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 밀레니얼 세대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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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정지우 작가가 펴낸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밀레니얼 세대의 담론을 ‘청춘‘,‘젠더‘,‘공동체‘ 세가지 화두로 수렴해 풀어낸 에세이다. 서문에서 저자는 본인 또한 밀레니얼세대로서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마음과 느낌에 충실‘한 글들을 묶어냈음을 고백하고 있다. 군더더기 없고 명쾌한 글들이다.



밀레니얼 세대란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생한 세대를 뜻한다. 나 또한 밀레니얼 세대로서 책 속에 실린 글을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나의 답답함을 대변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블루보틀에 관한 글에서 ‘이미지에 대한 ‘즉각적인 접촉의 욕망‘이 삶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팍팍한 각자도생의 삶에서 젊은이들이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미지 뿐이다. 프레임 속 이미지는 화려하지만 그 밖의 현실은 지난하다. 휴일마다 인스타 인증용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니는 일은 피곤하다. 어쩌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된 걸까? 첫번째 챕터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젠더에 대한 두번째 챕터에서 저자는 ‘여성 혐오가 없다는 말은 내가 아는 한 가장 명백한 거짓말 중 하나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문제는 공고한 가부장제 카르텔이라고. 아직도 젠더 문제에 대해 의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이 챕터에 실린 글들을 읽고 깨닫는 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실 젠더 문제에 있어서는 현 사회를 살아가는 어느 누구도 혐의를 피할 수 없다. 결국 우리 모두가 가부장제 카르텔의 피해자이므로.



마지막 챕터는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 <원더>에 대한 글에서 ‘옳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친절함을 택하라‘라는 인용에 깊이 공감했다. 타인과 함께 살아가면서 상처는 필연적으로 겪게 된다지만 아무렴 상처를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적으면 적을수록 좋을 것이다. 인간은 서로에게서 가치를 확인받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존재가 아니던가. 친절과 환대, 선의가 그 어느때보다 절실한 시대다.



밀레니얼 시대의 독자들에게, 이 시대의 청년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며 계속 생각났던 구절을 소개한다.



˝환대란 타자를 도덕적 공동체로 초대하는 행위이다. 환대에 의하여 타자는 비로소 도덕적인 것 안으로 들어오며, 도덕적인 언어의 영향아래 놓이게 된다. 사회를 만드는 것은 규범이나 제도가 아니라 바로 환대이다.˝ - <사람, 장소, 환대>, 242p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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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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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매일 밤 자기 전에 존 버거의 글을 읽는다. 불안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고 평온을 얻는데 소소한 도움이 되고 있다. 소설 <A가 X에게>에 이어 두번째로 선택한 책은 에세이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다.



책 속에는 어린시절에 대한 회고, 예술작품과 예술인에 대한 생각들, 세계화와 자본주의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글들이 수록되어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존 버거의 드로잉을 다수 만나볼 수 있었다는 것! 때묻지 않은 자연스러움과 순수함이 느껴져 단순한 선들을 참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통찰과 사유가 듬뿍 담긴 글과 그림. 책은 얇지만 페이지마다 모자람이 없다.



책을 빨리, 많이 읽는데 익숙한 나지만 이 책만큼은 꼭 하루에 두 세편씩만 천천히 곱씹어 읽었다. 처음에는 분량에 비해 비싼 가격에 눈물을 삼키며 구매했던 책이지만 글을 한 편 한 편 읽어나갈수록 그 값어치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비싼거 아니냐며 툴툴댔던 과거의 내가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당장의 내 현실이 훌륭한 저자의 좋은 책 앞에서도 책값을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 씁쓸하기는 하지만, 내가 더 성장하는 수밖에!



