한 나무 같기도 하다.

 

나는 꽃이 만발한,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 김애란이 좋았다. 짙은 초록으로 꽉 차올라 껑충 자라버린 김애란보다, 꽃으로, 열매에게로, 벌레에게로, 매미에게로, 여기저기에 시선을 옮겨붙일 수 있는 김애란이 좋았다. 그래서 이번 소설집은 성숙하고 단단하지만 매력적이진 않다.

 

그래도 이 소설집의 첫 작품으로 배치된 '너의 여름은 어떠니'와 가장 마지막에 배치된 '서른'은 한 번 더 읽고 싶었다.

 

 

나는 스무 살을 새로운 도시에서 맞는 게 좋았다. 철학과 사람들의 눈빛과 말투, 안색에도 호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나이엔 의당 그래야 하는 듯 알 수 없는 우울에 싸여 있었고, 내 우울이 마음에 들었으며, 심지어는 누군가 그걸 알아차려주길 바랐다. 환영식 날, 잔디밭에 모인 무리에서 슬쩍 빠져나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내가 거기 없다는 걸 통해, 내가 거기 있단 사실을 알리고 싶은 마음.

 

선배는 곧잘 나를 '녀석'이라 불렀다. 그런 뒤 그가 커다란 손바닥으로 머리칼을 마구 헝클어줄 때면, 뭉클하니 아늑해져 까치발을 든 채 '더요! 더요!'라고 외치고 싶어지곤 했다.

p15 '너의 여름은 어떠니'

 

 

학생 중에는 평소에 저랑 한마디도 안 하다 이따금 딸기우유나 초콜릿을 건네고 가는 여중생도, 말수 적고 속이 깊어 언제나 부모님을 걱정하는 남고생도 있었어요. 공부를 하도 한 탓에 수업 중에 코피를 쏟는 아이도, 갑자기 복도로 뛰어나가 토를 하는 아이도 있었고요. 그런데 언니, 요즘 저는 하얗게 된 얼굴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원가를 오간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요.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p297 '서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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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코리안 델리 - 백인 사위와 한국인 장모의 좌충우돌 편의점 운영기
벤 라이더 하우 지음, 이수영 옮김 / 정은문고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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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 영화나 미국 드라마에서 한국인이 등장하면, 그 배경은 여지없이 작고 번잡스러운 편의점 또는 잡화점(델리)이다. 억척스러운 한국인 이민자 부부가 강도를 내쫓거나, 고단하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계산대에 서서 경찰의 심문에 응하는 장면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을 찾는 이민자들 가운데 한국인은 특유의 부지런함과 억척스러움으로, 개미처럼 일만 한다거나 돈만 밝힌다거나 자식들 교육에는 앞뒤 가리지 않고 투자한다는 둥의 (부정적인)이미지를 갖게 됐다. 낯선 땅에서 삶을 일구는 사람들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악착같이 돈을 벌고 먹고 살 길을 찾아나서지만, 아무래도 한국인 특유의 습성(?)은 문화 차이 때문인지 좀 지독하게 두드러지는 모양이다.

 

문예지 <파리 리뷰>에서 편집자로 일하며 전형적인 지식인 코스프레를 담당하고 있는 벤 라이더 하우는 재미교포 2세인 개브와 결혼하면서 '충격적인' 한국 문화를 접하기 시작한다. 자금 사정 때문에 장모님 댁에 얹혀 사는 처지이긴 하지만 이 '일방적인' 한국 문화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장모님 케이는 아무때나 딸 부부의 방에 불쑥 쳐들어오고, 친척이나 지인이 미국을 방문하면 온 집안은 '성수기 여관'이 된다. 장모 케이는 운전할 때 한 번 시작한 차선은 절대 바꾸지 않는 것처럼, 한 번 결정한 것을 되돌리는 일이 없다. 벤은 장사를 하되, 좀 더 우아하게 하고 싶지만, 케이는 돈이 되는 거라면 곤죽이 된 음식을 스티로폼 그릇에 그램수로 담아 팔든, 복권 기계를 들여놓든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다.

