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만드는 법 - 더 많은 독자를 상상하는 편집자의 모험 땅콩문고
이연실 지음 / 유유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5년차 에세이 편집자의 <에세이 만드는 법>은 결국 좋아하는 마음에 대한 책이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가 이야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열렬한 마음이 배어들어있다. ‘덕심’이라는 단어가 아니면 설명하기 어려운 엄청난 에너지!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을 좋아한다는 건 바로 이런 마음이구나 절절히 느꼈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야하는, ‘애매한 중간성, 경계 없음, 체계 없음, 막연함과 자유로움’으로 정의되는 에세이. 이 책에서는 한 권의 에세이가 만들어지기까지 편집자가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유명인이라고 그가 쓴 책이 전부 잘 되는 건 아니라는 것, 제목으로 좌우되는 책의 운명, 어떻게든 팔리게끔 쓰는 띠지 문안 등등 현직자의 팁도 가득하다. 내가 느낀 것은 두 가지다.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는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것 이상의 정성이 들어가는구나, 잘 팔리는 책을 만드는 공식은 없지만 ‘한 끗’의 정성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구나.



좋아하는 마음을 잃고 싶지 않다. 세상을, 사람들을, 나 자신을, 나의 일을, 책을, 그리고 그 외 수많은 것들을. ‘좋아하는 마음이 많아서 자주 복받치는’ 저자의 마음을 닮고 싶다. 책 속에서 저자가 그러한 마음을 유지하는 비법으로 소개한 것은 바로 잡지! 오늘은 서점에 들러 잡지 분야를 어슬렁거려봐야겠다.



마지막으로, 책을 좋아하는 마음이 사그러들때도 <에세이 만드는 법>은 훌륭한 부스터다. 어째서 며칠 전의 나는 ‘예전처럼 독서를 즐기지 못하게 된 것 같다’ 어리석은 생각을 했던가. 수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깃든, 그 많은 책들 중에서도 내 손에 들린 단 한 권의 책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되는 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3
최진영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2월
평점 :
품절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의 모든 나와 함께하고 있다고. 내가 감각하고 있는 순간은 과거,현재,미래 모든 순간의 내가 함께 겪고 있는 거라고. 어떤 일이 닥쳐도 모든 순간의 나를 떠올리면 나는 곧바로 무적이 된다. 과거 내가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빚더미가 되어 와르르 쏟아질 때는 허클베리 핀처럼 ‘지옥은 내가 간다!‘를 외친다. 그렇게 외치고 나면 모든 순간의 내가 벼랑에 매달려있는 어린애의 손을 꽉 잡아 끌어올려주는 기분이 된다.



최진영의 소설은 과거의 나를 자꾸만 만나게 한다. 발문에서처럼 읽혀지는 소설이 아니라 체험되는 소설. 그의 소설을 읽노라면 미숙하고 무력해서 밀려오는 상황들을 어쩌지 못하고 고스란히 다 받아낸 그때의 내가 자꾸만 되살아난다.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처럼 아슬아슬했던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는 일은 꼭 필요하지만 버겁다. 그래서 이 책 또한 읽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오래 망설였다. 결국 읽게 된 이유는 하나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을 만큼 자랐을지 궁금했다. 이 질문에 모든 순간의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내가 되는 꿈>은 과거의 태희와 지금의 태희의 이야기다. ‘내가 되는 꿈‘을 꾸는 어린 태희와 ‘아무도 내가 될 수 없고 나도 남이 될 수 없다. 내가 될 수 있는 건 나 뿐이다. 자칫하면 나조차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지금의 태희는 꼭 같은 사람, 함께 존재하는 사람, 그러니까 모든 순간의 태희. 이들은 각각의 시간선상에서 정면을 똑바로 응시한 채 나아간다. 슬픔, 분노, 모멸감, 수치심 이 모든 것들을 단 한 톨도 흘리지 않고 전부 그대로 느끼면서. 이들은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같다. 이들은 ‘나‘가 되기 위해 나아가지만 이미 ‘나‘다. 과거에도 지금도 이미 모든 순간의 태희가 함께한다.



저자의 문장은 간결하지만 그 안에는 진실의 힘이 꽉 들어차있다. 그래서 저자의 소설을 읽을 때는 내가 미처 마주하지 못하는 내 진실과 정면승부를 벌이는 기분이다. 그러니까 저자의 소설은 읽기 전에는 두렵지만 읽고 나면 위로받은 듯 개운한 소설. 너무나 소중하고 너무나 아끼기 때문에 함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나를 보는 것 같은 소설. 저자의 모든 작품을 따라읽으며 계속해서 걷는 이 길이 어딘가 더 나은길로 향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느끼고 있다. 이제는 모든 순간의 내가 같이 걷고 있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 잊지 않으려고 시작한 매일의 습관, 자기만의 방
김신지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 드롭박스에는 ‘보물창고’ 폴더가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보내준 칭찬과 응원과 찬사와 사랑의 메시지를 캡쳐해 보관해둔 폴더다. 처음에는 힘들때 찾아보면 기운이 날 것 같아서 모아두기 시작했는데 막상 살펴보려니 부끄럽고 낯간지러워서 몇 번 열어보지 못했다.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사람’ 김신지 작가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를 읽으면서 왜인지 나의 보물창고 폴더가 자꾸만 생각났다.



이 책은 기록하는 방법을 하나씩 소개하는 에세이다. 책을 읽다보면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이 피어오름과 동시에 세심하고 다정한 저자의 문장에 위로받게 된다. 기록 덕후인 나로서는 동지를 만났다는 기쁨에 읽는 내내 들뜬 마음이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기록 방법과 아카이빙 방법도 알게되어서 당장 적용해볼 생각에 신나게 읽었다. ‘나를 기록하기’를 넘어 ‘사랑하는 것들을 기록하기’로 이야기가 진행될 때는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했고. 이보다 친절하고 다정한 기록 에세이가 있을까 싶다.



