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박각시
줄리 에스테브 지음, 이해연 옮김 / 잔(도서출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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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힐은 다른 구두보다 빨리 망가진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미모와 비슷하고, 그래서 관리가 필요하다. (중략) 결국 알맞은 고도를 유지하려면 계속 구두굽을 고쳐 세워야 한다. 하이힐 굽이 만들어내는 효과와 보도에 부딪힐 때 나는 소리, 그것이 중요하다.(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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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에스테브의 데뷔작, 소설 <꼬리박각시>는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하는 롤라의 고독을 그리고 있다. 꼬리박각시는 벌새를 닮은 나방으로 꽃에서 꿀을 빨아먹으며 주로 낮에 활동한다. 주인공 롤라가 꼬리박각시일테다. 소설 전반적으로는 불안한 느낌이 가득한데다 롤라의 행보가 기괴하여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이 소설이 결국 사랑받고 싶어하는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나는 또한 불안과 미소가 반쯤 섞인 모호한 문장으로 사랑받고 싶은 우리의 미친 욕망을 표현하고 싶었다.’던 작가의 의도는 성공적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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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에 사는 여인
밀레나 아구스 지음, 김현주 옮김 / 잔(도서출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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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사랑이라는 게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사랑은 스스로 원하지 않으면 잠자리를 함께 하거나 친절하게 대하고 착한 행동을 해도 찾아오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랑이 다가오게 만들 도리가 없다는 것도 이상했다.(26p)’

<달나라에 사는 여인>의 원제는 프랑스어로 신장결석이라는 뜻의 'Mal Di Pietre'로 소설 속 주인공이 앓고 있는 병이자 그녀가 만난 재향 군인과의 인연을 만들어준 둘 만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달나라에 사는 여인'은 재향 군인이 주인공에게 한 말이다. 겉표지의 일러스트는 달인 것 같기도 하고 결석인 것 같기도 하다.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이 광증과 사랑, 욕망을 넘나드는 것처럼 이런 것 같기도 하고 저런 것 같기도 하다.


100페이지 남짓한 소설이라 가뿐히 끝내기는 했는데 정작 소설에 담긴 이야기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화자가 주인공의 손녀딸이기 때문에 주인공이 '할머니'라고 표현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할머니가 손녀딸에게 해주는 이야기이기에 나 또한 구구절절 과거 무용담을 듣는 기분이기도 하다. 주인공이 그동안 꽁꽁 감춰둔 재향 군인과의 사랑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화자인 손녀딸은 '문득문득 재향군인이 할머니를 사랑하지 않은 것 같다'거나 '아니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며 그들의 관계를 추측해본다. 마치 독자처럼. 어쩌면 이런 효과를 노려 화자를 손녀딸로 설정한 것은 아니었을까?


결국 <달나라에 사는 여인>은 한 여인의 이야기다. 뜨거운 욕망을 가졌고, 찰나의 달콤한 사랑을 경험했으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 없으나 남몰래 글을 썼던 여인. 소설의 마지막에 삽입된 재향 군인의 마지막 편지에서 그는 말한다. "상상을 멈추지 마세요. 부인은 미치지 않았어요. 누가 부인에게 상상의 나래를 펴는 일이 부적절하고 사악하다고 해도 믿지 마세요. 글을 쓰세요."(115p) 앞선 100페이지 남짓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상상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억하자. 주인공은 시를, 글을 썼다. 그리고 손녀딸에게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계속해서 자신 인생의 책을 써나갔다. 그 여인을 기억하자. 달나라에 사는 여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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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보이
데이비드 셰프 지음, 황소연 옮김 / 시공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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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보이>는 데이비드 셰프가 약물에 중독된 아들 닉의 치료과정을 함께한 실제 이야기를 그려낸 에세이로 2008년에 출간되었다. 티모시 샬라메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제작되어 2019년 개봉을 앞두고 있다. 나는 안일하게도 티모시 샬라메라는 말만 듣고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을 읽어보자는 생각에 이 책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며칠동안 정말, 너무나 힘들었다. 마치 수 클리볼드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었을 때와 비슷했다. 자식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받아들이려고 고군분투하며, 자기 자신이 망가지는지도 모르고 자식을 떠올린다는 점에서 수 클리볼드와 데이비드 셰프는 닮은 지점이 있다. 물론 그들이 처한 상황은 너무나 다르지만, 부모가 끈질기게 '왜'를 묻고 해답이 없을지라도 해답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은 읽고 있기가 너무나 힘겹다.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느껴져서인지 나는 계속해서 무너졌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닉의 모습에 마음이 쓰였다. 거짓말을 하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기에 약물 복용을 반복하고,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그럼에도 바뀌지 않고. 그러나 놀라운 점은 저자인 데이비드 셰프를 비롯해 닉 주변의 가족들이 끝까지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포기할 수 없었다는 말이 옳은지도 모르겠다.) 현재 닉은 8년째 약을 끊고 지내며 가정을 꾸리고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언제 다시 무너질지는 모르는 일이나 그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스스로를 이겨왔다는 점만은 대단하다.

