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 박경철의 직격인터뷰] 재미를 선택한 삶 주철환
‘주철환’이라는 이름은 예능 프로듀서로들 사이에서 하나의 신화다. ‘모여라 꿈동산’부터 ‘대학가요제’, ‘퀴즈 아카데미’, ‘일요일 일요일 밤에’, ‘우정의 무대’ 등 그가 연출한 프로그램들마다 ‘대박’이 터졌고, 그는 예능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불렸다.
이렇게 잘나가던 주철환이 현장을 떠나 이대교수로 강단에 서더니, 7년 만에 다시 경인TV(OBS)의 CEO로 변신을 거듭했다. 질주였다. 하지만 최근 경인TV CEO를 ‘타의’로 그만두면서 처음으로 ‘실패’라는 평가와 마주하게 되었다. 세간의 관심이야 온통 그 부분에 쏠려 있지만, 오늘의 직격인터뷰의 주안점은 그의 ‘변신’이 아니라 ‘인간 주철환’에 있다.
꿈꾸는 낭만주의자
호모 사피엔스로서의 한 인간을 규정하는 기호는 대개 '직함'이다. 때문에 사람을 만날 때 ‘그’를 부를 마땅한 사회적 호칭이 없을 때 우리는 당황한다. 그를 두고 잠시 고민했다. 전(前) 사장, 전 피디, 전 교수라 부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리포터 안경에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수줍은 손을 내미는 그를 향해 유일한 현직 호칭인 ‘주 박사님’이라 부르기도 조화롭지 않았다. 그에게 물었더니 아무렇게나 부르라고 했다. 그래서 ‘선생님’이라 부르기로 했다.
Q. 선생님은 낭만주의자십니까?
그건 아니에요. 물론 때로는 그럴지도 몰라요. 낭만을 견지 할 때는 낭만주의자고 때에 따라서는 고전주의자나 현실주의자도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낭만’이 제가 좋아하는 삶의 유형이긴 해요.
Q. 처음에 중학교 국어교사에서 PD로 전업한 것도 특이한 이력인데 계기가 있었나요?
원래 모교에서 교사를 하는 것이 꿈이었죠. 한데 군대가 좀 늦었어요. 제대 전에 MBC 앞을 지나는데 사람들이 게시판을 보고 있더라고요. 채용공고였죠. 호기심에 들여다보니 과목이 ‘국어, 영어, 상식, 작문’인데 국어는 원래 전공이고(그는 국문학 박사다), 당시 카추샤 복무중이라 영어는 약간 자신이 있고, 자질구레한 상식도 많은 편이라고 착각하고 살았죠. 게다가 중고등학교 교내 백일장에서 두 번의 장원을 한 적이 있으니 그 과목들이 와 닿아 그냥 원서를 받아왔죠.
Q. 아무리 그렇다고 난데없이 교직을 버리고 ‘예능 PD’를 선택하나요?
당시 MBC 최병윤 PD가 후배 병사였는데 그가 신방과 출신이었죠. 그때 그에게 PD시험 한 번 보면 어떨까하고 물었더니, ‘당신은 죽어도 안 된다 합격하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오기가 나서 시험을 쳤는데, 필기에서는 합격하고 최종면접에서는 당연히 떨어졌죠.
Q. 왜 당연히 떨어졌다고 생각합니까?
PD가 정확히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내가 왜 PD를 하고 싶은지도 몰랐으니 당시 면접을 보던 이웅희 사장이 오히려 당혹스러워하더라고요. 그 후 ‘내 길이 아니다’고 생각 했는데 몇 달 뒤 추가모집으로 합격했다는 통보가 왔어요. 그 순간 재밌을 것 같아서 입사를 결심했지요.
Q. ‘재밌을 것 같아서’라면 정말 특이한 이유인데, 그 후에도 다시 교수, CEO까지 숨 가쁜 변신을 했거든요. 말씀을 듣고 보니 변신을 놀이처럼 하는 것처럼 생각되는데요?
그건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 실례죠. 내가 선택하고 도전하는 곳의 공통점은 ‘재미있는 곳’이라는거죠. 나는 어릴 때 TV와 라디오를 좋아했고 가르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 변신도 교육 아니면 방송쪽이었으니, 그건 ‘변신’이라기보다는 ‘진화’라고 할 수 있죠.
