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두 얼굴 -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나와 가족의 심리테라피
최광현 지음 / 부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결혼을 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것은 '가족'이 한세트 더 생긴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라는 대상을 중심으로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며 '모셔야' 하고 형님, 동서, 도련님, 아가씨 같은 입에 잘 붙지도 않는 호칭들을 마치 태어날 때부터 원래 있었던 사람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부르며 '한 가족'이 된다는 것은 내게 정말 '날벼락'이었다. 나는 그저 한 남자를 사랑했을 뿐인데, 그리하여 함께 살자고 결심하는 것 뿐인데 바로 그 순간 어마어마한 '가족' 한 무더기가 내 앞에 투척되는 것이다. 그게 결혼이라는 제도의 속성이자 함정이다. 사실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어지간하면 혼자 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되도록 결혼 같은 건 하지 말아야겠다고.

가족은 선택할 수 없다. 내가 태어난 가족도 선택할 수 없고, '시댁'이라는 새로운 가족도 선택할 수 없다. 남편은 선택할 수 있어도 남편의 가족을 내가 선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건 나에게 숙명이 된다. 일종의 공포였다.

 

나는 상당히 많은 가족들 속에서 관계지향적인 사람으로 자랐다,고 믿었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형제간의 우애가 깊고 부모님은 금슬이 좋고 언제나 화목하고 화기애애한 대가족 속에서 모나지 않게 자랐다,고 믿었다. 그런데도 <가족의 두 얼굴>이라는 책을 보자마자 이건 내가 반드시 읽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문제없이 평탄하게 살아왔다고 믿으면서도 언제나 가슴 한켠에 덜어내지 못한 그늘이 있는 것 같았다. 사실 그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그때는 상황이 그랬으니까, 엄마 아빠도 힘들었으니까, 그땐 다들 어렸으니까, 다들 뭘 잘 몰랐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내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나의 크고 작은 상처들을 드러내는 게 오히려 가족들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았다.

 

<가족의 두 얼굴>은 저자가 진행한 가족치료 상담에서 만난 다양한 사례들을 들어 어째서 가족은 서로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살아가게 되는지에 대해 아주 말랑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풀어간다. 왜 우리는 자신의 불행을 반복하며 사는지, 왜 어린 시절의 작은 트라우마가 성인기까지 이어져 인생을 고통스럽게 만드는지, 왜 사랑하면서도 서로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살아야 하는지, 왜 '가족'에 대해서는 언제나 '애증'의 감정을 동반하게 되는지 그 원인을 꾹꾹 짚어낸다.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사실 대단한 것에 있지 않다. 모든 불행과 고통은 자신의 상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의지에 의해 '방어'하면서, 혹은 그것을 극복하려고 '집착'하다가 결국에는 '재현'과 '반복'을 일삼으면서 도돌이표처럼 자신의 인생을 덮치또 덮친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그 문제 이전의 어떤 문제가 분명 선행되었다는 뜻이다. 미치도록 벗어나고 싶었던 고통과 자신도 모르게 입었던 정신적 내상들이 결국은 다시 자신을 덮치게 되는데, 그것은 대부분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고통의 원인을 가장 멀게 느끼며 찾아 헤매는 것이다.

 

'가족'은 너무나 사회적이면서도 너무나 사적인 공동체다. 공동체이면서 조직이고, 혹은 기업이고 보금자리다. 가족의 '관계'는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고,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고, 극복하고 싶어도 극복할 수 없는 운명공동체다. 가족간의 문제를 가정 내의 문제로 국한시키고 그 안에서의 해결을 권장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가족치료'라는 개념은 아직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서 가족으로부터 주고받은 상처들은 잘 치유되지 않고 더 깊이 곪고 썩기도 한다. 또한 구성원 하나의 치유만으로 가족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더 큰 어려움이 따른다. 이 책의 미덕은 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단서를 제공한다는 데에 있다. 대부분의 심리학 서적이나 치유성 에세이들이 그렇듯, 독서만으로 당장의 고통을 희석시킬 수는 없다. 다만,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것인지 찾아낼 수 있는 아주 작은 실마리 하나를 내 손에 쥐어주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상처를 객관화시키고 유형을 찾아보려 애썼다.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원인을 찾아보려고 했다. 나는 가족을 두려워한다. 시댁이라는 새로운 가족뿐만 아니라 내가 태어난 가족조차 두려울 때가 많다. 자꾸만 가족에게 거리를 두려 하고 반발짝쯤 뒤로 물러나 있기를 원했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이런 의식이 일종의 방어기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가장 긴밀해야 했던 시기에,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바로 그 시간을 홀로 보냈다는 것에서 굉장한 소외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초등학교 3학년 때 집열쇠가 달린 목걸이를 걸고 혼자 집에 돌아오는 길을 잊지 못한다. 비가 오면 학교 정문에 우산을 들고 아이들을 마중나온 엄마들이 가득했는데, 그 속에서 비를 맞으며 집으로 달려오던 때의 서러움을 잊지 못한다. 소풍갈 때마다 찬합에 김밥을 가득 담아와서 선생님들과 점심을 먹는 '학부형'들을 지켜보던, 그 마음을 잊지 못한다. 집열쇠를 깜빡하고 두고 온 날에는 대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언니들을 기다리면서 엄마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들을 골목 끝으로 바라보았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게 아무것도 아닌, 그저 어린시절의 단편적인 한 장면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순간의 서러움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스스로 소외된다고 느꼈던 그 감정 때문에,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내가 먼저 가족을 소외시키기로 했던 것 같다. 가족들은 언제나 '넌 왜 그렇게 가족들에게 무심하니' '넌 왜 가족들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니' '넌 왜 다른 남매들과 유난히 다를까' 같은 말들을 했다.

글쎄, 내 마음이 그렇게 시키는데 왜냐고 물으면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기억을 떠올리자 다시 서러운 마음이 들어 울컥했다. '가족의 두 얼굴'은 기본적으로 애愛와 증憎이다.

이 당연한 진리를, 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레 깨달으며 작은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누구도 미워하지 않을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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