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여서 좋은 직업 - 두 언어로 살아가는 번역가의 삶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권남희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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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다! 맑은 날 가벼운 옷차림으로 사뿐사뿐 공원을 산책하는 기분.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사노 요코 등 내로라하는 일본 작가들의 책을 30년째 번역하고 있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번역을 하고 싶다‘는 권남희 번역가의 에세이 <혼자여서 좋은 직업>. 번역과 일상에 대한 시시콜콜하고 유쾌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책이다. ‘번역하는 일은 행복하고 글 쓰는 일은 즐겁다‘는 저자의 말처럼 문장마다 즐거운 기운으로 가득하다. 그러니 읽어도 읽어도 더 읽고싶을 수밖에. 역시, 아쉬운 것은 분량 뿐!



‘하루도 이 일을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다‘는, ‘8할이 운인 가성비 좋은 인생’이라는 저자. 소심하고 수줍은듯 하지만 쾌활하고 낙천적인 기운이 문장 곳곳에 흐른다. 이런 것이 베테랑의 여유일까. 그런가하면 저자가 솔직하게 풀어놓는 일상의 이야기 앞에선 쿡쿡 웃을 수 밖에 없다. 프리랜서의 원수 스마트폰, 암울한 패션감각, 엄마와 딸과 함께하는 이야기까지. 저자가 ‘지하철이 4호선까지밖에 없던 시절’부터 계속해온 번역에 얽힌 이야기도 무척 재미있었다. 무엇보다도 사노 요코의 책에 미처 그대로 실리지 못한 역자 후기를 읽는 기쁨이 있었다.



왜 많은 분들이 저자의 책을 손꼽아 기다렸는지 알겠다. 이 책을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는지, 번역가가 될 생각은 조금도 없으면서 저자의 이전 책 <번역의 살고 죽고>를 연이어 읽고 있는 참이다. 작년에 나온 에세이 <귀찮지만 행복해볼까>는 아껴서 읽어야지. 그래서 다음 책은 언제 나온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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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풍경
마틴 게이퍼드 지음, 김유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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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비평가 마틴 게이퍼드의 미술 작품 탐방기를 그린 <예술과 풍경>. 전문적인 비평서라기보다는 저자가 미술 작품을 직접 두 눈으로 보기 위해 세계 각지를 여행한 기록에 가깝다. 저자는 루마니아, 이탈리아, 중국, 프랑스 등 다양한 국가를 넘나들며 조각, 회화, 사진작가 등 작품과 작가들을 만난다. 웹 상에서 클릭 몇 번이면 어떤 작품이든 찾아볼 수 있는 시대에 오로지 ‘바로 그 작품‘을 ‘바로 그 곳‘에서 보고자 모험을 감행하는 저자의 모습은 ‘덕후‘의 형형한 의지로 가득 차 있다. 그렇지만 여행이 어디 쉽던가. 그는 생전 처음 가보는 곳에서 길을 잃고, 간발의 차이로 작품을 보지 못하며, 예정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미술관으로 향한다. 물론 독자로서는 더욱 친근하고 풍성한 글을 읽을 수 있어 즐거울 뿐이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부분은 저자와 예술가들이 나누는 대화다. 그동안 다양한 예술가들과 친근하게 교류해온 저자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는 베니스의 궁전에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만나 ‘퍼포먼스 속 거대한 예술의 에너지‘에 대해 논하고, 까다롭게 인터뷰하기로 유명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에게서 그가 직접 수정한 드로잉 북을 선물받는다. 저자가 상대방으로부터 깊이 있는 대답을 이끌어내면서도 결코 놓치지 않는 것은 바로 그 순간의 분위기다. 어떤 환경에서 대화가 이루어졌는지, 예술가들을 직접 만나며 그가 받은 느낌은 어떠한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는 지식을 뽐내거나 젠체하지 않고 독자를 대화가 이루어지는 바로 그 순간으로 끌어들인다.



예술은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상의 경험이 아닌 실제 경험, 즉 실제 작품을 감상하고 실제 사람과 만나는 것이야 말로 가장 깊고 풍요로운 경험이다.‘(14p) 정말 그렇다. 작품을 만들 때 예술가가 서 있었을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는 경험은 절대로 대체될 수 없다. 또한 바로 그러한 경험들이야말로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겠나.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직접 원작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날이, 마음 놓고 공연장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날이 곧 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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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 - 마종기 산문집
마종기 지음 / &(앤드)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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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문학의 효용이 위로라면 바로 이런 글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60년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독자들 곁에 자리해온 마종기 시인의 에세이 <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 시인이 사랑한 예술과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 그가 고국을 떠나 시인이자 의사로서 살아온 지난날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시인의 문장은 다정하고 따뜻하다. 책을 읽는 내내 봄볕에 슬며시 녹는 눈이 된 것만 같았다. 잔뜩 긴장해있다가도 시인의 문장을 읽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편안을 누릴 수 있었다. 고집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우며 내세움 없이 겸손한 글 앞에서 어떻게 감동받지 않을 수 있을까. 시인을 좇아 부지런히 마음을 닦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지 다짐할밖에.