 

이 백인 사위와 한국인 가족이, 아니 정확하게 말해 머릿속이 온통 추상적인 관념들로 가득한 벤과 머리보다는 행동으로 살아가는 케이가 뉴욕의 작은 델리를 운영하는 이야기는 예측한 대로 수많은 충돌과 혼란 속에 진행된다. 하지만 그 혼돈의 세계에서 우리는 삶의 진정한 이면을 본다. 벤은 먹고사니즘과 문학인 정체성 사이에서 자신의 자아를 정의하기 위해 끊임없이 머리를 굴린다. 그러나 결국 도서전에 가서 책을 파는 일이나 델리에서 악착같이 물건을 파는 일이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자기 성찰에 빠지는 벤의 모습에서 우리는 웃(기고 슬)픈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

 

벤에게 그저 낯설고 피곤하기만 했던 이 가족의 문화와 생존 정신은, 델리를 함께 운영했던 시간을 통해 조심스런 동지애로, 연민으로, 애정으로 발전한다. 격동의 대한민국을 온몸으로 살아내며 굴곡진 인생을 이어나갔던 장모를 이해하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한편으로는 다소 찌질한 듯한) 출판사에서 만난 사람들을 애정으로 품게 되고, 기이한 단골 손님들과의 만남에서 삶의 연민을 찾는다. 벤은 이 작은 공간에서 인정과 공존에 관한 작은 이야기를 남겼다. 미국에서 먼저 <마이 코리안 델리>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책은, 결국 벤을 머리만 복잡한 문예지 편집자가 아닌 진짜 옹골찬 작가로 거듭나게 해주었다. 언론인 P.J.오루크의 말처럼 이 평범한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가 벤의 손을 통해세속적 재료(델리)를 톡 쏘는 양념(한국인 처가)으로 버무려 자연스럽게 발효(맨해튼의 문학)’시킨 김치’같은 작품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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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두 얼굴 -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나와 가족의 심리테라피
최광현 지음 / 부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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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것은 '가족'이 한세트 더 생긴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라는 대상을 중심으로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며 '모셔야' 하고 형님, 동서, 도련님, 아가씨 같은 입에 잘 붙지도 않는 호칭들을 마치 태어날 때부터 원래 있었던 사람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부르며 '한 가족'이 된다는 것은 내게 정말 '날벼락'이었다. 나는 그저 한 남자를 사랑했을 뿐인데, 그리하여 함께 살자고 결심하는 것 뿐인데 바로 그 순간 어마어마한 '가족' 한 무더기가 내 앞에 투척되는 것이다. 그게 결혼이라는 제도의 속성이자 함정이다. 사실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어지간하면 혼자 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되도록 결혼 같은 건 하지 말아야겠다고.

가족은 선택할 수 없다. 내가 태어난 가족도 선택할 수 없고, '시댁'이라는 새로운 가족도 선택할 수 없다. 남편은 선택할 수 있어도 남편의 가족을 내가 선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건 나에게 숙명이 된다. 일종의 공포였다.

 

나는 상당히 많은 가족들 속에서 관계지향적인 사람으로 자랐다,고 믿었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형제간의 우애가 깊고 부모님은 금슬이 좋고 언제나 화목하고 화기애애한 대가족 속에서 모나지 않게 자랐다,고 믿었다. 그런데도 <가족의 두 얼굴>이라는 책을 보자마자 이건 내가 반드시 읽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문제없이 평탄하게 살아왔다고 믿으면서도 언제나 가슴 한켠에 덜어내지 못한 그늘이 있는 것 같았다. 사실 그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그때는 상황이 그랬으니까, 엄마 아빠도 힘들었으니까, 그땐 다들 어렸으니까, 다들 뭘 잘 몰랐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내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나의 크고 작은 상처들을 드러내는 게 오히려 가족들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았다.

