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있는 삶
정소현 지음 / 창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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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첫번째 소설집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어디선가 이 두번째 소설집을 ‘올해의 인생 책‘이라 단언하는 리뷰를 읽고 관심이 생겼다. 서점에서 몇페이지를 뒤적이다 구매했다. 이 소설집에는 신샛별 평론가의 말처럼 진정 ‘고독‘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읽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기억만을 반복하는 것이 지옥이라는 「지옥의 형태」, 망각을 통해 다른 세계에 진입해서야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어제의 일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해야 ˝loneliness˝가 아닌 ˝solitude˝의 태도를 가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이 소설집은 해답을 제시해주지 않는다. 쉽지 않은 질문들을 던져주고 홀연히 끝나버린다. 사유할 거리를 던져주는 소설이기에 각별하다. 삶과 죽음, 애도와 속죄, 기억과 망각, 결국 인생에 대해서 말이다. 소설들의 어조는 희망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지만 어두운 방에 스탠드 하나 켜놓고 끝없이 생각을 이어가게 만든다. 정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 소설집이 가진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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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환상 속의) 너에게.



안녕. 이 책을 읽으면서 네 생각이 많이 났어. 정확히 말하면 내 환상 속의 너 말이야. 나는 너와 나를 「엔터 샌드맨」에 나오는 지수와 지훈처럼 나와 같은 재난을 겪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어. 당시 나에게는 말하지 않아도 이해받을 수 있다는게 중요했고 또 귀했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 너를 붙잡아야한다고 믿었어. 결국 우리는 다른 경험을 한 다른 사람이고 모든 대화는 독백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던거야. 또 타인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돌볼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도 몰랐지.



아무튼. 「엔터 샌드맨」에서 지수는 뒤늦게서야 지훈이 ‘그녀가 유일하게 속해있던 아주 사소하고 구체적인 세계(191p)‘였다는 사실을 깨달아. ‘그 세계가 정말로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동시에 영원히 잃어버린‘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가 않네. 나는 환상 속에 빠져 살고 거창한 것들을 꿈꾸지. 파멸같은 것들. 그래서 문득 네가 ‘정확하게 나와 같은 재난을 겪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잠깐 깨달았을 때, 내가 속수무책으로 너를 믿고 의지하기 전에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어. 어렵다. 어렵고 모르겠어. 너와 내가 함께 속하는 세계가 있었는지, 있었을 수도 있었는지, 있는지. 지수가 그랬듯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닫게 될지도 모르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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