Q. 마지막 진화였던 경인TV(OBS) 사장으로 갔을 때, 주변의 우려 섞인 시선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왜 그 제안을 받아들였나요?
PD를 하다보면 늘 ‘내가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죠. 사장이 프로그램 존폐에 영향을 미치는 최종 결재자니까요. 저도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뜬금없다. 황당하다’라고 생각했지만, 내 마음대로 좋은 프로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나를 그쪽으로 이끌었죠.
Q. 하지만 아무리 숙원이 있어도 그렇지, 정년과 명예가 보장된 대학교수보다 미래가 불투명한 지역방송사장이 되는 것이 현명한 결정이었을까요?
저는 지금도 후회는 정말 하지 않아요. 인생은 다양하게 살다가 죽는 게 좋죠. 65세까지 이대 교수로 있는 것도 좋지만 ‘우여곡절 있는 삶이 밋밋한 평화로움보다 재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Q. OBS에서 고통스럽지 않던가요? 재직시절 간간히 괴로운 심경을 내비쳤는데요.
오히려 그 괴로움이 나를 키웠죠. 저는 태생적으로 성공보다는 성장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Q. 경인TV에서 결국 ‘토사구팽 당하고 말 것이다’는 주변의 우려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나요?
그런 생각은 못했죠. 그렇게 생각했다면 아마 가지 못했겠죠. 사냥개가 마지막 순간에 보신탕집에 끌려가면서 ‘보신탕집 주인도 측은지심이 있겠지’하고 가지는 않죠. 나는 만남의 의미를 중시해요. 그냥 ‘재미있을 것이다. 즐거울 것이다’라고 생각했죠. 몇 개의 측면에서 억울하달 수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도 사라졌어요.
Q. 앞서 낭만주의자는 아니라고 했는데, 사장을 하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면 그 자체가 낭만주의적 사고가 아닌가요?
그건 솔직히 인정!
(연배가 위인 사람에게 이런 표현이 예(禮)는 아니지만, 그는 무척 천진난만한 사람이었다. 인터뷰이에게 꽤 신랄한 느낌일 수 있는 질문에도, 그는 어린아이가 장난을 걸듯 탄력적인 반응을 보였다)
Q. 그곳에서 지낸 2년은, 선생님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요?
서로 의미 있었고, 앞으로도 서로 잘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쪽에서 초기에 내 달란트가 필요했다면 그것으로 다행이고, 나로서도 일부라도 해보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다만 한 10년 정도에 걸쳐 제대로 만들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이죠.
Q. 프로듀서로서의 이상과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현실 같은 것을 생각하지 못했나요?
지금은 강하게 절감해요. 재주를 가진 사람들을 모으려면 ‘돈과 시간’이 필요하고 많은 것들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주주들이 볼 때는 ‘철없는 생각이다’고 보였겠죠. 본질적 입장차이죠. 그쪽에서 서로 헤어지며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고 하던데, 저는 그 말이 진심이라고 받아들여요.
(그는 직원들과 정이 너무 많이 들어 아직도 송별회 중이라고 했다. 아울러 주주들과의 이견과, 임기 중에 후임이 거론되던 난감한 전후사정 등에 대해서는 애써 말을 아꼈다. 그 전후사정이란, 그가 사장으로 재직하던 중 모 인사가 대주주인 영안모자 부회장과 후임사장으로 내정되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더니, 그리 머지않아 그가 퇴임한 것을 가리킨다)
Q. 이쯤에서 PD시절로 돌아가 보죠. PD 주철환은 다른 프로듀서들과 어떤 다른 점이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교육시스템에 들어가 본 PD예요. 교사에서 PD로 다시 교수에서 CEO로 갔으니까요. 교육은 사람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것이고, 프로듀서는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니 일치점이 있었어요.
