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대문을 열면
허은미 지음, 한지선 그림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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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태어난 집에서 성인이 되어 도시로 나오기 전까지 살았습니다.
대문이 따로 없는 집 앞에는 큰 감나무가 있어 봄에는 떨어진 감꽃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놀고 여름이면 감나무가 만들어 준 그늘에 평상을 내놓아 지나가는 사람 누구든지 쉬어갈 수 있었습니다.
가을이면 빨갛게 익은 감을 아버지가 대나무 장대로 따면 그 곁에서 혹시나 홍시를 얻어 먹을 수 있을까 기웃거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가 여전히 살고 계시지만 어린 시절 그집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부뚜막이 있던 부엌도 사라졌고 감나무도 없어졌고 감을 따던 아버지도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마당 가득 동네 사람들이 모여 김장하던 모습도 더 이상 볼 수 없고 함께 놀던 친구들도 이제는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허은미 작가가 글을 쓰고 한지선 작가가 그림을 그린 <파란 대문을 열면>의 책장을 여는 순간 어린 시절 우리집으로 안내합니다.
계단 끝에 있는 우리집은 파란 대문 집으로 다락방 작은 창문으로 온 동네가 내다보입니다.
봄이면 버려진 화분마다 꽃씨를 심어 파란 대문 앞에 내놓으면 나팔꽃 덕분에 온 골목이 환해졌다고 우체부 아저씨도 웃고 옆집 할머니는 꽃구경 값이라고 부침개를 갖다줬지요.

사람 냄새 나는 골목 안쪽 파란 대문집은 개발과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져버린 우리 집을 추억하게 합니다.
파란 대문을 들어서기 전 여백이 많은 계단 그림은 그 시절을 아련하게 떠오르게 합니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평화롭고 여유가 넘쳤던 그 시절을 우리 아이들이 추억할 수 없다는 게 서운하기만 합니다.

그림책은 어린 시절 해질녘이면 집집마다 구수한 밥 냄새가 피어오르고 엄마들이 부르는 이름으로 온 골목을 채우던 시절을 떠오르게 합니다.
과연 그 시절을 모르는 우리 아이들은 그림책을 보며 어떤 냄새와 소리를 떠오를 수 있을까요?
사라져버린 풍경과 사람들간의 정이 그립습니다.

<문학동네 그림책 서포터즈 뭉끄1기 활동 중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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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간식집 - 겨울 간식 테마소설집
박연준 외 지음 / 읻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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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읽기 딱인 소설집이다.
여섯 명의 작가가 겨울 간식을 테마로 쓴 여섯 편의 소설은 때로는 달큰하게 때로는 씁쓸한 이야기로풀어놓는다.

감기가 들락말락할때 마시면 딱인 뱅쇼가 테마인 박연준 작가의 < #한두벌의다른옷 >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여성이 가까워진 계기도 멀어진 이유도 서로 너무 달랐기때문이라는 아이러니를 만날 수 있다.
처음 본 팔각이 신기에 주머니에 넣어두었지만 어느 순간 불편한 향을 풍기는 존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겨울철 가장 흔한 간식인 귤이 등장하는 김성중 작가의 < #귤락혹은귤실 >속 “그런데요”라고 허물없이 말을 걸 수 있는 사람과 “언제나” 다정한 사람과 “결코” 곁을 내줄 생각이 없는 세 남자는 겨울철 귤만큼이나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이다.
본디 인생은 그렇게 귤의 귤락 혹은 귤실을 없애는 일만큼 특별할 것 없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스무살 즈음의 불안했던 나를 떠오르게 한 정용준 작가의 < #겨울기도 >는 고소한 문어가 씹히는 다코야키가 등장한다.
누가 아프니깐 청춘이라 했던가?
‘신경’이 엄마가 가져온 문어로 다코야키를 만들어 고시텔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줬듯이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아프지 않기를 바라본다.

은모든 작가의 < #모닝루틴 >은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세 여성의 명절 풍경을 그린 소설로 속이 꽉 찬 만두가 테마다.
별로 즐겁지않은 명절의 아침을 평소와 같은 루틴으로 맞고 싶은 나의 작은 소망은 언제나 이루어질 수 있을까 싶다.

