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코리안 델리 - 백인 사위와 한국인 장모의 좌충우돌 편의점 운영기
벤 라이더 하우 지음, 이수영 옮김 / 정은문고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헐리우드 영화나 미국 드라마에서 한국인이 등장하면, 그 배경은 여지없이 작고 번잡스러운 편의점 또는 잡화점(델리)이다. 억척스러운 한국인 이민자 부부가 강도를 내쫓거나, 고단하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계산대에 서서 경찰의 심문에 응하는 장면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을 찾는 이민자들 가운데 한국인은 특유의 부지런함과 억척스러움으로, 개미처럼 일만 한다거나 돈만 밝힌다거나 자식들 교육에는 앞뒤 가리지 않고 투자한다는 둥의 (부정적인)이미지를 갖게 됐다. 낯선 땅에서 삶을 일구는 사람들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악착같이 돈을 벌고 먹고 살 길을 찾아나서지만, 아무래도 한국인 특유의 습성(?)은 문화 차이 때문인지 좀 지독하게 두드러지는 모양이다.

 

문예지 <파리 리뷰>에서 편집자로 일하며 전형적인 지식인 코스프레를 담당하고 있는 벤 라이더 하우는 재미교포 2세인 개브와 결혼하면서 '충격적인' 한국 문화를 접하기 시작한다. 자금 사정 때문에 장모님 댁에 얹혀 사는 처지이긴 하지만 이 '일방적인' 한국 문화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장모님 케이는 아무때나 딸 부부의 방에 불쑥 쳐들어오고, 친척이나 지인이 미국을 방문하면 온 집안은 '성수기 여관'이 된다. 장모 케이는 운전할 때 한 번 시작한 차선은 절대 바꾸지 않는 것처럼, 한 번 결정한 것을 되돌리는 일이 없다. 벤은 장사를 하되, 좀 더 우아하게 하고 싶지만, 케이는 돈이 되는 거라면 곤죽이 된 음식을 스티로폼 그릇에 그램수로 담아 팔든, 복권 기계를 들여놓든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다.

 

이 백인 사위와 한국인 가족이, 아니 정확하게 말해 머릿속이 온통 추상적인 관념들로 가득한 벤과 머리보다는 행동으로 살아가는 케이가 뉴욕의 작은 델리를 운영하는 이야기는 예측한 대로 수많은 충돌과 혼란 속에 진행된다. 하지만 그 혼돈의 세계에서 우리는 삶의 진정한 이면을 본다. 벤은 먹고사니즘과 문학인 정체성 사이에서 자신의 자아를 정의하기 위해 끊임없이 머리를 굴린다. 그러나 결국 도서전에 가서 책을 파는 일이나 델리에서 악착같이 물건을 파는 일이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자기 성찰에 빠지는 벤의 모습에서 우리는 웃(기고 슬)픈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

 

벤에게 그저 낯설고 피곤하기만 했던 이 가족의 문화와 생존 정신은, 델리를 함께 운영했던 시간을 통해 조심스런 동지애로, 연민으로, 애정으로 발전한다. 격동의 대한민국을 온몸으로 살아내며 굴곡진 인생을 이어나갔던 장모를 이해하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한편으로는 다소 찌질한 듯한) 출판사에서 만난 사람들을 애정으로 품게 되고, 기이한 단골 손님들과의 만남에서 삶의 연민을 찾는다. 벤은 이 작은 공간에서 인정과 공존에 관한 작은 이야기를 남겼다. 미국에서 먼저 <마이 코리안 델리>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책은, 결국 벤을 머리만 복잡한 문예지 편집자가 아닌 진짜 옹골찬 작가로 거듭나게 해주었다. 언론인 P.J.오루크의 말처럼 이 평범한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가 벤의 손을 통해세속적 재료(델리)를 톡 쏘는 양념(한국인 처가)으로 버무려 자연스럽게 발효(맨해튼의 문학)’시킨 김치’같은 작품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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