Q. 방송연출 못잖게 책도 많이 쓰셨는데요? 동기가 무엇입니까? (그는 그동안 무려 11권의 책을 썼고, 그 책들은 지금도 프로듀서를 지망하는 사람들의 필독서로 꼽히고 있다)
PD는 프로그램으로 말한다고 하죠. 하지만 아니에요. 시인은 시로 말해도 되죠. 왜냐? 독자가 시어를 마음대로 해석해도 되니까요. 하지만 프로듀서는 ‘뽀뽀뽀’부터 노인프로까지 시청자가 열려있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기획의도를 가져도 그대로 되지 않죠. 모든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는 다 좋아요. 심지어는 막장드라마도 그래요. 하지만 그렇게 전달되지는 않죠. 그래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책으로 쓰고 싶어지는 거예요.
Q. 기획의도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은, 현실과 이상의 차이인가요?
맞아요. 예를 들어 기획은 ‘기쁨을 줘야한다’로 되어 있지만, 현실은 그 기쁨이 ‘마음을 끌기보다 눈길을 끄는 것’으로 변질 될 수밖에 없죠. 방송은 자본과 결합되어 있으니까요. 폭력을 예를 들면 예전에는 뺨을 때렸다면 지금은 음식을 얼굴에 던지죠. 분노의 표현이 점점 자극적이 되어가죠. 그렇게 방송이 추락하고 타락하는 것이죠.
Q. 그렇다면 ‘OBS’에서는 자본의 속성, 즉 시청률로부터 독립이 가능할 것이라고 여겼나요?
그 점은 OBS가 ‘본의 아니게’ 나를 속인 셈이죠. 처음에 ‘공익적 민영방송’을 한다고 했고, 회사의 슬로건도 ‘희망과 나눔의 빛’이었거든요. 나는 그게 마음에 들었었죠. 그래서 저는 신입사원을 ‘희나리’라 불렀어요. ‘희망, 나눔, 빛’이라는 의미로요. 그런데 금세 시청률이 아닌 시청자 지상주의로 변질되어 버렸죠. 결국 PD의 낭만적 기획의도와 다를 바 없는 것이죠.
Q. 스스로도 그 점을 이제서 인식하신 것인가요? 스스로 쓴 기획의도와 스스로 만든 프로그램이 다르듯, 기업의 슬로건과 실제가 다르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요?
음. 어쩌면 낭만주의자가 도달한 막다른 골목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는 이 부분에서 ‘본의 아니게’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경인TV의 잘못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실수라고 말하고 싶어했다)
Q. 스스로를 ‘카메라를 쳐다보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던데, 카메라는 어떤 세상을 비춰야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세상은 동물농장이지 않나요? 소, 돼지도 있고 심지어는 바퀴벌레도 있어요. 이 중 어떤 것을 무조건 다 박멸해야하나요. 그걸 인정하고 다양성이 존중되면 좋겠어요.
Q.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으신데…?
교회를 다니지는 않지만 성서에 나오는 말이 다 맞는 말 같아요. ‘사랑하면 이익이 있다. 또 화난 사람이 적어졌으면 좋겠다’ 싶어요. TV뉴스를 보면 모두 화내고 또 화를 낼 만한데, 하지만 다들 좀 차분히 생각하면서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면 좋겠어요. 정의를 위해 무조건 싸워야만 하나요? 너무 거칠어요. 거친 말과 거짓말이 너무 많죠. 저는 말이 음악처럼 되었으면 좋겠어요.
Q. 언어에 대단한 감각이 있으신데, 그렇게 언어에 천착하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말은 원래 가족이었는데 요즘은 이산가족이 된 것 같아요. ‘두운, 요운, 각운’이 비슷한 말이 많죠. 저는 그런 말을 찾는 것을 ‘언어의 핏줄 찾기’라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예전에 개그맨 서경석, 이윤석에게 ‘꿈, 꼴, 꾀, 끼, 깡, 끈’을 가지라고 말했죠. 또 이대에서 신입생들에게 ‘스티븐 코비의 일곱가지 습관’을 얘기하면서는 ‘ㄱ’역으로 시작하는 일곱 가지 단어를 이야기했어요. ‘관찰, 경청, 기억, 기록, 관리, 결합, 극기’와 같은 식이죠. 경인TV에서 신입사원을 뽑을 때는 ‘오성’을 얘기했는데, ‘개성, 품성, 지성, 근성, 정성’과 같은 것이죠. 어떤 사람은 말장난이라고 싫어하지만 제게는 우리말에 대한 애정이라고 할 수 있죠.
