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평화고등학교 테러 사건
서귤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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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여전히 삼국시대라는 가정 하에 벌어지는 테러극.

장르소설들을 읽다 보면 재기발랄한 상상력에 감탄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소설도 그런 경우였다.

1500년 전 신라가 삼국 통일에 실패하고 여전히 한반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로 나뉘어 패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설정이다. 세 나라 간의 갈등이 심각하지만 민족도 같고 언어도 같기 때문에 공동의 번영을 모색한다. 그래서 평화협정을 맺고 비무장지대에 '삼국평화고등학교'를 설립한다.

입학을 꺼리는 사람들이 대다수라 각국은 사회 고위층 자녀들을 우선적으로 입학시킨다. 그런데 입학식 당일 학생 중 위장한 테러리스트들이 섞여 있었고 이들은 멸망한 대가야의 후손들이다. 가야의 독립을 요구하며 학생들을 인질로 잡은 상황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초반의 설정이 매력적이고 흥미로웠다. 앞으로 벌어질 스토리와 각 나라간의 깊은 갈등과 구출법이 기대됐다. 하지만 강렬한 설정을 뒷받쳐 줄 디테일과 구성이 아쉬웠다.

굳이 주인공을 따지자면 백제 출신의 여문희다. 다른 입학생과 다르게 문희는 고위층 자녀가 아닌 소외계층에 학교 폭력의 상처를 지닌 아이다. 문희를 시작으로 같이 인질로 잡힌 아이들의 소개가 나오는데 캐릭터가 등장하고 관계나 에피소드가 쌓일만 하다 싶으면 바로 죽어버렸다.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이런 방식이라 안타까웠다. 인질들은 너무 쉽게 죽어갔고 또 새로운 인물은 쉽게 등장했다. 몰입감을 불러일으킬 사건의 전환점이나 동력이 약했다.

삼국시대가 이어졌다는 가상 공간이 더 치밀하게 짜여있고 캐릭터 간의 관계설정이 보다 견고했더라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 중반부의 성긴 부분 때문에 결말의 뒷심이 약했다.

촌스럽게 족보나 핏줄 따위 운운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엄밀히 말해 나도 가야국의 후손이다. 그런데 요새 김해 김씨 중 누가 본인을 가야와 연관 지을까. 소설이 이런 부분도 보충했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실제 경상도 출신은 신라에, 충청도, 전라도 출신은 백제에 공감하는 지점이 읽으면서 생긴하면 정말 재미있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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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에 토카레프
브래디 미카코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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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녀의 인생을 통해 빈곤과 학대, 그리고 인간의 의지와 희망을 얘기하는 책이다. 


현대의 영국과 식민지 조선이라는 전혀 다른 시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두 소녀의 인생은 닮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인공 미아는 마약 중독자 엄마 밑에서 어린 남동생을 돌보며 사는 열 세살 소녀다. 무책임한 보호자와 가난에 방치된 소녀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덤덤히 전개된다. 


 미아는 절망 속에서도 도서관의 책을 읽으며 위로는 받는 아이다. 우연히 가네코 후미코라는 인물의 책을 읽게 되면서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면을 발견하면서 공감하게 된다. 책을 읽기 전에 전혀 다른 시공간의 인물이 어떻게 연결될지 궁금했었다. 기대했던 SF적인 장치는 없었지만 이 소설의 방점은 다른 곳에 있었다. 무책임한 부모와 보호자의 학대, 빈곤과 소외를 일으킨 사회의 방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미아가 책에서 만나는 가네코 후미코는 일제 시대 독립운동가 박열의 아내다. 가네코 후미코가 이런 처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저자의 전작 에세이를 읽어보지 못해서 어떤 계기로 이 인물을 픽션으로 끌어왔는지 궁금해졌다. 아니면 반대로 가네코 후미코의 삶을 조명하려고 현대의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인물을 창조해 냈는지도 모르겠다. 


 제목 <양손에 토카레프>는 미아가 쓴 랩 가사의 내용이다. 에미넴의 <8 마일>처럼 처절한 삶 속에서 주옥 같은 랩이 나오는 법. 미아의 랩도 꾸민 것이 아닌 진짜다. 요즘 아이들이 택할 법한 예술적 표출이라 이 부분이 재미있었다. 


 비교적 쉽게 읽히는데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기는 내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을 덮고 나서도 두 소녀를 응원하게 된다. 훈훈하고 여운이 남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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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시! - 그 개의 전기, 버지니아 울프 기록
버지니아 울프 지음, 서미석 옮김 / 그림씨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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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영국 시인 커플 엘리자베스와 로버트 브라우닝의 강아지, '플러시'에 대한 소설.