기록해야지 마음만 먹고 작심삼일인 분들이라면 이 책으로 기록 예열을 시작해보시길 권한다. 챕터마다 기록 연습과 사진이 함께 실려있어 당장 기록을 시작해볼 수 있다. 일상에 치여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이라 읽을 책을 평소보다 까다롭게 고르고 있는데도 무척 좋았던 책이다. 좋은 문장들을 모아두는 문장수집은 이 책을 두고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오늘의 ㅎ은 바로 이 책. (그게 무엇인지는 읽어보시길 호호)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 - 기업인 박용만의 뼈와 살이 된 이야기들
박용만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뉴스를 통해서만 기업인을 접하게 되니 그들에 대한 편견이 있다. 어느 기업의 회장이라고 하면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 없이 으레 떠오르는 딱딱한 이미지가 머릿속을 재빠르게 점령해버리는 식이다. 기업인이 책을 썼다고 하면 당연히 대필 작가가 쓴 자서전이겠지 하고 만다. 그런데 무려 마음산책에서 전 두산, 전 대한상의 회장직을 역임한 이의 산문집이 나왔다. 대필 자서전이려나? 아니다. 정형화된 글이려나? 아니다. 읽자마자 바로 친구에게 연락했다. ‘이 책 찐이야!’ 이 책에는 웃음도 눈물도 깨달음도 있다. 기업인 박용만의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



읽는 내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몰랐는데‘ 싶다가, ‘이렇게 위로가 될 줄은 몰랐는데‘ 싶다가, ‘이렇게 배우는게 많을 줄은 몰랐는데‘의 연속이었다. 결국 산문집의 매력은 저자 자신에게 있다. 저자의 글은 무엇보다 솔직하고 소탈하다. 가장 재미있었던 건 냉면집에서 ‘나 두산 회장인데 지갑을 안가지고 왔다’며 양해를 구하고 지나가던 직원에게 돈을 빌려 계산했다는 일화다. 평소 책을 읽을 때는 거의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못참고 여러번 웃었다.



그런가하면 저자가 리더의 자리에서 겪은 일들을 마주하고는 저절로 허리를 바로 세우게 됐다. 일전에 어딘가에서 ‘리더가 가진 극강의 통찰력은 큰 조직을 이끄는 책임감에서 나온다’는 문장을 읽었다. 나로서는 글로나마 어렴풋하게 짐작할 뿐이지만, 분명 리더라는 자리가 주는 남다른 배움이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 의전 등에 대한 의견도 솔직하고 가감없이 적혀있어 무척 큰 영감이 되었다. 더불어, 신입사원을 비롯해 후배 청년 세대를 향한 저자의 애정어린 마음이 무척 감동적이었다. 청년 세대가 나름의 열심을 살고 있다는 걸 이토록 적확하게 알아주는 어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어른이 가져야할 태도란 무엇인가’에 대한 좋은 답이 되어준다. 스스로의 과오는 인정하고, 변화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솔직하고 소탈하며,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데 주저함이 없는 어른. 나 또한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크THICK - 여성, 인종, 아름다움, 자본주의에 관한 여덟 편의 글
트레시 맥밀런 코텀 지음, 김희정 옮김 / 위고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엄청난 책을 어떻게 소개해야할까. 이런 책은 직접 읽어봐야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여성, 인종, 아름다움, 자본주의에 관한 여덟편의 글’이라는 부제가 달린 <시크 Thick>. 저자인 미국의 흑인 여성 사회학자 트레시 맥밀런 코텀은 솔직하고 시원시원한 문장으로 사회적 통념과 정면 승부를 벌인다. 글 한 편 한 편이 걸작이다.

스스로의 사회적 위치에 의문을 던지며 시작되는 저자의 글은 흑인이자 여성인 독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적 약자들이 공감할만하다. 개인적인 경험에서부터 출발하는 그의 이야기는 곧 그가 속한 사회, 더 나아가 미국 전체의 이야기가 된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아름다움, 오바마 전 대통령과 ‘화이트니스’, 모든 유능함을 지워버리는 ‘블랙니스’ 등에 대해 주저없이 자신의 의견을 쏟아낸다. 그야말로 도발적이면서도 담백하고 대담하면서도 낙관적이다. 독창적이며 영리하기까지 하다. 어떻게 자기 연민이나 자기 혐오에 빠지지 않고 이토록 밀도있는 글을 써낼 수 있었는지 놀라울 정도다.

그 중에서도 앞에 실린 세 편이 유독 좋았는데, 특히 ‘아름다움의 이름으로’를 으뜸으로 꼽고싶다. 자본주의에서 아름다움은 여성에게 유일하게 용인된 합법적인 자본인데, 이 아름다움은 백인 여성만을 위한 개념이라는 것이 이 글의 골자다. 저자는 반대 의견들을 하나씩 무너뜨리며 자신의 논지를 이어가는데 중간중간에 사용된 표현들이 무척 인상적이다. 그렇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이 글의 말미에 있다.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달려 있다고도 하고, 추하니까 추해 보인다고도 한다. 둘 다 거짓말이다. 추함은 아름다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가해진 모든 것이다. 그 차이를 아는 것이 자유로워지는 여정의 일부다.’(88p)

추천사에서 여성학자 정희진은 ‘필독과 필사를 권한다’고 썼다. 뉴욕 타임즈는 이 책을 두고 ‘우리 시대의 고전이 될 것이다’라고 평했다. 나 또한 위의 평들에 망설임없이 동의한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