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인간의 몫이 아닌 신의 몫이다. 하지만 ‘윤리’는 인간의 몫이다.

 

전자는 불변의 가치이지만 후자에게는 ‘당대성’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끔 이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하는 장면을 만난다. 예를들면 ‘친권’에 대한 논의가 그렇다. 한때 친권은 아버지에게 주어지는 것이 ‘윤리’였고 그에 부가되는 책임과 의무 역시 마찬가지 였다. ‘호주제’ 논쟁이 증명하듯 그 가치기준이 바뀌는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이 책은 지금의 눈으로 보면 담담하다. 당대의 가치의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저 한 파렴치한 남자(어쩌면 그리 파렴치 하다고 볼 수도 없는 비겁한 남자)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한 평범한 여자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소설의 주인공도 ‘그 여자’로 지칭된다. 남녀는 우연히 다시 만난다. 과거 첫사랑이었다는 이유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남자는 쉽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두 사람 다 사별과 이혼으로 각자 혼자였기 때문이다. 남자에게는 딸 아이가 하나 있지만 그것은 벽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진짜 벽은 ‘편견’이었다.

 

서른다섯에 아이가 딸린 남자의 어머니 눈에는 남자에게 아무런 결격 사유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여자’가 보는 ‘여자’는 다르다. '이혼녀'라는 굴레가 덧 씌워진 것이다. 결국 남자는 여자와 헤어진다. 작가는 이 남자가 보편적 기준에서 볼 때 적당한 양심을 가진, 그래서 그리 나쁜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저 우리가 흔히 만나는 평범한 윤리의식을 가진 우리 주변의 남자다. 하지만 남자에게 ‘보편성’이란 모호한 것이다.

 

‘어머니의 요구’을 받드는 것도 윤리고, ‘그 여자’에게 신의를 지키는 것도 윤리이기 때문이다. 두 여자 사이에서 결국 남자는 어머니 편을 택한다. 이왕이면 실리의 편에 선 것이다. 이점에서 남자에게 큰 갈등 구조는 없다. 그저 외면한 것에 불과하가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에게 아이가 생기면서부터 남자는 비굴해진다. 남자는 여자에게 돈 봉투를 내민다. 이 역시 일종의 ‘보편적 관행’인 탓이다. 여자는 호소하지만 외면당한다.

 

그렇다고 절박하게 간청하거나 매달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숱한 편견 속에 애써 아이를 키운다. 그러나 남자와 재혼한 여자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남자는 ‘그 여자’에게 친권을 주장한다. 물론 이 역시 노모의 간곡한 청이라는 적당한 명분이 있다. 남자의 새 여자 역시 남자의 편에 선다. 결국 두 여자가 ‘그 여자’에게 ‘여자’이기를 포기할 것을 강요하는 셈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갈등구도 역시 명료하다.

 

이 책에는 배우 ‘심은하’가 서슬퍼런 표정으로 ‘부숴버리겠어’를 외치던 ‘청춘의 덫’이나, 탤런트 배종옥이 통렬한 어퍼컷을 날리는 ‘ 내남자의 여자’와 같은 의지나 자각, 결기도 없다. 물론 독자를 위로하는 극적인 복수도 피눈물을 흘리는 저주도 없다. 여자는 자신이 눈을 떠 간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아이를 보호하겠다는 본능에 충실 할 뿐이다. ‘권선징악’도 극적인 반전도 없다. 소설의 결과는 누구나 예상 할 수 있고 마치 고희가 지난 할머니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듯 편안하기까지 하다.

 

때문에 이 책을 읽고 ‘분노’ 따위를 떠 올릴 이유가 없다.

 

만약 이 책에 분노한다면 당신은 지나치게 감정과잉이거나 포커스를 잘못 맞춘 탓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왜 ‘여자’가 남자와 ‘대대관계’에 있는지, ‘여자’라는 존재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 천천히 다시 음미하게 한다. 아마 이 책이 이 시대에 출간된 책이라면 독자들은 피식 헛웃음을 웃거나 외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소설이 쓰여진 20년전의 상황을 떠올리면 문제는 달라진다. ‘동시대’ 여자와 달리 ‘당대’의 여인, 즉 저자가 주목한 ‘여자’는 구원의 대상이 되는 연약한 존재가 아니다. ‘여자’는 스스로 맞서고 일어선다. 이 시점에서 소설이 다시 읽혀지는 이유다.

 

우리는 이 책에서 무엇을 배우고 느낄까?.

 

문학은 고고학이 아니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다시 읽는 문학, 혹은 고전이란 ‘과거에는 이랬어. 예전에는 이랬군’이라는 회고가 아니라, 껍질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처럼 ‘한계’를 깨는 힘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덧붙여 저자의 문체와 서술의 힘은 지극한 경지다. 극적인 상황이나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저자는 독자들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는 상황 속으로 몰고간다. 여백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 여백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공통감각’이라고 칭한 그 느낌. 즉 엄마의 냄새와 여자의 외침, ‘그 여자’가 살아가는 다면적인 모습들에 대한 인식을 통해 ‘동 시대의 윤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도구로 작용한다. 그 점에서 박완서의 글은 주장이라기 보다는 부드러운 설득에 가깝다. 박완서는 굳이 ‘진리’에 도전하지 않는다. 심지어 ‘엄마의 권리’라는 천부인권조차 ‘진리’로 주장하지 않는것 처럼 보인다. 현 시점에서 ‘개 밥바라기 별’을 쓴 황석영과 달리 ‘박완서’에게 ‘문학’은 새로운 ‘당대’를 여는 필연이었던 듯하다.

 

이 책이 씌여지고 20년.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문학’과 ‘당대의 작가’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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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주하던 ‘한국호’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면서 고도성장의 막이 내렸고, 문화적 측면에서는 일부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한 ‘한류(韓流)’ 이상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과거 선진국이 앞서나간 분야를 특유의 근면성으로 돌파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우리 것, 우리 상표, 우리 문화를 입히는 ‘킬러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이 문제를 푸는 것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모방은 기교로 해낼 수 있지만, 창의란 오랜 기간 축적된 지식과 문화가 숙성·발효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천 년에 걸쳐 고유의 문화를 쌓아온 지구상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한데 창발성 측면에서는 중국, 이탈리아, 프랑스, 심지어 고작 200년 역사의 미국마저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오랜 시간 축적한 성과들이 단절돼 있기 때문이다. 기록을 중시해온 특별한 문화를 지녔지만 계승에는 실패한 까닭이기도 하다.
 