코카스패니얼 플러시는 실제 엘리자베스의 반려견으로 종종 자신의 시에 등장시키던 개다. 병약한 몸으로 집에서만 지내던 엘리자베스 배럿. 그녀의 시만 읽고 사랑하게 된 여섯살 연하의 무명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배럿에게 편지를 보낸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엘리자베스의 아버지를 피해 비밀리에 결혼한 뒤 이탈리아로 도주한다. 물론 플러시는 모든 순간 이들과 함께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의 시와 기록들을 토대로 이 이야기를 썼다. 자신보다 앞서 살다간 뛰어난 여성 문인에 대한 동질감 내지는 오마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강아지의 행동과 시선 등을 통해 인물과 사건들이 보여진다. 특히 두 연인을 관찰하는 부분들이 재미있다. 노란 장갑을 낀 남자가 자주 집에 찾아오고 1년이 지난 어느 날 주인이 몰래 외출하고 오더니 왼손에 반지가 끼워져 있는 것을 플러시가 발견하는 내용 같은 것이다.

울프의 작품이 어렵기로 유명한데 비교적 잘 읽히는 소설이다. (고백하건데 <자기만의 방>과 <올란도>를 읽다 말고 책장에 쳐박아 둔지 오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빈민가로 납치된 플러시가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돌아오는 것과 부부의 첫아이와 처음으로 대면하는 장면이다. '어딘가 깊은 혐오감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니. 실제 반려견들이 주인의 아이를 만날 때 이런 기분이 드는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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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바위보
앨리스 피니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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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의 묘미가 있는 스릴러다.

결혼 생활의 위기를 맞고 있는 어밀리아와 애덤은 스코틀랜드로 여행을 떠난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씨에 부부는 인적이 드문 낡은 예배당에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시종일관 음산한 기운이 계속되고 기묘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리고 예배당 가까이에서 이 두 사람을 지켜보는 또 다른 여자가 있다.

남편이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안면실인증'이 있다는 설정이 독특하다. 중반까지는 비슷한 패턴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정보들이 나열되기만 해서 읽는 데 좀 더뎠다. 하지만 후반에서 반전들이 몰아쳐서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책의 마지막을 덮고 반전을 곱씹어 보았다. 찬찬히 생각해 보니 초반부터 약간의 허술함이 있긴하다. 하지만 반전이 드러날 때까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영리하고 상업적으로 잘 세팅된 반전이다.

이미 넷플릭스 시리즈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소설에서 아내가 결혼기념일마다 남편에게 쓰는 편지가 반전의 충격파를 증폭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것을 어떻게 각색해서 영상화 할지 궁금하다.

저자인 앨리스 피니는 별명이 '트위스트의 여왕'이라고 한다. 다른 작품에서도 반전 트릭을 잘 사용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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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 우먼의 기쁨과 슬픔
전순예 지음 / 송송책방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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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위해 여러가지를 팔아야 했던 엄마, 그 위대한 삶의 기록.

전순예 작가의 첫 책 <강원도의 맛>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몇 년전 즐겨듣던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에서 소개 받았었다. 예순의 나이에 글쓰기를 시작한 독특한 이력의 작가님이었는데 팟캐스트에서는 책의 편집자가 나왔었다. 송송책방 대표이기도 한 그는 작가의 딸이기도 했다. 생애 첫 책을 딸이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출판하다니. 이 사실도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강원도의 맛>이 작가의 유년시절 음식에 대해 풀어 놓은 에세이였다면 <세일즈 우먼의 기쁨과 슬픔>은 결혼 후 맞닥뜨린 생계에 대한 글이다.

작가는 평생 장사와는 관계없는 삶을 살아오다 남편이 공무원을 그만두고 문방구를 차리면서 세일즈를 시작한다. 그로부터 장난감, 배추, 책, 빵, 학습지, 비누, 신문에 냄비세트까지 온갖 물건들을 팔며 일어난 이야기가 생생하게 적혀있다. 갈수록 진화하고 노련해진 세일즈 인생을 읽으며 감탄과 경외감이 느껴질 정도다.

매순간 물건들을 팔 때마다 고난이 이이졌고 가끔은 행운도 따라주었다. 수십년 간 팔아온 물건들 이야기 속에는 그 당시 시대를 알 수 있어 재미있다. 일일공부, 애경유지, 신데라 빵, 휘슬러 압력솥, 타파웨어 등 추억돋는 상품들이 등장한다.

남편이 뒤늦게 신학대학생이 되어 가장이 된 작가는 가정 방문 조리도구 판매사가 된다.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 홀로 부딪히게 된 어려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저 묵묵히 처한 현실을 헤쳐나가는 삶이 감동적이었다.

출판사 대표를 비롯한 작가님의 자녀들이 부럽다. 엄마의 젊은 시절을 이렇게 생생하고 정갈한 글로 접할 수 있다니 복 받은 분들이다. 작가의 소중한 삶의 기록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또 그 용기와 근면함을 존경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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