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 증명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7
최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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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로써 최진영 작가의 단행본을 모두 읽었다. 하나만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구의 증명>이다. (그 다음은 근소한 차이로<해가 지는 곳으로>) 이 소설, 사람이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그만 먹어버리겠다는데, 이토록 아름다워도 되는 걸까.



남자와 여자. 구와 담. 함께일 때 완전한 그들. 연인, 혹은 또 다른 나. 이 지리멸렬한 생을 함께할 단 한 명의 동반자. 두 사람.



그런데 구가 죽었다. <구의 증명>은 구를 꼭꼭 씹어먹으며 상실을 견디는 담의 이야기다. 구가 살아있었으며 구와 담이 사랑했다는 증명이다. 그리하여 종내는 구와 담이 진실로 하나가 된다.



둘이서만 완전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구와 담의 세계를 무너뜨린 것은 사회다. 돈이다. 빚이다. 가난이다. 구를 죽인 것은, 담을 홀로 남긴 것은 그들 자신이 아니다. 구와 담은 아주 아주 천천히 하나-사랑의 세계에서 둘-고독-상실의 세계를 지나 다시 하나-사랑의 세계로 돌아온다. 180여 쪽에 걸쳐서.



나는 너의 구, 나는 너의 담, 나는 너의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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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
최진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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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작가의 소설집 <겨울방학>을 드디어 만나보았다. 이 책은 <팽이>에 이어 6년만에 묶인 저자의 두번째 단편소설집이다. 그간 저자의 장편소설들을 거의 다 섭렵한 독자로서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서는 제법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간과했던 것은 장편와 단편의 호흡이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해가 지는 곳으로>나 <이제야 언니에게>의 아픔을 떠올리며 사뭇 비장한 마음을 가지고 펼쳐들었는데 내가 <겨울방학>을 읽으며 마주한 것은 제법 색채가 선연한 세계였다. 물론 수록된 열 편의 소설들 모두 가난하고 불안한 현재를 사는 이들이 주인공이지만 이들은 결국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인상깊었던 작품은 단연 표제작 ‘겨울방학‘이다. 동생의 탄생을 앞두고 혼자 사는 고모의 집에 맡겨진 이나의 이야기다. 이나의 눈에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더 많아 보이는 고모이지만, 사실 이나의 고모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그에 알맞게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다. 또한 이나에게 어른이 되어서도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이다. ‘네가 내게 배운 것이 가난만은 아니라면 좋을텐데‘라는 소설 속 고모의 중얼거림은 내게도 선명히 남았다. ‘겨울방학‘속 고모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던 이슬아 작가의 추천사에 너무나 공감한다.



그런가하면 주은이 결혼을 약속한 애인인 주호의 가족을 처음 만나러 간 날의 이야기를 담은 ‘가족‘도 기억에 남는다. 자신의 신세를 계속해서 한탄하는 아버지와 아들을 치켜세우다가도 깎아내리는 어머니, 그리고 발랄한 여동생 수영. 고아로 자란 주은이기에 가족과 가족이 된다는 것은 되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이다. 결국 주은은 ‘가족이 뭘까‘라는 질문에 닿는다. 누군가를 사랑해서 함께 있고 싶을 뿐인데(결혼) 그 사람의 가족까지 삶에 들어온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조금 이상한 것 같다. 역시 이 말을 하고 싶어진다. 이러나 저러나 ‘효도는 셀프‘.



<겨울방학>을 읽으면서 나는 희망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희망은 있다. 벽에 갇혀 나가고 싶지 않은 상태에도, 나락으로, 절망으로 떨어진 상태에도 희망은 있다. 바닥에 처박혔다면 그대로 잠시 누워있다가 심호흡을 하고 다시 일어나면 된다. 내가 나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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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셀레스트 응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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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는 죽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



셀레스트 응의 <작은 불씨는 어디에나>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에 그의 첫번째 소설인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을 집어들었다. 이 책은 1970년대 미국 오하이오의 한 중국계 미국인 가정을 집중 조명하는 이야기로, 첫째 딸 리디아가 실종되면서 시작된다.



시작만 봐서는 미스테리 추리물같지만 이 소설에서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가족‘이다. 이야기 또한 제임스, 메릴린, 네스, 한나 - 리디아 가족의 입장에서 차례로 진행된다. 특히 마을의 유일한 중국계 미국인 가족으로 산다는 것, 부모의 좌절된 꿈이 아이에게 이양되었을 때의 폭력성, 아이들만이 공유하는 집안의 공포와 불안이 세밀하게 그려진다. 결혼과 육아로 의사라는 꿈을 이루지 못한 메릴린은 리디아를 의사로 만들기 위해 강박적으로 매달린다. 제임스 또한 중국계 미국인이기에 겉돌았던 학창시절의 경험을 떠올리며 아이들을 억지로 친구들 사이에 밀어넣는다. 지나친 관심으로 자기 자신이 사라진 리디아와 관심의 결여로 조용한 아이가 되어가는 네스. 가장 가까이에 있지만 서로를 가장 모르는 것이 가족일 수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은 여실히 보여주는 듯하다.



