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늪 작은도서관 17
김하늬 지음, 김재홍 그림 / 푸른책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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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악어가 우글거리고 한번 발을 들여 놓으면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유쾌하지 않은 장소다’라는 것이다.

그런 이미지의 늪이 한 소녀의 인생의 버팀목으로 자리 잡은 걸 보며 언제인가 그 아름다운 늪에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갑자기 아빠의 의식불명으로 가족이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된 샘이네는 아빠는  병원에 누워계시고 엄마는 아빠 간호 때문에 병원에서 지내게 된다.

오빠와 샘이는 고모 집과 할머니 댁으로 각자 거처를 옮겨 살게 된다.

할머니 댁은 아빠의 고향이자 샘이에게도 고향 같은 우포늪이 있는 소목 마을이다.

슬픔 속에 갇혀 지낼 만도 한데 샘이는 착하고 씩씩하다.


꿈은 저기서 자꾸 말을 걸어오는데, 내가 기다리는 용용이는 안개 너머 깊은 땅 속에서 웅크리고 있고, 내가 사랑하는 아빠는 딱딱한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둘 다 아기처럼 잠만 잤다. 용용이와 아빠 모두. 나를 이렇게 안개 깊은 늪가에 세워 놓고 꿀꿀 잠만 잤다. 현실이 너무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난생 처음 그들이 미웠다. 미워서 마구 눈물이 났다.[본문 중에서]


똑똑하고 정신적으로도 성숙한 샘이가 1억 4천만 년 전 공룡의 놀이터였다는 우포늪에 공룡 알 용용이에게 그렇게 집착했던 이유가 용용이가 깨어나면 아빠도 거짓말처럼 뚝뚝 떨고 일어나리라고 믿고 싶은 마음에서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에 가슴이 더 아파왔다.

어쩜 누구보다 샘이가 우포늪엔 용용이 같은 건 없음을 알았을 것이다.

화순 운주사의 있는 와불이 벌떡 일어나면 세상이 바뀌고 천년동안 태평성대가 계속된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옛사람들에게 한 가닥 희망이었던 것처럼 샘이도 용용이를 통해 아빠의 완쾌를 바랬던 건 아니었을까 싶다.

우포늪의 아름다운 사계와 함께 점점 자라는 샘이를 보며 누군가가 누군가의 길라잡이가 된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제제가 집안의 가난함과 식구들의 폭력 앞에서도 꿋꿋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친구 <뽀루뚜까>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시절을 살았던  우리도 별 심각한 문제없이 유년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건 우리들이 가야할 길을 밝혀준 길라잡이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먹고 살기 힘들었지만 집안에는 든든한 아버지가 계셨고, 항상 가난한 살림에 힘들어하셨지만 다정한 엄마가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셨다.

학교에 가도 엄하지만 사랑을 베풀 줄 아셨던 선생님이 계셨고 동네 어른들도 관심을 가져주셨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아이들은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용서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바른 길로 안내하는 길라잡이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아들의 사고로 정신을 놓을 만도 한데 ‘에미야, 밥해 묵고 기운 차리라!“고 말씀하시는 할머니와 때로는 오빠 같았던 친구 순홍이, 또 늪지기 아저씨가 샘이에 길잡이가 돼주셨기에 샘이가 아빠와 마음에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까지도 교통사고로 눈 먼 소녀와 간이식 수술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던 아저씨를 살리고 떠난 아빠와 우포늪은 몸은 떨어져 있어도 언제까지나 샘이에 가장 밝은 길라잡이 별로 남을 것이다.

동화를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나는 누군가의 길을 비춰주는 길라잡이 노릇을 과연 잘하고 있는 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가깝게 나는 우리 아이에게 어느 길로 안내하고 있나 라는 생각과 정말 바른 길을 비추고 있나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냥  길을 비춰주는 걸로 만족하고 선택은 아이가 하게 해야 하는 데 혹시 내가 가고 싶었던 길로 아이를 끌고 있지나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답다”라는 말이 내가 어른이 되면서 그 말에 책임감과 함께 무서움이 되기도 한다는 걸 새삼 느낀다.

모든 것이 우리 집, 우리 것만을 생각하는 우리가 너무 쉽게 죽였던 우리 것이 아닌 황소개구리에 대해 아이에게 물었다.

늪지기 공정후 아저씨를 통해 들었던 황소개구리를 잡는 게 옳은 가 그른가를.

목숨이 있는 것은 언제나 소중하다고 배우고 자란 아이는 일순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TV에서 붉은귀거북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거북이를 잡는 어른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던 아이는 처음 황소개구리를 들여온 어른들은 탓했다.

우리 것에 너무 익숙한 우리는 이미 어느 순간 우리 것이 돼버린 황소개구리에게 너무 잔인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늪지기 아저씨가 나직하게 했던 이야기가 긴 여운이 되어 가슴에 콕 박히는 듯 하다.


“애들아, 우리 이렇게 하기로 하자. 자연의 일은 자연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기로. 사람이 인위적으로 관여하지 않아도 자연은 스스로를 지키고 정화시키는 힘이 있으니까. 물 흐르는 대로, 순리대로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자. 단, 파괴하거나 더럽히지만 말고.

모든 생명은 축복 속에서 태어났고 축복 속에서 살아가다 축복 받으며 돌아갈 권리가 있어. 본래 왔던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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