우리 조상은 ‘조선왕조실록’, 고려조의 팔만대장경을 비롯해 수많은 학자, 문인, 은둔거사가 문집이라는 형태로 남긴 글 등 엄청난 문화유산을 후대에 물려줬다. 그 안에는 상상을 뛰어넘는 사유가 담겨 있다. 원효의 ‘대승기신론소’에서 퇴계와 고봉, 율곡의 논쟁과 대화, 실학파의 이용후생에 이르기까지 조상들의 사유는 탁상공론이 아닌, 이치와 존재를 탐구하는 철학과 문화의 보고였다.
 
과학기술은 가설을 세우고 증명된 자료를 바탕으로 원리를 만든다. 하지만 과거 학자들은 단지 머릿속의 실험실을 운영했을 뿐, 자신의 생각과 사유를 증명할 수단이 없었다. 이 거대한 ‘머릿속 실험실’은 각기 당대를 뛰어넘는 사유를 통해 후학들에게 전해졌고, 그것은 고스란히 기록으로 우리에게 전승됐다. 안타까운 점은 이 문화와 철학의 보고가 우리말이 아닌 한자로 쓰였다는 점이다.
 
때문에 그것을 계승·발전하고 우리 문화를 농축하기 위해서는 선현들의 저작을 되도록 빨리 우리말로 옮겨야 한다. 하지만 이 작업을 소홀히 해왔다. 현대 과학기술문명의 습득에만 주력하느라 창발성의 바탕이 되는 사유의 거대한 숲을 방치한 것이다. 앞으로 우리만의 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선현들의 사상과 철학을 체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하지만 지금도 각 문중에는 선조들의 문집이 쌓여 있고 그중의 절반, 아니 10분의 일도 우리말로 전승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바칼로레아를 치르며 놀라운 사유의 깊이를 보여주는 것은 그들의 문자로 된 선학들의 지식을 쉽게 체득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북한의 연구는 꽤 앞서나갔다. 물론 이념적 목적이 개입된 부분이 적지 않다 해도 과거 북쪽의 완역 ‘리조실록’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후 고전번역원이 설립되고 고전에 대한 번역작업을 해나가고 있지만, 지금 와서 선인들의 지혜를 그대로 습득하기란 여전히 지난한 여정이다. 이 책, 연암의 ‘열하일기’(리상호 옮김, 보리 펴냄)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연암은 당대의 지식인이었다. 단순한 기행문이 아닌 역사, 철학, 사회, 과학, 기술, 예술, 농업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안목으로 당시 선진문화를 접한 소회를 피력하면서 이렇게 일갈했다
 
“중국을 구경하고 다른 사람들은 무엇이 장관, 무엇이 장관이라고 떠들지만 나로서는 똥거름 무더기가 장관이고, 깨진 기와 쪽과 버리는 조약돌을 이용하는 방법이 장관이더라.”
 
이 말은 26권의 ‘열하일기’ 가운데서 백미 중의 백미다. 사신을 따라 중국 황제의 고희 축하사절로 중국을 여행하면서 그는 자금성이나 만리장성을 부러워한 게 아니라 이용후생, 즉 민중이 잘 살고 우리나라가 잘 살 수 있는 실용성을 부러워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면에서 이 책은 연암의 역작이자 우리 문화의 최고봉이다. 이런 책을 북한 학자들이 오래전에 먼저 완역한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읽거나 들은 ‘열하일기’는 발췌와 해석을 바탕으로 한 편린일 뿐, 이렇게 완전한 번역을 바탕으로 전작을 읽는 기쁨은 가히 흥분과 전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왕복 만리의 여행 체험을 바탕으로 묶은 ‘열하일기’는 당대 지식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파브르의 ‘곤충기’나 다윈의 ‘진화론’에 앞서 우리 학생들이 통독해야 할 피요 살이다. 그 점에서 비록 북한 학자들의 번역이지만 이 책 안에서 연암은 살아 있다.

 
이 책을 읽으면 독서 체험이 주는 자지러질 듯한 기쁨과 흥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 중의 책이다.

[출처] http://blog.naver.com/donodo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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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는 하루키가 내놓은 또 하나의 논쟁적 작품이다. 조지 오웰의 ‘1984년’에서 모티프를 얻었다는 작품답게 배경은 작가가 설정한 가상의 시점이다. 출판 전부터 ‘역대 최고 선인세’라는 상업적 이슈로 화제가 되더니, 아니나 다를까 출간 이후 서점가를 강타하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필자와 같은 386 세대에게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로 각인된 이 작가는 이후의 작품으로는 그에 필적할 만한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386 독자들은 하루키라는 이름에서 ‘상실의 시대’를 추억하며 지금껏 애증의 관계를 이어온 셈이다. 하지만 ‘1Q84’는 그동안 그에게 실망하고 그의 이름을 아련한 추억 속으로 밀어내려 했던 옛 독자들을 다시 작품 앞으로 끌어내고 있다.
 
아울러 그를 처음 접한 20대들에게는 ‘상실의 시대’가 아닌 ‘1Q84’의 작가로 자리매김할 조짐이 보인다. 하루키는 많은 독자가 호감을 보이는 것과 달리 문단이나 비평가들로부터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런 현상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순수문학상인 군조신인상과 아쿠타가와상은 ‘대중소설가’라는 이유로 하루키를 밀어내고 말았다.
 
그의 작품이 갖는 대중성이 대중적 글쓰기의 영향인지, 아니면 대중에게 잘 수용된 것뿐인지에 대한 논의도 치열하다. ‘나쓰메 소세키 이후 가장 중요한 일본작가’라는 평에서부터 ‘헤밍웨이의 아류’ ‘버터 냄새나는 미국문학 계승자’라는 혹평까지 하루키는 존재 자체가 늘 폭발력을 지녔다.
 
필자 또한 하루키에 대한 감정은 복잡하다. ‘상실의 시대’ 이후 그가 몰입해온 세계관은 필자를 납득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태엽 감는 새’와 ‘해변의 카프카’에서 그랬다. 작가로서 성공에 이른 하루키는 어느새 신화나 공상의 세계를 헤매 다녔고, 필자는 그의 현란한 변신에 제대로 적응하기가 힘들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1Q84’는 이런 논란을 어느 정도 잠재울 것으로 보인다. 독자의 이해와 작가의 욕망 사이, 딱 중간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학생운동, 신화, 허구 등에 몰입하는 것은 여전하다.
 