소설의 제목인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은 좁게는 리디아가 부모와 형제에게 말하지 않았던 부담과 공포, 불안이며 넓게는 그들 가족 구성원 사이에 자리했던 벽을 의미한다. 리디아의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사건이 일어난 뒤에야 격렬한 애도의 과정을 거치며 그녀가 죽음을 선택한 원인을 되짚어보는 가족들. 씁쓸하다고 밖에. 아무리 가족이어도 ‘나는 나, 너는 너.‘ 더 나아가 ‘구원은 셀프.‘



이 소설도 나쁘지는 않지만 셀레스트 응의 두 작품들 중 하나를 고르라면 <작은 불씨는 어디에나>를 고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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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교수의 신작이 나왔다길래 기대했었는데 논어 에세이라는 말에 그만 시무룩해졌었다. 논어라니. 딱히 고전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건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나는 중고대학교를 거치며 꼭 한 번씩은 타의로 논어를 접해야만했고, 내가 만났던 논어는 글쎄 다 좀 별로였다. 그래서 이 책도 읽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재미 없으면 덮지 뭐’ 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그만 끝까지 읽고 뒷표지를 덮고 말았다.



논어‘에세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논어의 구절들보다 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저자의 유머가 가미된 문장들이 나를 살렸다. ‘학이시습지..’로 시작 안하는게 어디냐 하고 읽었는데 왠걸, 키득거리며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현 사회의 문제들을 한데 묶어 글을 풀어나가니 공감이 안 될 수가 없다. 쩍벌남, 고기예찬, 쉬는 방법에 대한 무지 등등.



‘<논어>에 담긴 생각은 이미 죽었다!’, ‘공자는 생각보다 무능하고 모순적인 인물이다!’부터, 21세기에 <논어>를 읽어내려간다는 것에 대해서까지 이 책은 능수능란하게 ‘딱딱한 고전’이라는 벽을 넘어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나로서는 그간 학교에서 접했던 다시는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논어의 이미지를 좀 더 말랑말랑하게 바꾸어줬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높게 사고 싶다. 고난을 함께했던 학우들에게 이 책을 쥐어주고 ‘아니 얘들아 이 논어는 그 논어가 아니라니까?’하고 싶은 심정이랄까.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 논어 에세이는 그의 논어 프로젝트의 서막에 불과하다고. 그 다음을 따라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기대도 된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들
>이라는 책의 제목처럼 나도 간신히, 희망을, 꿀꺽 삼켜본다. (나도 논어 마스터가 될 수 있을지 몰라!)



(그런데 속표지가 베이비 핑크 색상이라니! 한참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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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과 탄광
진 필립스 지음, 조혜연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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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재미는 역시 내가 가보지 않은 시대의 겪어보지 않은 일들을 간접체험하는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1930년대 미국의 탄광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진 웹스터의 데뷔작 <우물과 탄광>을 읽는 내내 아주 재미있었다. ​



앨버트와 리타, 그들의 세 아이 버지, 테스, 잭은 풍족하지 않은 살림에도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가족이다. 소설은 그들의 집 근처 우물에 어떤 여자가 갓난아이를 던져넣는 충격적인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앨버트는 앨버트대로, 버지와 테스는 그들대로 누가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알아내고자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들이 배우는 것은 다양한 삶의 면면들이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 누군가의 가난은 동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그리고 결국 ‘함께’이기에 살 수 있다는 것. ​



이 소설의 핵심은 ‘함께’라는 단어에 있는 듯하다.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 누가 우물에 아이를 던졌는지가 아니라, 왜 그런 일을 했는지(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더 궁금해하는 것. 미스테리로부터 시작되지만 앨버트 가족의 다섯 시각으로 펼쳐지는 일상과 그 일상 속 배움들이 더 깊게 다가오는 소설이다. ​



연필 굿즈에 새겨진 ‘슬픔이라는 감정에 비하면 미친 건 아무것도 아니죠.’라는 문구가 어떤 장면에서 나왔을까 궁금했는데, 그 장면이 앨버트가 흑인 동료인 조나로부터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려보는 방법’을 깨닫는 장면이라 더욱 좋았다. 리타가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는 장면만큼이나! 탄광마을에서 산다는 것은 매일 매일 목숨을 담보로 일한다는 것임에도, 배려와 사랑으로 하루하루를 꾸려가는 앨버트 가족의 모습에 명절을 무사히 보낸 것 같기도. ​ ​



(*첫번째 독자-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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