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들 - 장강명 연작소설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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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산 자들>. 일단 작가가 직접 골랐다는 표지가 너무나 인상적이다. 민중기 작가의 ‘Shanghai‘. 이 그림과 주황색 직사각형, 제목이 정말 잘 어울린다. 무광 종이의 질감도 그렇고. 만질수록 닳아가는 책등이 왠지 이 소설같다.



10개의 연작이 실린 르포 소설.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이다. 소설 속 이야기 모두 내가 혹은 내 주변의 누군가가 겪는 일들이다. (작가는 <음악의 가격>에서 자기 자신마저 끌어들인다.) 이 사회에서 갑이 아닌 을, 병, 정 혹은 다른 그 무엇에 속한 우리들의 이야기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만큼은 갑이 되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이 사회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글쎄. 현 사회에서는 존엄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 생존이다.



가장 잔상이 많이 남은 작품은 <현수동 빵집 삼국지>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은 50여년 경력의 제빵사라며 말하는 노인의 모습 말이다. 기업이 우위에 있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인의 진실됨이, 경력이, 제빵 솜씨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전락해버리는 것 같아 속이 쓰렸다. 아무렴 속쓰린 작품이 이것 뿐이었으랴. 한 편 한 편이 비수같았다.



미쳐가는 세상. 정말 방법이 없는가? 있을텐데. 있어야만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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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 열 받아서 매일매일 써내려간 임신일기
송해나 지음, 이사림 그림 / 문예출판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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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학교에서 필독서로 지정해서 읽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도대체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는 여성의 몸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현재 한국에서 임신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비혼 비출산 여성이지만 언젠가 내 몸에서 일어날지도 모를 일들에 이토록 무지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제대로 교육받은 적도 없지만 출산을 경험한 주변의 수많은 여성들로부터도 이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몸의 변화와 고통, 그에 수반되는 존엄성 훼손과 수치심, 직장인 여성일 때 겪어야하는 어려움, 제대로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사회 제도 같은 것들 말이다. 장장 10개월에 이르는 임신일기를 읽으며 ‘어쩌면 이 모든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임신과 출산을 겪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공포가 밀려왔다.



사회적인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여성에게 결혼과 임신, 출산과 육아가 자연스럽게 요구된다. 하지만, 당연히, 여성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비혼, 비출산, 결혼, 출산 그것이 무엇이든 여성이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어야 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가 우선되어야 한다.



여성의 이야기는 그동안 얼마나 은폐되어 왔는가. 화가 난다. 여성은 말하기 위해서 투쟁해야 한다. 그럼에도, 여성은 자꾸만 말해야 한다. ˝여성의 몸은 여성의 것이고, 여성의 삶은 여성이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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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삶
정소현 지음 / 창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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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첫번째 소설집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어디선가 이 두번째 소설집을 ‘올해의 인생 책‘이라 단언하는 리뷰를 읽고 관심이 생겼다. 서점에서 몇페이지를 뒤적이다 구매했다. 이 소설집에는 신샛별 평론가의 말처럼 진정 ‘고독‘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읽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기억만을 반복하는 것이 지옥이라는 「지옥의 형태」, 망각을 통해 다른 세계에 진입해서야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어제의 일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해야 ˝loneliness˝가 아닌 ˝solitude˝의 태도를 가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이 소설집은 해답을 제시해주지 않는다. 쉽지 않은 질문들을 던져주고 홀연히 끝나버린다. 사유할 거리를 던져주는 소설이기에 각별하다. 삶과 죽음, 애도와 속죄, 기억과 망각, 결국 인생에 대해서 말이다. 소설들의 어조는 희망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지만 어두운 방에 스탠드 하나 켜놓고 끝없이 생각을 이어가게 만든다. 정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 소설집이 가진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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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환상 속의) 너에게.



안녕. 이 책을 읽으면서 네 생각이 많이 났어. 정확히 말하면 내 환상 속의 너 말이야. 나는 너와 나를 「엔터 샌드맨」에 나오는 지수와 지훈처럼 나와 같은 재난을 겪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어. 당시 나에게는 말하지 않아도 이해받을 수 있다는게 중요했고 또 귀했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 너를 붙잡아야한다고 믿었어. 결국 우리는 다른 경험을 한 다른 사람이고 모든 대화는 독백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던거야. 또 타인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돌볼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도 몰랐지.