그의 책이 짐짓 심각한 담론을 주제로 다루면서도 서사적이지 않고 얄팍하다는 평을 받는 이유다. 하지만 이 책은 그의 전작들과 달리 허구를 절묘하게 은유와 상징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잘 짜인 협주곡 같은 그의 글쓰기는 하루키가 이제 새로운 영역의 문을 열어젖히는 데 성공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책은 2개 주제를 각자의 선율로 절묘하게 연주한다. ‘두 개의 달’, 하나는 정상적인 달이지만 다른 하나는 이지러진 달이다.
 
아오마메와 덴고, 이 남녀 주인공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후카에리라는 인물의 두 가지 세계가 합주를 하고 때로는 변주를 한다. 마지막에는 이들이 하나가 되어 ‘투티’(tutti·총주)에 이른다. 이야기는 한 편집자가 소설가 지망생인 덴고에게 후카에리의 소설을 고쳐 쓸 것을 제안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덴고는 이 범죄적 행위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지만, 이유를 말할 수 없는 매력에 빠져 저자인 후카에리를 만난다. 최근 하루키의 소설이 보여주는 공통된 작법이 여기서도 하나의 약점으로 드러나는 셈.
 
다른 한편에서는 아오마메라는 살인청부업자가 등장한다. 살인청부업자라기보다는 이유 있는 살인을 하는 일종의 청소부 역할이다. 매력적인 캐릭터의 이 여인은 아내를 학대하는 남자의 목에 얼음송곳을 깊숙이 찔러 넣는다. 이렇게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세계가 2부에서 하나로 만난다. ‘1Q84’에는 30년 전 일본을 뒤흔든 전공투, 옴 진리교와 같은 신흥종교, 여호와의 증인, 리틀피플이라는 결사체에 희생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이 펼쳐진다.
 

많은 작가가 사회문제를 다룰 때 직접적인 방식을 채택하는 것에 비해 하루키는 이렇게 신화적 상상력을 동원한다. 이러한 공상적 허구가 거슬리는 부분이 간혹 눈에 띈다. 세계관이 지나치게 비틀리기도 하고, 문장에선 심지어 의미 없는 반복과 흐트러짐까지 엿보인다. 어쨌든 하루키는 이 작품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해변의 카프카’가 미국에서 열렬한 반응을 얻었지만 국내에서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고 필자에게도 실망을 안겨줬다면, ‘1Q84’ 이후 하루키는 필자에게 또다시 강한 흡인력으로 새로운 기대를 안겨주는 작가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다시 부는 하루키 바람이 이유 없는 것은 아닌 셈이다

출처: http://blog.naver.com/donodo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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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Justice) 부재(不在)'의 시대다.

 

청문회에 등장하는 ‘권력의 리더’들이 하나같이 ‘관행’과 ‘실수’라 말하지만, 이를 비판해야 할 언론마져 ‘능력을 쓰는 것이지, 성인을 뽑는 것이 아니다’고 여기에 호응한다. 이쯤되면 소위 ‘관행’의 부근에도 가보지 못한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은 실망을 거듭하며 깊은 좌절에 빠지는 것이 당연하다. 이제 우리사회에서 감히 ‘정의’라는 말을 입에 올리기가 면구스러워 진 것이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정의’란 ‘사상가에 의하여 입법자나 위정자(爲政者)가 그 사회에서 궁극적으로 실현해야 할 규범 및 가치로 여겨 온 개념’이다. 이 개념에 따른다면 ‘신(神)’의 몫인 ‘진리(眞理)’에 반해, ‘인간의 몫’이라 할 수 있는 ‘정의’는 ‘진리’와 비슷할 것으로 여겨지는 ‘합의’ 내지는 ‘주장’ 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진리’를 주장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진리’는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드러낼 수는 없으나 가늠 할 수는 있는 절대적 가치’인 것이다.

 

때문에 인간이 ‘진리’를 규정하거나, 창조 할 수는 없지만, 대개 그에 부합한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가리켜 ‘정의(正義)’라고 불렀다. 또 정의는 ‘사적정의’와 ‘공적정의’로 나뉜다. ‘공적 정의’란 앞서의 선각자들이나 사상가들이 주장한 일종의 ‘원리’에 해당한다. 유가에서는 이것을 가리켜 ‘리(理)’라 하고 도가에서는 ‘(道)’라 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이런 ‘공적 정의’의 원리는 ‘사적정의’를 규율한다.

 

‘사적정의’란 ‘공적정의’의 바탕위에서 인간끼리 관계하고 맞부닥치며 행위하는 규범들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내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것’, ‘내가 덕을 보기위해 다른 사람을 짓밟지 않는 것’등이 이에 해당 할 것이다. 이 사적정의를 우리는 ‘법(法)’으로 규정하고 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심판관’과 ‘집행관’을 두고 있는 것이다.

 

한데 요즘들어 이런 ‘사적정의’가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있다.

 

좁게는 인간이하의 성정(性情)을 가진 범죄자들이 타인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고, 때로는 소외된 가장들이 아이들의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우유와 빵을 훔치기도 한다. 하지만 사적 정의에는 이런 단순한 것만이 아닌 좀 더 고차원적인 ‘통치의 원리’라는 것도 있다.

 

‘통치의 원리’는 리더쉽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를 규율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적절한 통제를 행하는 규율이다. 이것은 공적 정의와 사적 정의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한데 여기서도 ‘정의’를 찾아 볼 수가 없다. 입법자들은 대중을 강제하는 법을 만들지만, 정작 자신은 그 법을 지키지 않는다. 행정가들은 규범을 정하지만 스스로는 치외법권의 권능을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명료하다. 지난세기 우리가 추격성장기를 살았기 때문이다. 선두에 선 그룹들이 먼저 앞서나가며 닦은 길을 내쳐 달려온 것이다. 저 멀리 뒷꼭지조차 보이지 않는 ‘선도그룹’을 따라 잡기위해 모두가 앞만보고 내달려온 시기를 살아온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부조리’가 잉태되었다. 빨리 선두를 잡기위해 앞을 가로막는 사람의 뒷덜미를 채고, 다리에 걸려 넘어진 이들을 외면했다. 뒤처지는 이들은 야멸차게 버려졌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양심의 가책’을 외면한 시대였던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다. 추격성장기를 거쳐 선도성장기에 접어들면서 지난 세기에 용인되었던 ‘관행’들은 더 이상 ‘원리’로 받아 들일 수 없는 시대가 온 때문이다. 선두를 따라잡고 보니, 이제 ‘남이 낸 길’이 아닌 ‘우리 스스로 새로운 길을 내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뒤를 돌아보면 이제 우리를 쫓는 수많은 추격자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나아갈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선도성장을 위해서는 지도를 보는자, 나침반을 보는자, 길을 딲는자, 그들을 위무하는자, 모두가 필요하지만, 추격성장의 과정에서 합의하고, 아무르고, 손을 잡는 방법을 잃어버린 사회는 그 방법을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순간 추격성장 시대의 리더쉽을 가졌던 이들이 이렇게 말한다.