외국에 사는 게 힘이 들어 시를 쓰고, 외로움에 부칠 때 미술과 음악을 찾았다던 시인. 책 속에서 그는 ‘생활 속 즐거움‘이자 ‘오랜 세월 자신을 살려준 은인‘인 예술 이야기를 두런두런 풀어놓는다. 그가 이야기하는 예술은 지식이 아닌 ‘가슴과 가슴의 인사고 감동과 참을 수 없는 매혹의 집산‘(91p)이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는 이야기다. ‘서정의 파수꾼‘이라 불리는 시인의 시 세계를 지탱해 준 예술 작품들을 둘러보는 재미도 있었고, 예술이야말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확신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의학과 예술, 현대 시의 미래 등을 다룬 글에서는 시인의 넓은 식견과 깊이있는 통찰을 엿볼 수 있었는데, 역시 결론은 이해와 포용과 사랑으로 나아가는 예술로 이어졌다. 투명하고 순수하고 강력한 예술의 힘, 아름다움!



어떤 식으로든 자기 자신을 뽐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시대에 이토록 겸손하면서도 선한 문장을 만날 수 있음이 감격스럽다. 본문에 수록된 시인의 시와 이재용 작가의 사진이 무척 아름답게 어울려서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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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시대 - 문보영 에세이 매일과 영원 1
문보영 지음 / 민음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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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찬론자로서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 없었던 책, 이름하여 <일기시대>. 문보영 시인의 새 에세이다. 일기에 도저히 타인에게 보여줄 수 없는 지리멸렬한 감정의 파편들을 휘갈기는 나로서는 일기라는 제목을 붙인 글을 세상에 내보이는 시인이 굉장히 용감하고 멋지게 느껴졌다. 물론 시인의 일기는 보여질 것을 조금은 각오하고 쓰여진, 형식적인 것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글 정도가 아닐까 싶지만. 아무렴 어떤가. ‘무언가가 되기 위한 일기가 아니라 일기일 뿐인 일기, 다른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은 일기를 사랑한다.‘(12p)는 서문의 문장에 이미 넘어가버린 것을.



시인은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법한 일상조차 독특한 시선으로 포착해낸다. 책을 읽는 내내 꿈과 상상과 현실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듯한 기분이었다. 불면의 새벽시간을 버티는 순간은 ‘방 안에서 살아남기‘가 되고, 매일 가는 도서관을 새롭게 느끼는 방법은 ‘도서관 가는 길‘로 그려진다. 역시 비슷하게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제대로 붙잡는 방법은 ‘다르게 보기‘에 있는게 아닐까. 시선을 비틀고, 생각을 비틀고, 어제와는 다른 각도로 새롭게 살아가기. 지나치게 현실에 몰입하지 말고 가끔은 꿈과 상상을 섞어서 현실을 살기. 시인의 일기를 읽다보면 왠지 나도 이전과는 다른 시선을 가질 수 있을 것만 같다. 일기 속에 감정의 파편들 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무지갯빛 조각들도 적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손그림과 전시된 꿈 이야기, 구독 서비스를 하면서 받게된 독자들의 답장, 전화로 시를 읽어주는 ‘콜링 포엠‘ 이야기가 특히 좋았다. 시인이 시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무렵의 이야기도 무척 흥미로웠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책이 등장할 때는 편애하는 마음을 담아 잔뜩 표시를 해두었다. (이틈을 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전집 발간 제발!) 그렇지만 내가 시인의 글을 읽을 때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그가 슬픔과 불안에 솔직해질 때, 더 나은 무엇이 아니라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에 집중해낼 때다. 그리고 이런 문장들을 발견했을 때! ‘나는 나를 인간이라고 말하기보다 ‘준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삶을 산다는 말보다 ‘준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뭐든 조금 낮춰서 부르면 살만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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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가장 작은 빛 - 코스모스, 인생 그리고 떠돌이별
사라 시거 지음, 김희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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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에세이. 무척 솔직하고 아름답다.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을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여성 학자가 연구에 관련해서는 물론, 개인적인 상처와 극복의 여정을 가감없이 풀어놓는다. MIT의 천체물리학자이자 ‘쌍둥이 지구별’ 탐사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사라 시거의 에세이 <우주에서 가장 작은 빛>이다.



광활하고 드넓은 우주의 시간은 영겁같다. 그에 비하면 인간은 아주 짧은 순간을 산다. 우주를 매일 들여다보고 연구하는 학자에게도 예외는 없다. 저자는 평생을 걸려 매진한들 끝이 없는 주제를 붙들고 연구하는 학자이자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상실과 슬픔을 견디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그에게 연구와 삶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므로, 책 속에 그가 어둠 속에 반짝이는 별을 찾아가는 두가지 길이 모두 담겨있는 것이 올바르게 느껴진다. 그는 세상의 전부였던 아버지와 남편을 잃고 느꼈던 감정들, 지인들의 도움으로 두 아이와 함께 다시 일상 궤도에 진입하는 과정까지도 겉치레없이 솔직하게 내보인다. 무너지고 또 무너져도 결국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모습은 어린시절의 꿈을 기어코 현실로 만들어가는 모습과 겹쳐진다.



이 책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오롯하게 느껴지는 저자의 우주에 대한 사랑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끝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매일 매 순간 조금씩 더 나아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천재라 불리는 천체물리학자도 프로젝트 리더가 된 뒤 여성이라는 이유로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수 있고, 상실과 고통을 겪을 수 있고, 싱글맘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한걸음씩 나아갈 수 있다. 삶 속에서 가장 작은 빛을 찾을 때까지, 그리하여 ‘우주에서 가장 작은 빛’을 찾게될 때까지.



너무나 아름다운 언어로 쓰여진 이 책은 마법같은 힘을 가지고 있어서, 펼치자마자 그 자리에서 다 읽게 될테니 반드시 여유로운 시간에 시작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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