예소연 작가의 < #포토메일 >은 동생이 떠나버린 집에 할머니와 남은 ‘나’의 곁을 지켜주는 남자 친구 ‘희민’의 이야기다.
오래된 약속으로 희민과 쇠락한 아케이트에 가게 된 ‘나’는 그곳에서 본 영상 속 아이의 말을 떠올리며 호떡을 산다.
아이가 호떡에 든 앙금이 팥이라 생각하고 오랫동안 먹지않은 것처럼 우리는 지레 짐작하고 결론을 내리고 포기한 것은 없었는지 생각하게 한다.

마지막 이야기는 따근한 유자차가 테마인 김지연 작가의 < #유자차를마시고나는쓰네 > 는 교통사고로 아내와 아들을 잃은 삼촌의 이야기다.
삼촌이 더 이상 슬퍼하지 않기를 겨우내내 유자차를 마시며 다시 달콤한 세상을 살기를 바라고 또 바라본다.

처음 시작은 하루 한 두 편 간식처럼 야금야금 읽을 생각이었는대 한 번 손대면 끝을 봐야하는 곰돌이 젤리처럼 끝까지 읽어버렸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는 겨울 간식처럼 취향저격인 소설을 오랜만에 편안하게 읽었다.
소설 끝에 달린 여섯 작가의 겨울을 잘 지내는 레시피 역시 재미있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머무는 작가도 있고 추워 죽을 것 같은 겨울이지만 패딩을 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끼고 밖으로 나가는 작가도 있다.
간식만큼이나 다른 작가들의 겨울 나기 레시피를 읽으며 나만의 간식과 레시피로 추운 겨울을 잘 보내리라 다짐한다.

<본 도서는 읻다 출판사 서포터즈 넘나리1기 활동 중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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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레타 페이지터너스
이사벨 아옌데 지음, 조영실 옮김 / 빛소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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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독감과 코로나 팬더믹 사이의 100년의 시간을 살아간 비올레타 개인의 삶뿐 아니라 세계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나 찬찬히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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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2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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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작가를 알게 된 건 2022년 부커상 후보로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진 “저주토끼”를 통해서다.
처음 읽은 작가의 소설은 취향저격이었고 그 뒤로 열심히 작가님의 책을 찾아 읽었고 대부분 옳은 선택이었다.
이번에 #퍼플레인 출판사에서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라는 제목으로 정보라환상문학단편선의 두 번째 소설집이 새로 출간되었다.

전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는 작가 정보라가 아닌 정도경이란 이름으로 2010년부터 환상문학 웹진 거울에 실린 소설 8편과 2018년 온라인 소설 플랫폼 블릭G에 소개된 소설들로 환상과 현실은 물론 신화와 역사를 가미한 정보라 작가의 초기작품들을 즐길 수 있었다.
이번에 출간된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는 지금 현재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관한 이야기들이 게재됐다.

모두 10편의 단편이 수록될 소설집의 가제본은 4편의 단편을 맛볼 수 있다.
표제작인 #죽음은언제나당신과함께 을 읽으며 처음엔 두 번째 남자와 세 번째 남자가 등장하는 첫 부분을 오타인 줄 알고 잠깐 뜨악했다.
등장하는 네 남자 사이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는 구체적으로 서술되지는 않지만 어떤 폭력이 그들 사이에 존재했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원한의 끝을 마주하는 순간 큰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

4편의 소설 중 가장 기괴하고 불쾌하고 공포스러운 #감염은 그 남자가 하는 이상한 부탁의 이유가 궁금해 읽기를 멈출 수 없었다.
점점 폭력에 무감해지던 주인공이 길고 괴롭던 폭력의 수렁에서 빠져나왔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다시 시작되는 ”내 존재 아래에서 타인의 존재가 무너지던 그 쾌감이 온몸으로 그리워“하는 폭력의 고리가 계속되는 것을 보면 그 어떤 괴물보다 무섭다.