 

“나를 따르라. 과거의 겸험을 살려 우리가 이끌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따라잡는 추격에는 성공했지만, 대신 집단의 동질성을 훼손하고, 슬픔과 분노를 만들어 냈기 때문에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익숙하지 않다.

 

이제는 과거의 리더쉽이 아닌 새로운 리더쉽이 필요한 세상이 된 것이다.

 

과거와 달리 ‘위로하고, 이해하고, 위무하고, 따뜻하게 머리를 맞대는 리더쉽’, 그것이 바로 공적, 사적 정의를 모두 만족시키는 새로운 리더쉽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리더 한 명이 천 걸음을 앞서며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리더쉽이 아닌, ‘천 명의 손을 잡고 같이 한 걸음’을 설득하며 나아가는 리더쉽이 대중이 기다리는 혹은 선도 성장기의 새로운 테제이자, 새로운 시기 리더쉽의 모형인 것이다.

 

그점에서 ‘안철수 박사’는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쉽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동시대인과 서로 돕고 좋은 관계를 맺고 살고 싶다”고 말한다. 이 짧은 한마디 속에 새로운 리더쉽의 핵심이 들어 있다. ‘함께하는 사회’, 수직이 아닌 수평의 사회, 직렬이 아닌 병렬의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외부적 성공이 개인의 성공은 아니다. 남들은 성공과 실패를 평가해도 자신은 반대일 수 있다. 이런 걸 성공으로 생각하면 추락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겸손의 코드다. 하지만 이 말에는 나의 성공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강력한 연대의 메시지가 숨어있다. 어느 순간, 사회에서 평균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면, 그것은 사회가 내게 나누어 준 것이지, 내가 창출한 것은 아니라는 ‘공존’의 키워드가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지금 세기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다. “우리나라는 지금 가장 위험한 흑백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좌파, 우파는 머리 나쁜 사람들의 사고다. 세상을 그렇게 단순하게 이해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는 탈권위주의로 나가고 있다. 정치• 사회•문화•기술까지 모두 그렇다. 기술 역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기술만 살아남고 선택되고 강해진다. 20세기에는 정보를 독점하고 가공하고 전달하는 기득권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대중의 시대다”.

 

그는 구시대의 리더쉽을 가슴이 없는, 정의가 개입되지 않는 리더쉽이라 생각하는 듯 하다. 그의 핵심 코드는 ‘대중의 시대’라는 것이다. ‘선도성장기’의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여기서 인식의 또 다른 중요한 한 단면을 감추지 않는다. 추격성장기에 심판의 휘슬을 무시하고 달린 사람들이 구축한 아성(牙城)에 접근 할 수 없는 대중들이 미래의 기회를 상실하고 사회적 마이너리티로 고착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어떤 시스템을 가지느냐에 따라 교육은 달라지는데 지금 우리 시스템은 사회가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다. 결국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없으면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는 법인데, 이런 게 위기라는 인식이 없는 것이 진짜 문제다. 공감대 형성이 시급한데도, 지금 우리사회에 공감대가 없고 그것을 이끌어 낼 리더와 리더십이 없다”.

 

즉 ‘결과 평등주의’와 ‘성과주의’라는 이념적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서로 다투는 것이 아닌, ‘기회균등’이라는 제 3지대의 접점을 생각하고 있는 셈이다.

 

기회가 균등하다면 그 이후의 문제는 스스로의 근면과 노력에 달린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빌 게이츠’등이 말하는 가슴이 따뜻한 자본주의와 맥이 통하는 것일 수도 있다. ‘태만과 나태’를 방치하면 문명과 역사는 후퇴한다. 하지만 근면과 성실이 성과를 얻지 못하면 사회는 붕괴한다는 논리인 셈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겸손’을 잃지 않는다. 추격성장기에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등수를 나누어 일,이,삼등을 매기면 그만이다. 등수에 든 자와 들지 않은 자는 그 자체로 승패가 갈린다. 그 과정에 누가 반칙을 했건, 그 과정에 누가 다른 이에게 손을 내밀다가 늦어졌건 가리지 않는다. 기계적인 성과만 강조한 것이다. 그 결과 승자의 논리가 마치 모두가 받들어야 할 원리처럼 변질되고, 그 결과 정의는 ‘훼손’되어 버린다.

 

그는 여기에 대해 완곡한 표현으로 이야기한다

 

“재단하려는 것이다. 집집마다 가훈이 있다. 하지만 그것의 등수를 매길 수 없다, 건방진 생각이다. 사람의 생각에 우위가 없는 것이다. 모든 가치관은 중요하다. 그 사람의 역사가 반영된 것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가치판단이 미숙하다’라고 말하면 그것은 그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그렇지 않은 ‘선민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그런 사람들이 사회를 어렵게 만든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흑백논리를 가지면 훨씬 위험지는 것이다”.

 

이렇게 단순히 일등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선민이 되고, 뒤쳐졌다는 것만으로 열위가 된다면 모순은 마그마처럼 들끓고, 합의와 타협이 사라지고 분열과 절망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결국 안철수의 리더쉽은 간명하다.

 

‘정의’, 혹은 ‘정의로움’의 입장에서 모든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가 사라진 사회는 미래가 없다. 이것이 안철수가 젊은 청년들에게 ‘백마타고 온 초인’처럼 여겨지는 이유이자, 안철수 리더쉽의 근본인 것이다.

[출처] http://blog.naver.com/donodo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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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 박경철의 직격인터뷰] (16)


늘 새로운 것을 꿈꾸는 사람 안철수 


정부가 사령관 역할 하던 시대는 갔다


 

 

영웅이 역사 만든다고 생각지 않아 … 실패 용인하면 성공 확률은 높아진다
영재교육·수월학습 안 믿어 … 교육은 기능과 속도 위주로 가면 실패
위험한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 좌파·우파는 머리 나쁜 사람들 사고




 

인터뷰 동안 단 한 번도 카메라를 쳐다보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살면서 가장 두려운 것이 ‘어제의 안철수’보다 ‘오늘의 안철수’가 더 못한 것입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안철수 박사는 모든 언론사에서 1순위 인터뷰에서 후보로 꼽는 사람이다. 하지만 직격인터뷰에서는 늘 다음 순위로 밀려났다. 그의 이야기가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도리어 너무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에서다. 검색창에서 안철수를 쳐보면 그를 인터뷰한 기사가 넘쳐난다. 더구나 10년 이상 수 많은 인터뷰를 해왔음에도 그의 말은 늘 수미일관하다. 허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그러니 인터뷰어의 입장에서는 그를 만나서 물어볼 새로운 거리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이를테면 그는 전투에 임하기도 전에 상대를 주눅 들게 하는 장수인 셈이다.



