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세 번, 동네문화센터에 놀러 갑니다
정경아 지음 / 세미콜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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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노년 선행학습'을 할 수 있는 에세이.

얼마 전 일본으로 여행 갔을 때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여행에 가면 아침 일찍 숙소 주변을 산책하곤 하는데 관광지가 아닌 평범한 주택가에 있는 에어비엔비를 잡은 덕에 일반 시민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산책 도중 동네의 작은 로스터링 카페에 들렀다. 그런데 테이블에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노인들이 정말 많은 것이 아닌가.

우리 나라 노인들에게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아침에 집이 아닌 카페에서 혼자 커피를 사서 마시는 노인들이라니.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누군가를 부양하는 고단한 모습이 아닌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그 모습이 매우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퇴직 후 '시간 부자'가 된 68세의 저자는 문화센터에서 중국어와 전통무용을 배운다. 무언가에 도달하고 증명해야할 필요가 없는 느슨하고 즐거운 공부다. 또 다양한 관심사에 대해 탐구하고 친구들과도 잦은 교류를 통해 매일 즐거운 하루를 산다. 이를 위해 저자가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에 안도감을 느꼈다. 이런 노년이라면 괜찮겠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가 자신이 맞이한 노년을 적극적으로 탐구하는 내용 중에 재미있는 것이 있다. '노년 선행학습엔 영화가 딱이지'편인데 노년을 다룬 다양한 영화를 보는 것이다. 나이 들수록 좁아지는 시야도 넓히고 건접적으로나마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정경아 작가님의 방법에 적극 동조한다. 영화는 물론이고 이 책과 같은 에세이도 좋은 '노년 선행학습'의 자료라고 생각한다. 글도 정감있고 매끄럽게 잘 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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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울을 말할 용기 - 정신과 의사에게 찾아온 우울증, 그 우울과 함께한 나날에 관하여
린다 개스크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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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정신건강 권위자가 솔직히 고백하는 우울증과 그것을 치료하는 과정에 대하여.

내가 겪는 고통을 먼저 겪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큰 위로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가벼운 또는 심각한 우울증을 겪는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다. 게다가 단순한 경험담이 아니라 평생 우울증을 연구하고 치료해 온 저자의 이야기라 더 와닿는다.

저자인 린다 개스크는 EBS의 <위대한 수업>에도 출연한 영국의 정신과 전문의다. 저자가 정신과 의사가 된 계기는 본인이 어린 시절부터 갖고 있던 정신적 상처 때문이었다. 불우한 가정환경, 어머니와의 불화, 남동생의 정신 질환 때문에 저자는 늘 불안과 강박에 시달렸다. 의과대학에 입학해서는 힘든 공부와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본격적인 우울증을 앓는다.

저자는 주변 사람들 몰래 심리 치료를 받고 자신의 우울증을 치료한다. 그 일련의 과정이 우울증과 관련된 키워드로 나뉘어 소개되어 있다. 스스로가 정신과 의사인데도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처지를 공개할 수 없어서 받는 괴로움도 있었다. 하지만 치료를 거듭할수록 본인의 우울증 뿐만 아니라 자신의 환자들을 더 이해할 수 있게된다.

단순히 환자들의 사례만 나열했다면 그리 특별하지 않았을텐데. 자신의 치부나 상처를 떳떳하게 공개한 것이 특별했다. 저자의 솔직한 고백과 치료 과정을 읽다 감동을 받게 된다. 특히 깊은 애정을 갖고있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본인의 불륜, 이혼, 가족과의 불화를 덤덤히 소개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런 사실들이 누구나 한번 쯤을 겪는 것들이라 읽으면서 많은 공감이 되었다.

-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려면 먼저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내가 아버지를 잃었을 때 하지 못한 일이다. 그것은, 상실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이다.(72페이지)

-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은 괴롭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괴로움은, 지난날의 결정을 돌아보고 우리 삶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127페이지)

- 상실의 기억을 떠올릴 때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괴롭고 아픔이 생생하다면 진전이 없는 것이다. 감정이 잦아들지 않고 점점 커진다면 그 역시 심각한 신호다. 애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우울증이 된다. 애통한 마음의 크기를 1에서 10까지의 숫자로 생각해볼 때 그날그날 아주 미미하게라도 줄어들고 있다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신호다. (26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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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이동윤 옮김 / 푸른숲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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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슨이형 인정합니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속편인 이 책을 솔직히 읽기에 망설였다. 그 이유는 전작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작이 재미있다는 평을 많이 들었는데도 읽지 못해서 속편을 먼저 읽는 것이 괜찮을지 걱정됐지만 일단 읽었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고 거의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의 책이다. 가독성은 좋았지만 1부는 다소 지루하다고 생각하며 읽었는데 1부 엔딩에서 발동이 걸렸다.

그 다음부터는 꽤 몰입하면서 읽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구조가 매력있었다. 작가가 무척 구조를 고심했겠다 싶다. 단서나 복선도 유효적절하게 잘 심어놓았다. 엔딩으로 갈수록 재미를 느끼는 소설이다.

다만 결말에서 릴리의 역할이 큰데 전작을 읽지 못해서 조금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결국 <죽여 마땅한 사람들>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봉된 스티커들이 너무 웃기다. 푸른숲 출판사다운 재미있는 발상의 마케팅이라고 느꼈다. '완슨이형'이라는 별칭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궁금하다. 너무 웃기다.



#살려마땅한사람들 #피터스완슨 #이동윤옮김 #푸른숲 #장르소설 #스릴러소설 #서스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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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하는 마음, 마약 파는 사회 - 일상을 파고든 마약의 모든 것
양성관 지음 / 히포크라테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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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의사가 마약에 관해 충실하고 정확하게 알려주는 책.