(최고의 예능 PD답게 그의 말은 현란하고 감각적이었다. 그는 그동안 인터뷰어가 만난 어떤 사람보다 뛰어난 언어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위에 소개한 조어능력(造語能力) 뿐 아니라, 그가 말을 할 때 줄줄이 따라 나오는 ‘고전, 시, 가사’ 등에 이르는 화려한 인용구들은 실로 놀라운 수준이었다.)
Q. 이런 언어능력이 예능 PD로서 성공의 요인이 되었나요?
아니요. 나는 그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을 뿐이에요. 수업이라면 그것을 달아오르게 하는 기폭제가 있어야 하듯 프로그램 역시 그렇죠. 저는 그래서 노래를 많이 부르는데 노래는 움직이는 시(詩)라고 할 수 있죠. 시는 언어의 농축액이니까요. 시를 ‘쓴다’고 하는 것은 인생이 쓰기 때문이고, 노래를 ‘부른다’고 하는 것은 누가 부르면 ‘네’ 라고 대답하듯 노래를 부르면 메시지가 ‘대답’하기 때문이며, 그림은 ‘그린다’고 하는 것은 그리운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듯, 저는 부르고 응답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죠.
(어쩌면 선문답 같은 이 대답 하나에 ‘주철환’이라는 사람의 철학과 특질들이 모두 녹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Q. 현장을 오래 떠나있었는데, 본인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끼’가 넘쳐난다고 여기지는 않으십니까?
아 그건 흐뭇한 지적이에요.
Q. 부정적인 관점에서는 카리스마가 없는 것 같고, 긍정적으로는 성품이 상당히 부드러운 것 같은데요. 이점은 프로듀서로서는 약점이 되지 않나요?
‘퀴즈아카데미’ 시절에 어떤 기자가 문제가 너무 가볍다는 기사를 써서 지적을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럼 민주주의의 장점 같은 것을 내야 할까요? 그런 것은 토론프로 같은 곳에서 다뤄야죠. 저는 퀴즈는 문제를 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라고 일부러 대답을 드렸어요. 그랬더니 그때 상대가 ‘참 친절하군요’ 라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어찌 보면 저는 솔직히 친절해서 뜬 건지도 몰라요.
Q. PD협회보 인터뷰에 나의 주특기는 약간의 창의력과 약간의 친밀감이라고 했더군요.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은 행복이죠. 따라하는 것은 기능이구요. 물론 기능도 중요하지만 덜 행복하죠. 이것이 일에 대한 제 철학인데, 그러려면 내 자신이 먼저 작품이 되어야하죠. 주철환이라는 작품이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예요. 새롭지 않고 붙박이로 남아있으면 매력이 없어요. 퀴즈아카데미에서도 당시에는 보통 퀴즈에 우승하면 돈과 선물을 줬지만 나는 여행을 보냈죠.
Q. 대중음악에 조예가 상당하시다면서요?
어릴 때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부터 사랑해왔죠. 초등학교 4학년 때 문주란씨와 윤복희씨를 너무 좋아했지만 예능 PD를 하면서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어요. 그러고 보면 참 미스터리한 일이었죠. MBC에는 추억의 가수가 나오는 프로그램이 없었거든요. 윤복희씨는 이후 OBS에서 사장으로 만났죠. 그때 ‘나의 우상이 지금 내 앞에 있다니’라며 혼자 행복해했었죠.
Q. 요즘 예능프로에 비판이 많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나는 항상 당대가 옳다고 봐요. 원로 코미디언 한 분이 요즘 애들 기본이 없다며 유재석, 강호동을 안 좋게 얘기 하시기에 이런 얘기 안하셨으면 좋겠다 싶었죠. 또 원로 가수 한 분이 처음에 서태지 노래를 두고 ‘소음이다’라고 하실 때, ‘나중에 후회할 걸’ 이라고 생각했어요. 요즘 막장 드라마도 마약 남용 같은 것이라면 말리겠어요. 하지만 저는 그것이 시청자의 삶을 참혹하고 불행하게 만든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Q. 그럼 막장 드라마까지도 나름대로 세태를 반영하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는 뜻인가요?