안철수 교수, 안철수 사장, 안철수 교수, 그리고...



안철수 박사를 만난 곳은 대전에 있는 ‘카이스트’ 연구실이었다. 수인사를 나누자마자 그가 먼저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참 질문이 중요한 시대인 것 같아요. 제가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누군가가 물어주면, 대답을 하면서 스스로 생각들이 정리가 되죠. 좋은 질문이 얼마나 어려운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21세기 컨버전스(융합)의 시대에는 좋은 질문의 역할이 좋은 답변보다 중요한데, 우리는 너무 좋은 답에만 익숙해 있어요.”

(허를 찔렸다. 의도했건 아니건 그가 선공을 날린 셈이었고, 깊은 내공이 실린 초절정 고수의 부드러운 일격에 인터뷰어는 깊은 내상을 입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Q. 선생님은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가 던진 화두, ‘좋은 질문’에 대해 고민하며 던진 첫 번째 우문이었다.)
아뇨, 그건 아닙니다. 겸양도 아니에요 진심이에요. 저는 늘 고생 좀 안하고 실력을 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요. 한 분야도 제대로 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무언가 하나를 하기 위해서는 정말 죽을 만큼 괴롭죠. 절대 꿈에서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대입에서 일등을 한 친구들이 늘 교과서에 충실했다고 말하듯, 그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고시 삼관왕이 거만한 표정으로 '나는 원래 머리가 나빴다'고 말하는 유의 겸양은 아니었다. 진짜 그렇게 믿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그는 분명 재능이상으로 노력을 했던 수재형 인간이다.)

Q. 선생님은 계속 변신하면서 자신의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를 키워 온 대표적인 사람으로
여겨지는데요. 그렇게 자신의 가능성을 계속 키워 온 이유는 무엇 입니까?


음, 레버리지를 키운다는 것은 효율성을 극대화 한다는 뜻인데요. 저는 오히려 가장 비효율적인 선택을 해 온 사람입니다. 의학을 20년 공부했지만 결국 활용하지 못했고, 프로그래밍을 1만 시간 이상 했지만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죠. CEO 역시 10년 정도 하면서 좀 편해질 만 할 때 다른 공부를 하러 떠났고, 지금은 학교에 있잖아요. 만약 효율성을 ‘과거 가치를 활용하는 연속성’이라고 정의한다면 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Q. 그렇지만 이런 변신들은 스스로 택한 일인데, 말씀하신 대로 ‘과거가치’를 버리면서
그렇게 숨 가쁘게 변신해 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는 종교가 없어서 내세를 믿지는 않지만, 인생을 수동적으로 사는 것에 반대합니다. 동시대인과 서로 돕고 좋은 관계를 맺고 살고 싶어요. 과학자로서 생각하면 우주는 먼지로 (Star Dust) 구성되어 있잖아요. 여기서 만들어진 생명체가 나인 것이지, 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닐 거에요. 다시 우주먼지로 가는 거죠. 그래서 죽을 때 후회하는 것이 가장 두려워요, 그 마지막 순간에 실패다 싶으면 더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에요. 그래서 그 순간의 ‘의미와 재미 그리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어요. 변신처럼 보이는 것은 그런 선택의 결과물일 뿐이에요.

Q. 다음 ‘변신’은 어떤 것 입니까?

나도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어요. 총장님께 임명장을 받을 때 임기가 2027년까지로 되어 있어요. 테뉴어(석좌교수)인 셈이죠. 한데 제 명함에는 ‘안철수 연구소 이사회 의장’이 가장 먼저 적혀있어요. 교수는 상근이고 이사회 의장은 비상근인데 말이죠. 총장님께는 죄송하지만 과연 내가 정년까지 있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그건 자신이 없어요.

Q. 그럼 이미 다른 변신을 위한 준비를 하고 계신가요?

그건 아니에요. 앞으로 어느 순간 더 의미가 크고 보람과 재미가 있는 일이 닥치면, 혹은 그걸 안 하면 후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럴 수 있다는 뜻이죠. 하지만 의사를 그만둘 때 6개월, 안 연구소 그만 둘 때 1년을 고민했어요. 1년 내내 그것만 고민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 결과 죽을 때 후회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야 그렇게 하는 거죠. 하지만 지금은 그런 고민거리가 없어요.

Q. 지금까지 의사, 기업가, 교육자로 사시면서 단순히 그 역할 자체가 아닌, 일종의 사회적 메시지를 많이 던지셨는데, 혹시 앞으로 정치를 해 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정치… 우선 저는 정치를 몰라요. 하지만 저는 한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영웅이 역사를 만든다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당시 시대의 부름에서 앞에서 어떤 사람이 영웅으로 불렸을 뿐이다’고 생각하죠. 하물며 제가 그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요.

Q. 참여정부 시절 정통부 장관 제의가 왔을 때 거절하신 것도 같은 맥락이었습니까?

그때는 잘할 자신이 없었어요. 내 기준으로 성공이라는 기준에 맞출 자신이 없었던 거죠. 당시에는 시야가 넓지 못했고 실행능력도 부족했어요. 스스로 덜 여문 과일이라 생각했죠. 그러고 보니 ‘내 기준에 불충분했다’가 정답인 셈이네요. 그리고 저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를 좋아하지 않아요.

Q. 국가사회가 다시 요청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건 그때 가서 또 생각할 문제죠.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아니에요.

(통상 인터뷰에서 대개 이런 질문들은 상당한 긴장을 유발한다. 서로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인터뷰이와, 속내를 살피려는 인터뷰어의 탐색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철수 박사는 담담했다. ‘그의 말은 의미가 투명하다’는 세간의 평가들이 괜한 말이 아닌듯했다.)

Q. 앞서 말한 ‘내 기준의 성공’이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모든 성공하는 사람들은 재능이 있어서 그랬다고 여기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죠. 하지만 한 사람의 성공은 사회가 그에게 가치를 준 것이에요.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다른 사람이 개입되어야 하는 것이죠. 그런 맥락에서 전형적 의미에서의 성공은 의미가 없어요. 내 것이 아니니까요.