어쨌든 존 버거 작품 읽기는 그의 왕성했던 집필활동과 다수의 번역본덕에 순항을 이어갈 예정이다. 천천히, 밤을 무사히 보내고 잠들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읽어나가리라. (그래서 다음 책은 무엇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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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다른 나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9
임현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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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나‘와 ‘소설가-나‘의 시선이 교차진행되며 펼쳐지는 이야기. ‘아내-나‘는 남편이 어딘가 달라졌음을 안다. 급기야는 없는 개를 찾아다니는 남편. 그녀가 미친 것일까? ‘소설가-나‘는 자신과 아내, 주변의 이야기를 조금씩 버무려 소설을 쓴다. 어느 날 모르는 여자가 자신에게 ‘여보‘라고 말한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소설이 진행될수록 실재와 허구가 뒤섞이며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누가, 무엇이 진짜인가? ‘소설가-나‘ 자신의 세계와 그가 그려낸 작품의 세계가 안과 겉이 수시로 뒤바뀌듯 엎치락 뒤치락하더니 급기야 결말부에 이르러서는 아무것도 자신할 수 없는 생태가 된다. 아, 나는 정말 모르겠다.



멀티 페르소나의 시대. 포스트모던-정체성에 대한 탐구. 작가가 집필한 작품 속 인물이 현실세계로 튀어나온다는 설정을 넘어서 둘 중 무엇이 실체이고 허구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기실 <당신과 다른 나>의 세계는 ‘소설가-나‘와 ‘여자-나‘ 둘 다의, 그리고 분명히 더 존재할 수많은 페르소나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다. 그러니 실체와 허구의 경계를 긋는 것에는 큰 의미가 없다.



‘소설가-나‘의 직업이 소설가라는 설정이 흥미롭다. 소설가로서 그가 실재하는 세계와 실재하는 세계를 바탕으로 그려낸 작품 속 세계는 얼마나 다른가. 그는 무엇이 진짜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소설의 마지막에 화장실 안에 갇힌 인물은 그 자신일 수도, 그의 소설 속 인물일 수도, ‘아내-나‘의 남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일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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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벨리스크의 문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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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제미신의 ‘대지 3부작‘ 중 두번째 책 <오벨리스크의 문>. 세 권 모두 휴고상을 연속 수상하며 화제가 되었던 시리즈! 작년에 첫번째 책인 <다섯 번째 계절>을 즐겁게 읽은 기억에 얼른 읽고 싶었지만 내 발목을 잡은 것은 마지막 권이 아직 번역 출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한참 재미있게 읽다가 흐름 끊기면 아쉬우니까. 고민하다가 그냥 읽기로 결심했는데 여기서 문제는 <다섯 번째 계절>의 내용이 가물가물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작성했던 리뷰를 찾아보기도 했는데 너무 재밌다고 호들갑떤게 다여서 기억을 되살리는데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다시 읽기로 했다.



일단 <다섯 번째 계절>은 다시 읽어도 재밌다. ‘아버지 대지‘와 ‘고요 대륙‘, 특별한 능력을 가졌으나 핍박받는 존재 오로진. 다마야, 시에나이트, 에쑨의 이야기가 제각각 펼쳐졌다 합쳐진다. 대지의 힘을 끌어모아 발현하는 오로진이라는 존재는 ‘펄크럼‘이라는 교육기관에서 스스로의 힘을 제어하는 법을 익힌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들은 ‘로가‘라 불리는 핍박과 증오의 대상이다. 이들이 ‘조산술‘을 이용해서 대륙이나 인간을 ‘디미는‘ 장면 묘사가 매우 생생하다. 어쨌든 <다섯 번째 계절>에서는 이 세계에서 왜 오로진이 차별을 받게 되었는지, 대륙에 닥친 ‘계절‘이란 무엇이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가 상세히 드러난다.



어디서도 읽을 수 없었던 신비한 세계관에 먼저 빠져들었다. 오로진의 능력과 핍박받아온 역사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처음 읽었을 때와는 달리 등장인물이나 상황에 심하게 이입했는지 읽는 내내 너무 고통스러웠다. 강인한 힘을 가졌음에도 제어당하고 유린당하는 오로진 시에나이트, 자신의 아이가 오로진이라는 이유로 남편에게 맨주먹으로 맞아 죽은, 그리하여 또 다시 생을 버려야하는 애쑨, 부모에게 버림받아 펄크럼으로 향하는 다마야. 이야기 속의 차별과 혐오와 폭력 - 나는 이것들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물론 이는 현실의 내가 차별과 혐오와 폭력에 더 예민해졌기 때문일것이다. 그러나 예민함에 수반되는 고통이 이토록 클 줄이야. (나는 더 예민해지고 더 섬세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인 문제와 별개로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기 때문에 <오벨리스크의 문>까지 열심히 읽었다. 일단 <다섯 번째 계절>에 비해 느리게 읽히는 감이 있지만 하나씩 드러나는 대지의 비밀을 파헤치는 재미가 있다. 두번째 책에서는 ‘오벨리스크‘와 ‘스톤 이터‘들이 전면 등장하며 ‘계절‘을 끝낼 수 있는 방법까지 드러난다. 새로운 공동체를 발견한 애쑨과 그녀 주변의 인물들, 아버지에게 이끌려 남쪽으로 내려온 애쑨의 딸 나쑨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되는데 이들 모녀의 활약이 대단하다.



