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도둑 초승달문고 11
임어진 지음, 신가영 그림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 잠자는 것도 잊고 이야기 한자리 더 해달라고 조르면 할머니는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해 진다는 말을 끝으로 이야기를 끝내곤 하셨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이야기 좋아하다 가난하게 될 걱정은 까맣게 잊고 다른 이야기를 조르고는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힘든 농사일에 피곤하기도 했고, 이야기가 화수분처럼 솟는 것도 아니니 매일 밤 새로운 이야기를 해주는 게 할머니에게는 여간 고역이 아니었을 게다.


그런데 여기 매일매일 새롭고도 신기한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설아기가 살았으니 무슨 재주가 있는 지 누구라도 동무 삼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잘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말 할 것도 없고 설아기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까치, 쇠똥구리는 물론 담 넘어 텃밭 가에 울콩들, 업구렁이, 우물가 바가지랑 부엌 부지깽이까지 이야기를 들으려 들썩거렸다.

하지만 부모만은 설아기가 이야기 잘 하는 게 못마땅하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나라는 임금님 이야기 딱 하나만을 좋아하는 임금님 때문에 이야기꾼 설아기에게 해가 갈까봐서다.


부모는 도대체 어디에서 딸아이가 이야기를 듣고 오는지 궁금하지만 도통 알 수가 없자 자고 있는 설아기를 지키게 된다.

그런데 설아기에게서 이야기를 물어오는 흰쥐 한 마리가 나오고 부모는 흰쥐를 죽여 버린다.

이젠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아 평안할 거라 기대했던 딸은 기운 없이 시름시름 앓기만 하고, 잘 먹지도 자지도 않아 몸은 야위어만 가고 정신까지 놓아 버리고 만다.

거기다 이야기가 사라져버린 마을은 흉흉해져만 간다.

다행히 죽은 흰쥐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듣게 된 설아기는 임금님의 이야기 궁이 있다는 서쪽 땅 끝으로 향한다.


어떤 이야기는 소리 내어 읽을 때 그 재미가 배가되는 경우가 있다.

이야기 도둑 역시 그런 축에 드는 이야기로 중간에 읽는 걸 멈출 생각으로 읽기 시작한 이야기는 아이들의 성화에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읽어줘 버린 책이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처럼 입에 착 붙는 입말은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이야기와 잘 어울려 읽어주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절로 이야기 속에 빠져 들게 한다.

사실 이야기는 전혀 새로울 게 없는 이야기들이다.

사람 몸속에 살다 잠이 들면 나온다는 혼쥐 이야기나 이야기궁을 찾아가며 겪는 고초들과 그때마다 누군가 등장하여 설아기를 돕는 이야기는 낯익은 장면들이다.

거기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이야기 궁에서도 시련이 기다리고 있고 뛰어난 지혜로 무사히 넘기는 것도 특별한 것 없는 이야기다.


이렇게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아이들이 집중해서 듣고 좋아하는 이유는 친숙함에서 오는 편안함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전래동화 속에 등장하는 영웅담과도 닮아있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저승세계를 다녀왔던 바리데기 이야기와도 비슷하기에 아이들은 제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 얼마나 비슷한지 궁금하기도 한 모양이다.

힘이 세고 키가 큰 건장한 어른이 아닌 작고 여리고 재주라고는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인 설아기를 따라가다 보면 없던 용기까지 불쑥 생기니 아이들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부모에 눈엔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보이던 이야기 재주가 온 세상을 구하는 걸 보며 혹시 나는 내 아이만이 가진 재능을 그렇게 하찮게 보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을 문득해보게 된다.  

세 번째 혼쥐를 몹쓸 것으로 치부해 버려 죽이는 설아기의 부모나 그저 이 세상에 인재가 되는 것과는 먼 재주를 지녔다는 이유로 아이만이 가진 능력을 밟아버리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설아기에게는 이야기 도둑 쥐가 살듯이 과연 우리 아들들에게는 무슨 도둑 쥐가 살고 있을까나 하고 뒷이야기가 한참 길어진 이야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