Q. 그런 측면에서 선생님은 스스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여기십니까?

저는 다른 것을 만들고 싶은(Make difference)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이름을 남기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크로마뇽인이 그린 그림을 보고 후세에 ‘누군가가 그림을 남겼구나’라고 하지, 그걸 누가 그렸느냐에 의미를 두지 않잖아요. 저 역시 뭔가 다른 걸 남기려는 것뿐이죠. 그런 것을 남기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여기고요. 그 점에서 저는 아직 성공과 실패를 판정 할 수가 없어요.



 
 

Q. 그것은 지나친 겸손인 것 같은데요. 이미 ‘안철수 박사’는 한국사회의 성공코드가 아닙니까?

외부적 성공이 개인의 성공은 아니죠. 남들은 성공과 실패를 평가해도 자신은 반대일 수 있잖아요, 나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았던 사람들이 추락하는 것을 많이 보았어요. 누구나 처음에 무엇인가 꾸준히 노력하면 실력이 쌓이죠. 그때 주위에서 과대평가하죠. 그런데 그 다음 단계에서는 이 사람이 꾸준히 노력하는데도 저평가 받는 시기가 와요. 하지만 노력을 계속하면 다음에는 또 재평가를 받으면서 오버슈팅을 하기도 하죠. 주변의 평가란 그런 것이에요. 이런 걸 성공으로 생각하면 추락하는 거죠.

Q. 그런 자세 때문인지 선생님은 적이 없는 것 같더군요. 어쩌면 저명인사 중에서 가장 적을 만들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대체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건 아니에요. 저는 99년에 두 가지 큰 경험을 했어요. 99년 11월에 '벤처의 99%는 망한다'는 발언을 한 후에 너무 욕을 많이 들어서 인생에서 가장 힘든 하루를 보냈었죠. 한국말로 그렇게 많은 욕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랄 정도였으니까요.

Q. 저도 그때 생각이 나는데, 그 말은 벤처거품을 공개 경고한 것이었는데, 그런 뒷이야기가 있었습니까?

당시 SKT 시가총액을 KTF가 추월했어요. 명백한 버블이었죠. 단지 코스닥에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으니까요. 그것을 보고 버블을 확신했죠. 그래서 이 버블에서 적절한 경고를 해서 희생을 줄여야 벤처에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한데 그 발언 이후 ‘벤처 기득권자가 후배들의 성공에 배 아파한다’는 비판을 심하게 들었죠. 심지어는 그 후 코스닥이 좀 더 오르자 '시장이 안철수를 심판했다'고 까지 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Q.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이익이 개입되어 있는 일에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격한 반응을 보이죠. 그럼 두 번째는 어떤 일이었습니까?

99년 말 ‘Y2K’ 문제가 불거졌을 때죠. 다들 걱정을 하기에 저는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했죠. 그랬더니 모든 언론과 여론이 그것을 외면하더군요. 당시 안 연구소가 제법 공신력이 있을 때였는데도 ‘Y2K’ 라는 자체가 하나의 큰 시장이었으니 모두 애써 외면한 거죠. 그 후 발언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 사람이 아무리 말해도 사회적 시스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무력감이 밀려왔어요.

Q. 그럼 어떤 계기로 다시 발언을 하게 되었습니까?


그 후 4년이 지나서 참여정부에서 관료, 벤처기업인, 투자자들이 모여서 '벤처산업조망' 회의를 하는데, 말미에 이헌재 당시 부총리께서 ‘벤처의 99%가 망하는 것은 국민의 상식’이 아니냐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다 맞장구를 쳤어요. 예전에 제가 그 말을 했을 때 심하게 비난했던 분들도 있었죠. 그분들은 제가 한 말을 다 잊은 거죠. 그때 ‘사람은 기억을 왜곡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벤처산업이 보증수표라 믿고 예전에 욕을 하던 사람들도 마치 자기가 오래 전부터 그렇게 생각한 것처럼 스스로 생각하는구나, 생각했죠.

Q. 그래서 이젠 바른말을 해도 욕을 먹지 않겠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아뇨. 사실 저는 그것이 오히려 감동적이었어요. 사람은 생각이 바뀐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처음에는 그 발언으로 고생했지만, 나중에는 돌이 굴러가는데 밀알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거죠. 그것이 더욱 가치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Q. 그런 선생님의 시각으로 본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사회입니까?

우리나라는 지금 가장 위험한 흑백논리가 지배하고 있어요. 좌파, 우파는 머리 나쁜 사람들의 사고죠. 세상을 그렇게 단순하게 이해하려는 것이니까요. 지금 시대는 탈권위주의로 나가고 있어요. 정치• 사회•문화•기술까지 모두 그렇죠. 기술 역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기술만 살아남고 선택되고 강해지죠. 20세기에는 정보를 독점하고 가공하고 전달하는 기득권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대중의 시대고요.

Q. 흑백논리 아래서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재단하려는 것이죠. 집집마다 가훈이 있어요. 하지만 그것의 등수를 매길 수 없잖아요, 건방진 생각이죠. 사람의 생각에 우위가 없는 것인데요. 모든 가치관은 중요해요. 그 사람의 역사가 반영된 것이거든요. 그래서 타인에게 ‘가치판단이 미숙하다’라고 말하면 그것은 그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가끔 그렇지 않은 ‘선민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곤 하죠. 그런 사람들이 사회를 어렵게 만들고요. 머리 좋은 사람들이 흑백논리를 가지면 훨씬 위험해지죠.

Q, 말씀을 들으면 ‘마이너리티의 정서’가 강하게 느껴지는데, 하지만 사실 선생님이야 말로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이너서클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던가요?

저는 항상 ‘마이너리티 오피니언 리더’이더군요. ‘오피니언 리더’라는 사실까지 부인하지는 않겠어요. 하지만 저는 이너서클에 대한 소속감도 없고 정체성에 대한 자각은 더 없어요. 사람의 소속은 상대적이거든요. 결국 기득권이란 ‘나에게 안 보이는 세상을 없는 세상으로 보느냐, 상대적으로 이해하느냐의 차이’일 텐데 그 점에서 저는 마이너리티에 가깝죠.

Q. 하지만 우리사회의 리더십이 점점 엘리트 교육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 이것은 어떻게 보시나요?

저는 영재교육이나 수월학습을 안 믿어요. 조기 졸업해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누가 있던가요? 없어요. 사회에서는 얼마나 많이 아느냐는 일부일 뿐인데 그런 사람들은 더 중요한 대사회․대인관계에 소홀하거든요. 지금같이 엘리트 스포츠선수처럼 뽑아서 도덕적인 리더와 엘리트 리더가 나올 수 있겠어요? 미국금융위기의 핵심은 전부 와튼․하버드․스탠퍼드 MBA 출신들이었어요. 과연 이런 엘리트들이 사회에서 보탬이 될 것인가 생각해보면 차라리 없는 게 낫죠. 교육은 기능과 속도위주로 가면 실패하죠.

