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트리스의 예언 비룡소 걸작선 63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소피 블랙올 그림, 김경미 옮김 / 비룡소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름다운 동화. 사랑과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에는 속절없이 끌리게 된다. <비어트리스의 예언>은 슬픔으로 가득한 세상에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여자아이 비어트리스가 나타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뉴베리상 2회 수상자이자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으로 유명한 케이트 디카밀로의 작품이다. 담백하면서도 선하고 따뜻한 동화. 어쩌면 어른들을 위한.

작품의 배경은 전쟁의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이다.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여자아이가 왕을 왕좌에서 내려오게 한다는 예언이 있었으나, 그 아이가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예언은 오랫동안 무시되어 왔다. 그러나 기어이 등장한 주인공 비어트리스. 그녀는 ‘슬픔이 적힌 책이라면 읽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당돌한 면모와,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의연함, 이야기를 풀어내는 재주를 가졌다. 그런 비어트리스가 염소, 에릭 수사, 동료를 만나 왕을 만나기 위한 모험을 떠난다. 그녀의 가장 큰 무기는 사랑과 이야기다.

동화 특유의 은유와 단정한 문장들이 주는 위안에 새삼 놀라며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이야기는 간단하지만 여운이 결코 짧지 않다. 자기 자신을 믿는 여자아이, 배움에 대한 열망, 사랑과 우정, 시련에도 불구하고 다음으로 나아가는 용기. 다 읽고 나면 누구라도 꼭 안아주고 싶은 따뜻한 마음이 된다. 이런 류의 동화는 직접 읽고 체험해보아야 그 진가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것. 부드럽고 우아한 방식으로, 동화라는 형식을 빌려,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새삼 배웠다.

-˝우리는 모두 마침내, 집으로 가는 길을 찾게 될 것이다.˝
-˝세상은, 글자로 다 쓸 수 있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브루클린 책방은 커피를 팔지 않는다
이지민 지음 / 정은문고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협찬)
작가들의 도시 브루클린. 월트 휘트먼, 제니퍼 이건, 콜슨 화이트헤드, 줌파 라히리가 사는 도시. 이곳에는 책방들이 있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자주 찾는 곳들이. 브루클린 책방들은 어떻게 코로나를 통과해 살아남았을까? 새로운 도시를 방문할때마다 책방을 찾는 사람으로서, 브루클린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읽었던 <브루클린 책방은 커피를 팔지 않는다>.