시간이 지나고서도 남는가가 중요하겠죠. 서태지 이후 많은 비슷한 그룹들이 나왔지만 서태지만 남았고, 조용필 이후 많은 남성가수가 나왔지만 조용필만 남았어요, 또 패티김 이후 많은 여류가수가 나왔지만 패티김만 남았죠. 그것이 가치고 진정성일 테죠. 시간이 지나면 남는 것과 사라지는 것이 있는데, 지금 너무 고민하면 그것이 바로 ‘할머니의 마음’ 즉 ‘노파심’이죠. 그런 걸 두고 ‘인간정신을 훼손시킨다’와 같은 걱정들은 문자 그대로 오버죠.
Q. 만약 지금 다시 예능 PD로 컴백하신다면 다시 좋은 프로를 만들 자신이 있나요?
지금 나는 무한도전의 김태우 PD를 이길 자신이 없어요. 말하는 것을 보니 기능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더군요. 생각이 뚜렷해요. 지금 제가 그와 싸워서 어떻게 이겨요.
Q. 그래도 주철환의 생각이 반영된 프로가 만들어질 수 있지 않나요?
차범근 감독도 당대의 선수였지만 지금은 해설가로 충분하죠. 가끔 축구 해설가가 경기 중에 선수들을 많이 지적하지만, 저는 제가 캐스터라면 ‘선생님도 같이 뛰시죠’라고 농담 한 번 하고 싶어요. 주철환이 지금 PD들과 겨루는 것이 바로 웃음거리가 될 수 있죠. 패티김이 ‘랩과 댄스’를 할 수 없듯이 말이죠. 다만 ‘55세의 주철환은 경륜으로 만들 수 있는 프로를 30대 PD는 할 수 없는 여건’이라면 다시 할 수 있겠죠.
Q. 대중문화에는 ‘재미만 있지 위로가 없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위로의 정의가 뭐죠? 그것을 즐거움과 기쁨으로 바꾸면 되지 않나요? 저는 이렇게 말해요. ‘비극적으로 살려면 비교만 해라! 즐겁게 살려면 비유를 하라!’ 그래서 지금 저를 어떤 라이벌 PD와 비교하면 둘 중 한 사람은 화가 나겠지만, 대신 ‘그 분은 장미, 나는 프리지아’ 이렇게 비유를 해주면 둘 다 행복하지 않을까요? 따지는 삶은 곤혹스럽죠. 다지는 삶을 살아야죠.
(준비한 듯, 거침없이 답이 흘러 나왔다. 심지어 그는 답을 하는 과정에서 직접 작곡한 ‘모여라 꿈동산’과 ‘퀴즈 아카데미’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다. 문득 저런 달란트를 가진 사람이 짐짓 근엄해야 하는 CEO를 하면서 삶이 꽤나 심심했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Q. 상당한 독서를 하신 것 같은데, 평소 얼마나 읽습니까?
많지만, 다 읽은 건 아니에요. 저는 청소년이 독서에 대해 질문하면 서점 가 볼 의향은 있지? 그 중에서 가장 땡기는 걸 읽어! 이렇게 얘기하죠. 핵심 메시지를 자기화하면 되는 거죠. 예를 들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아침형 인간’ 같은 책을 다 읽을 필요가 뭐 있어요? 제목을 보고 핵심어 키를 뽑아서 발췌독을 하죠. 이를테면 박경철의 책은 대충보고, 그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는 왜 이렇게 살까? 왜 이런 말을 할까? 생각하는 거죠. 그러니 생각보다 독서를 많이 한 것은 아니죠. 대신 11권의 책을 썼으니 많이 쓰긴 한 거네요.
Q. 문장보다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생각의 지평을 넓힌다는 뜻인가요?
뜬금없는 대답이지만 나는 송도삼절 이것을 누가 정했나? 저는 그게 궁금했어요. 알고 보니 황진이가 스스로 정했더군요. 그게 매력적이었어요. 그럼 저절로 이어지죠. 그렇다면 주철환은? 이렇게요. 그래서 나도 내 자신으로 수식어로 만들어야겠다고 많이 생각했죠. 재밌게 살고 의미 있게 죽는 사람. 분석보다 해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렇게요.