Q. 그래도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요?

맞아요, 인위적 시스템이 문제죠. 어떤 시스템을 가지느냐에 따라 교육은 달라지는데 지금 우리 시스템은 사회가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죠. 결국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없으면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는 법인데, 이런 게 위기라는 인식이 없는 것이 진짜 문제죠. 공감대 형성이 시급한데도, 지금 우리사회에 공감대가 없고 그것을 이끌어 낼 리더와 리더십이 없어요.

Q.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해법이 있나요? 위기의 크기에 비해 문제의식이 분산되어 있어요. 그러니 해법이 제각각이고요, 그것이 진짜 위기죠. 그런 점에서 현재는 유례없는 위기입니다. 지금 경제위기 위기지만, 크게 보면 5년 내에 새로운 방향을 찾지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지 몰라요. 문제는 사람들이 이런 위기의식이 없는 것이 더 큰 문제에요.

Q. 그래도 위기의식은 많이 있는 것 같은데요. 선생님이 말하는 위기의식은 다른 것인가요?

대표적인 사례를 들면 자꾸 ‘대기업이 잘 돼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국가경제도 포트폴리오가 있어야죠, 환란 때 이미 증명되었듯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벤처가 공존해야하고요. 대기업 근로자가 130만, 공무원이 약 100만인데 그럼 나머지 4000만은 어디서 먹고 살아야 하겠어요? 문제의식의 포커스가 자꾸 대기업으로 가면 안 되는 거죠. ‘대기업총수들 사면시켜줘도 일자리 창출을 안 해서 섭섭하다’ 이렇게들 말하지만, 그것은 이미 기득권을 가진 대기업에 자선사업을 요구하는 것과 같아요.

Q.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나 벤처 육성이 필요하다는 얘기인가요?

대기업이 파트너 죽이기로 나가면 미래의 이익을 빼앗아 가져오는 것과 같아요. 예를 들어 요즘 환율이 올라도 수출 대기업들의 이익이 안 나죠? 이유는 중요부품을 ‘글로벌 아웃 소싱’, 즉 일본이나 대만의 중소기업에서 수입하기 때문이에요. 건실한 중소기업을 못 키운 대기업이 지금 그 칼을 맞고 있는 거죠. 앞으로도 이런 식이면 국가의 미래가 없어요.

Q. 중산층의 붕괴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하시는군요?

우리나라 대기업이 이익의 상당부분을 국내에서 내면서 글로벌 기업이라고들 하죠. 한데 스스로 자문해봐야 해요. 국내 소비자가 사주었기 때문에 기술이 안정되어 해외로 나간 거죠. 그런데 중소기업을 죽이면 그곳에 다니는 중산층들이 무너지고, 결국 소비자가 사라지는 것 아닌가요? 지금의 구조로는 글로벌 기업의 국외 경쟁력이 없어요, 중소기업을 도와주는 것이 ‘시혜’라는 생각을 하는 한 아직 멀었죠.

Q. 한데 ‘벤처’를 살리자는 말에 거부감을 갖는 이유가, 과거 벤처기업의 ‘자본놀음’이
라는 부정적 정서도 상당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2003년도 그때 회의에서 이헌재 전 총리도 '제 2의 벤처붐'을 이야기했었죠. 하나의 용어가 자리 잡으면 안 바뀌는 거예요. 이젠 새로운 용어와 개념적 접근이 필요해요. 그래서 저는 벤처란 말을 쓰지 말자고 했죠. 벤처는 ‘첨단기술을 가진 젊은 사람들이 빠르게 성장한다’는 엘리트적 의미가 강했거든요. 진짜 기업가 정신은 ‘구멍가게라도 만들어서 고용을 창출하고 같이 산다는 생각’인데 말이죠. 벤처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런 정신이 중요한 풍토가 되어야 하죠.

(여기서 화제를 돌렸다. 지금까지의 질문은 이번 인터뷰의 주제인 ‘사회적 멘토’로서의 안철수를 기준으로 던진 것들이었지만,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오늘날 안철수를 만든 과정과 그의 개인적 철학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Q. 2000년 초 상당한 자본이익이 가능했는데 ‘안철수 연구소 지분’을 지금까지 그대로 가지고 계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더구나 코스닥 시장의 거품까지 예측했었는데요.

스스로 ‘지금은 버블이다, 올해 많은 기업가들 중에서 금융사범이 나올 것이고 코스닥이 하강할 것이다’고 하면서 내가 뒤로 이익을 내는 것은 안 되는 일이죠. 인생과 사업은 굴곡이 있고 안 될 때 어떻게 보내느냐가 핵심이거든요. 그래서 어려울 때 내가 모범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Q, 혹시 선생님은 청교도주의자(혹은 금욕주의자) 이십니까?

아닙니다. 저는 청교도적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에요. 오히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어요. 어떨 때는 하고 싶은 것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살았나 싶을 때도 있어요.


Q. 지난 10년간의 인터뷰를 찾아봐도 한 번도 말을 뒤집거나 표리부동한 말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던데, 대체 그런 일관성을 어떻게 유지 하십니까?


노력한 적은 없어요, 과거의 결정을 돌아봐서 지금과 맞추려고 하면 오히려 자꾸 달라지죠. 자기 스스로 마음 편하게 살고, 스스로 들여다보고 스스로 느껴가야죠. 앞을 보고 살아가야 원칙이 생기는 거지 뒤를 돌아보며 살면 원칙이 없어지죠.

Q. 스스로 생각하는 안철수 박사는 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저는 ‘내부가치 지향적인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나와의 비교가 가장 중요해요.

Q.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나중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저는 살아간 흔적이 남고 싶어요. 내가 죽고 나면 내가 없었을 때와 같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사고’이건, ‘제도’이건 무엇이건 간에 그저 흔적이 남기를. 아까 말씀 드린 차이와 흔적을 만드는 일(Make difference)을 했으면 좋겠네요.

Q. 요즘 시대에 정부는 어떤 일을 가장 먼저 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정부의 역할이 예전에는 모든 권한을 다 가지고 끌고 가는 커멘더, 즉 사령관 역할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사회 각 분야가 성숙했어요. 이젠 정부가 끌고 갈 일보다 각계각층을 설득하고 조율하며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이 중요하죠. 예전에는 깃발 들고 나가면 그만이지만 이제는 정부가 힘들고 일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답답하고 티가 안 나고 시간이 걸리겠죠. 정부가 이 티 안 나고 답답한 것을 받아들여야 우리사회가 제대로 갈 수 있어요.

