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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벨리스크의 문 ㅣ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2월
평점 :
N.K.제미신의 ‘대지 3부작‘ 중 두번째 책 <오벨리스크의 문>. 세 권 모두 휴고상을 연속 수상하며 화제가 되었던 시리즈! 작년에 첫번째 책인 <다섯 번째 계절>을 즐겁게 읽은 기억에 얼른 읽고 싶었지만 내 발목을 잡은 것은 마지막 권이 아직 번역 출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한참 재미있게 읽다가 흐름 끊기면 아쉬우니까. 고민하다가 그냥 읽기로 결심했는데 여기서 문제는 <다섯 번째 계절>의 내용이 가물가물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작성했던 리뷰를 찾아보기도 했는데 너무 재밌다고 호들갑떤게 다여서 기억을 되살리는데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다시 읽기로 했다.
일단 <다섯 번째 계절>은 다시 읽어도 재밌다. ‘아버지 대지‘와 ‘고요 대륙‘, 특별한 능력을 가졌으나 핍박받는 존재 오로진. 다마야, 시에나이트, 에쑨의 이야기가 제각각 펼쳐졌다 합쳐진다. 대지의 힘을 끌어모아 발현하는 오로진이라는 존재는 ‘펄크럼‘이라는 교육기관에서 스스로의 힘을 제어하는 법을 익힌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들은 ‘로가‘라 불리는 핍박과 증오의 대상이다. 이들이 ‘조산술‘을 이용해서 대륙이나 인간을 ‘디미는‘ 장면 묘사가 매우 생생하다. 어쨌든 <다섯 번째 계절>에서는 이 세계에서 왜 오로진이 차별을 받게 되었는지, 대륙에 닥친 ‘계절‘이란 무엇이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가 상세히 드러난다.
어디서도 읽을 수 없었던 신비한 세계관에 먼저 빠져들었다. 오로진의 능력과 핍박받아온 역사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처음 읽었을 때와는 달리 등장인물이나 상황에 심하게 이입했는지 읽는 내내 너무 고통스러웠다. 강인한 힘을 가졌음에도 제어당하고 유린당하는 오로진 시에나이트, 자신의 아이가 오로진이라는 이유로 남편에게 맨주먹으로 맞아 죽은, 그리하여 또 다시 생을 버려야하는 애쑨, 부모에게 버림받아 펄크럼으로 향하는 다마야. 이야기 속의 차별과 혐오와 폭력 - 나는 이것들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물론 이는 현실의 내가 차별과 혐오와 폭력에 더 예민해졌기 때문일것이다. 그러나 예민함에 수반되는 고통이 이토록 클 줄이야. (나는 더 예민해지고 더 섬세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인 문제와 별개로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기 때문에 <오벨리스크의 문>까지 열심히 읽었다. 일단 <다섯 번째 계절>에 비해 느리게 읽히는 감이 있지만 하나씩 드러나는 대지의 비밀을 파헤치는 재미가 있다. 두번째 책에서는 ‘오벨리스크‘와 ‘스톤 이터‘들이 전면 등장하며 ‘계절‘을 끝낼 수 있는 방법까지 드러난다. 새로운 공동체를 발견한 애쑨과 그녀 주변의 인물들, 아버지에게 이끌려 남쪽으로 내려온 애쑨의 딸 나쑨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되는데 이들 모녀의 활약이 대단하다.
마찬가지로 <오벨리스크의 문>을 읽어내려가며 느낀 새로움과 재미도 엄청났지만 그에 따른 고통도 여전했다. 이 고통은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을 읽을 때, 토니 모리슨의 소설을 읽을 떄와도 비슷하지만 다르다. 어쨌든.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자 여성 소설가 N. K. 제미신 정말 어마어마하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집필활동을 계속해 인정받은 그녀의 노력에 경의를. 이제 나는 시리즈의 마지막 권 <The Stone Sky>(아직 번역되지 않음)를 원서로 읽고 이 재미와 고통을 빨리 끝내버릴 작정이다.
사족이 길었다. 고통스럽지만 일단 읽고 봐야 할 정도로 흡입력있는 작품이다. 이렇게 ‘대지 3부작‘은 피어스 브라운의 ‘레드 라이징 시리즈‘와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이후 오랜만에 원서를 찾아 읽어버리는 시리즈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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