약물 중독은 질병이며 중독자가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완전히 끊을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참담하고 아프지만 그게 현실이다. 어찌됐든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수밖에. 그 과정에서 가족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건 어떻게 보면 큰 행운이 아닐까. 아무튼. 부모의 조건없는 사랑이라는 것에 놀라고, 그럼에도 그림자처럼 완전히 지울 수 없는 중독이라는 것에 또 놀랐다.

데이비드 셰프의 후속작 <Clean>과 닉 셰프의 <Tweak>등의 저서도 궁금해진다.


(*서평단 활동으로 제공받은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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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밍 레슨
클레어 풀러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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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인데 잠이 오지 않아요. 이 노란색 노트를 발견하고 당신에게 편지를 써야지 했어요. 실제로는 하지 못한 말들, 시작부터 우리의 결혼에 관한 모든 진실이 담긴 편지를 말이에요. 당신은 내가 상상하거나 꿈꾸거나 지어낸 이야기라고 주장할 내용도 있겠지만 어쨌든 내가 보 는 시선이에요. 내 진실이에요.' (p.25)

길이 죽은 아내 잉그리드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과거에 쓰여진 잉그리드의 편지와 뒤에 남은 길과 두 딸의 이야기가 교차 진행된다. 점차 길과 잉그리드가 어떻게 만났는지, 왜 잉그리드는 떠나야만했는지, 등장인물들의 비밀들이 밝혀진다. 추리소설과 비슷한 기법을 쓰고 있어 사건을 유추해가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다.

길 콜먼이 소설가이고 잉그리드가 편지를 책 속에 끼워 넣었다는 사실 등 이야기 전반에 문학이 배경으로 쓰이고 있어 재미있었다. 길이 스캔들 소설 작가이자 난봉꾼이기는 하지만. 홀로 아이를 기르다시피 한 잉그리드의 유일한 위안은 홀로 하는 수영이었다. 잉그리드의 편지에서 그녀가 아이들을 기르며 느꼈던 외롭고 쓸쓸한 감정들, 떠날 것인지 말 것인지 하는 고민들이 섬세하게 그려져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은밀한 비밀들을 가감없이 적어내려가는 고백 편지이기에 더욱 흥미로웠다.

다만 이 이야기의 설정 자체는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난봉꾼 문학 교수에게 코꿰인 어린 여학생, 한창 빛날 시기를 남편 뒷바라지하며 보내는 아내. 왜 여성이 참는 존재로만 그려지는가? 적어도 잉그리드는 더 일찍 그 상황을 박차고 나왔어야 했다. 현실적으로 상황을 직시했어야 했다. 아무리 못해도 루이스처럼은 처신했어야 했다. 게다가 길은 전혀 호감이 가지 않는 캐릭터들 중 하나로 본인의 매력을 이용해 유희처럼 여자들을 찾아 헤매는 난봉꾼이자 삼류 작가에 불과하다. 소설 속에는 그려지지 않지만 부디 길이 충분히 고통받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야기의 아쉬움과는 별개로 특유의 표지 질감과 일러스트가 참 마음에 든다. 종이 냄새도. 겉표지가 무광 종이여서 읽다보면 책등 모서리가 자연스럽게 닳게 되는데 이 또한 멋스럽다. 잔 출판사의 책들을 전부 소장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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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맥퀸 - 광기와 매혹 현대 예술의 거장
앤드루 윌슨 지음, 성소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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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특히나 오뜨 꾸뛰르 컬렉션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내가 패션에 관심이 생긴 것은 작년 한 브랜드의 서포터즈 활동을 하면서부터다. 그 즈음 개봉한 영화 <맥퀸>도 보게 되었다. 그렇게 뒤늦게서야 알렉산더 맥퀸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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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맥퀸 : 광기와 매혹>이라는 제목의 이 전기는 맥퀸의 삶과 그의 컬렉션 등에 대해 상당히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개인으로서의 리 맥퀸에서 패션계의 천재이자 악동이었던 알렉산더 맥퀸까지. 인터뷰 및 주변 인물들의 증언, 기사 자료 등이 객관적인 자료로 인용되고 있어 맥퀸을 둘러싼 다양한 시선들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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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한 컬렉션 및 런웨이 퍼포먼스 등으로 맥퀸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이 책이 그의 작품들을 이해하는 좋은 단서가 되리라 믿는다. 또한 이 전기는 그에 대해 막 알게된 나같은 독자도 충분히 빠져들어 읽게될 만큼 잘 쓰여졌다. 물론 이 책 한 권이 맥퀸의 모든 것을 담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저자 앤드류 윌슨의 노력은 충분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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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좋았던 점은 맥퀸이 영감을 받았던 소스들(그림, 영화, 전시 등)이 잘 정리되어있다는 것! 책을 읽으며 인터넷으로 그의 컬렉션 영상과 사진들을 함께 보았는데 영감의 원천을 알고 나니 맥퀸의 세계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굳이 아쉬웠던 점을 꼽자면 컬렉션 사진들의 부재 정도. 책의 분량이나 저작권 등의 부가적인 문제가 있었으리라 짐작되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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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주간에 걸쳐 읽었던 책을 끝내고 나니 공허하다. 이사벨라 블로와 조이스 맥퀸의 죽음 그 이후 이야기를 읽을 때는 너무나 힘겨웠다. 조금 운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오, 맥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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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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