Q. 그럼 기업과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미국 실리콘밸리는 실패의 요람이죠. 하지만 실패를 용인한다는 게 달라요. 점점 성공의 확률이 높아지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실패를 하면 재기가 어렵기 때문에 20대 인재들이 도전을 꺼려요. 그래서 20대가 안정지향이 되는 거죠. 사회시스템이 이들을 소떼로 몰고 가는 거예요. 불량 청소년은 없어요. 불량어른만 있지요.

Q.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말씀하신 ‘닌텐도’가 우리에게는 왜 없냐는 화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참 좋은 화두를 던졌어요. 정말로 좋은 질문이죠. 그러나 질문만으로 그치면 안 돼요. 그런 회사가 안나오는 사회요인을 먼저 바꿔야죠. 그것이 정부가 할 일이고요. 대통령이 ‘닌텐도가 왜 안 나와? 왜 아이디어가 없어?’ 라고 한 건 얄팍한 질문이 아닐 거라 믿어요. 그럼 이제 정부가 고민해봐야 할 것이 생겼네요. 세계적으로 표준을 장악하고 소프트웨어 산업을 키워야죠, 상생으로요.

Q. 최근 들어 안철수 연구소가 다소 정체된 느낌인데요. 선생님이 CEO를 그만둔 때문일까요?

퇴임 시 매출 300억, 영업이익 100억이었는데 지금 매출은 두 배, 이익은 비슷하죠. 저는 공익적 기업이라는 안 연구소의 정신을 믿어요, 그것이 안 연구소의 펀더멘털이죠. 이번에 이어받은 신임 CEO가 이 정신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죠. 지금 사업구조를 프로덕트에서 서비스 비즈니스로 바꾸는 중이에요.

Q. 그 동안 안 연구소의 변신노력이 더뎠다고 보시나요?

우리 회사가 예전에는 백신에서 보안사업을 했지만 이제는 ‘보안 서비스’로 가고 있어요. 문어발 확장보다 한 분야에서 퍼져 나가야 하는데 그 점이 약간 부족했죠. 지금 인터넷에서 ‘사회적 네트워크’에 기회가 많아 보이는데 이쪽에 실험이 진행 중입니다. 사내 벤처로 시작한 고슴도치 같은 것도 새 영역에 대한 작은 실험 같은 것이죠. 약간 늦었지만 진행 중입니다.

Q.그럼 안철수 연구소는 이사회의장 안철수 박사를 믿고 장기 투자해도 되나요?

우리 회사의 가치는 분명히 있어요. 하지만 가격에서 부족한 부분은 노력 할 것입니다.

Q. 요즘 코스닥 시장이 뜨거운데. 우리나라 코스닥 시장의 문제점은 어떤 것이라고 보십니까?

우리나라 코스닥 시장은 효율적 시장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루머와 테마 같은 불투명성이 오히려 프리미엄이 되고, 투명성이 반대로 평가절하 요인이 되는 시장이죠. 이런 점은 국가적 망신이에요. 코스닥 시장은 불투명함을 제거해야 하는 숙제가 있어요.

Q. 상당한 독서광이라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서가에 전공 이외의 책이 가득한데요?

저는 활자 중독증이 좀 있어요. 정신병처럼 눈에 글자가 띄면 마지막 글자까지 읽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 도서관의 책을 모두 읽었죠. 덕분에 자의식이 강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어떤 책을 읽었는지는 기억이 안나요. 나의 에고(자아)에 어떤 것이 영향을 미쳤는지 모르겠어요.

Q. 많은 책을 읽으셨는데 독서법도 남달랐다고요?

독서방법은 좀 달랐어요. 예를 들어 소설을 읽으면 줄거리에 관심이 없었어요. 대신 주인공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에 관심이 갔어요. 예를 들어 ‘금삼의 피’를 읽으면서 ‘왕인데 왜 이렇게 불행할까, 나라면 어떻게 할까. 왜 화를 내지?’라고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해봤어요.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니까 정작 주인공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스토리를 잊어 먹더군요.

Q. 선생님이 마음이 약해서 거절을 잘 못하신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저는 가능하면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해요. 고졸여사원에게도 아직도 반말을 못하거든요. 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다 이해가 되는 일이에요. 저는 가장 불행한 시간이 이메일로 거절의 답을 쓰는 것인데 하루에 한 시간 반이나 걸려요, 때론 그런 처지가 서글퍼 보일 때도 있어요.

Q. 의사로서도 성공했을 것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의대교수로서 3가지 조건에 부합되더군요. 우선 저는 신경생리가 재밌었어요. 또 잘 할 수 있는 일이었고요. 그러나 이건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백신개발은 당시로서는 나 혼자였거든요, 내가 안 하면 사라지는 거였죠. 그래서 처음에는 7년간 낮에는 의대교수, 밤에는 백신개발자 일을 했는데, 피곤한데도 일단 개발을 시작하면 새벽까지 푹 빠지는 거예요. 그래서 같은 정도로 잘하는 일이라면 더 재밌는 일을 해야겠다 싶었죠.

Q. 마지막으로 앞으로 인생의 계획은 어떻게 세우고 계십니까?

나는 장기계획을 세우는데 잘 안 맞는 사람이에요. 어릴 때는 아버지처럼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진료하는 의사가 될 줄 알았어요. 열심히 살면 의사가 될 줄 알았는데 열심히 사니까 의사를 그만두게 되더군요. CEO 때도 마찬가지고요. 지금도 가장 편한 일은 안 연구소 CEO 일 테지만, 결국 교수를 하고 있죠.

마치며

대개 인터뷰를 하기 전에는 늘 대상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게 마련이다. 자료를 조사하고 저서를 읽다 보면 인터뷰이에 대한 간접적 판단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만나보면 그 느낌의 생소함에 당황하곤 한다. 때문에 때로는 인터뷰이의 약점은 최대한 가리고, 가능하면 장점을 부각하려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것이 인터뷰에 응해준 수고로움에 대한 예의이자 사람 사는 세상의 예(禮)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철수 박사는 딱 느낌 그대로였다. ‘정돈되고 정갈하며, 투명한 사람’. 사실 이 이상의 상찬을 못하는 것이 아쉬울 만큼 그는 인격적으로 인터뷰어를 매료시켰다. 다만 이번 인터뷰의 주제가 ‘어려운 시기의 멘토’였기 때문에, 그의 인간적 매력을 외면하고 건조하고 딱딱한 인터뷰로 진행했다는 것이 유감스러울 따름이었다. 


[출처] http://blog.naver.com/donodo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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