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이 화두다. 국어사전에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특성’이라고 규정되어 있는 ‘창의성’은 ‘평범성’에 대립된다. 요즘세상에서 ‘창의적이지 않다’는 ‘평범하다’와 같고, 이때의 ‘평범함’은 종종 무엇인가를 축내기만 하는 ‘악덕’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초절정 재벌 한분은 만명을 먹여 살리는 한명의 인재를 거론했고, 교육계는 그 만명을 먹여 살리는 한명을 길러내는 교육을 가리켜 '창의성 교육'이라고 불렀다. 당연히 집집마다 난리가 났다. 너도나도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영재학교, 영재스쿨, 영재 교육원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소위 ‘수월성 교육’이다. 제때 배우고 배운것을 제대로 익힌다는 ‘학습’의 내밀한 의미는 교문앞에 팽개쳐지고, 학원에서 빨리 배우되 어슬프게 익히는 일차원적 암기기계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 재벌회장이 거론한 한데 대한민국이 선진국에 들지 못한 이유가 정말 이런류의 창의성 부족에 달린 문제였을까?.

 

우리는 이에대해 한번도 진지하게 논의해 본적이 없다. 사실 결론은 단순하다. 1,2,3차 산업의 전개과정은 나라마다 다르다. 상대적으로 다음 단계로의 전개가 빨랐던 나라들은 서비스업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소위 ‘평범성’으로 상징되는 숙련공의 능력에서, ‘비범성’으로 불리는 감각적 지식을 갖춘 이들을 선호하게 된다. 따라서 요즘 우리가 창의성을 요구하는 것은 산업구조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지, 창의성의 부족이 산업 구조의 변화를 더디게 만든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즉 선후의 인과관계가 틀린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지금 우리나라에 창의성 열풍이 불어 닥친 것 역시 산업구조가 빠르게 3차 산업화하면서 과거 2차 산업의 공간에서 느슨했던 경쟁이 격화되고 있음을 잘 나타내는 신호다. 한데 문제는 이런 조류가 다수에게 비극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3차 산업의 비중 증가는 만명을 먹여 살리는 한명이 아니라 만명이 먹을 것을 다 가져가는 한명이 양산되면서 사회적 양극화와 극단적인 부의 불평등 구조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창의성, 혹은 수월성은 이런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코드로 변해버렸고, 그 고유의 의미, 즉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특성’은 어느새 어느 교육 이상론자의 몽상처럼 들리게끔 되어 버렸다. 어쨌거나 흘러간 강물을 되돌릴수는 없다. 3차 산업이 그 틀안의 패배자들에게 실패의 쓴맛을 보여준 이상, 어떻게던 다음 4차 5차 산업의 시대에서는 생존의 새로운 틀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것이 전세계적인 ‘통섭’ 열풍이다. 수학,물리학,화학이 발전하면서 근원에 접근하게 되고 근원에 접근할 수록 인간은 과학에 대한 곤혹감을 느끼게 된다. 이를테면 진화론은 인정하지만 진화론의 출발인 생명의 탄생은 설명 할 수 없고, 우주의 질서와 법칙은 하나하나 비밀을 벗어 나가지만 그 질서를 구성하는 태초의 출발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기 때문이다.

 

철학을 무너트리고 질주해 온 과학이 일대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즉 실험실에서 성장해온 과학자의 직선적 사고는 갈수록 한계에 부닥칠 수 밖에 없는 국면에 도달한 것이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과학에도 머릿속의 실험실 즉 상상력이 더해져야 했고, 이미 발달해버린 1,2,3 차 산업에도 그 다음을 대치 할 4차 산업의 지적도가 그려져야 하게 된 것이다. 기존의 틀이 아닌 틀, 기존의 생각의 범주를 벗어난 상상이 요청되어 진 것이다. 통섭이라는 이름으로 과학이 도살해버린 철학이 부활하고, 양손에 전기톱과 중성자탄을 든 전문 경영인이 인문학을 이야기하는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이 지점에서 통섭은 그동안 따로 이야기 되어졌던 것들을 하나로 모아 매듭을 짖는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이 탄생했다. 일견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천재들, 이를테면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파블로 피카소, 마르셀 뒤샹, 리처드 파인먼, 버지니아 울프, 제인 구달, 스트라빈스키, 마사 그레이엄 등 저자의 관점에서 뛰어난 창조성을 발휘한 사람들이 과학, 수학, 의학, 문학, 미술, 무용 등 분야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사용한 13가지 발상법을 생각의 단계별로 정리했다.

 

그리고 그들의 발상법을 관찰, 형상화, 추상, 패턴인식, 패턴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 등 13단계로 나누어 논리정연하게 설명할 뿐 아니라 직관과 상상력을 갈고 닦아 창조성을 발휘하는 방법 또한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다.

 

이 책이 그래서 아쉽다. 창의력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사례연구와 분석을 통해 접근한 참신한 시도와, 방대한 자료를 논증과 더블어 소개한 열정과 지적가치를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계발서나 경영전략서의 양식의 범주를 넘지 못했다는 점이 옥의 티다. 이를테면 권력의 법칙이나,경영전략 류의 촉류방통형(觸類旁通形) 집대성의 범주를 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대한 평은 호불호가 첨예하게 엇갈린다. 문자 그대로 뻔한 이야기라는 평에서부터 산발적 지식에 대한 놀라운 집적도를 보인 책이다는 평가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창의력이라는 것을 주제로 이 정도의 자료를 정리해서 엮어낸 노고만 해도 충분히 일독할 가치가 있다. 단지 이 책 자체가 창의적이냐는 난감한 질문만 더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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