Q. 분석보다 해석하는 사람이란 무슨 뜻인가요?
이를테면 서태지는 왜 랩을 했을까? 라는 의문을 갖는 거죠. 미국에서 랩은 흑인들이 시작했죠. 불만이 많으니까요. 그 불만을 궁시렁궁시렁하다가 이게 랩이 된 거죠. 그래서 저는 고려시대 ‘만적’이 우리나라 랩의 시초였을 거라고 생각해요. 만적의 말에도 리듬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이죠. 불만을 평화롭게 표현하는 게 랩이라면 홍길동도 랩퍼가 아닐까? 이런 것이 제 방식의 해석이죠.
Q. 진지한 질문으로 돌아가죠.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덕목을 꼽는다면 어떤 것일까요?.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약간 귀엽고 적당한 돈과 지위와 재미가 있어야하지요. PD에는 3 ‘ㅅ’ 이 필요한데 ‘상상, 설득, 순발력’이죠. 순발력은 시간을 절약해주죠. 누구든 말을 길게 하면 싫어지고 길게 하는 말은 수용자 중심의 사고가 아니죠. 시간 도둑질이에요. PD시절에도 윗사람이 잔소리를 길게 하면 속으로 노래를 부르죠. 나중에 ‘어떻게 생각해?’ 라고 물으면 ‘일리가 있네요’ 라고 대답해요. 어떻게 보면 못된 거죠.
Q. 너무 빨리 달려온 만큼 빠른 은퇴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요?
조바심은 없어요. 조만간 기념음반을 낼 생각이에요. 선물로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책도 낼 계획이죠. 특강 요청도 많고요.
Q. 다음 다섯 번째로는 어떤 변신을 할 계획인가요?
그건 감히 말할 수 없죠. 건방진 거예요. 마음으로 간직할 수 있지만 말로하면 교만하죠. 나를 원하는 사람의 제안을 받고 싶어요. 이를테면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누군가 요청한다든지.
Q. 지금까지 네 번의 변신이 모두 제안을 받아들인 수동적 변신이었다면 마지막 변신 역시 수동형일까요? 어느 인터뷰에서 ‘내가 우울할 거라고? 9월을 기다려봐’라고 하셨던데요.
아마 그럴 거예요. 지금 걱정해주는 사람이 많죠. 친구들도 전화를 많이 하고요. 하지만 솔직히 어이가 없죠. 하지만 실제 그렇게 말하면 건방진 거죠. 그래서 그들을 안심시키려고 9월에는 뭔가 할 거야. 라고 말했죠. 사실은 아직은 아무런 계획도 없어요. 하하하.
Q.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신데 왜 능동적 계획을 세우지 않나요?
나는 계획적인 사람이 되기 싫어요. 지금도 매우 즐겁고 이 인터뷰도 유쾌해요. 박경철의 프리즘으로 비춘 나는 어떨까? 기대되죠. 예전에는 주철환이 만난 사람 이런 것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대상이 되어 행복하죠.
Q. 주례를 많은 선다고 알려져 있는데 주로 무슨 얘기들을 하시나요?
무지개를 보려면 비가 많이 내려야죠. 직전에 고통이 있는 것이에요. 한데 무지개도 한 가지 색이 아니라 일곱 색이나 있잖아요. 인생 역시 모자이크를 만드는 과정인데 그 과정만 보고 한 마디씩 거들죠. 여기는 검다, 여기는 텅 비었다, 이렇게요. 그러나 그것이 완성되었을 때 얼굴이라면요? 검은 것이 눈이고, 빈 것이 입일 텐데요. 그러니 불만으로만 너무 긴 시간 보내지 마라!고 말하죠.
Q.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친구가 중요하죠. 공자를 존경하는 이유도 논어 1장부터 ‘배워라! 왜 불만을 가져!’ 그리고 2장에는 ‘친구를 사귀어봐. 옛날 친구 연락도 좀 하고!’ 그리고 3장에서는 ‘그래도 불만 있어? 그럼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너무 화 내지마!’ 이렇게 말하잖아요. OBS에서 친구가 많이 생겼죠. 그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고 나도 그들을 사랑해요. 얼마나 좋아요? 화내지 않고. OBS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이 바로 ‘얼마나 좋아?’ 라는 말이었어요.