아무튼. 「엔터 샌드맨」에서 지수는 뒤늦게서야 지훈이 ‘그녀가 유일하게 속해있던 아주 사소하고 구체적인 세계(191p)‘였다는 사실을 깨달아. ‘그 세계가 정말로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동시에 영원히 잃어버린‘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가 않네. 나는 환상 속에 빠져 살고 거창한 것들을 꿈꾸지. 파멸같은 것들. 그래서 문득 네가 ‘정확하게 나와 같은 재난을 겪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잠깐 깨달았을 때, 내가 속수무책으로 너를 믿고 의지하기 전에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어. 어렵다. 어렵고 모르겠어. 너와 내가 함께 속하는 세계가 있었는지, 있었을 수도 있었는지, 있는지. 지수가 그랬듯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닫게 될지도 모르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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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노트 움직씨 퀴어 문학선 1
구묘진 지음, 방철환 옮김 / 움직씨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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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작가 구묘진의 <악어노트>. 1994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언더그라운드 퀴어 문학의 정전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라즈‘라고 불리는 주인공은 레즈비언을 부르는 중국어 은어의 기원이 되었으며, 부화할 때 물의 온도에 따라 성별이 바뀌는 악어에 성소수자를 빗대어 표현한 것은 이 작품이 논바이너리 문학의 시초로 꼽히는 이유다. 성소수자인 주인공이 작가 구묘진의 페르소나라는 점과 이 작품이 아시아 최초 동성결혼 합법화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악어노트>를 주목할만하다.



위에 열거한 사실들도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래서 나에게는 어떻게 읽혔는가‘겠다. 눈치없게 햇볕이 쨍쨍했던 오늘, 빛이 잘 들어오는 카페에 앉아 이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내가 느낀 것은 혼란스러움이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와 동정, 자조섞인 생각과 행동들, 정체성과 고독, 고립에 대한 사투, 종내는 사랑과 죽음까지 주인공 라즈가 적어내려간 이 일기가 혹시 내 일기는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가장 구체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또한 보편적)이라고, 이 소설은, 이 노트는, 라즈의 이야기이자 구묘진의 이야기이며 또한 나의 이야기였다.



가장 소란한 시기였노라고 20대를 회고한 박연준 시인의 글이 떠오른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노르웨이의 숲>과 <위대한 개츠비>도. ‘나 자신이 되기 싫다‘고 생각했던, 생각하는, 나와 당신이 생각난다. 책을 덮은지 여섯시간이 넘게 지났는데, 도무지 감정적인 타격을 피할 길이 없어서 낮잠을 자고 일어난 참인데, 왜 나는 이토록 불안한가. 구묘진의 다른 작품들도 어서 번역되었으면 좋겠다.



‘글쓰기는 죽음을 배우는 것,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가장 높은 곳에서 살게 하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욕망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욕망이 아니다. 이는 자살과는 다르다. 구묘진 작가의 학교 친구가 그의 자살을 알려 왔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무척 인상 깊게 기억한다. 이 또한 그의 미학임을 당신도 알게 될 것이다. 죽음을 선택한 것 또한 창작이다. 구묘진은 죽음 속의 삶, 죽음 후의 삶을 창작해 냈다.‘ - 엘렌 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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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존, 디어 폴
폴 오스터.J. M. 쿳시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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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다음으로 재미있는게 편지 아닐까. 사적인 글쓰기를 엿보는건 항상 은밀하고 짜릿하다. 존 쿠체와 폴 오스터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약 3년동안 주고받은 편지가 책으로 엮여 나왔다. <디어 존, 디어 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두 사람의 서로를 향한 존중이었다. 예의바른 우정을 기반으로 다양한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그들. 작품들만으로는 두 작가의 조합이 상상이 안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들의 편지를 읽다보니 제법 훌륭한 조합같다.



그리고, 요즘 시대에 이메일이 아닌 손으로 쓴 편지라니. 낭만적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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