#리발관의괴이 는 제목그대로 이발관에서 벌어지는 괴이한 이야기다.
조상을 위한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개인에게 행해지는 폭력이 기괴하다.
가제본의 마지막 이야기 #내친구좀비는 인간에게 가해지는 육체적인 폭력뿐 아니라 정신적인 지배가 사람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다.
사랑은 내 뜻대로 너를 조절하는 게 아니라 너의 뜻을 마음껏 펼치도록 응원하는 것이다.
그 존재가 부모라 할지라도.

모두 4편의 이야기는 학교에서 가정에서 개인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폭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때로는 폭력을 저지른 자들이 합당한 벌을 받기도 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이 포장되기도 한다.
폭력이 더 큰 폭력을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도저히 알 수 없는 이유로 행해지는 폭력도 있다.
폭력이 사람을 피괴 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행해지는 폭력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는 소설들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오래된 책 제목을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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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본에 이어 본책을 읽었다..
가제본의 실린 소설의 4편이 책의 절반을 차지하니 나머지 여섯 편의 이야기는 짧고 강렬하다.
#내일의어스름 은 사이비 종교에 엄마, 아빠를 뺏긴 주인공의 이야기로 자신의 자식에게 사이비 종교의 기운이 전해진 듯해 공포를 준다.

#사흘 은 중독에 의한 인간성 상실은 물론 죽음 후에도 떨칠 수 없는 탐욕이 무섭다.
가장 가슴 아팠던 #타인의친절 은 왜 모든 고통은 여자의 몫인가 한탄하며 읽었다.
마지막 #전화 는 한마디 말도 남기지 못하고 죽은 이에 대한 그리움이 뼈에 사무치는 이야기로 공포보다 그 간절함이 짐작돼 마음이 무겁다.

대부분의 소설은 발표된 지 10여 년이 지난 작품들이다.
가제본을 읽으면서 지금의 현실과 너무 닮아서 근래에 쓴 작품일거라 짐작했다.
세상은 발전하고 너 나아진 것 같지만 여전히 사이비가 판을 치고 여자들은 폭력 앞에 무기력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지만 현실의 어딘가에서는 모습을 달리하며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라 읽고 나면 유쾌하지는 않지만 외면할 수도 없는 이야기들이다.
작가의 바람대로 많은 독자들이 ”그냥 잠시 이상한 세계를 들여다보는 경험“이었으면 좋겠다.

<출판사의 가제본 서평단 활동 후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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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이야기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비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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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이야기”는 일본 설화문학의 진수로 꽂히는 에도시대의 고전 <<우게쓰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

네 편의 단편은 고전을 모티브로 삼았을 뿐 이야기의 배경은 지금 우리 시대의 이야기다.
작가의 ‘검은 집’을 무섭게 읽었던지라 망설임없이 골랐다.
‘검은 집‘처럼 공포스럽지는 않지만 네 개의 이야기 모두 등장인물들의 절망과 쓸쓸함을 맛 볼 수 있다.

자신을 사람의 사랑에 늘 굶주린 아귀라고 말하는 남자의 쓸쓸한 이야기 #아귀의논 은 사람이 사랑없이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푸가 는 실종된 작가 아오야마 레이메이가 남긴 원고를 통해 그가 살면서 겪은 불안과 고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마지막 반전은 초자연적인 현상의 호러물에서 끔찍한 미스터리 탐정 소설로 바뀐다.

#백조의노래 는 무명 가수의 발자취를 찾아갔던 이의 불행이 팬더믹을 겪은 탓에 남 이야기같지 않다.
천상의 목소리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의 공포와 가을비 속으로 사라지는 ’로스‘의 쓸쓸함이 뼈 속까지 얼어붙게 한다.
#고쿠리상 도시괴담은 언제 읽어도 재미있다.

소설 속에는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도 등장하고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다른 이를 사지에 몰아넣은 의뢰인도 등장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세상과 동떨어진 듯하면서도 우리가 겪을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공포스럽다.
작가가 “여름비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니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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