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 - 쉽게 얻은 사람은 모르는 일의 기쁨에 관하여
김경호 지음 / 허밍버드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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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속도전이 아니라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나 자신을 다른이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속도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누구보다 빠르게 누구보다 멋진 성공을 이루어야 할 것만 같다. 저들은 저만치 앞에서 달리고 있는데 왜 나는 계속해서 뒤쳐지는가? 매일이 조급하고 불안하다. 그런데 여기, 대학 입학도, 취업 준비도, 앵커 오디션도 끝없는 도전 끝에 겨우 성공한 사람이 있다. ‘속도를 기준으로 본다면 나는 패배자다‘라고 말하는 그는 ‘그럼에도 나의 경쟁력은 한 번에 되지 않는다는 거였다‘라고 담담히 고백한다. 꿈을 이루는데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믿음과 기다림이라고 말하는 김경호 앵커의 에세이 <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



뭘 해도 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를 믿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다. 쉽게 얻은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기쁨과 감사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다. 저자는 그동안의 실패와 도전의 역사를 한보따리 풀어놓으며 그럼에도 ‘자기 자신의 속도를 믿고 나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오래 걸린다는 말은 상대적이다. 나 자신과 꿈, 두 가지만 떼어놓고 보면 속도의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계속해서 꿈을 품고 살아간다는 한 가지 옵션만이 남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단 한 순간도 꿈을 내려놓은 적이 없다는, 게다가 꿈은 가능성과 상관없이 소망할 수 있는 것이라는 그의 말에는 힘이 있다.



그런가하면 책 속에서는 소심하고 낯가림 심한 사람의 사회생활 경험담도 만나볼 수 있다. 저자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직접 겪은 일화들이 솔직하게 수록되어 있는 만큼 무척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싫은 소리를 잘 하지 못하는 내향적인 사람이라면 신나게 읽을만한 구절들이 가득하다. 일방적인 조언이 아닌 자신의 경험을 소탈하게 풀어내고 있어 좋았다. 그러니까 책의 전반부에는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 보내는 응원이, 후반부에는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이 담겨있는 셈이다.



유독 마음에 남는 구절이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바뀐 세상이 무엇을 요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스스로 꿈에 선을 그을 필요는 없다.‘는말. 남들보다 뒤쳐지는 것 같아 좌절하는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격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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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3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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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정희진의 글쓰기 세번째 책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저자의 책은 전부 주저없이 구매한다. 데일듯 뜨거운 저자의 사유와 문장은 나로 하여금 끝없이 배우고 공부해서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한다. 아마 저자의 책에는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들 중 가장 많은 밑줄과 가장 많은 메모가 적혀있을 것이다. 때로는 수긍하고 때로는 반박한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의 다짐은 항상 같다. 어떤 삶을 살든 읽고 쓰는 것만이 살 길이다. 어제의 나를 오늘의 내가 갱신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번 책에는 스물 일곱 편의 서평이 실려있다. 책의 서두에 실린 ‘또 다른 창작, 서평‘이라는 글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창작으로서의 비평, 예술로서의 비평을 지향하는 나는 서평과 그 외 글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본문 다시쓰기가 아닌 창작이자 새로운 이야기로서의 서평을, 글쓴이의 또렷한 입장이 담긴 글쓰기를 이야기한다. 과연 내가 그의 서평을 찾아읽는 이유도 새로운 책을 알기 위함이 아니라 글 자체에 담긴 사유 때문이 아니던가. 같은 책도 누가 읽느냐에 따라 그 감상과 해석이 달라진다. ‘독후감은 개인의 맥락에서 읽혀야 한다. 다시 말해 서평을 쓴 사람은 한 사람의 독자일 뿐 독자를 대변하는 길잡이가 아니다.‘(220p) 책을 읽고 난 뒤에 그것을 나의 것으로 온전히 체화하고 내보내는 과정이 나에게도 필요함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저자의 ‘편파적인 독서‘는 인간의 몸과 고통, 권력, 젠더에 관한 사유와 글쓰기로 이어진다. ‘정치적, 이론적, 학문적으로 다른 어떤 언설보다 세련되고 앞서 있으며 상상력조차 뛰어넘는 참신한 문제의식과 질문을 던지는 사상 체계‘(146p)인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그가 써내려간 글은 그 자체로 ‘공부‘가 된다. 사실 최근 몇 달간 나는 기존의 통념을 뒤흔드는 ‘전압이 높은 책‘을 의도적으로 회피해왔다. 단적으로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긴 책들. 구체적인 개인의 이야기가 주는 울림은 더없이 크지만 그만큼 거리두기가 어려워 몸과 마음이 고통스럽다. 그런데 이 서평집을 읽으면서 다시 치열하게 읽고 쓰기를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제대로 읽고 내 언어로 써야 한다는 생각. 물론 나에게도 공부의 출발점은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이야말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이며 내가 가진 인식의 틀을 계속해서 부수고 확장시키는 가장 멋진 도구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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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들
로이 야콥센 지음, 공민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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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자연 앞에서 말은 거추장스러운 것에 불과하다. 자연과의 대화는 말 없이 이루어진다. 필수불가결한 침묵.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읽으면서 나는 인간의 말소리가 소거된, 자연의 풍경과 소리로 가득한 시적인 다큐멘터리를 떠올렸다. 노르웨이의 작가 로이 야콥센의 대표작으로 2017년 맨부커 국제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소설에는 비뢰이 섬에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외딴 섬에서 고립되어 사는 비뢰이 가족은 필연적으로 자연에 그들의 삶을 ‘내맡긴다‘. 이들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아야하기에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소박한 삶이라고 결코 쉽지는 않다. 오히려 이들의 삶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사투다. 그렇지만 이들에게는 스스로의 힘으로 생활을 꾸려가는 이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위엄이 있다. 본토 사람들에게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고결함이 있다.