 

<가족의 두 얼굴>은 저자가 진행한 가족치료 상담에서 만난 다양한 사례들을 들어 어째서 가족은 서로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살아가게 되는지에 대해 아주 말랑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풀어간다. 왜 우리는 자신의 불행을 반복하며 사는지, 왜 어린 시절의 작은 트라우마가 성인기까지 이어져 인생을 고통스럽게 만드는지, 왜 사랑하면서도 서로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살아야 하는지, 왜 '가족'에 대해서는 언제나 '애증'의 감정을 동반하게 되는지 그 원인을 꾹꾹 짚어낸다.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사실 대단한 것에 있지 않다. 모든 불행과 고통은 자신의 상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의지에 의해 '방어'하면서, 혹은 그것을 극복하려고 '집착'하다가 결국에는 '재현'과 '반복'을 일삼으면서 도돌이표처럼 자신의 인생을 덮치또 덮친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그 문제 이전의 어떤 문제가 분명 선행되었다는 뜻이다. 미치도록 벗어나고 싶었던 고통과 자신도 모르게 입었던 정신적 내상들이 결국은 다시 자신을 덮치게 되는데, 그것은 대부분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고통의 원인을 가장 멀게 느끼며 찾아 헤매는 것이다.

 

'가족'은 너무나 사회적이면서도 너무나 사적인 공동체다. 공동체이면서 조직이고, 혹은 기업이고 보금자리다. 가족의 '관계'는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고,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고, 극복하고 싶어도 극복할 수 없는 운명공동체다. 가족간의 문제를 가정 내의 문제로 국한시키고 그 안에서의 해결을 권장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가족치료'라는 개념은 아직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서 가족으로부터 주고받은 상처들은 잘 치유되지 않고 더 깊이 곪고 썩기도 한다. 또한 구성원 하나의 치유만으로 가족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더 큰 어려움이 따른다. 이 책의 미덕은 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단서를 제공한다는 데에 있다. 대부분의 심리학 서적이나 치유성 에세이들이 그렇듯, 독서만으로 당장의 고통을 희석시킬 수는 없다. 다만,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것인지 찾아낼 수 있는 아주 작은 실마리 하나를 내 손에 쥐어주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상처를 객관화시키고 유형을 찾아보려 애썼다.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원인을 찾아보려고 했다. 나는 가족을 두려워한다. 시댁이라는 새로운 가족뿐만 아니라 내가 태어난 가족조차 두려울 때가 많다. 자꾸만 가족에게 거리를 두려 하고 반발짝쯤 뒤로 물러나 있기를 원했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이런 의식이 일종의 방어기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가장 긴밀해야 했던 시기에,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바로 그 시간을 홀로 보냈다는 것에서 굉장한 소외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초등학교 3학년 때 집열쇠가 달린 목걸이를 걸고 혼자 집에 돌아오는 길을 잊지 못한다. 비가 오면 학교 정문에 우산을 들고 아이들을 마중나온 엄마들이 가득했는데, 그 속에서 비를 맞으며 집으로 달려오던 때의 서러움을 잊지 못한다. 소풍갈 때마다 찬합에 김밥을 가득 담아와서 선생님들과 점심을 먹는 '학부형'들을 지켜보던, 그 마음을 잊지 못한다. 집열쇠를 깜빡하고 두고 온 날에는 대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언니들을 기다리면서 엄마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들을 골목 끝으로 바라보았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게 아무것도 아닌, 그저 어린시절의 단편적인 한 장면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순간의 서러움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스스로 소외된다고 느꼈던 그 감정 때문에,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내가 먼저 가족을 소외시키기로 했던 것 같다. 가족들은 언제나 '넌 왜 그렇게 가족들에게 무심하니' '넌 왜 가족들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니' '넌 왜 다른 남매들과 유난히 다를까' 같은 말들을 했다.

글쎄, 내 마음이 그렇게 시키는데 왜냐고 물으면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기억을 떠올리자 다시 서러운 마음이 들어 울컥했다. '가족의 두 얼굴'은 기본적으로 애愛와 증憎이다.

이 당연한 진리를, 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레 깨달으며 작은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누구도 미워하지 않을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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