Q.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어린아이 같아요. 어린아이의 특징을 가지고 있죠. 결국 순수하지만 유치하다는 말인데 유치한 것 인정해요. 그러나 순수하고 싶죠. 성경에 ‘어린아이의 얼굴이 아니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가 없다’는 구절이 있는데 나는 이 얼굴이 동안이 아니라 동심이라고 생각해요.
Q. 하지만 ‘OBS에서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는데요?
내게 괴로움 많았던 시기였던 것 인정해요. 하지만 OBS에서의 기억이 내게 흉터가 되지 않을까? 걱정한 적이 있지만 지금 보니 예방주사 자국이었어요. 이제 어떤 전염병에도 건강해진 거죠. 그래서 OBS는 내게는 성장통이었고 통과의례였죠.
Q. 처남인 손석희 교수는 어떤 사람인가요?
선택과 집중에 성공한 사람이죠. 시간의 평등과 효율에 관심이 많고 시선집중과 100분 토론만으로 일주일을 사는 사람이죠. 심지어 내가 대학가요제를 맡았을 때 그렇게 부탁을 해도 진행을 맡아주지 않더군요. 그 결과 1분 뉴스가 100분 토론이 되었으니 100배가 성장한 사람이죠. 그는 읽기를 거부하고 목소리를 냈어요. 그 점에서 존경스러워요.
Q. 자신의 삶을 평가한다면?
나는 눈치 보기로 살아온 인생이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이러면 인기영합주의자라 하겠지만 그건 아니에요. 진심으로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요. ‘보는 대로 믿는다(seeing is believing)’라는 말을 항상 고민하죠. 누가 내게 이렇게 고민을 상담해요. ‘남들이 내게 건방져 보인대요’라고요. 그럼 저는 ‘너는 건방져’라고 말하죠. 남이 그렇게 말하는 게 걸리면 아예 개의치 말든지 아니면 신경 써서 고치든지 해야죠. 부족할수록 경쟁심이 많아져요. 샘(妬)이 많으면 자기의 샘(泉)이 없어요. 특히 사람에 대해 싫어하되 미워하지 말아야죠. 진부하지만 저는 사랑의 메신저가 되고 싶어요.
Q. 역설적으로 선생님의 이런 부분이 OBS에서 CEO로 적응하지 못한 이유가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기업은 적재, 적소, 적시를 중시하는데 이게 좀 어긋났겠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새도 되고 쥐도 될 순 없었죠.
Q. ‘새도 되고 쥐도 될 수 없었다’는 말은, 노(勞)의 입장도 사(使)의 입장도 모호했다 이런 뜻인가요?
‘이용의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이게 얼마나 가슴을 두드리는 가사인가요? 나는 강한 사람은 될 수 있으나 독한 사람을 될 수 없어요.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면 그렇게 되게 한 1순위는 사장이죠. 그러니 나를 먼저 자를 것이라고 안심시켰죠. 대주주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학교라고 생각합시다. 저는 경영대학을 다니고 회장님은 교육대학원 공부를 제가 시켜드리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학교가 아니라 병원이었어요. 더구나 내가 의사로 온 게 아니라 환자로 온 경우거든요. 나중에는 빨리 퇴원해야겠다 싶었고, 더 시간이 지나니까 감옥 같아서 빨리 출소 해야겠다는 생각만 들더군요.
마치며
인터뷰를 끝내고 원고를 정리하면서도 그를 한마디로 규정할 수 있는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 주철환은 ‘꿈꾸는 낭만주의자’, ‘다빈치형 인간’, ‘제너럴 리스트’와 같은 진부한 표현으로 쉽게 정의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세 시간 동안의 인터뷰에서, 그가 스스로 부른 노랫말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이 한 대목이 기나 긴 낭만의 여정에서 팍팍한 다리를 두드리고 있는 ‘인간 주철환’을 표현하기에 그나마 가장 적합한 ‘응답’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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