최근 모 배우가 마약 혐의를 받고 조사 중이라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우리 나라 연예계에서 마약 스캔들에 연루되면 곧 사망 선고나 다름없을 만큼 엄격한 잣대가 적용된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았을 모 배우는 대체 왜 마약에 손을 댔을까?

이 책은 마약의 종류, 중독되는 과정, 치료 등 의학자로서 바라본 관점 뿐 아니라 마약의 제조와 유통이나 역사, 정치, 사회적 배경도 잘 풀어냈다. 많은 자료 조사를 통해 쓴 글이라는 것이 느껴졌고 또 어렵지 않게 쓰여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1장 '시작. 천국을 맛보다'에서 마약 복용 후 경험하는 환각에 대해 나온다. 스티브 잡스는 한 때 LSD를 복용하고 '밀밭에서 바흐가 흘러나와 스스로 지휘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잡스는 마약으로 자신의 크리에이티브를 극대화시킨 인물일지도 모른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는 솔직히 마약에 대한 호기심마저 든다. 하지만 계속되는 중독과 치료가 서술된 장에서는 이 생각이 싹 사라진다. 점점 더 강한 약을 찾아 가산을 탕진하고 결국 범죄자가 되거나 목숨을 잃는 마약 중독의 사례들이 무시무시하다.

또 진통제, 마취제 또는 다이어트약으로 알려진 흔한 약들에 중독성이 있다는 것도 충격이다. 의외로 이런 약을 장기복용하며 중독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출산 중에 맞는 무통주사의 성분이 펜타닐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마약의 역사적, 산업적 관점도 흥미롭다. 마약이 고부가가치 산업이라 끊임없이 어딘선가 생산되고 유통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현재 미국에서 유행하는 펜타닐이 어떻게 퍼지게 되었는지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마약을 퇴치하겠다는 현정부에 대한 현직 의료인으로서의 당부의 글도 기억에 남는다. 마약은 치명적이지만 결국 중독자들은 치료될 수 있고 또 치료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에 크게 공감했다.

새삼스럽지만 절대 마약은 하면 안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더 확고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 도서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마약하는마음마약파는사회 #마약마사 #양성관 #히포크라테스 #동아시아 #마약 #베스트셀러 #신간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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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돌보다 - 의무, 사랑, 죽음 그리고 양가감정에 대하여
린 틸먼 지음, 방진이 옮김 / 돌베개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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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어머니의 죽음을 대하는 딸의 기록.

부모의 간병과 죽음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이 책의 문장 하나 하나가 의미없이 읽히지 않을 것이다. 책의 띠지에 적힌 정희진 작가님의 추천사를 그대로 빌리고 싶다.

"넋을 뺏긴 채 읽었다. 몸에 새겨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책의 부제인 '의무, 사랑, 죽음 그리고 양가감정에 대하여' 중 가장 밑줄 긋고 싶은 단어는 '양가감정'이다. 만약 이 책이 어머니의 병과 죽음에 대해 애틋하고 슬픈 사랑만을 기록했다면 특별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인 린 틸먼은 우리에겐 낯설지만 미국에서 꽤 알려진 중견 소설가다. 틸먼의 80대 노모가 눈에 띄게 병약해지는데 뇌질환이 생긴 것을 알게된다. 그로부터 어머니가 98세로 죽기까지 11년간 겪은 일들을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저자가 만난 의료진, 간병인들로부터 받은 부당함과 상처들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어머니가 고령의 노인이기 때문에 의사들은 건성으로 진단을 하고 간병인들은 집안의 물건을 훔치거나 환자를 학대한다. 겨우 괜찮은 간병인을 만났지만 갈수록 을이 되어야하는 상황도 기막히다.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자식으로써 종일 돌보고 싶지 않은 저자의 솔직한 심정에도 공감했다. 대신 어머니가 좋아할만한 것들을 끊임없이 찾아다 바치는 정성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저자의 어머니가 딸에게 '내가 작가가 됐더라면 너보다 더 성공했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에 대해 저자가 느낀 불편한 감정도 담겼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죽는 순간과 그 이후에 느낀 큰 슬픔이 가감없이 적혀있다.

읽는 내내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났다. 틸먼처럼 그렇게 긴 기간은 아니었지만 병든 부모가 서서히 죽어가는 그 참담한 경험을 했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저자가 나 대신 그 심경을 표현했다고도 생각했다. 그만큼 많은 공감이 된 독서였다.

밑줄 친 문장이 너무도 많지만 책 말미의 한 구절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 부모의 죽음은 일반적으로 다른 죽음과는 다르다. 그 인물들이 세상을 떠나면 터무니없게도, 어리석게도 그 자녀들은 상징적인 보호막이 사라졌다고 느낀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발가벗겨진 느낌, 더 취약한 존재가 되었다고 느낀다. 최악의 죽음은 자식을 땅에 묻는 부모가 겪는 죽음이라고들 한다. 그런 죽음은 자연의 질서를 거스른다. 자연의 질서 자체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고통스럽다는 것이 드러난디. (239 페이지)

그리 길지 않은 책이지만 문장을 곱씹을 수 있는 책이다. 중간 중간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데 딱히 없어도 무방한 이미지들이라 의아스럽다. 원서에도 수록된 사진인지 궁금하다.

* 도서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어머니를돌보다 #린틸먼 #돌베개 #방진이옮김 #돌봄 #돌봄노동 #영캐어러 #mother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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