자연이 비뢰이 섬을 내려다본다면 바로 이런 문장을 썼을 것 같다. 간결하고도 담백하다. 비뢰이 가족의 이야기는 다른 모든 인간사가 그렇듯 굴곡져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저자가 이들의 삶을 그려내는 방식에는 감정의 개입이 최소화되어있다. 있는 그대로를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문장은 내칠 것 없이 단단하고, 오히려 그 단순함에서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자연이 아무런 가치판단을 하지 않듯 저자는 그저 비뢰이 가족의 일대기를 내보일 뿐이다. 결국, 어떻게 흘러가든 모든 인생은 아름답다고 말하려는 듯이.



독특한 매력이 있는 소설.



P.S. 이 책이 노르웨이에서 베스트셀러라는 이야기에 놀랐다. 노르웨이 사람들 정말 멋지다.. 당신들은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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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정치를 하다 - 우리의 몫을 찾기 위해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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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서양화가 나혜석이 정치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는 가부장적 제도에 전면으로 부딪히여 여성 해방론을 주장했고, 3.1운동때는 여성들의 참여를 앞장서서 조직했다. 때에 따라 정치적 야망을 숨기기도 했으나, 그는 언제나 여성의 ‘몫‘을 찾기 위해 사회적 실천을 행했다. 그러므로 정치를 ‘몫없는 자들의 몫‘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으로 해석할 때, 명실상부 나혜석은 정치인이다. 이 이야기로 서문을 여는 <여성, 정치를 하다>에서는 다양한 시공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였던 21명의 여성 정치인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책 속에는 직업 정치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이들의 이야기가 포함되어있다. 여성 참정권을 위해 싸웠던 애멀린 팽크허스트부터 타이완 첫 여성 총통 차이잉원,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반전운동을 펼쳤던 예술가 케테 콜비츠까지. 모든 이야기가 고무적이었지만 꼭 기억해두고 싶은 것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이야기다.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의 저자인 린드그렌은 ‘어떠한 경우에도 작가는 세상과 고립될 수 없다‘며 맹렬하게 정치적 글쓰기를 이어갔다. 그는 평생을 지지했던 사회민주당의 조세 정책이 잘못되었을 때 날카롭게 비판했고, 체벌 교육을 반대하는 연설을 했으며, 동물 복지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린드그렌 법‘ 재정의 근간을 만들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문학과 정치를 ‘아무리 위험해도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이라 말했던 린드그렌의 꿋꿋한 태도가 주는 울림이 크다.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삶을 살고 있든 정치는 결코 생활과 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뇌인다.



21명의 여성 정치인들이 처한 상황과 꿈꿨던 이상은 제각기 달랐으나 분명한 것은 이들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정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질 논란에 맞서며 최초의 여성 국무 장관을 역임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특별한 장애인‘으로 취급받기를 거부하고 사회적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던 헬렌 켈러, ‘여배우는 장관이 되면 안된다‘는 여론을 뒤엎고 문화부 장관이 된 멜리나 메르쿠리를 떠올려본다. 이들의 이야기는 과연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하게 만든다. 멜리나 메르쿠리의 말처럼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정치가 필요하다.‘ 어떻게,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정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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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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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약속이 있어 집을 나서며 현관 앞에 막 도착한 책을 들고나가 지하철에서 절반쯤 읽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머지 절반을 읽었다. 대체불가 장류진. 이 소설을 읽고 두근거림 혹은 불편함 둘 중 어떤 것을 느꼈든 이유는 같을 것이다. 아, 나도 코인 열차든 뭐든 타고 달까지 가고 싶다! 벼락 부자 좀 되고 싶다!



‘대기업 다니는 흙수저 여성 3인방의 코인열차 탑승기’. 출구없는 막막한 현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한 방이다. 속도감 있는 전개, 유쾌한 묘사, 극도의 현실감! 나와 내 친구들 이야기같은 현실적인 묘사에 깔깔거리며 웃다가도 갑자기 불안이 밀려와 웃음을 뚝 멈추기를 반복했다. ‘내가 저들과 뭐가 다르다고 웃고 있지?’ 같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깨달음이 있었다.



순식간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나니 가볍게 덜컹거리며 질주하는 롤러코스터를 완주한 기분이다. 아무도 목적지를 모르는, 언제 고장나 멈춰도 이상하지 않은, 그러나 끝이 없는 롤러코스터를. 어떻게해도 도저히 나아지지 않는 현실과 질주하는 개인의 욕망 속에서 질주하는 우리들은 이 롤러코스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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