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베의 태양
돌로레스 레돈도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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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스릴러 문학의 기둥 돌로레스 레돈도가 익명으로 발표했다가 온갖 상을 휩쓸었다는 화제의 그 작품 <테베의 태양>을 읽었다. 스페인 작가하면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밖에 떠오르지 않으니, 문학으로는 참 오랜만에 스페인을 만나는 셈이다. 어마어마한 수상실적만큼이나 두툼한 두께가 인상적이다.



소설은 주인공인 소설가 마누엘이 배우자 알바로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전해들으면서 시작된다. 알고보니 알바로는 귀족 집안의 장남이자 후작이며 어마어마한 재산을 마누엘에게 남겼다! 배우자인 마누엘 자신도 몰랐던 비밀들이 하나씩 밝혀지며 알바로 죽음의 미스테리도 서서히 풀려나간다.



책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점은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 리비에라 시크라에 대한 묘사다. 듣도보도 못한 곳을 상상하며 느끼는 재미가 있었다. 또한 서서히 밝혀지는 등장인물들의 과거 상처들, 그에 대한 조심스러운 묘사와 이후 지난한 감정의 고통들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언제 어느곳에서 일어나느냐와 상관없이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니 마치 나의 감정처럼 느껴진다. 마누엘의 소설가적 자아가 이야기의 퍼즐을 짜맞추는 장면도 읽을만하다.



그러나 한번에 읽어치울거라는 예상과 달리 책을 끝내는데 상당히 오래 걸렸는데 이건 절대적인 분량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건의 해결이 더디게 진행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점점 사건이 풀릴수록 이방인이자 미망인인 주인공 마누엘이 안쓰러워진다. 그 마을 안에서 벌어졌던 과거의 일들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쳐 온갖 사건들이 벌어지는 것이니까.



소설을 덮고 난 지금은 어쩌면 내가 읽고 싶었던 것은 마누엘이 알바로 죽음의 미스테리를 파헤치는 이야기가 아니라, 마누엘과 알바로, 이들 둘의 관계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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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탕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7
이승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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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비밀인데 내가 가장 첫번째로 꼽는 한국 소설가는 이승우다. (맞다. <생의 이면> 때문이다.) 첨예하고 섬세한 언어와 그에 담긴 사유는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독보적인 그만의 것. 그의 책은 미친듯이 한 번 읽고, 또 읽고, 다시 읽는다. 그래도 부족하다.



현대문학 핀시리즈로 출간된 <캉탕>. 자기 자신을 회복하려는 세 인물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소설이다. 과거로부터 계속된 현재의 고통, 글을 쓰는 것, 걷는 것, 말하는 것 등 세 인물이 고집하는 것들이 어찌 그들만의 것이랴. 그들의 고민은 이 소설을 읽는 나의 고민과 같다. 존재에 대해서 사유하고 그 의미를 끈질기게 찾아가고자하는 인물들은 우리들 자신이다. <모비딕>과 <오딧세이아>에서 시작되는 그들의 여정은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담백하지만 깊다. 읽는 이의 역량만큼 얻어갈 수 있는 소설이 아닐까 감히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여러번 거듭해야만 이 소설에 제대로 닿을 수 있을 듯 하다. ‘캉탕‘이라는 말이 참 마음에 든다. 경쾌하나 결코 가볍지 않은 음절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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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설득
메그 월리처 지음, 김지원 옮김 / 걷는나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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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보자마자 사야할 것 같아서 덥썩 들고왔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앞표지와 띠지 디자인이 아쉽지만, 어쨌든 뒷표지에 소개된 책 내용만으로도 나는 이 책을 읽었을 것이다. 대학 신입생인 그리어가 강연을 하러 온 여성운동가 페이스를 만나고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문제를 풀어나간다는 이야기다.



일단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매 순간 고민하며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라는 것 자체가 아주 매력적이었다. 특히 그리어가 선배 여성인 페이스로부터 힘과 용기를 얻는 장면, 더 나아가 미래에 페이스로부터 독립하는 장면은 아주 멋지다. 그리어도, 페이스도 잘못을 저지른다. 어느 누구도 완벽하지는 않다. 또한 앞 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유산을 넘겨주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이야기는 두 세대를 아우르는 여성간의 연대와 성장에 대한 이야기다.



또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주인공 그리어와 그녀의 주변 인물들의 삶이 서술된 장면들이었다. 각자의 인생은 다르고 다른대로 특별하다. 유년시절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 인물들이 살아온 궤적이 그려지고, 그 궤적이 서로 겹쳐지다가도 떨어진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특히 그리어와 코리의 이야기가.



그러나 매력적인 소재와 풍부한 이야깃거리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아쉬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는 와중에 발견한 몇몇 오탈자 때문인지, 스트레스로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읽어치웠기 때문인지, 명료하게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2019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여성에게 꼭 필요한 소설‘이라는 홍보 문구에 대한 반발일지도... 너무 과하지 않나 싶어서.) 아무튼 그럼에도 시의적절하고 흥미로우며 즐거웠던 독서이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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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 -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
김보라 쓰고 엮음, 김원영, 남다은, 정희진, 최은영, 앨리슨 벡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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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벌새>를 더 깊게 즐기는 방법. 영화에서는 삭제된 장면들까지 수록된 시나리오와 최은영, 남다은, 정희진 등의 글, 김보라 감독이 앨리스 백델과 함께한 인터뷰가 실려있다.



곱씹을수록 <벌새>는 올해의 영화.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정치적이고 보편적이다. 같은 시대를 통과한 이라면 더욱 절절하게, 아니더라도 나와 당신은 모두 은희. 가부장제 안에서 자기 자신을 싫어하는 일이 가장 쉬운 우리들은, 은희다.



영지 선생님의 존재는 이 영화에서 희망이 느껴지는 이유.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어렴풋하게 드는, 믿고싶어지는.



올해 당신이 꼭 봐야 할 영화 <벌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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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기 - 한유주 소설집
한유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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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한유주 작가의 소설집. 이 책, <연대기>는 가장 최근에 출간된 책으로 작가의 네번째 소설집이다. 한유주 작가는 ‘문학적 실험을 거듭하며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이로 알려져있다. 그때문인지 그의 작품이 난해하고 어렵다는 후기도 종종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푹 빠져들어 읽었다. 끊임없이, 끈질기게 반복되는 언어와 그것들로 직조된 문장들이 재미있었음은 물론이고 작품들이 담고있는 정서 또한 취향이었다. 각기 다른 작품들이었지만 화자들이 전부 아주 생각이 많고 곧잘 쓸쓸함과 공허함을 느끼는 인물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므로 그들에게 마음이 갈 수밖에, 두 눈을 크게 뜨고 문장 문장을 짚어내려갈 수밖에.



종종 소설을 읽고 나면 더없이 슬퍼질 때가 있는데, <연대기>를 읽고 난 뒤 내 감정은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적당한 어느 지점에 있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어떤 지점에. 그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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