동네 서점의 가장 큰 강점은 큐레이션이다. 어떤 서점이든 문을 열고 들어가 한 바퀴 둘러보기만 해도 애정을 가지고 꾸며진 서가라면 단번에 티가 난다. 바꾸어 말하면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책을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본다고나 할까. 그런 면에서 특색있고 알차게 꾸며진 동네 서점들을 나 역시 무척 사랑한다. 브루클린 서점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동네 서점의 변화와 발전을 이끄는 것은 책을 사랑하는 마음임을 다시 한 번 새길 수 있었다. 책 문화의 거점으로서 동네 서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소개된 책방들 중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은 센터 포 픽션. 사진 속 책으로 꽉 찬 벽면 서가 앞에 서면 책들을 바라만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도서관이자 책방인 이 곳에서는 멤버십 회원 운영과 작가들을 위한 작업 공간을 임대한다. 책방은 단순히 책을 사고 파는 공간이 아니라 책의 시작을 함께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책방은 작가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가닿는 마지막 순간을 돕는 것‘이기에 책방 운영을 겸허한 일이라 생각한다는 운영자의 말도 좋았다. 이 곳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청담동에 위치한 도서관이자 아트살롱인 소전서림(@sojeonseolim) 생각도 났다. 작가 지원은 물론 크고 작은 전시와 문화 강연을 여는 곳이다. 매년 열리는 ‘세상에서 가장 큰 책방 - 세가방‘ 팝업스토어(@segabang) 생각도 났고. 한국의 멋진 동네 서점들도 브루클린 서점들 못지 않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결국 동네 서점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건 동네 서점을 지키려는 독자들의 마음일지도.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애독자이자 번역가, 작가로 활동하는 저자의 서점탐방기인지라 동시대 작가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직 국내에는 번역되지 않은 데보라 리비의 신작, 메리 올리버의 시집, 야 지야시의 신작 이야기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번역을 통해 영미권 작가들의 책들을 만나보다보니 고전이나 현대문학이나 똑같이 멀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브루클린 서점에 깔려있을 이들의 책들을 상상하다보니 동시대성이 더욱 짙게 느껴졌다. 더불어 원서를 발굴해 소개해주시는 번역가, 편집자 등 출판 관계자 분들에 대한 감사도. 그나마 아는 언어로 쓰인 책은 어떻게든 원서를 읽어본다지만 그 외의 언어는 번역가 분들의 노고가 아니면 읽을 일이 요원하니, 결국 나의 독서는 수많은 분들께 빚지고 있는 셈이다. 욕심을 더 부려, 다양한 저자들의 책들을 국내에서 만나보려면 역시 독자들의 니즈가 있어야하려나 싶다. 이번에도 생각하게 되는 건 독자의 마음이다. 동네서점을 지키고, 출판 시장의 활성화를 이끌 수 있는 건 역시 독자의 마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의존 - 코펜하겐 삼부작 제3권 암실문고
토베 디틀레우센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협찬)
바로 이 책을 읽기 위해서 앞선 두 권을 읽어야만 했던 것이 아닐지. 덴마크 작가 토베 디틀레우센의 회고록 마지막 권 <의존>. 시와 함께 어린 시절과 청춘을 견디며 이제 어엿한 작가가 된 토베.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문학을 넘어선 삶이다. 문학이 곧 삶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삶은 언제나 그렇듯 기대를 배반한다.

3부에 들어서니 건조한 문체가 새삼 돋보였다. 이혼과 임신 중절 등 한 사람의 생애에 있어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을 심각한 사건들도 별 거 아니라는 듯 간단히 서술된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생략된 감정들도 여럿이다. 저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뿐하다. 그러나 때로는 담담한 서술이 깊숙히 폐부를 찌르기도 하는 법. <의존> 속 토베를 생각하면 홀로 서보려는 앙상한 나뭇가지의 이미지, 혹은 끝없이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릇의 이미지가 계속해서 떠오른다. 남자들도, 아이들도, 소설들도 토베의 빈 곳을 채워주지 못한다. 결국 그녀가 닿은 곳은 의존의 세계 - 약물이다.

책 소개 어딘가에서 이 작품이 엘레나 페란테의 글들을 연상시킨다는 구절을 본 것 같은데, 마지막 권을 읽으면서 나 역시 페란테를 생각했다. 그러나 토베의 글은 더욱 단단하고, 건조하고, 황량하다. 자기 연민 없이 그저 곧게 뻗어나가 기어이 탈선해버리는 이야기. 이 가감 없는 리얼함이야말로 이 작품이 뒤늦게 주목 받았던 이유가 아니었을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정한 서술자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읽은 비슷한 류의 책들 중 가장 좋았던 올카 토카르추크의 <다정한 서술자>. ‘읽는 기쁨이란 이런것이었지‘하고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깊은 사유, 통찰력, 그리고 그것을 적확하게 담아내는 문장. 나에게는 꼭 이런 문장이 필요했다. 날카로우면서도 동시에 낙관적인 문장이.



책 속에 담긴 에세이와 강연록은 저자가 작가 혹은 예비 작가들에게 건네는 말로 꾸려져있지만, ‘글쓰기‘를 ‘삶을 살기‘로 바꾸어 읽어도 무방하다. 누구나 비대해진 자아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이 시대에 어떤 글을 써야 하는가 하는 물음은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도 닿아있기에. 저자는 그 해답을 ‘다정한 서술자‘에게서 찾는다. ‘나‘에 국한되는 일인칭 서사가 아니라 연결된 전체를 아우르는 사인칭 관찰자 시점을 가질 것. ‘연민의 상상력‘을 가지고 ‘새롭고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대상을 바라볼 것.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해주는 것은 바로 문학이라고, 저자는 거듭해서 말한다.