마찬가지로 <오벨리스크의 문>을 읽어내려가며 느낀 새로움과 재미도 엄청났지만 그에 따른 고통도 여전했다. 이 고통은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을 읽을 때, 토니 모리슨의 소설을 읽을 떄와도 비슷하지만 다르다. 어쨌든.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자 여성 소설가 N. K. 제미신 정말 어마어마하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집필활동을 계속해 인정받은 그녀의 노력에 경의를. 이제 나는 시리즈의 마지막 권 <The Stone Sky>(아직 번역되지 않음)를 원서로 읽고 이 재미와 고통을 빨리 끝내버릴 작정이다.



사족이 길었다. 고통스럽지만 일단 읽고 봐야 할 정도로 흡입력있는 작품이다. 이렇게 ‘대지 3부작‘은 피어스 브라운의 ‘레드 라이징 시리즈‘와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이후 오랜만에 원서를 찾아 읽어버리는 시리즈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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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 - 지중해의 태양 아래에서 만난 영원한 이방인 클래식 클라우드 16
최수철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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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읽는 덕질보고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이번엔 알베르 카뮈다. <이방인>, <페스트>의 저자 바로 그 카뮈. 그의 작품을 여럿 읽은 것에 비해 카뮈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 기대를 가지고 이번 책을 펼쳐들었다. 더군다나 저자인 최수철 작가가 <이방인>을 직접 번역한 바 있으며 ‘나는 뫼르소다‘를 비롯한 다수 작품들에서 카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더욱 궁금했다.



카뮈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이 에세이의 여정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것은 카뮈의 작가세계다. (그가 치밀하게 남겼던 <작가수첩 1-3>이 많이 인용되는데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카뮈가 프랑스로 건너가 본격적인 집필활동을 시작하기 이전의 이야기가 무엇보다 흥미로웠다. 특히 저자가 제밀라, 카파사 등의 고대 유적 도시를 여행하며 카뮈를 회고하는 부분에서는 해당 도시의 사진을 많이 찾아보며 읽었다. 그중 티파사는 청년 시절 카뮈가 철학적 명상에 자주 잠겼다고 알려진 고대 유적지라고(이곳에서 <결혼>을 집필했다니!). 태양과 바다 그리고 폐허가 된 도시! 이곳에서 카뮈에게 ‘신화적인 순간‘이 깃들었다는 책 속 표현이 이해가 된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에 현재를 더욱 성실히 살아야한다는 말. 그러니까 죽음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 다음 단계로서 삶에 더욱 몰입하는 것.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이라면 한 쪽을 배제했을 때 다른 한 쪽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둘 다를 껴안고 가겠다는 카뮈의 태도는 언제 들어도 놀랍다. 카뮈가 말하는 삶은 곧 죽음에 대한 반항이자 ‘사랑에 대한 의무‘다. 어쩐지 올해는 읽는 책마다 사랑과 연대의 메시지와 마주치는 것 같다. 이는 책을 읽는 내 태도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독서에서 현실을 마주하기 위한 독서로.)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두 번의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한 번은 카뮈의 발자취를 밟는 저자의 여행을 함께한 것 같고, 다른 한 번은 카뮈의 작가세계를 한바퀴 돈 것 같고. 지중해 마초적 기질(...)이 다분하여 자유분방한 사랑을 추구했다던 카뮈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지만, 그가 지식인이자 작가로서 끈질기게 사유하고 기록하는 이였다는 점은 분명히 기억해두고 싶다. 이제 카뮈의 산문(특히 <작가수첩 1-3>)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그렇듯 해당 인물과 그의 저작을 더 알고 싶게 만드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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