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밍 레슨
클레어 풀러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새벽 4시인데 잠이 오지 않아요. 이 노란색 노트를 발견하고 당신에게 편지를 써야지 했어요. 실제로는 하지 못한 말들, 시작부터 우리의 결혼에 관한 모든 진실이 담긴 편지를 말이에요. 당신은 내가 상상하거나 꿈꾸거나 지어낸 이야기라고 주장할 내용도 있겠지만 어쨌든 내가 보 는 시선이에요. 내 진실이에요.' (p.25)

길이 죽은 아내 잉그리드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과거에 쓰여진 잉그리드의 편지와 뒤에 남은 길과 두 딸의 이야기가 교차 진행된다. 점차 길과 잉그리드가 어떻게 만났는지, 왜 잉그리드는 떠나야만했는지, 등장인물들의 비밀들이 밝혀진다. 추리소설과 비슷한 기법을 쓰고 있어 사건을 유추해가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다.

길 콜먼이 소설가이고 잉그리드가 편지를 책 속에 끼워 넣었다는 사실 등 이야기 전반에 문학이 배경으로 쓰이고 있어 재미있었다. 길이 스캔들 소설 작가이자 난봉꾼이기는 하지만. 홀로 아이를 기르다시피 한 잉그리드의 유일한 위안은 홀로 하는 수영이었다. 잉그리드의 편지에서 그녀가 아이들을 기르며 느꼈던 외롭고 쓸쓸한 감정들, 떠날 것인지 말 것인지 하는 고민들이 섬세하게 그려져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은밀한 비밀들을 가감없이 적어내려가는 고백 편지이기에 더욱 흥미로웠다.

다만 이 이야기의 설정 자체는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난봉꾼 문학 교수에게 코꿰인 어린 여학생, 한창 빛날 시기를 남편 뒷바라지하며 보내는 아내. 왜 여성이 참는 존재로만 그려지는가? 적어도 잉그리드는 더 일찍 그 상황을 박차고 나왔어야 했다. 현실적으로 상황을 직시했어야 했다. 아무리 못해도 루이스처럼은 처신했어야 했다. 게다가 길은 전혀 호감이 가지 않는 캐릭터들 중 하나로 본인의 매력을 이용해 유희처럼 여자들을 찾아 헤매는 난봉꾼이자 삼류 작가에 불과하다. 소설 속에는 그려지지 않지만 부디 길이 충분히 고통받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야기의 아쉬움과는 별개로 특유의 표지 질감과 일러스트가 참 마음에 든다. 종이 냄새도. 겉표지가 무광 종이여서 읽다보면 책등 모서리가 자연스럽게 닳게 되는데 이 또한 멋스럽다. 잔 출판사의 책들을 전부 소장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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