‘오로지 문학만이 우리로 하여금 다른 존재의 삶 속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가서 그의 당위성을 이해하고, 그들의 감정을 공유하고, 그들의 운명을 체감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351p)



인간 중심 주의에서 벗어나 세상에 나라고 할 것이 없음을 알고,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기. 이것은 매 순간 우리의 내면에서 성취되어야 한다. <다정한 서술자>에 따르면 우리는 문학을 통해서 바로 이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관점과 시각‘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문학이 아우르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캐릭터의 내면을 탐험하며, 신화와 우화의 세계에 발을 담그며, 우리는 우리 자신이 세상의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문학을 읽는다는 건 생을 여러번 사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문학이라는 이름의 이 모든 현상에서 본질은 ‘읽기‘이므로 나는 여러분이 ‘쓰기‘가 아닌 ‘읽기‘에 몰두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187p)



결국 문학-읽기, 그것이 우리를 구할 것이다. 올가 토카르추크의 단단한 문장을 따라가노라면 정말로 그럴 수 있으리라고 믿게 된다. 나는 이 낙관적인 믿음이 너무, 너무 좋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다운 게 뭔데 - 잡학다식 에디터의 편식 없는 취향 털이
김정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처음 보는 사람과도 마치 영혼의 짝궁을 만난 것처럼 신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좋아하는게 한 두개가 아니라면? 우리의 대화는 시간가는 줄 모르게 끝도 없이 이어질 것이다. 바로 그 끝도 없는 대화 속으로의 초대장, 에세이 <나다운 게 뭔데>.

가식없이 솔직하고 유쾌하며 열렬하기까지한 저자의 취향 고백은 속도감 있게 읽힌다. 마치 경쾌한 실로폰 연주처럼. 그러니까 이 책은 취향 편식 없는 에디터가 부르는, 좋아하는 것들을 위한 찬가다. 사실은 유명해지고 싶고, 뛰어난 창작자들을 질투하고, 좋아하는 것엔 과하게 열정적이고. 이런 솔직한 마음도 사실은 너무 진심이기에 나오는 것들 아닌가. 몇 번이고 ‘아 저도 그래요!‘하면서 맞장구 치면서 읽었다. 취향의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을 부러워하는 사람으로서 동지를 만난 기분으로. 눈 앞에 앉아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물흐르듯 재미있게 읽힌다는 점도 좋았던 포인트.

공감가는 구절이 정말 많았는데, 하나만 꼽자면 ‘다 내려놓고 싶어질 때 나를 어디로 데려가야 할지 알고 있다는 건, 정말 든든한 자산이다(145p)‘라는 문장. 기분이 다운될 때 찾는 카페, 미술관, 음악, 책 등등 나를 비호해줄 취향의 리스트를 끝도 없이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마음을 정말 정확히 그려내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이것도 저것도 좋아하는 드넓은 취향의 스펙트럼은 응급시에도 도움이 된다. 취향의 세계를 누비다보면 금방 행복해지니까. 내 취향을 안다는 것은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안다는 말이고, 이것은 곧 나 자신을 안다는 말과도 같다.

최근에 너무나 좋아하는 웹소설(!) 이야기를 하다가 상대로부터 눈이 반짝거리고 목소리에 생기가 느껴진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나다운 게 뭔지>를 읽으면서 상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정말로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할 때, 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행복과 즐거움이 이 책에서도 느껴졌으니까. 읽는 동안 즐거움을 보장해주는 책. 좋아하는 것들이 많은, 취향 수집가 동지들에게 특히 추천.

+ 책 속에 소개된 천 번 봐도 천 번 우는 마법의 영상, 절대 안 울려고 했는데 역시나 감동받은 나머지 무한반복 중. 궁금하신 분들은 책으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